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55
55화 대마왕성으로 가는 길에서 (3)
“그래, 할포. 오랜만이군.”
오웬은 스산한 미소를 지은 채 인사를 받아 줬다.
그러자 할포는 아예 엎드려서 빌기 시작했다.
“제,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웃기네. 죽을죄를 지어 놓고 살려 달라니.”
아르칸의 말에 할포가 움찔하더니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혹시 이분이…….”
“그래, 내가 모시는 마왕 아르칸 님이시다.”
그 말에 병사들이 술렁였다. 그 유명한 망나니 마왕을 직접 보게 된 거였다.
“망나니라더니, 생각보다 멀쩡한데?”
“그러게. 원래 뿔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조용히 해. 딱 우리한테 행패 부리기 좋은 상황인데 걱정도 안 되냐?”
한 병사의 말에 다들 굳어 버렸다.
자신들이 지금 마왕을 포위해 위협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한편 오웬은 할포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할포, 알았으면 인사부터 드리는 게 예의가 아니겠나.”
“앗, 죄송합니다. 아르칸 님. 브리카 마왕성의 제2경비조장, 할포입니다.”
“이름은 왜? 내가 곧 죽을 녀석 따위의 이름을 기억해야 해?”
아르칸의 비아냥에 오웬이 놀란 눈을 했다. 한창 망나니 마왕으로 날릴 때 같았기 때문이다.
그 말에 바짝 겁먹은 할포는 다시 엎드려서 빌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저에게는 먹여 살릴 처자식이…….”
“뭐, 처자식도 죽여 달라고?”
“히익!”
끔찍한 소리에 할포가 기겁했고, 병사들도 경악했다.
오웬마저도 아르칸을 달랬다.
“진정하시지요. 아무리 죽을죄를 지었다고 해도 처자식까지 죽이신다니.”
“왜? 같이 죽여 주면 걱정 안 될 거 아니야?”
“아, 아닙니다. 처자식 걱정 하나도 안 됩니다. 제가 죽어도 잘 살겠지요.”
“뭐라고? 가장이라는 자가 죽으면서 처자식 걱정을 안 해? 이런 몹쓸 놈을 봤나!”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라…….”
할포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이 됐다.
주변에서도 악랄하다며 기막혀했다.
‘흐흐, 이 정도로 갈궜으면 확실히 말 잘 듣겠지.’
사실 지금까지는 진심이 아니라 연기였다.
자신을 망나니 마왕이라고 겁내는 걸 보고는 이걸 이용해 먹기로 마음먹은 거였다.
끔찍한 패악질을 부릴 것처럼 잔뜩 겁을 준다면 무슨 일을 시켜도 따를 테니까.
“그만 노여움을 푸시지요. 할포, 자네도 어서 잘못했다고 빌게.”
“아까부터 잘못했다…… 아니,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억울해하던 할포는 오웬의 눈빛을 받고 다시 머리를 박았다.
“음, 오웬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용서해 줄까?”
“저, 정말입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할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일단 자신의 목이 달아나는 건 확실하고, 자칫 잘못하면 처자식까지 곤욕을 치르거나 처형당할 수도 있다고 걱정했기 때문이다.
이런 아르칸의 횡포를 브리카가 알면 화내겠지만, 현재 브리카는 대마왕성에 가 있는 상황. 저 미친 망나니한테 당한 뒤에 브리카가 화내 봤자 소용없었다.
“당연히 그냥은 안 되는 거 알지?”
“알겠습니다. 이 할포! 아르칸 님이 명령하시면 불 속에라도 뛰어 들어가겠습니다!”
“오 정말? 불 속에 뛰어 들어간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것도 재밌을 거 같지만. 지금 화나는 건 나를 공격한 도적 떼거든.”
“아.”
아르칸이 말하면서 슬쩍 같이 온 도적을 쳐다보자, 할포는 곧바로 무슨 의미인지 눈치채고는 지시를 내렸다.
“뭣들 하느냐! 바로 저 도적놈을 붙잡아라!”
“아, 네!”
병사들은 명령이 내려지자마자 순식간에 도적을 꽁꽁 묶어 아르칸 앞에 대령했다.
“할포 님! 대체 왜 이러십니까. 그냥 저 둘을 죽여 버리면 되는 일 아닙니까.”
그 말에 할포는 순간 아르칸과 오웬을 쳐다봤다.
아르칸은 둘째 치더라도, 오웬은 다쳤다더니 멀쩡해 보였다.
