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53
53화 대마왕성으로 가는 길에서 (1)
갑작스러운 바리스탄의 서신은 다행히도 마왕성을 포기하고 돌아오라는 내용은 아니었다.
‘깜짝 놀랐네.’
대마왕 본앰브로스만 봐도 마왕을 쉽게 제거할 정도로 아주 강했다.
반면에 아직 아르칸에게는 대마왕의 뜻에 거스를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아니, 용사를 부르면 어떻게 해 볼 수 있나?’
그런 불경한 생각을 하며 서신을 끝까지 다 읽은 아르칸은 고민에 빠졌다.
내용 자체는 별거 아니었다.
처음 우려했던 것과 달리 아주 가벼운 내용이었다.
보름 뒤 어머니의 생일이니 집으로 돌아오라는 거였다.
다만, 작년에 안 왔으니 이번에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꼭 오라는 당부가 있었다.
‘작년에는 술 마시고 노느라 안 갔군.’
뭐 하느라 안 갔나 싶어 기억을 더듬던 아르칸이 쓴웃음을 지었다.
누구는 부모를 보고 싶어도 평생 못 보는데.
누구는 망나니짓하느라 부모의 생일에 얼굴 보러 오라는데도 안 가다니.
당시 아르칸은 그날따라 더욱 퍼마시고 깽판을 쳐 댔다.
내년에는 성공해서 당당히 부모님을 뵐 거라고 떠들면서 말이다.
‘못난 녀석.’
다만, 지금 아르칸이 고민하는 건 다른 이유에서였다.
아르칸의 몸에 빙의해 몸을 차지한 건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지금쯤이면 죽고 없었을 테니까.
다만, 아르칸의 몸으로 부모님을 뵈러 가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자식을 몸을 빼앗은 주제에, 그 부모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자식인 척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래서 가능한 한 연락하지 않고 버린 자식 취급 해 줬으면 했다.
하지만 아르칸으로 사는 이상, 피할 수는 없었다.
고민하는 아르칸과 달리, 오웬은 아르칸이 이번에는 반드시 간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일주일이면 대마왕성에 도착하지만, 일찍 출발하실 수 있도록 준비는 다 되어 있습니다.”
“……벌써?”
“네, 이맘때쯤 오라고 연락이 오니까요.”
오랫동안 아버지를 모셨던 오웬인 만큼 집안의 대소사도 꿰고 있는 듯했다.
“무엇보다 아르칸 님의 당당한 모습을 왕녀님께 하루라도 일찍 보여 드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이마에 뿔도 나셨고, 그간의 활약상을 이야기하시면 아주 좋아하실 겁니다.”
‘내가 망나니에서 벗어났으니 안 갈 리가 없다고 생각했나 보네.’
아르칸의 사정을 모르니 어쩔 수 없었다.
“올해도 못 가겠다고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안 됩니다. 꼭 가셔야 합니다. 왜 안 가시려고요?”
“지금 많이 바쁘잖아.”
“오히려 다녀오시는 사이에 마왕성을 정비하기 더 수월합니다. 게다가 지금 딱 3계층이니 마왕성을 폐쇄해 둬도 부담도 덜하고요.”
마왕성을 폐쇄해 두면 지상으로 통하는 출입구가 아예 사라져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하다.
마력 소모가 극심하긴 하지만, 그래도 3계층까지는 감당할 만했다.
현재 아르칸 마왕성은 3계층이지만, 마력량으로는 4계층에 육박하는 상황.
가지고 있는 마석 중에서 1성급이라도 하나 흡수시키면 금방이라도 4계층으로 만들 수 있었다.
결국 대꾸할 말은 찾지 못한 아르칸은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쩝, 그러면 갈게.”
“알겠습니다. 제가 곧바로 회신을 보내겠습니다. 아르칸 님도 기쁜 마음으로 가겠다고 따로 회신을 쓰시는 거 잊으시면 안 됩니다.”
당부한 오웬은 부리나케 사라졌다.
그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쓴웃음이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가겠다고 결정하자 차라리 홀가분했다.
‘그래, 언젠가 한 번쯤은 겪어야 할 일이야.’
* * *
바리스탄 대마왕성 바로 위에 자리 잡은 지상 도시.
