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54
54화 대마왕성으로 가는 길에서 (2)
바리스탄 대마왕성으로 가는 길에는 여러 마왕의 영역을 거쳐야 했다.
같은 파벌이기에 지나간다고 미리 연락해 두면 여러 편의를 봐주겠지만, 아르칸은 연락하지 않고 조용히 지나가기로 했다.
오웬과 단둘이 움직이기에 특별히 쉴 곳도 필요 없고, 여행 물자도 모두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 뒀다.
‘이러면 딱히 도움을 받을 일도 없지.’
오히려 연락했다가 괜히 여행길이 지체될까 우려됐다.
대마왕 바리스탄에게 잘 보이려고 대접하겠다고 나서면 다행이고, 망나니 마왕에게 본때를 보여 준다고 골탕 먹이려고 할지도 몰랐다.
다행히 몇 개의 영역을 지나왔는데도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날도 아르칸은 오웬을 따라 험난한 지형을 넘었다.
“흠.”
“왜?”
아르칸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오웬을 보며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어, 별로 안 힘든데.”
현실의 몸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강행군이었지만, 마력이 3성급이 되고 나서 강화된 신체 덕분에 땀 한 방울 나지 않았다.
‘이 상태로 올림픽에 나가면 금메달을 휩쓸겠는데?’
오히려 걱정되는 건 오웬이었다.
나이도 나이인 데다, 마심장에 문제가 생겨 마력을 제대로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웬이야말로 괜찮아?”
“허허, 제 걱정까지 해 주시다니, 정말 많이 달라지신 것 같습니다.”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뭘.”
“아, 문득 이곳을 지나 아르칸 마왕성으로 갈 때가 생각나는군요.”
“그래?”
아르칸은 중요한 이야기인 걸 감지하고는 기억을 떠올렸다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허, 어떻게 저럴 수가…….’
기억 속 아르칸은 이곳을 지날 때, 험한 곳이라 마차를 두고 가야 한다고 하자 걷기 싫다고 징징거렸다.
심지어 조금 걷다가는 힘들다고 주저앉아 버렸다.
한참 실랑이 끝에 결국, 센시아가 둘러업고 넘었다.
‘망나니 이전에 애새끼였군.’
그 기억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아.”
“흠, 그때 기억이 나시나 봅니다.”
“어, 생생해.”
“그때와는 많이 달라지셨으니 이제 다 추억이지 않겠습니까.”
“잊어버리고 싶은 추억이야.”
아르칸은 웅얼거리며 대꾸한 뒤, 화제를 바꿨다.
“그보다 어서 가자. 남은 길은 이제 좀 편하지?”
“아, 네. 얼마 안 남았습니다.”
빠르게 움직인 덕분에 바리스탄 대마왕성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근처의 도시나 마을에서 말을 구해 달리면 2~3일이면 도착했다.
“그런데 브리카 님께도 인사 안 드리고 가실 겁니까?”
브리카는 바리스탄의 첫째 아들로, 즉 아르칸의 형이었다.
아르칸의 기억에 따르면 첫째는 약아빠져서 재수 없는 녀석이고, 둘째는 힘만 센 멍청이였다.
하지만 아르칸은 그 기억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진 않았다. 형제끼리 사이가 나빠 안 좋게 기억하는 걸 수도 있으니까.
‘첫째 아들은 바리스탄의 두뇌, 둘째는 바리스탄의 힘을 물려받았다고 보면 되겠지.’
소설에서 딱히 언급되지 않았기에 어떤 인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둘 다 아르칸과 달리 건실하게 마왕성을 운영하는 중.
최소한 아르칸보다는 낫다고 볼 수 있었다.
‘사이가 나쁘더라도 일단 인사는 하고 지내는 게 좋겠지.’
아르칸이 말했다.
“연락해서 인사드리고 가자.”
“알겠습니다. 곧 도시가 나오니 거기서 서신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둘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드문드문 언덕이 있긴 했지만, 앞서 지나온 길보다 훨씬 수월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웬의 말대로 저 멀리 도시가 보였다.
그런데 바로 앞이 소란스러운 거 아닌가?
무슨 일인가 하고 보니, 도적 떼가 행인을 습격했는지 한창 약탈 중이었다.
도적 떼는 20명 가까이 됐고, 행인은 다섯 중 둘은 죽고, 나머지 셋은 무릎을 꿇고 도적 떼가 짐을 챙기는 걸 울며 바라보고만 있었다.
오웬이 탄식했다.
“허허, 감히 브리카 님의 영역에서 도적질이라니 이렇게 개탄스러울 때가. 아르칸 님, 어떡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든 상관없을 것 같네. 저쪽에서 오고 있거든.”
아르칸의 말처럼 도적 떼는 이미 아르칸과 오웬을 발견하고 달려오고 있었다.
