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5
5화 거래와 협박 사이 (2)
“아르칸 님!”
오웬이 소리쳤다.
“이크, 귀청 떨어지겠네. 소리 안 질러도 잘 들려.”
아르칸의 너스레에도 오웬의 얼굴은 여전히 심각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포그밀에게 돈 빌렸냐고 물었을 때는 절대로 아니라면서요!”
기억을 떠올려 보니 과거 아르칸이 노름한다고 몰래 빌려 놓고는 시치미를 뗐었다.
물론, 그 돈도 다 잃고 한 푼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어떻게 마정석을 담보로 잡을 수가 있습니까!!”
‘그건 나도 원래 아르칸 녀석에게 따지고 싶다.’
“바리스탄 님께 도움을 요청하려고 해도 일주일밖에 안 남았는데 어쩌시려……. 쿨럭, 쿨럭.”
흥분하며 목소리를 높이던 오웬이 기침하며 피를 토했다.
아르칸은 깜짝 놀랐다.
아픈지는 알았지만, 피를 토하는 걸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괘, 괜찮아?”
“……실례했습니다.”
얼른 손수건을 꺼내 입가의 피를 닦은 오웬은 별일 아니라는 듯 똑바로 섰다.
‘일단 진정부터 시켜야겠네.’
아르칸은 빚을 갚을 돈을 마련할 계획을 설명하려고 했다.
“사실 나한테 방법이…….”
“휴, 이번만입니다.”
그런데 미처 다 말하기도 전에 오웬이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
“제가 친우들에게 도움을 청하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든 수습이 되겠지요.”
‘잔소리는 해도 아르칸이 망하도록 내버려 두진 않는다는 건가. 하긴, 이러니까 용사에게 살해당할 때까지 마왕성을 유지할 수 있었겠지.’
그동안 아르칸이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오웬이 어떻게든 해결한 모양이었다.
‘오웬이 진짜 고생 많았네. 그 고생이 헛되지 않도록 내가 보답해 줄게.’
일단 이번 일부터 나서서 수습할 작정이었다.
아르칸이 오웬을 위로하며 말했다.
“오웬, 걱정하지 마. 이번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지금 걱정 안 하게……. 흠.”
불평하던 오웬이 입을 닫았다.
아르칸의 분위기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느낀 거였다.
‘어찌 되신 거지? 술에 안 취해서 그런가? 아니야. 술이 떨어져서 못 마셨을 때는 썩어 빠진 고블린 같은 눈빛이셨지.’
반면에 지금 눈빛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오히려 왜 저렇게 자신이 넘치는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어, 일단 상인 좀 불러 줘. 보물 창고에 있는 책부터 팔게.”
“음, 가치 있는 책이 좀 있다고 할지라도 2천 골드를 다 갚을 정도는 되진 않을 텐데요.”
오웬의 지적은 타당했다.
책이 값어치 있었다면 마왕성이 비활성화할 때 전임 마왕이나 그 관계자가 다 털어 갔을 테니까.
오히려 마도서 게티아가 거기에 잠들어 있던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상인부터 불러 줘.”
“알겠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대비는 하겠습니다.”
오웬은 아무래도 못 미더운 듯 대꾸하고는 자리를 떴다.
하긴, 그동안 실컷 망나니짓하다가 갑자기 이제 잘할 거라고 해도 누가 믿겠는가.
다시 믿음을 얻으려면 행동으로 보여 줘야 했다.
‘조금만 노력하면 될 거야. 당장은 게티아가 좀 고생하겠지만.’
“크릉?”
잠자코 있던 게티아는 문득 불길함을 느꼈는지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 * *
대마왕 바리스탄과 친우들에게 도와달라는 서신을 보내고 밖으로 나온 오웬은 깜짝 놀랐다.
통로에 책이 잔뜩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벌써 시작하시다니, 그 전에 말만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곧바로 실행하실 줄이야.’
처음 보는 의욕 넘치는 모습이었다.
‘근데 책을 나눠 둔 건 왜지?’
책은 좌측, 중앙, 우측 이렇게 세 군데에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하인들이 표지의 먼지를 닦고 있는 우측에는 책이 대여섯 권, 중앙에는 수십 권, 좌측에는 백여 권은 되는 듯했다.
