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51
51화 망나니 마왕의 친구들 (5)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오웬의 눈빛이 반짝였다.
쳐들어오는 적에 대한 걱정은 사라지고, 아르칸이 얼마나 대단한 걸 보여 줄지에 대한 기대로 바뀌었다.
반면에 볼가는 투덜거렸다.
“이번에는 쉬어야 하나? 재미없게 됐군.”
‘하긴, 싸움광인 만큼 이기기 힘들어도 싸워 보고 싶겠지.’
아르칸은 볼가에게도 기회를 주기로 마음먹고 물었다. 그 전에 확인할 게 있었다.
“부활은 쓸 수 있나?”
볼가의 특성인 부활은 연달아 사용하지 못하고, 재사용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없어도 괜찮다!”
“내가 안 괜찮아. 너 정도의 전력을 잃으면 손해가 막심하거든.”
“크음.”
아르칸이 뜻밖에 강한 어조로 말하자 볼가는 살짝 놀란 듯했다.
이내 복잡한 눈빛이 되더니 순순히 털어놨다.
“내일 정오쯤이면 재사용할 수 있을 거 같다.”
“적은 아마 그 이후에 올 겁니다.”
오웬이 묻기도 전에 궁금했던 정보를 알려 줬다.
“그럼 문제없겠네. 먼저 마음껏 싸워 봐.”
“고맙다. 부활을 쓸 일도 없이 다 해치워 버릴 테다. 으하하!”
“난 이번에 쉴게. 그래도 됩니까?”
옆에 있던 데시무스가 능청스럽게 물었다.
눈치 빠른 녀석답게 아무래도 치열한 전투를 예상한 모양이었다.
“나 혼자라도 상관없다. 빠지든 말든 마음대로 해.”
“그렇다는군.”
아르칸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 * *
‘크흐흐, 내가 이 정도 전력을 이끌다니. 마왕이 된 것 같군.’
빈키스는 뒤따라오는 병력을 보며 감격했다.
자렐토가 붙여 준 병력은 마족 10명에 마인족 병사 3백 명.
자렐토 마왕성 전력의 대부분을 동원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마족을 10명 동원한 건, 마왕이 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마왕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마족들은 모두 자렐토 아버지의 부하들이었는데, 하나같이 역전의 용사처럼 강인해 보였다.
“어이, 한눈팔지 말고 앞이나 봐.”
“정신 안 차려?”
“엉뚱한 데로 안내하면 뒈진다?”
약간 무시당하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그래도 대장은 나니까.’
이 원정대가 승리하면 공도 대장인 자신의 것이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쓰러진 아르칸이 목숨을 구걸하면 걷어차며 잔뜩 조롱할 상상을 하니 충분히 인내할 수 있었다.
또 아르칸의 5백만 골드 중의 10분의 1만 챙길 수 있어도 앞으로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그 장밋빛 미래에 비하면 이 정도 수모는 아무것도 아니지.’
다음 날, 빈키스는 다행히 헤매지 않고 아르칸 마왕성 앞에 도착했다.
“여깁니다.”
“음, 망해 가는 마왕성이라더니 멀쩡한걸?”
“최근에 회복했다잖아.”
“근데 왜 문이 열려 있지? 경비병도 없고? 설마 우리 오는 걸 모르고 있나?”
이런 상황을 미리 경험해 본 빈스키가 아는 체했다.
“전에 쳐들어갔을 때도 이랬습니다. 안에 무시무시한 수인족 전사가 지키고 있습니다.”
“아아, 혼자서 30명을 해치웠다던.”
“강해 봐야 혼자서라면서?”
“혼자서 날뛰어 봐야 우리한테는 안 되지.”
마족들은 자신감이 넘쳤다.
마왕성 랭커였던 마왕을 모셨던 그들은, 힘을 합쳐 하급 마왕도 쓰러트린 적이 있었다.
마왕도 아닌, 좀 강한 수인족 정도야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았다.
“그렇군요. 그럼 어서 들어가시죠.”
“네가 먼저 들어가.”
“네? 하지만 전 대장인데…….”
“대장이니까 선두에 서야지. 그게 당연한 거 아니야? 덩치가 아깝네.”
“머, 먼저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마족들의 채근에 빈키스는 더 대꾸할 말을 잃고 힘없이 앞장섰다.
전투는 마족들에게 맡기고 물러서 있으려고 했는데 일이 틀어졌다.
‘젠장, 싸울 때는 상황 봐서 뒤로 빠지자.’
그런 마음가짐으로 안으로 들어가는데 하얀 수인족이 불쑥 나타났다.
“어이, 재미없는 녀석. 또 왔나? 이번에는 좀 강한 친구들로 데려왔나 봐.”
“저 녀석입니다, 저 녀석!”
화들짝 놀란 빈키스가 뒷걸음질 치며 외쳤다.
“음, 딱 봐도 알겠군. 확실히 보통 녀석이 아니야.”
“이렇게 강한 노예를 사 오다니, 돈 좀 썼나 본데?”
