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48
48화 망나니 마왕의 친구들 (2)
‘도, 돈을 내놓으라니!’
아르칸은 순간 머리가 띵했다.
어떻게 맡겨 놓은 것처럼 달라고 하는 거지?
도저히 납득이 안 됐던 아르칸은 다시 과거 기억을 찾아봤다.
빠르게 회상을 마친 아르칸은 탄식이 나왔다.
‘이거 호구도 보통 호구가 아니었네.’
빙의하고서는 망나니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 힘썼지, 아르칸이 어떤 망나니짓을 했는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차별로 모든 기억을 떠올려 살펴보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서였다.
막상 빈키스가 찾아와서 함께 어떤 일을 했는지 떠올려 보니 가관이었다.
소위 친구들이라는 녀석들은 은근히 아르칸을 조롱하면서도 돈을 잔뜩 뜯어 갔다.
한마디로 이용당한 거였다.
빙의 전 아르칸이 망나니짓을 안 했다는 소리는 아니다.
술에 취해 행패도 많이 부리고 난동도 피워 주위에 큰 피해를 줬다.
다만, 거기에 친구들이 은근히 부추기며 일조했을뿐더러 어울려 노는 비용도 대부분 아르칸이 부담하게 했다.
그러다 돈이 떨어지고 뜯어먹지 못하니 연락을 끊었다.
‘단순히 어울릴 돈이 없어서 그런 거였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군.’
사실 현실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었다.
시설에서 나와 독립할 때 받은 지원금을 노리고 접근한 비슷한 처지의 형 누나들.
그때는 잊지 않고 찾아와 준 것만 해도 고맙고, 가족이 생긴 것 같았지만.
돈이 떨어지자마자 연락이 뜸해지고 기껏 연락이 닿아도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기가 막힌 건 알바를 시작하고 돈이 모이기 시작하자 귀신같이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그때처럼 빈키스도 아르칸의 마왕성이 원래대로 돌아간 걸 확인하고 뜯어먹을 게 생겼다고 찾아온 모양이었다.
“왜 말이 없어? 돈 좀 달라니까. 술 마시려고 꿍쳐 놓은 돈 있을 거 아니야.”
아르칸이 기억을 되새긴다고 잠자코 있자, 빈키스가 채근했다.
그런 빈키스에게 아르칸이 씩 웃으며 말했다.
“돈? 있긴 있지. 한 5백만 골드쯤?”
어마어마한 숫자에 빈키스가 멈칫했다. 잘못 들었나 싶은 거였다.
“뭐? 정말이야?”
“내가 왜 거짓말하겠어? 맞지, 오웬?”
“……맞습니다.”
오웬이 그걸 왜 말하느냐는 표정으로 나직이 대꾸했다.
그러자 빈키스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크, 부럽다. 부러워. 나도 부모한테 그 정도 돈 받으면 술 끊을 수 있을 텐데. 와! 5백만 골드라니. 상상도 안 되네.”
연신 감탄하던 빈키스는 대뜸 아르칸 쪽으로 몸을 내밀었다.
“그럼 1백만 골드만 줘.”
“배, 백만 골드를…….”
어마어마한 돈을 내놓으라는 소리에 옆에서 듣고 있던 오웬이 기겁했다.
“싫은데?”
“역시 1백만 골드는 좀 많았나? 그럼 50만 골드만. 아니 10만 골드도 괜찮아.”
“1백만 골드고 10만 골드고, 내가 왜 줘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뭐라고?”
빈키스가 대뜸 인상을 쓰며 금방이라도 한 대 칠 것처럼 위협했다.
그러나 아르칸은 태연한 얼굴로 바라볼 뿐이었다.
이 정도 위협에는 마룡의 가호도 필요 없었다.
“계속 돈 내놓으라는 소리만 할 거면 그만 돌아가. 오웬, 손님 돌아가신다.”
“빈키스 님, 일어나시지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야! 정말 이러기야?”
빈키스는 오웬을 무시하고는 큰 소리로 윽박질렀다.
오웬으로서는 난감했다.
무기를 들고 싸운다면 모르겠지만, 현재 오웬의 상태로는 힘으로 끌어내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때 볼가가 나섰다.