“이에 웬 떡이야. 하루에 두 탕을 다 하네.”
“저쪽은 둘뿐이니 더 쉽겠군.”
“돈도 제법 있어 보이는데?”
도적 떼는 잔칫날인 것처럼 신나게 떠들어 댔다.
그때 오웬이 나서서 호통을 섰다.
“무엄하다! 이분이 누군지 아느냐?”
그 말에 도적들이 움찔했다.
“누, 누구신데요?”
“마왕 아르칸 님이시다.”
“아르칸? 누구지?”
“아, 알았다. 그 있잖아, 망나니로 유명한.”
“뭐라고? 푸하하핫.”
도적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그 망나니가 노친네랑 단둘이서 여기를 지나간다고? 그것도 걸어서?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거짓말을 해도 참. 브리카 님 영역이라고 그러는 건가?”
“좋아. 오늘 내가 망나니 버릇을 고쳐 놔야겠어.”
다들 험악한 얼굴로 다가오는데, 한 도적이 만류했다.
“잠깐, 다들 기다려 봐. 진짜면 어떻게 해?”
그러자 다른 도적이 잘난 체하며 비웃었다.
“후후후, 멍청이들. 망나니 마왕 아르칸에 대해서 못 들어 봤어? 마력이 없어서 뿔도 없댔는데, 저 녀석은 뿔이 있잖아.”
“아, 맞다. 그런데 저 뿔 제법 큰데? 망나니 마왕이 아니라도 강한 거 아니야?”
“저 정도 마력을 가진 마족이 저러고 다닐 리가 있나. 당연히 너 같은 놈들 겁먹으라고 가짜 뿔 달고 다니는 거지!”
도적들끼리 떠드는 걸 잠자코 지켜보던 아르칸이 감탄했다.
“예리한 추리군.”
“그렇지?”
“모두 틀렸다는 것만 빼고 말이야.”
“뭐라고? 이게 죽고 싶어서 그래?”
“어이, 참아. 두목이 괜한 피 보지 말라고 했잖아. 거기! 잔말 말고 가진 거 다 내놔! 그러면 목숨만을 살려 주마.”
도적들이 무기를 겨누며 위협하자 오웬이 인상을 썼다.
“이것들이 감히. 아르칸 님,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그래, 너무 무리하지는 말라고.”
“덤비려고? 먼저 한바탕해서 봐주려고 했더니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군.”
“그냥 다 죽여 버려!”
크게 소리치며 달려든 도적들은 이내 몸을 돌려 달아났다.
오웬이 검을 휘두르자마자 제일 앞에 있던 둘이 죽어 나갔기 때문이다.
그리 힘을 쓰지도 않았다.
‘검이 좋으니 마력을 못 써도 쉽게 벨 수 있네.’
현재 오웬이 쓰는 건 아르칸이 블랙마켓에서 사 온 마검 중 하나.
그중 가장 상급의 물건으로, 무려 2성급 마력이 담겨 있었다.
덕분에 강도들을 종잇장처럼 벨 수 있었다.
“으아아아악!”
“미친, 노인이 왜 이렇게 강해?”
“젠장! 두고 보자!”
순식간에 절반밖에 남지 않은 도적들이 도망쳤다.
“아르칸 님, 쫓을까요?”
“아니, 내버려 둬. 복수하러 오면 또 해치우면 되지.”
오히려 그러길 바랐다.
브리카 형의 영역인 만큼 이곳의 도적 떼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해치우면 아무래도 도움이 될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내 이미지에도 도움이 될 테고.’
그렇다고 해도 도적 떼 본거지까지 찾아가 토벌하긴 번거로웠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며칠이 걸릴지도 모르는데, 괜히 나섰다가 어머니의 생일잔치에 늦을지도 몰랐다.
그때 먼저 도적들한테 당했던 행인들이 외쳤다.
“아, 안 됩니다! 저놈들을 잡아야 합니다!”
“어르신! 도망치게 내버려 두면 큰일 납니다!”
“문제없다. 저 정도 도적 떼쯤이야 저 숫자의 열 배가 와도 충분히 해치울 수 있으니까.”
용아병들까지 있으니 마족도 아닌 도적 떼 정도는 열 배가 아니라, 백 배가 와도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행인들은 고개를 저으며 상상도 못 한 말을 했다.
“아닙니다. 저자들을 내버려 두면 브리카 마왕군이 잡으러 올 겁니다.”
“응? 브리카 마왕군이?”
* * *
아르칸은 브리카 마왕군이 잡으러 온다는 말에도 쫓지 않기로 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충분히 대처할 수 있어서였다.
대신에 행인들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내막을 자세히 들었다.
그런데 들을수록 놀라운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저 도적 떼가 이렇게 마음 놓고 도적질을 할 수 있는 이유가 이 근방을 지배하는 브리카 마왕군과 결탁해서라는 거였다.