“하긴, 돈이 많다니까.”
빈키스는 마족들이 하는 말에 덜컥 겁이 났다.
‘인제 와서 약한 소리나 하다니, 설마 지는 건 아니겠지?’
“우는소리는 그만하고 같이 재밌게 놀아 보자!”
하얀 수인족, 볼가가 소리치면서 마족들에게 달려들었다.
“너희는 방해다. 물러나 있어.”
마족들은 병사들에게 말하고는 전투태세를 갖췄다.
‘기회다!’
빈키스도 병사들 틈에 끼어 슬쩍 뒤로 빠졌다.
그러는 사이 볼가와 마족들이 격돌했다.
“이 자식! 저 덩치로 이렇게 빠르다니.”
“저 발톱을 조심해. 걸려들면 치명상을 입을 거야.”
“힘도 보통이 아니야!”
마족들은 놀라면서도 볼가의 공격을 막거나 피했다.
“크크크, 재밌게 해 주는군.”
기세등등해진 볼가는 더욱 힘을 내 휘몰아치듯 공격했다.
누가 봐도 볼가가 우세한 상황.
그러나.
“지금이다!”
“다들 공격해.”
“오옷!”
한창 날뛰던 볼가가 숨을 고르기 위해 잠깐 멈칫하자마자 마족들이 반격에 나섰다.
“크윽, 이 자식들이.”
볼가는 이를 악물며 대응했지만, 도리어 여기저기 공격받으면서 결국 상처를 입었다.
치명상은 입지 않았지만, 궁지에 몰린 거였다.
“이대로만 하면 이긴다!”
“다들 집중해. 틈을 주면 안 된다!”
“우리는 이길 수 있어.”
마족들이 서로 격려하면서 점점 볼가를 압박해 갔다.
전황이 유리해진 걸 본 빈키스가 슬그머니 앞으로 나와서 잘난 체했다.
“훗, 별거 아니구먼.”
마족들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지금은 한창 전투 중이라 여력이 없었다.
얼마간의 전투 끝에 볼가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입히는 데 성공했다.
“크아아악!”
볼가는 온 힘을 다해 마족들을 뿌린 뒤, 겨우 물러나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피가 주르륵 흐르고 있어 다 잡은 사냥감 꼴이었다.
그런 볼가를 보며 빈키스가 비웃었다.
“크하하하핫! 꼴좋다. 내가 자비를 베풀어 살려 줄 테니 아르칸에게 가서 항복하라고 해.”
“살려 줘? 저 녀석 혼자라서 다행이었지. 둘만 되었어도 밀리는 건 이쪽인데 미쳤어?”
“자비는 무슨.”
“지금 안 죽여 두면 위험하다.”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마족들이 기겁하면서 인상을 쓰자 주눅이 든 빈키스가 웅얼거렸다.
정작 볼가는 조금도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 도리어 핏발 선 눈으로 외쳤다.
“흥! 누가 죽는지 끝까지 가 보자고!”
그때 볼가의 뒤편에서 아르칸이 나타났다.
“끝까지 가 보기는, 이쯤 하지? 이 정도면 재밌게 놀았잖아.”
“음, 조금 재밌긴 했다.”
볼가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승패를 떠나 전력을 다하기도 했고, 흥미로운 상대였었기 때문이다.
한편 아르칸이 나타난 걸 보고 빈키스가 외쳤다.
“저 녀석입니다! 저 녀석이 망나니 마왕 아르칸입니다! 겁도 없이 나타나다니, 넌 이제 끝장이다!”
“음? 저게 마왕? 별거 없어 보이는데?”
“대마왕 바리스탄이 울겠군.”
“자렐토 님이 훨씬 마왕에 어울리신다.”
마족들이 혹평을 해 댔다.
“이것들이…….”
“괜찮아. 마음껏 떠들라고 해.”
뒤에 있던 센시아가 분노하며 달려들려고 하는 걸 아르칸이 가로막았다.
“어쨌든 이렇게 나왔으니 잡고 끝내자고.”
“멍청하게 약한 주제에 우리 앞에 나서다니.”
“네가 바리스탄 대마왕의 자식이라고 해서 겁먹을 줄 알았나?”
반면에 마족들은 곧바로 아르칸에게 덤벼들었다.
그사이 아르칸은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넣고 빼면서 외쳤다.
“모두 나와라!”
휘유우우우우우우우웅!
“크윽.”
달려오던 마족들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뿜어져 나온 거센 바람에 주춤했다.
그사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수십 명이 튀어나와 아르칸 앞을 가로막았다.
용아병들이었다.
제일 가까이 있던 용아병이 아르칸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벌써 불러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나는 고급 전력을 아껴 둘 생각이 없거든. 이번에 활약하기에 따라서 자주 부를지도 몰라.”
그 말에 용아병의 눈빛이 반짝였다.
반면에 마족들은 당황했다.
살아오면서 수십 번의 모험과 전투를 겪으면서도 처음 보는 것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건 뭐지? 언데드 몬스터인가?”