전과 달리 뿔은 없었지만, 분명 마검을 쓴다고 들었는데, 그것만으로도 할포는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었다.
한편 할포의 시선을 본 아르칸이 싱글거리며 물었다.
“왜? 한번 해보려고?”
“닥쳐라! 이 도적놈! 감히 아르칸 님의 옥체를 공격하고서도 무사할 줄 알았느냐!”
할포는 못 들은 척 도적을 걷어차며 윽박질렀다.
컥!
그러고는 나뒹굴며 괴로워하는 도적의 목에 검을 겨눴다.
“아르칸 님, 제가 처형해 버릴까요? 아니면 직접 처형하시겠습니까?”
“처형은 무슨, 저 녀석만 죽이고 끝낼 거야?”
“그러면요?”
“도적 떼 두목까지 잡아 족쳐야지. 본거지가 어디 있는지 물어봐.”
“어, 하지만…….”
할포가 망설이자 도적이 득의양양해서 비아냥거렸다.
“흐흐흐. 겁도 없이 쿠르크 님에게 덤빌 생각이냐? 할포 이 겁쟁이는 순순히 굴복했지만, 쿠르크 님은 너희 둘의 목을 벨 것이다.”
“뭐라고? 내가 왜 겁쟁이야? 에잇!”
할포는 화를 내면서 도적을 또 걷어찼다.
“그래서 본거지는 어디 있어?”
“흥, 할포에게 물어봐라. 잘 알고 있으니까.”
“그래? 그럼 이 녀석 쓸모없네. 처형해.”
“아, 잠깐만…….”
도적은 그제야 말실수했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화가 잔뜩 나 있던 할포는 그대로 도적의 목을 베어 버렸다.
“처형했습니다, 아르칸 님.”
“나도 눈이 있으니 봤거든. 그보다 쿠르크니 코르크니 하는 녀석이나 잡아 와.”
“지, 지금 말입니까?”
“그럼 지금이지. 어디 있는지도 안다면서?”
“현재 전력으로는 무리입니다. 마왕성으로 돌아가서 토벌 계획부터 세워야…….”
“기껏 도적 떼 하나 잡는 데 계획은 무슨 계획? 진짜 죽어 볼래?”
윽박지르는 아르칸을 보니 할포는 답답했다.
‘보통 도적 떼 아닌데.’
쿠르크는 브리카 마왕성 내에서도 손꼽히던 강자.
비록 횡령이 적발되어 추방당했지만, 은밀히 마왕성에 영향력을 발휘해 이 일대에서 도적질 중이었다.
최근에는 마정석까지 얻어서 마왕이 될 욕심에 용병을 대거 고용해 세력도 잔뜩 키웠다.
오히려 오웬보다 상대하기 어려운 상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녀석을 어떻게 잡으라고. 되려 이쪽이 당하고 말 거야.’
속으로 투덜대던 할포는 슬쩍 오웬과 아르칸을 보고는 음험한 생각을 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아예 쿠르크 님에게 붙어야겠어. 쿠르크 님이라면 저 늙은이도 쓰러트릴 수 있겠지. 저 망나니야 나 혼자서 충분히 상대할 수 있고.’
바리스탄의 자식을 죽이면 난리가 나겠지만, 입막음만 잘하면 문제없으리라 계산했다.
그때 아르칸이 채근했다.
“뭐 해, 안 갈 거야?”
“아, 아닙니다. 가겠습니다. 근데 같이 가실 겁니까? 여기서 기다리시는 게…….”
“여기에 뭐가 있다고 기다려? 아니면 브리카 마왕성에 가 있을까? 잡아서 거기로 데려올래?”
“아, 아닙니다. 지금 브리카 님도 안 계시니 같이 가시죠.”
“당연히 그래야지.”
아르칸이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씩 웃었다.
조금 떨어져서 상황을 지켜보던 행인들은 얼른 다가와서 고개를 숙였다.
“지금 바로 도적 떼를 내쫓으러 가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아르칸 님의 뜻을 의심했습니다.”
“괜찮다. 내 악명을 알면 못 미더울 수밖에 없지. 그럼 다들 조심해서 가.”
아르칸은 행인들에게 친절하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할포와 병사들은 아르칸의 행동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이었지만, 오웬은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행인들과 어느 정도 멀어졌을 때, 할푸와 병사들 몰래 슬쩍 마법 할루시네이션을 행인들에게 사용했다.
“마법? 왜 그러시는 겁니까?”
“도시까지 무사히 가도록 투명화 마법을 걸었어.”
“역시 할포 앞에서 한 건 연기였군요.”