도시 내 가장 큰 저택 2층에, 아름다운 푸른 머리의 미녀가 창틀에 기대어 멍하니 달빛을 바라보며 손을 모으고 있었다.
그녀를 향해 건장한 붉은 머리의 중년인이 다가가서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네스, 잘 시간인데 무슨 기도를 그리하고 있는 거요?”
“아, 바리스탄.”
아네스가 뒤를 돌아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대마왕 바리스탄과 그의 아내인 아네스였다.
“아르칸을 위해 기도 중이었어요.”
“그럴 줄 알았지. 당신의 영험한 기도 덕분에 녀석도 정신을 차렸으니 그만하라고도 못 하겠군.”
“당신도 참…….”
“그런데 표정이 안 좋아 보이는군.”
“먼 타지에서 고생하는 아르칸이 걱정되어서 그렇죠. 얼굴 본 지도 참 오래됐는데.”
바리스탄은 슬퍼하는 아내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오라고 했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아들내미 얼굴을 볼 수 있을 거요.”
“저번에 아르칸이 한창 바쁠 시기라고 하지 않았어요? 얼굴 보고 싶다고 해도 괜히 일하는 데 방해되고 싶지는 않은데.”
“지금은 괜찮소. 그리고 곧 당신의 생일이지 않소.”
“아, 생일이 다가오는지도 몰랐네요. 작년에는 바쁘다고 안 왔는데, 정말 올까요?”
“분명히 올 거요. 오웬의 말로는 최근 정신 차리고 괄목한 만한 성과도 냈다 하니, 그걸 자랑하기 위해서라도 오지 않겠소.”
바리스탄이 웃으며 말하는 걸 들은 아네스는 그제야 얼굴을 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한편 부부의 대화를 뒤에서 엿듣던 두 청년이 있었다.
바로 바리스탄의 아들들이었다.
바리스탄의 머리카락을 꼭 빼닮은 첫째 브리카가 코웃음을 쳤다.
“흥. 성과는 무슨, 오웬이 아버지 어머니 걱정 말라고 적당히 둘러댄 거겠지.”
“엄마 아빠는 왜 항상 막내에게만 관심을 두는 건지. 불공평해.”
바리스탄처럼 덩치가 큰 둘째 길렉이 투덜거렸다.
“다 그 자식이 모자라서 그렇지. 부모님이 정말로 자랑스러워하는 자식은 우리 둘뿐이야.”
“그럴까?”
“물론이지. 우리 둘 다 마왕성을 잘 유지하고 있잖아. 아르칸은 마정석을 날려 먹을 뻔했다면서. 아마, 아버지가 몰래 지원해 줬을지도 몰라.”
“그보다 이번에 막내가 오면 한동안 어머니 관심을 독차지할 거 같단 말이지.”
울상을 짓는 길렉을 보며 브리카가 코웃음을 쳤다.
“뭘 몰라서 그런 소리 하는 거야. 자기가 무슨 염치로 오겠어? 오면 거짓말도 다 들통날 텐데.”
“히히, 그렇겠지?”
길렉은 금방 기분이 좋아졌는지 실실거리며 웃었다.
“그보다 어머니 생일까지 여기 지내면서 아버지, 어머니께 잘 보이자. 듣기로는 아버지가 우리에게도 뭔가를 준비해 두셨대.”
“어, 정말? 뭔데?”
“그것까지는 알 수 없지. 무슨 임무를 맡기신다는데.”
“아빠가 맡기는 임무는 어려울 텐데…….”
길렉은 잔뜩 겁먹은 얼굴로 양손을 모아 꼼지락거렸다. 브리카는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덩치의 동생의 등을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괜찮아. 우리 형제가 힘을 합치면 되잖아. 내 머리랑 네 힘을 합치면 무적이야.”
“마, 맞아. 무적이야!”
그렇게 형제는 의기투합했다.
* *
아르칸은 어머니의 생일잔치에 참석하기로 결심했지만, 당장 출발하진 못했다.
일단 어머니의 생일 선물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선물을 뭘 해 드리지? 뭘 받으시면 기뻐할까?’
고민이 깊었다.
빙의 전 현실에서는 뒤늦게라도 어머니가 자신을 찾아오면 손 편지와 함께 내의를 사다 드리고 싶었다.