“재미없게, 소란 피우지 말고 그만 돌아가지?”
“뭐라고? 이 건방진 노예 새끼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손님이 윽박지르는 게 더 건방진 것 같은데, 아닌가?”
데시무스도 한마디 했다.
“뭐라고?”
화난 빈키스는 난동을 피우려다가 순간 움찔했다.
볼가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자신은 혼자였다.
“쯧. 불쌍해서 놀아 줬더니만 인제 와서 나를 무시해? 두고 보자.”
인상을 쓰던 빈키스는 결국 아르칸에게 경고만 남기고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아르칸 님, 잘 끊어 내셨습니다.”
“재미없게. 싱거운 녀석이로군.”
“나도 동의해. 두고 보자는 놈들치고 별 볼 일 있는 녀석 없었지. 이걸로 끝일 겁니다.”
오웬, 볼가, 데시무스까지 한마디씩 하는데 아르칸이 씩 웃으며 말했다.
“아니, 이걸로 끝이 아닐 거야.”
“끝이 아니라니요?”
“두고 보면 알아.”
아르칸의 말대로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틀 뒤.
빈키스가 아르칸 마왕성을 공격해 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마인족을 잔뜩 이끌고.
* * *
오웬이 보고했다.
“빈키스가 30명가량의 무장한 마인족을 이끌고 이리로 오고 있답니다.”
“예상대로군.”
아르칸은 일부러 빈키스에게 5백만 골드가 있다고 말했다.
그걸 욕심내서 쳐들어오길 바라서였다.
이참에 망나니 시절 때 자신을 털어먹던 녀석들에게 복수하고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마왕성이 공격받을 예정이라는 말에도 보고한 오웬은 물론, 회의에 참석한 센시아와 트릴도 긴장한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왕도 아니고, 일개 마인족인 빈키스가 끌고 오는 병력 수준이라고 해 봐야 빤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있었던 여러 침공 중 가장 만만한 상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크들은 지금 하나도 없지?”
최근 오크 로드가 된 나크룸이 전쟁을 준비한다며 난리라 장례식이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그 전쟁이란 바로 마왕성을 공격하는 것.
소설에서 원래 대결 상대였던 차르메인은 진작 마왕성을 잃고 얼마 전에 소멸한 상황.
다른 마왕을 공격해야 할 텐데, 정작 나크룸도 오크들을 준비시키기만 할 뿐 어느 마왕을 공격할지 아직 못 정했다고 했다.
조만간 아르칸과 상의하러 온다고 했지만, 아르칸도 난감했다.
물어봐도 모르는 마왕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말해 주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건 그때 가서 보고 생각하자.’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오크들의 도움 없이 우리 경비대만으로 충분히 방어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산 무기들도 있고요.”
센시아의 말에 트릴이 설명을 덧붙였다.
10명이면 그 세 배 숫자를 상대해야 하는데, 확실히 자신만만해 보였다.
“그래도 되지만, 어때? 볼가가 한번 싸우는 걸 보는 건.”
“흠,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아르칸의 제안에 센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만한 성격만큼, 실제 실력이 어떤지 궁금해서였다.
“좋아. 그럼 볼가와 데시무스를 불러와.”
둘은 마왕성 내에서는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아무래도 아직 노예 신분이기에 오웬이 회의에 참석시키지 않았다.
아르칸은 둘을 성정을 알기에 아예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켜 줘도 상관없었다.
다만, 오웬이 가능한 한 아르칸의 권능으로 신하로 만든 뒤에 해방시켜 줄 것을 권했다.
‘하긴, 그편이 안전하긴 하겠지.’
소설에서 읽을 때와 다르게 돌발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오웬의 의견도 존중해 줄 겸, 조심성 있게 구는 것도 나쁘지 않기에 일단 노예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잠시 후.
볼가와 데시무스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30명가량의 마인족이 이곳을 공격해 온다는군. 어때, 한번 싸워 볼래?”
“재밌군. 내 실력을 보여 주지.”
“조심해야 해. 적의 수준을 모르지 않나.”
