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52
52화 망나니 마왕의 친구들 (6)
빈키스의 군대가 패배했다는 소식은 금방 자렐토에게 전해졌다.
“뭐라고? 정말 졌단 말이냐?”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의 자렐토에게 집사가 침통한 표정으로 보고를 이어 나갔다.
처음에는 수인족을 압도했으나 아르칸이 기괴한 병사들을 소환해 전황이 역전됐다고 했다.
대장인 빈키스는 패색이 짙어지자 혼자 도망치려 했는데, 그 때문에 부대가 완전히 와해해 피해가 더욱 커졌다고 했다.
“빈키스, 그 자식이 결국 말아먹었나 보군!”
자렐토는 이를 갈았다.
같이 어울리긴 했지만, 평소에도 별 볼 일 없는 녀석이라 마왕이 된 이후에는 거리를 뒀었다.
그러다 이번에 아르칸이 5백만 골드를 가졌다는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를 들고 왔길래 써먹어 보려고 했는데, 기어코 망쳐 버렸다.
“자렐토 님, 진행 중인 건은 어떡합니까? 이대로라면 용병과 병사 모집은 물론이고 마족들과의 접촉도 중단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자렐토는 세력을 키우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는데, 당연하게도 어마어마한 자금이 필요했다.
모두 아르칸 마왕성을 함락시키고 5백만 골드를 손에 넣었다는 전제하에서 추진 중인 일.
공략에 실패했다면 자금이 모자랄 수밖에 없었다.
자렐토는 잠깐 고민하더니 집사에게 말했다.
“아니다. 일단 계속 진행해.”
“하지만 자금이 부족합니다.”
“부족한 자금은 내가 어떻게든 마련해 보겠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저 겁쟁이 아르칸이 미쳐서 보복한다고 쳐들어오면 막을 병력이 필요하다.”
“아, 그렇군요.”
집사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를 대비해 빈키스를 대장으로 내세웠으니까 최대한 부인할 거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 대비해야지.”
그때 경비대장이 달려왔다.
“자렐토 님, 마왕 아르칸이 마왕성을 공격한 대가를 치르게 해 주겠다고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흥, 대가라. 말로만 그런 걸 거다.”
그러나.
다음 날, 아르칸이 오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마왕군이 아니라 아르칸이 오고 있다고 보고된 건,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오지 않아서였다.
아르칸과 예의 하얀 수인족, 마인족 열 명이 전부였다.
듣기로는 그게 대부분의 전력이긴 하지만. 설마 그것만 가지고 쳐들어왔다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아무래도 항의하러 온 것 같습니다.”
“내 생각도 그렇다. 아무래도 직접 얼굴 보고 사과라도 받아야 만족할 모양이야. 하는 수 없지, 그 정도는 해 주는 수밖에.”
“크윽, 죄송합니다. 저희가 부족해서 자렐토 님이 이런 수모를 겪으시게 하다니.”
“아니다. 내가 부족한 탓이다.”
“자렐토 님!”
자렐토의 말에 집사는 물론, 옆에 있던 병사들까지 감격했다.
잠시 후.
아르칸이 도착했다는 말에 자렐토는 마왕성 앞으로 나갔다.
“아르칸, 오랜만이네. 그동안 신수가 훤해졌군. 마력도 좀 생긴 거 같고.”
“지금 반갑게 인사 나눌 상황은 아니지. 왜 우리 마왕성을 공격했지?”
“무슨 오해가 있는 듯하군.”
아르칸의 반응에 자렐토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고 웃는 낯으로 상대했다.
그러나 아르칸은 정색했다.
“오해? 빈키스가 네 부하 마족들과 병사를 데리고 공격해 왔는데?”
“그게 오해란 말일세. 자네 마왕성에 쳐들어간 마족과 병사가 내 사람이었기는 하나, 빈키스가 자네의 돈을 노리고 치자고 꾀어 간 거네. 나도 단단히 화가 나서 빈키스를 가만 안 둘 생각이었네.”
“가만 안 둘 생각이었다고? 들었지, 빈키스?”
아르칸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빈키스? 설마 살아 있나?’
자렐토가 의아해하는데, 맨 뒤쪽에서 마족이 끌려 나왔다. 빈키스였다.
“뭐? 내가 병사를 꾀었다고? 저 자식이 나한테 지휘를 맡기고 공격하라고 시켜 놓고, 어디서 발뺌하려고?”
“헛, 헛소리하지 마라.”
“네 병사들도 증언할 테니까 소용없어. 자, 그럼 명분은 이쯤이면 충분한 거 같고.”
자렐토의 부인에 피식 웃으며 대꾸한 아르칸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용아병을 꺼냈다.
“자, 모두 나와 공격해라.”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정말 이 숫자로 마왕성을 공격할 작정인가? 재밌겠는데?”
볼가와 용아병들이 덤벼들었다.
자렐토는 당황했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건 둘째 치고, 이렇게 대뜸 공격하다니.