심지어 더 도적들의 수장은 브리카 마왕성에서 근무했던 마족이란다.
“흠, 그 마족의 이름은?”
“죄송합니다,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가…….”
오웬이 잠깐 생각하더니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이게 사실이면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러게.”
척박한 마계이니만큼 도적 떼가 난립하는 건 드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마왕성에서 조장하고 있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마왕성이 성립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이 위험한 마계에서 몬스터들을 끌어들이는 유인망이 되기 때문.
강한 무력을 가진 마왕성에서 주변의 마인족들을 착취하기 시작하면 죄다 달아날 게 빤했다.
‘뭐 적은 도적 떼 정도로 그런 붕괴까지 일어나진 않겠지만.’
적어도 이 소문이 널리 퍼지면 바리스탄 파벌이 망신당할 게 분명했다.
“당장 바리스탄 님께 보고드려야겠습니다. 분명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겁니다.”
그때 마인족들이 오웬과 아르칸의 앞에 엎드려 빌기 시작했다.
“아이고, 나으리. 제발 좀 도와주십시오.”
“이대로 가시면 안 됩니다.”
그런 그들에게 오웬이 타일렀다.
“방금 못 들었나? 도와준다 하지 않았느냐.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분명 해결될 거다.”
“바리스탄 님께 말해 봤자 자식 일인데 덮기밖에 더 하시겠습니까?”
“저희는 계속 보통 도적 떼한테 시달릴 겁니다.”
“무엄하다! 바리스탄 님을 뭐로 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오웬이 서늘 퍼런 눈빛으로 다그치자 행인들이 움찔했다.
금방 오웬이 도적 떼를 썰어 버리던 무시무시한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려운 와중에도 이 기회를 포기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듯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를 했다.
“저 도적 떼의 대장이 마정석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저도 들었습니다. 그걸 활성화할 마석을 살 돈을 모은다고 도적질한다고요.”
확실히 마정석이 걸렸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건 마석보다 더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웬은 완강했다.
“허튼소리 말고 바리스탄 님을 믿고 기다려라. 아르칸 님, 가시죠.”
“그러지.”
마정석이 탐나긴 해도 지금 도적 떼의 본거지를 찾아 헤맬 수는 없었다.
“아이고, 나으리.”
“제발 저희 좀 살려 주십시오.”
행인들은 재차 애원하며 매달렸다.
“이거 놓지 못하겠느냐.”
오웬은 말은 그렇게 해도 마음이 걸리는지 세게 뿌리치진 않았다.
아르칸은 대신 그들을 달랬다.
“만약 돌아오는 길에도 그대로라면 도와주겠다.”
“정말입니까?”
“그래, 약속하지. 지금은 약속이 있어서 말이야.”
행인들은 그제야 더 매달리지 못하고 물러섰다.
“정말 도와주실까?”
“그 말을 믿어?”
“믿어야지. 지금까지 누군가 우리에게 약속이라도 해 준 적 있어? 믿을 수밖에.”
행인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오웬은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죽은 이를 수습하는 데 보태라고 금화까지 건네줬다.
그러고 겨우 다시 출발하나 싶었는데, 저 멀리서 한 무리의 병사들이 달려왔다.
“설마 브리카 마왕성의 병사들은 아니겠지?”
“아니었으면 합니다만.”
오웬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딱히 예상에서 벗어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는 듯했다.
오웬과 아르칸이 그대로 기다리고 있자 거기까지 힘겹게 달려온 병사들이 둘을 포위했다.
그 포위망 뒤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렷다.
“저기 저 녀석들입니다, 저희를 공격한 녀석들이! 정확히는 노인이 저희를 공격했고. 젊은 녀석은 아르칸 마왕님을 사칭했고요.”
“크하핫! 어떤 미친놈이 사칭할 게 없어서 아르칸을 사칭해? 어쨌든 내 가만두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게.”
아무래도 아까 습격한 도적과 이 병사들의 지휘관인 모양이었다.
“자, 다들 비켜. 어떤 놈들인지 얼굴 좀 보게.”
지휘관의 말에 병사들이 우르르 비켰다.
“얼굴 볼 게 뭐 있습니까? 어서 복수해 주십시오. 저희 동료들이 여덟이나 죽었습니다. 쿠르크 님도 화낼 겁니다.”
“알았다니…… 헉.”
지휘관이 순간 굳어 버렸다.
“왜 그러십니까?”
도적은 물론, 병사들까지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는데, 겨우 경직이 풀린 지휘관이 덜덜 떨면서 고개를 90도로 숙였다.
“오, 오웬 님! 오래간만입니다!”
바리스탄의 검이었던 오웬을 알아본 것.
오웬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도적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