‘그럴 일은 없었지만.’
다행히 지금은 5백만 골드를 가진 어마어마한 부자가 된 상황.
돈으로 살 수 있는 건 뭐든지 사 드릴 수 있었다.
문제는 어머니가 뭘 좋아하는지 아르칸의 기억을 더듬어 봐도 도통 떠오르는 게 없다는 거였다.
‘이러니 아들 낳아 봐야 소용없다는 소리를 하지.’
심지어 오웬에게 조건을 구했더니 조언해 주기는커녕, 흐뭇해하는 얼굴로 그 고민하는 마음까지도 왕비님께 선물이라며 더 열심히 고민하라는 말밖에 듣지 못했다.
‘하, 그런 말까지 듣고서 더 캐물을 수는 없지.’
그때, 세계수의 쌍잎이 진동했다.
용사로부터 연락이 온 거였다.
-아~ 마왕 죽이고 싶다.
-……뭐라고?
-마왕 죽이고 싶다고!
-나도 마왕이거든. 나한테 그런 섬뜩한 메시지 보내지 말아 줄래?
-지루하고 답답해서 그래.
-수도에 간 거 아니야? 거기서 지루할 일이 뭐가 있다고.
-아니, 마왕을 하나라도 빨리 잡아도 모자를 판에 대귀족끼리 싸우는데 심판을 맡아 달라고 수도에 있으라고 하지 뭐야.
대귀족끼리 싸운다니, 참 태평하다 싶었다.
‘하긴, 마계도 별반 다르지 않나?’
그때 다급한 메시지가 들어왔다.
-앗! 내가 마왕한테 왜 정보를 주고 있지? 야! 잊어버려. 알았지? 안 잊어버리면 죽는다?
-뭐 말하는 거야?
-그러니까 대귀족끼리 전쟁 벌이는 거 말이야. 아씨, 또. 잊어버려.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아!
그제야 용사는 아르칸이 자기 말대로 잊어버리는 척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자식 말 잘 듣네. 여튼 잘 지내. 아니, 죽어! 아니 죽지는 말고. 그냥 있어.
용사는 호들갑 떨며 연달아 메시지를 보내왔다.
아르칸은 세계수의 쌍잎에 계속해서 떠올랐다 사라지는 글자를 보며 쓴웃음을 짓다가 겨우 답변할 수 있었다.
-그래. 무슨 일인지 몰라도 끝나면 연락해.
-알았다.
용사랑 대화를 끝낸 아르칸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면 한동안 수도에 묶여 있겠는데? 이거 근처로 불러 수호의 반지를 주려고 했는데, 나중에 줘야겠군. 아!’
수호의 반지를 떠올리던 아르칸은 주먹으로 손바닥을 쳤다.
“어머니 선물로 수호의 반지를 드리면 되겠네.”
위급한 순간에 방어 마법이 발동해 보호해 주는 수호의 반지.
그 기능도 기능이지만, 워낙 고가인 만큼 어지간한 귀금속보다 아름다웠다.
섬세하게 세공된 보석과 조각은 아름다움을 아는 이라면 혹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
심지어 블랙마켓 같은 데서가 아니면 구하기도 어려운 물건이었다.
유용하고 아름답고 회귀한 반지
이보다 더 적절한 선물을 어디서 구하겠는가.
“좋아! 결정했어. 용사는 나중에 따로 하나 더 구해서 주지 뭐.”
안 그래도 남자에게 반지를 선물하는 게 좀 걸리던 참이었다.
‘기왕이면 팔찌 같은 거로 구해야지.’
구하기 힘들면 본앰브로스가 마원석을 감정해 달라고 할 때 구해 달라고 하면 충분히 구해 주고도 남을 것이다.
선물을 결정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그럼 출발해 볼까.”
아르칸은 오웬에게 다음 날 바로 출발할 거라고 알렸다.
생일날 빠듯하게 도착하는 것보다, 일찍 도착해서 조금씩 어울리는 게 아무래도 생일잔치 때 어색함을 줄일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알겠습니다. 누구와 함께 가실 예정이십니까?”
“용아병도 있겠다, 최소한의 인원으로 가려고 하는데.”
“음, 그렇습니까? 그러면 일손이 부족할 일이 없겠군요.”