“자, 잠깐. 잠깐만 시간을 다오. 나는 해명하러 나온 것뿐이니 싸울 거면 잠시 뒤에 정정당당하게 붙자.”
“무슨 정정당당. 네 부하들은 내가 나타나자마자 덤비던데? 볼가, 어서 해치워.”
“들었지? 저 재밌는 건 내 거다.”
“젠장!”
볼가가 자렐토에게 덤벼들었다. 빠르고 위협적인 공격이었지만, 자렐토도 일단은 마왕. 마력을 모아 막아 냈다.
“자렐토 님, 위험합니다.”
뒤늦게 마족과 병사들이 나서서 막아섰지만, 이내 용아병들이 그들을 물리치고, 볼가와 합세해 자렐토를 몰아붙였다.
“이 녀석도 살려 둬야 해?”
“마정석을 꺼내려면 그편이 낫지.”
“칫, 재미없게.”
볼가는 혀를 차며 자렐토를 이리저리 공격하더니 어깨에 중상을 입혔다.
“으악!”
“들었지? 마정석을 순순히 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 주마.”
마왕성에 장착된 마정석을 분리시키면 마력 손실이 생긴다.
그나마 마왕이 직접 분리하면 그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기에 제안한 거였다.
“흥. 내가 죽으면 죽었지, 마정석만은 절대로 못 넘겨준다.”
자렐토는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필사적으로 거부했다.
심지어 자렐토는 아르칸의 부하들을 하나씩 살펴보더니 피식 웃었다.
“딱 보니까 마정석을 강제로 분리할 정도의 마력을 가진 녀석도 없는 것 같은데. 차라리 이대로 순순히 물러나면 내가 충분히 보상을 해 주마.”
“왜 분리 못 한다고 생각해?”
“훗, 보면 다 안다. 다 나보다 마력이 아래지 않나?”
자신만만해하는 자렐토가 재수 없었는지 볼가가 인상을 썼다.
“에잇, 그냥 죽여 버리자. 마정석은 내가 어떻게든 빼 버릴 테니까.”
“아니야. 강제로 빼더라도 지금은 살려 둔다.”
“왜?”
“이 녀석을 붙잡고 있으면 통제실까지 좀 편하게 갈 테니까.”
“흥, 재미없게.”
사실 자렐토를 섣불리 죽였다가 다른 부하가 마정석 뽑아 갈 걸 걱정한 거였다.
자렐토의 부하 마족 대부분이 그 아버지를 따르던 부하인 걸 고려하면, 자칫 자렐토보다 마력이 강한 마족이 있을지도 몰랐다.
다행히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는지 앞을 가로막는 부하 중 강한 마족은 없었다.
덕분에 그리 어렵지 않게 마왕성 3계층에 위치한 통제실에 도착했다.
마정석을 앞에 두고 악만 남은 자렐토가 조롱했다.
“크흐흐, 헛수고하러 여기까지 오다니. 실컷 구경이나 하고 가라.”
아르칸은 대꾸하지 않고 마정석에 다가갔다.
마정석의 빛이 확실히 지금 아르칸의 마정석보다 더욱 밝았다.
“뭐? 설마 네가 뽑을 생각이었던 거냐? 뿔을 보니 마력 좀 생긴 모양인데, 그거로는 턱도 없다.”
“지금 내 마력으로는 무리긴 하지. 하지만 내게는 신하들이 있거든?”
“그게 무슨 소리냐?”
그제야 아르칸이 대꾸했지만, 자렐토는 알아듣지 못했다.
아르칸은 더 설명하지 않고 마정석을 붙잡아 마력을 활성화한 채 들어 올리려고 했다.
당연하게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안 된다니까. 왜 헛짓거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아르칸은 비아냥을 무시하고 권능 스킬인 마력 공유를 사용했다.
‘용아병 몇 명의 마력을 빌려 오면 가능하려나.’
3성급 마력을 가진 용아병의 마력을 절반씩 차례대로 가져오기 시작했다.
하나, 둘…….
마력이 차례로 흘러들어 오기 시작하자 점점 몸이 뜨거워졌다.
아르칸은 그 상태로 마정석을 들어 올리려 했지만, 여전히 꼼짝하지 않았다.
‘이거로도 부족한가? 하지만 이 이상 마력을 받아들이면 터질 것 같은데. 마력 뿔을 써야겠다.’
아르칸은 일전에 얻은 권능 스킬, 마력 뿔을 사용했다.
그런 다음, 새로운 용아병의 마력을 받아들이자 이마에 뭔가가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오, 뿔이 커지고 있잖아.”
“실시간으로 마력이 늘어나는 건가.”
볼가가 먼저 그걸 눈치채고, 함께 온 트릴도 놀란 눈으로 아르칸을 쳐다봤다.
‘이쯤이면 충분할 거 같은데.’