오웬은 좌측의 하인들이 닦아서 따로 모아 둔 책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건 마족 듀카드가 쓴 ‘마계전쟁사 분석’, 이쪽은 대마왕 가모시드의 ‘약초상자’. 둘 다 구하기 힘든 책인데…….’
다른 책들도 나름대로 회귀한 책들이었다.
‘설마 귀한 책인 줄 알고 나눈 건가?’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떨쳐 버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아르칸은 책이라면 질색했다.
읽기 쓰기는 억지로 배우긴 했으나 제대로 읽은 책은 한 권도 없었다.
오웬은 책을 내려놓고 보물 창고로 향했다.
도착해서 내부를 본 오웬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마도서가……. 날아다녀?’
게티아가 날아다니며 가름끈으로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책을 하나씩 훑고 있었다.
아르칸은 그 책을 읽으며 하인에게 지시를 내렸다.
“여기 있는 것들은 전부 하급. 아, 마지막 건 중급이다.”
그 말에 하인이 테이블 위의 책을 옮기고. 다른 하인이 새롭게 책을 펼쳐 두기 시작했다.
“아르칸 님, 지금 뭐 하시는 중이십니까?”
“아, 왔어? 책 감정해서 분류 중이었어. 게티아가 감정할 수 있거든.”
“오! 감정이라니,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군요.”
오웬의 감탄에 기분 좋아진 게티아는 더욱 열심히 감정했다.
그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오웬은 문득 현재 상황을 떠올렸다.
‘참, 이럴 때가 아니지.’
당장 빚을 못 갚으면 마정석을 빼앗긴다.
동시에 아르칸이 가진 마왕의 직위도 사라진다.
한마디로 모든 게 다 끝장나는 거였다.
바리스탄 님도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화를 내며 아르칸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지도 몰랐다.
“귀한 책이 좀 있는 거 같긴 합니다만, 그것들을 팔더라도 여전히 부족합니다.”
책을 쓸 때는 모두 손으로 쓰지만, 완성본은 마법으로 복제하기에 가치가 그리 높지 않았다.
아까 본 희귀 서적이라고 해도 잘 쳐줘야 3골드? 2천 골드에는 한참 모자랐다.
“나도 알아. 당연히 책 판매금을 종잣돈 삼아 불려야지.”
“…….”
오웬의 표정이 굳었다.
‘휴, 한동안 잠잠하나 싶었는데. 또 시작인가?’
술독에 빠져 살던 아르칸이 어느 날 대뜸 돈을 벌어야겠다고 했다.
자신의 부족한 능력을 금전으로 극복하겠다는 거였다.
틀린 접근은 아니었다.
아무리 마계가 강자존이라 해도 돈의 역할은 지대했으니까.
대마왕까진 무리긴 해도 엄청난 재력으로 강한 부하들을 고용해 랭킹에 오른 마왕도 있었다.
그러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했는데, 그만큼의 돈을 아무나 쉽게 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물며 세상 물정 모르는 애송이나 다름없는 아르칸이 무슨 수로 돈을 불리겠는가?
오웬은 술에 취해 헛소리한다고 생각하고 넘겼지만, 아르칸은 진심이었다.
문제는 최악의 방법을 선택했다는 거였다.
그건 바로 도박.
처음에는 초심자의 행운인지 조금 땄지만, 이내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잃었다.
그런데도 포기하기는커녕 본전 생각에 무리하다가 포그밀에게 돈을 빌린 거였다.
‘안 된다. 도박만은 절대 안 돼!’
오웬이 반드시 막으리라 다짐하는데, 아르칸이 생각지도 못한 지시를 내렸다.
“상인이 오면 분류한 대로 책을 팔고, 그 돈으로 약초를 매입해.”
‘어? 도박하시려던 게 아니었나?’
오웬은 멋쩍어하며 물었다.
“근데 무슨 약초를 사면 됩니까?”
“아, 그건 풀이 아니라 열매니까 약재라 해야 하나? 세틱이라면 오웬도 알지?”
세틱이라는 말에 오웬의 얼굴이 굳었다.
세틱의 열매는 진통과 진정 효과가 뛰어난 약재긴 했다.
비싸긴 해도 극심한 고통을 줄여 주기에 치열한 전장에서 자주 쓰였다.
당연히 오웬도 진통제 용도로 먹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오웬의 얼굴이 굳은 건 세틱의 다른 용도 때문이었다.