시원스레 대답하는 볼가에게 데시무스가 주의를 환기했다.
그 대답도 아르칸의 마음에 들었다.
“걱정 안 해도 된다. 후방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위험하면 나설 테니까.”
“어, 그러면 괜찮겠네요. 그런데 저도 싸워야 합니까?”
“싸우든 말든 알아서 해. 대신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으려면 능력을 보이는 게 좋겠지.”
“음, 알겠습니다.”
데시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빈키스가 상대라면 데시무스의 전투력으로도 어떻게 해 볼 수 있겠지만, 다른 방법으로 활약하는 것도 기대됐다.
아르칸이 자리에 일어서면서 말했다.
“그럼 불청객을 맞이하러 가자.”
* * *
‘나를 무시한 대가를 꼭 치르게 해 주마!’
아르칸에게서 쫓겨나 빈키스는 복수하기 위해 당장 근처 도시로 향했다.
거기서 술을 마시고 있던 마인족들에게 함께 아르칸 마왕성을 공격하자고 구슬렸다.
“아르칸? 만만하긴 하지만, 바리스탄이 화내면 어쩌려고 그래?”
“괜찮아. 우리처럼 떠도는 인생을 바리스탄이 어쩔 수 있겠어? 한탕 하고 도망치면 못 찾을 거야.”
“최근에 마력을 회복했는지 마왕성도 지하로 들어가고, 오크들도 자주 드나든다는데 위험한 거 아니야?”
“내가 아까 가 봤는데 오크들은 하나도 없더라. 병사들도 얼마 안 되던데. 누가 거기서 일하고 싶어 하겠어?”
“거기 털어 봤자 건질 것도 없는 거 아니야? 마정석을 가져가면 바리스탄이 끝까지 쫓아올걸.”
“마정석은 필요 없어. 그보다 아르칸 녀석한테 5백만 골드나 있다더라고. 그걸 노리고 한탕 하자는 거지.”
빈키스의 설득이 통했는지, 술김에 호기를 부리는 건지, 참가한다는 마인족이 하나둘 늘어나서 30명에 달했다.
‘경비병 10명 상대로는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나눌 사람이 너무 많아도 곤란하니까.’
30명이 모인 걸 확인한 빈키스는 그 즉시 마인족들을 이끌고 아르칸 마왕성으로 향했다.
도중에 고블린들을 마주쳤는데 술에 취한 채로 검을 휘두른 거에도 고블린들은 혼비백산해 도망쳤다.
그 덕분에 모두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았다.
그건 이들을 이끄는 빈키스도 마찬가지.
‘훗. 내가 마음먹으면 그깟 마왕성쯤이야 진작 함락시킬 수 있다니까. 그동안 내가 봐줬었는지도 모르고.’
실은 함락시켜 봐야 얻을 게 없어서였지만. 빈키스는 그렇게 관대한 자신을 화나게 한 아르칸이 문제라고 여겼다.
마왕성 앞까지 거침없이 진격한 빈키스와 그 일당을 맞이하는 건, 열려 있는 마왕성이었다.
“뭐지? 왜 문이 열려 있어?”
“경비병도 없나?”
“원래 마왕성이 이래?”
“아니, 내가 가 본 곳은 안 그런데.”
다들 혼란스러워하는데 빈키스가 폭소를 터트렸다.
“내가 말했잖아, 경비병이 얼마 안 된다고. 쉬러 간 게 아닐까?”
“문도 안 닫고?”
“내가 왔을 때도 문이 열려 있었어. 문 닫는 데도 마력이 들잖아. 마력이 모자라서 마왕성이 지상으로 반쯤 올라왔을 정도인데, 늘 열어 두나 보지.”
“아.”
빈키스의 물 흐르는 듯한 설명에 다들 납득했다.
“됐어. 잔소리 그만하고 내 5백만 골드 가지러 가자.”
“그게 왜 네 5백만 골드야? 우리 5백만 골드지.”
“자 자, 싸우지 말고. 어서 마왕성이나 털러 가자고! 나중에 공평하게 나누면 될 거 아니야.”
빈키스는 일행을 달래며 앞장섰다.