“뭔지는 모르지만, 숫자가 많다고 우리를 이길 수 없을 거다.”
“우리는 동고동락하며 수많은 전장을 함께 헤쳐 온 전우니까.”
그렇게 말하며 마족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씩 웃었다.
‘드, 든든해.’
빈키스가 그 모습에 감격하는데, 아르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와중에도 자신만만하게 씩 웃고 있는 게 아닌가?
‘어, 뭐지? 저 여유는?’
빈키스와 마족들은 몰랐지만, 마족들이 말하는 동고동락한 전우라는 건 용아병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의식을 공유하는 32명의 쌍둥이나 마찬가지기에 몇 차원은 더 높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르칸이 입을 열었다.
“그럼 어디 한번 실력 좀 볼까?”
“반드시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아르칸 바로 앞의 용아병이 대답하는 것과 동시에 용아병들이 일제히 마족들에게 덤벼들었다.
“흥! 이런 허수아비 같은 것들은 모조리 부숴 주마.”
“다들 힘을 합쳐서 박살 내자.”
“동료들을 믿어!”
그렇게 용아병들과 마족들이 격돌했다.
아르칸 마왕성의 1계층은 아주 넓었는데, 그 때문에 마족 하나에 용아병 셋이 덤벼들기에 충분했다.
몇몇 마족은 용아병보다 강하기도 했지만, 그래 봐야 셋을 상대할 정도로 강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마족의 도움을 받기도 마땅찮았다.
그걸 보며 볼가가 감탄했다.
“오호, 저 정도로 정교한 협동 공격이라니 재밌군.”
마족들은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순식간에 절반이 죽었다.
“크윽, 치사하다.”
“숫자가 많다고 해도 이길 수 있다며. 인제 와서 우는소리야? 게다가 병력은 너희가 더 많잖아.”
마족의 불평에 아르칸이 쏘아붙였다.
그제야 마족들은 자신들의 뒤에 3백 명의 병사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들 뭐 해?”
“공격해, 공격.”
“빈키스, 지휘 안 해?”
그 말에 병사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 웅성거렸다.
마족들이 절반이나 죽어 나간 상황에서 자신들이 나서 봐야 죽은 목숨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 생각은 빈키스도 마찬가지였다.
“다, 다들 공격!”
빈키스가 힘없는 목소리로 공격을 지시하자, 병사들이 우물쭈물하면서 전장을 향해 돌격했다.
그런데 정작 지시를 내린 빈키스는 가만히 있었다.
아니,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이대로는 지겠어. 도망쳐야지.’
그 낌새를 눈치챈 데시무스가 큰 소리로 외쳤다.
“어, 저거 도망친다! 뭐 해? 너희 대장 도망치잖아!”
그 말이 진짜라는 걸 확인한 마족과 병사들은 배신감을 느꼈다.
특히 안 그래도 싸우기 싫었던 병사들은 곧장 뒤따라 도망쳤다.
“저 멍청한 녀석이, 제대로 지휘해도 어려울 판에 도망을 쳐?”
“저걸 대장이라고.”
“젠장, 우리도 후퇴하자.”
마족들은 이를 갈면서 몸을 빼려고 했지만, 한 치의 틈도 보이지 않는 용아병들에게 벗어날 수 없었다.
한편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르칸이 명령했다.
“볼가, 저거 잡아 와. 죽이지는 말고.”
“재미없게.”
볼가는 투덜거렸지만, 순순히 달려가서 빈키스를 잡아 왔다.
그사이 용아병들은 마족들을 모두 해치웠다.
아르칸은 먼저 용아병들을 칭찬했다.
“멋진 전투였다.”
“흡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다음에도 또 활약할 기회를 주실 거라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아니, 돌아가서 할 게 있는 거 아니면 오랜만에 바깥바람 좀 쐬지 그래?”
“앗, 그래도 됩니까?”
용아병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얘기였는지 기뻐했다.
아공간 주머니 밖으로 외출하는 것만으로 기뻐하다니, 오죽 답답했으면 그러나 싶었다.
‘나중에 이것저것 구경시켜 줄 수 있으면 좋겠네.’
아르칸은 속으로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래, 트릴이…… 안내했다가는 이상한 소리 할 거 같으니, 오웬이 안내 좀 해 줘.”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웬이 그러고 용아병들을 데려가는데, 트릴의 입이 삐쭉 튀어나왔다.
“제가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요.”
“저래 봬도 사회 경험이 전혀 없는 애들이니까 주의하는 거야.”
아르칸은 그렇게 말하며 볼가에게 목이 밟힌 채 꼼짝 못 하는 빈키스에게 다가갔다.
빈키스는 꼴사나운 모습으로 아르칸에게 애원했다.
“사, 살려 줘. 제, 제발…….”
“살려 주지. 네 역할을 다 한다면 말이지.”
“내 역할?”
빈키스가 이해 안 된다는 얼굴을 하는 걸 보고 아르칸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