세틱의 열매를 정제해 과다 복용하면 나른해지면서 환각에 빠지는데, 그걸 이용해 향락에 빠지는 매개체로 쓰인다.
그 때문에 마약으로 부르기도 한다.
다친 것도 아닌 아르칸이 대량으로 사들이라고 하니, 향락을 위해 찾는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이럴 수가, 설마 자포자기해 마약에까지 손을 대시려는 건가?’
오웬은 참담한 마음에 주먹을 꽉 쥐었다.
다른 건 몰라도 마약만큼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충심을 다해 안 된다고 말리고, 안 된다면 사생결단을 낼 수밖에.’
그때 아르칸이 말했다.
“참, 이것도 가져다 팔아야지. 게티아, 이것 좀 건네줘.”
게티아가 가름끈으로 술병을 휘어잡고 날아가 오웬 손 위에 내려놨다. 그러면서 슬쩍 오웬의 손을 훑었지만, 오웬은 눈치챌 정신이 없었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럴 수가! 아르칸 님이 술을 팔라고 하시다니!’
그것도 건네준 게 오늘 포그밀이 선물이랍시고 가져온 고가의 술이었다.
며칠 전 비싼 술을 못 마셔서 괴롭다며 징징거리던 게 아직 눈에 선한데, 그 비싼 술을 팔라고 하다니.
설마 세틱도 마약으로 쓰려는 게 아닌가?
“오웬? 왜 말이 없어?”
“아, 알겠습니다. 근데 세틱은 어디에 쓰시려고 하는 겁니까?”
“응? 아픈 사람한테 쓰려고 사는 건데?”
“……?”
약으로 쓴다면 그렇겠지만, 지금 마왕성에 아픈 사람이 있던가?
의문 가득한 오웬의 표정을 본 아르칸이 웃으며 말했다.
“두고 보면 알아.”
며칠 뒤.
오웬이 보고했다.
“아르칸 님, 마왕 드리켈라 님의 원정군이 이쪽으로 지나간답니다.”
“그래?”
책에 무언가를 열심히 쓰던 아르칸은 고개도 들지 않고 대꾸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인계로 원정 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빨리 회군을 하다니. 무슨 일일까요?”
‘무슨 일이라, 아주 큰 일을 당했지.’
내막을 알았지만, 아는 체할 수 없었던 아르칸은 속으로 대꾸했다.
“……그런데 아르칸 님, 안 가 보실 겁니까?”
“내가 왜?”
“출정 때도 배웅하셨지 않습니까? 아버님이신 대마왕 바리스탄 님의 파벌에 속한 마왕이니 응원하고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요.”
‘내가 그랬나?’
그제야 아르칸은 펜을 놓고 기억을 더듬었다.
확실히 그런 기억이 존재했다.
다만 실제로 응원하고 친하게 지내니 어쩌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핑계에 불과했다.
바리스탄의 아들이니만큼 아버지의 위세로 대접이나 받을까 싶어 찾아간 거였다.
‘괜히 찾아갔다고 후회했지만.’
대접은커녕 마왕 드리켈라와 그 휘하 마족에게 실컷 조롱만 당했다.
아르칸이 망나니짓하느라 대마왕 바리스탄에게 버림받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도중에 빠져나오지도 못해 밤새도록 시달렸다.
돌아와서 또 며칠간은 질질 짜면서 술을 퍼마시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아르칸의 복수도 조금 해 주는 셈이 될지도 모르겠군.’
“아르칸 님?”
“아니, 됐어.”
아르칸이 관심 없다는 듯 손을 내젓자 오웬은 속으로 적잖게 안심했다.
‘아무래도 진정으로 정신 차리신 모양이야. 요 며칠 술은 입에도 안 대실 뿐만 아니라, 마음 놓고 술을 마실 기회에도 마다하시고.’
“배웅 안 나가도 아쉬운 쪽이 찾아올 테니까.”
‘아쉬운 쪽?’
의아해하던 오웬은 잠시 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마왕 드리켈라가 보낸 사자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돌려서 말하긴 했지만, 원정 나갔다가 대패한 모양인 듯, 부상병을 위해 세틱 좀 줄 수 없냐고 넌지시 부탁까지 했다.
‘저 무례하던 마족이 아쉬운 소리까지 하다니.’
아르칸의 말대로 된 거였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