아르칸은 직감적으로 그렇게 느꼈지만, 좀 더 마력을 취하고 싶어졌다.
넷, 다섯, 여섯…….
……열, 열하나…….
아르칸이 열하나의 용아병의 마력을 흡수하자 뿔이 양손으로 잡을 만큼 커졌다.
“우와, 저런 뿔은 처음 보는데.”
“저 정도면 전성기 때 오웬 님만큼 되어 보이는데?”
“오웬이 저 정도라고?”
뜻밖의 정보를 알게 된 볼가가 놀라서 되묻는 순간.
아르칸이 마정석에 힘을 가하자 아주 가볍게 뽑혀 나왔다.
“드디어 뽑았네.”
아르칸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곧바로 아공간 주머니에 마정석을 넣었다.
그때 자렐토가 갑자기 경악하며 소리쳤다.
“너, 넌 누구냐? 아르칸이 아니잖아!”
“뭐, 예전과 많이 달라지시긴 했지.”
트릴의 말에 자렐토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내 간파의 권능에 따르면…….”
자렐토가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머리통이 펑! 하고 터져 버렸다.
아르칸이 마장갑으로 내쏜 마력탄에 박살 난 거였다.
트릴은 그걸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그 장갑 위력이 그 정도였어요?”
“지금 마력이 어마어마하니까.”
아르칸이 한층 우람해진 뿔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만, 마력을 전력으로 방출한 탓에 뿔은 다시 작아지기 시작했다.
‘이거 용아병 32명분 다 끌어오면 5성급에도 비벼 보겠는데?’
마력 등급은 3성급 이상부터 그 격차가 점점 커지기 시작해서 3성급과 5성급은 대량 20배 이상 차이가 난다.
아르칸은 용아병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희 덕분에 마정석도 얻고 복수도 무사히 마쳤다.”
“저희가 도움이 되었다니, 대단히 기쁩니다.”
아르칸은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를 잃은 자렐토를 내려다봤다.
‘허튼소리 하기 전에 해치워 버려서 다행이군.’
자렐토가 가졌다는 간파의 권능은 본질을 파악하는 것.
대화하면서도 딱 나눠서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지만, 어떤 의도로 말한 건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아르칸이 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기에 권능으로 확인해 보고 놀란 게 틀림없었다.
그 때문에 아르칸은 자렐토가 간파의 권능을 이야기하자마자 해치워 버렸다.
당장은 뿔로 이목이 집중된 덕분에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지만, 자신의 정체는 절대 들키면 안 됐다.
‘앞으로도 조심해야겠어.’
아르칸은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돌아섰다.
* * *
자렐토 마왕성을 함락시킨 아르칸은 마정석을 비롯해 온갖 전리품을 들고 귀환했다.
마왕성을 지키고 있던 오웬과 센시아가 반갑게 맞았다.
“아르칸 님!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와아! 아르칸 님 만세!”
병사와 하인들도 나와서 함성을 질렀다.
아르칸은 손을 들어 답례했다.
“그래, 고맙다. 오웬은 정리를 마시고 바로 연회를 열도록.”
“알겠습니다.”
아르칸의 말을 들은 병사와 하인들은 더 큰 목소리로 함성을 질렀다.
“연회라니, 처음입니다.”
용아병들도 기대되는 듯했다.
“즐겼으면 좋겠네.”
아르칸은 그렇게 대꾸하고는 오웬에게 말했다.
“통제실로 가겠다.”
“아, 네. 모시겠습니다.”
아르칸이 왜 저러는지 눈치챈 오웬이 고개를 끄덕이고 앞장섰다.
통제실에 도착한 아르칸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마정석을 꺼냈다.
“역시 바로 흡수시킬 생각이시군요.”
“그래.”
아르칸은 자렐토의 마정석을 그대로 통제실의 마정석에 얹었다.
순식간에 빨아들이듯 흡수하고 나자 전처럼 마왕성이 흔들렸다.
크그그그그그그그그그!
지진 같던 진동은 잠시 후 멈췄다. 그 즉시 마정석을 확인한 오웬이 감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드, 드디어 원래대로 회복했군요.”
반지하 마왕성에서 최초 아르칸이 마왕이 됐을 때처럼 3계층이 된 거였다.
“그래, 드디어 다시 출발선에 선 것 같네.”
아르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아르칸 마왕성이 건재할 뿐만 아니라, 자렐토 마왕성까지 함락시켰다는 소문이 인근에 퍼졌다.
그 덕분에 그간 꺼렸던 용병들과 병사들도 받아 달라고 찾아오기 시작했다.
확장된 마왕성을 정리하고 새로 온 마족과 병사들을 훈련시키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는데, 서신이 도착했다.
아르칸의 아버지, 대마왕 바리스탄이 보낸 서신이었다.
무슨 임무를 맡기려나 하고 서신을 확인한 아르칸은 살짝 놀랐다.
‘집으로 돌아오라고?’
설마 귀환 명령?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