“우오! 오늘 부자 되는 날이다! ”
“앞으로 술 진탕 퍼마실 수 있겠군.”
“술뿐이야? 그 정도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 수 있어.”
“그 생각하니 또 술이 당기네. 한 모금만 하고 가자고.”
다들 왁자지껄 떠들어 대면서 빈키스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그때 저 앞에서 허연 게 보였다.
빈키스가 주춤하자 뒤에서 따라오던 마인족이 물었다.
“어, 저기 뭔가 있는데? 사로잡을까?”
“그냥 다 죽여 버려. 바리스탄 귀에 늦게 들어가려면 그게 최선이야!”
그때 저 앞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죽인다고? 재밌군. 그나저나 다 들어온 건가?”
“통제실에서 보고 문을 닫을 테니까, 문이 닫히면 시작하면 돼.”
허연 물체의 옆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싶었을 때, 쿠쿵! 하면서 사방이 흔들렸다.
맨 뒤에 있던 마인족이 소리쳤다.
“빈키스! 무, 문이 닫혔어! 어쩌지?”
“어쩌기는! 어차피 마왕성을 장악하고 열면 돼! 헛짓거리 하지 말고 저 허연 녀석이나 해치워.”
“그래, 덤벼라! 다 상대해 주지.”
허연 게 그렇게 말하면서 위로 확 커졌다. 아무래도 앉아 있었던 모양인데 그걸 생각하니 제법 덩치가 컸다.
그 위협적인 모습이 빈키스가 이를 갈았다.
‘아르칸 이 자식, 어디서 용병이라도 불렀나? 일단 싸우다가 적당히 뒤로 물러나자.’
그때 다른 목소리가 말했다.
“방금 대답한 녀석이 빈키스인가 본데. 죽이면 안 되는 거 알지?”
“알고 있다.”
그렇게 대답한 허연 게 빈키스와 마인족들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뭐, 뭐야?”
“수인족이다!”
“어, 수인족 강하지 않아? 이야기가 다른데?”
“겁먹지 말고 싸워! 그래 봐야 상대는 혼자다!”
빈키스는 일행을 독려하면서도 전투에 가담하지 않고 상황을 관망했다.
하얀 털의 호랑이 수인족, 볼가는 앞발을 휘두르며 수십 명의 마인족 사이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그걸 보며 데시무스가 감탄했다.
“역시 볼가, 내가 나설 필요가 없겠네.”
“크아악! 살려 줘!”
“공격해. 공격!”
“젠장, 검이 안 통하잖아.”
“저, 저 녀석이라도 공격하자.”
그때 외곽에 있던 마인족들은 태연히 있는 데시무스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그들을 향해 데시무스가 물었다.
“여러분은 뭐 때문에 여기에 쳐들어온 거죠? 저 빈키스라는 자가 선동한 것 때문 아닙니까?”
“……어? 맞아. 선동당한 거야.”
“저렇게 강한 녀석이랑 싸울 줄은 몰랐다고.”
그 소리에 빈키스가 어이없어했다.
“뭐라고? 너희도 돈을 노리고 온 거잖아!”
“닥쳐! 네가 꾄 탓이잖아.”
서로 다투는 걸 보고 데시무스가 은근한 목소리로 제안했다.
“그런 이유라면 차라리 편을 바꾸죠?”
“그, 그래도 되나?”
“물론이죠. 그 증거로 저자를 잡으면 정상참작이 될 겁니다.”
그 말에 마인족들이 빈키스를 쳐다봤다.
그 모습을 보고 데시무스가 씩 웃었다.
볼가의 활약과 데시무스의 포섭으로, 침입자를 물리치고 빈키스를 사로잡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르칸은 잡혀 온 빈키스를 내려다보며 거만하게 말했다.
“목숨만을 살려 주지.”
“크윽!”
빈키스는 분한지 주먹으로 땅을 치며 이를 갈았지만, 차마 고개를 들지는 못했다.
‘안 되겠어. 다른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해야겠다.’
빈키스는 포기하지 않고, 함께 어울렸던 친구들을 찾아갔다.
일부러 살려 준 아르칸의 의도대로 움직인 거였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