안 그래도 마왕성에는 기존에 있던 하인과 병사보다 새로 온 이들이 더 많았다.
여기서 아르칸이 기존의 병사들을 데리고 나가 버리면 통제하는 데 애로 사항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너도 같이 같으면 하는데.”
“저 말입니까? 저는 마왕성을 정비하느라 바쁩니다만.”
“돌아오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거의 한 달은 걸릴지도 모르는데? 며칠이면 모를까, 그동안 게티아가 없으면 힘들잖아.”
“괜찮습니다. 게티아가 없을 때도 몇 년을 버텨 왔으니까요.”
“그러지 말고 같이 가자. 그동안 나 때문에 아쉬운 소리 한 지인들도 많잖아. 앞으로 더 바빠질 텐데 이 기회에 신세 갚아.”
“음…….”
그 말에는 오웬도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아르칸이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거기다 내가 가서 허튼짓하는 거 감시도 해야 하지 않겠어?”
“아르칸 님…….”
아르칸이 저렇게까지 말하는 의미를 깨달은 오웬이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렇게까지 나오시니 뺄 수가 없겠군요. 감사합니다.”
“그래그래, 센시아와 트릴한테 지시하고 가자고.”
이제 일단락됐나 싶더니 뜬금없이 볼가가 찾아왔다.
“재미없는 소리지만, 부탁이 있다. 여행을 가려 하니 허가해 줬으면 한다.”
“무슨 일로?”
“개인적인 사정이다.”
“그래, 그렇게 해.”
아르칸의 시원스러운 대답에 볼가가 도리어 놀랐다.
“어? 정말인가? 무슨 일인지 안 묻는가?”
“개인적인 사정이라며. 사적인 영역은 존중해 줘야지.”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도 고맙다.”
사실 아르칸은 저 사정이 어떤 건지 알았다.
볼가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찾아보려는 거였다.
소설에서는 다른 마왕의 노예였다가 그 마왕이 죽으며 풀려난 뒤 모험을 떠난다.
아르칸의 노예가 되면서 어떻게 되나 했는데 이렇게 부탁해 오다니.
‘아마 내가 죽지도 않고, 어쩌면 부탁하면 들어주지 않을까 기대한 거겠지.’
어차피 여행을 허가한다고 해도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계속 탈주할 수도 없었다.
블랙마켓에서 거래된 노예들은 본앰브로스의 인장이 들어간 목 족쇄를 하고 있다.
그걸 강제로 부수고 노예 신분을 벗어나려면 그와 동격인 마력을 가진 존재가 힘써야 했다.
적어도 대마왕급이나 용사가 나서야 하는 거였다.
“그보다 목 족쇄를 하고 다니면 아무래도 주의도 끌 거고 불편할 테니 내가 숨겨 줄게.”
아르칸은 그렇게 말하고는 할루시네이션 마법으로 목 족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만들었다.
“어, 크하하핫. 정말 재밌는 주인이다.”
볼가는 아주 기뻐했다.
혹시나 해서 확인해 보니 호감도가 어느새 70이나 됐다.
“맞다. 데시무스는 같이 안 가고 싶대?”
데시무스는 같은 블랙마켓 노예 출신으로 볼가와 단짝처럼 다니기에 물어봤다.
“주인이 이렇게 쉽게 허락해 줄은 몰라서 아예 안 물어봤다.”
“개인 사정인데 같이 가도 괜찮고?”
“상관없다. 안 심심할 테니 도리어 좋다.”
“알았어. 그럼 불러와서 물어보지.”
막상 데시무스의 대답은 엉뚱했다.
“흠, 마계는 인간족인 제가 돌아다니기에는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탈주보다는 보신을 걱정해서 하는 소리였다.
“굳이 안 가고 싶으면 안 가도 돼.”
아르칸이 그렇게 말하는데, 볼가가 다시 권유했다.
“너 복수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려면 같이 가자. 강해질 수 있을 거다.”
“쩝, 그런 말을 들으면 안 갈 수 없잖아.”
“그럼 결정 난 거다. 으하하.”
그렇게 마왕성 내의 일을 일단락 지은 아르칸은 다음 날 새벽, 바리스탄 대마왕성으로 출발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