“그래. 꼼짝없이 내 말 듣게 하려고.”
“깜짝 놀랐습니다. 옛날 모습으로 돌아가시나 해서요.”
“그럴 리가.”
아르칸의 말에 오웬도 동의하는지 입꼬리를 올렸다가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보다 할포의 언행이 수상쩍습니다.”
“내버려 둬. 배신하면 배신하는 대로 같이 해치워 버리면 되니까.”
어차피 도적 떼와 내통했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도적 떼의 본거지까지 알 정도면 아주 친밀한 관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도적 떼 본거지로 가는 와중, 병사 다섯이 슬쩍 뒤로 빠졌다.
오웬이 미심쩍은 눈으로 물었다.
“저들은 어디로 가나?”
“아, 아무래도 마왕성에 보고해야 할 거 같아서 말이죠.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이 병력으로도 충분하니까요.”
“그런가.”
할포의 대답에 오웬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듯했지만, 더 추궁하지는 않았다.
한참 걸어간 뒤 산 초입에 들어섰을 때 할포가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험하니 기다리고 계시죠.”
“이 정도쯤은 문제없다.”
“아니, 나는 슬슬 힘드네. 발도 아프고.”
오웬이 끝까지 따라가려는 걸, 아르칸이 털썩 주저앉으며 엄살을 부렸다.
“후, 하는 수 없죠. 기다리겠습니다.”
오웬이 한숨을 쉬며 아르칸의 곁에 머물려고 하자, 할포는 노골적으로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지금 상황을 쿠르크에게 미리 이야기하려면 따로 올라갈 필요가 있어서겠지.
부리나케 산으로 올라가는 할포를 보며 물었다.
“맞다, 쿠르크라는 마족은 알아?”
“아니요.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입니다. 아마 제가 떠난 뒤 온 자 같습니다.”
“그래?”
아르칸도 소설에서 본 적 없는 이름이기에 물었던 거였다.
한참 뒤, 할포는 한 무리의 도적 떼와 함께 내려왔다.
아무리 봐도 서로 싸우기는커녕 동료처럼 보였다.
그 와중에 한 마족이 눈에 띄었다.
붉은 피부와 양미간에 난 커다란 뿔, 키클로테스 파벌의 악마족이었다.
‘저 녀석이 쿠르크인가 보네.’
“쿠르크 님! 저 녀석들입니다! 저 녀석들이 쿠르크 님을 잡아 오라고 했습니다!”
아르칸의 짐작대로 악마족 쿠르크가 맞았다.
웃긴 건 할포는 아까 전 도적이 자신에게 했던 모습 그대로 쿠르크에게 이르고 있다는 거였다.
한편 오웬은 제대로 열받았는지 분노의 일갈을 내뱉었다.
“할포! 네 녀석이 어찌 도적의 편을 드는가!”
“도적은 무슨, 이 쿠르크 님은 곧 마왕이 되실 분. 망나니 마왕 주제에 감히 그분을 해하려고 들었으니, 죽음을 자초한 거다.”
‘곧 마왕이 된다고? 마정석을 가지고 있다는 건 사실이었나 보네.’
아르칸은 자신의 짐작이 맞아떨어진 걸 기뻐하면서 물었다.
“근데 우리 이런 데서 죽여도 괜찮겠어? 아버지의 귀에 들어가면 난리 날 텐데?”
“훗. 내가 그 정도도 생각 못 할 멍청이로 아느냐? 네가 구해 줬던 녀석들을 제거하라고 아까 병사를 보냈지. 지금쯤이면 모두 죽었을 거다.”
‘아르칸 님이 할루시네이션 마법을 써 주셔서 다행이로군. 참으로 대단한 선견지명이시다.’
오웬은 아르칸 님께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탄했다.
“할포! 완전 바닥까지 떨어졌구나.”
“흥! 부러진 검 주제에 잘난 척 훈계하지 마라.”
할포는 처음 오웬을 봤을 때 떨었던 걸 잊은 듯 큰소리쳤다. 아니, 그 두려움이 선명하기에 이기기 위해 큰소리치는 걸지도 몰랐다.
한편 이쪽을 지켜보던 쿠르크가 투덜댔다.
“뭐야, 다 약해 빠졌잖아. 이 정도도 처리 못 해서 나를 번거롭게 하다니.”
“죄, 죄송합니다, 쿠르크 님. 제 능력이 부족해서…….”
“너는 어디를 가나 굽실거리며 살 운명인가 봐.”
“풋.”
아르칸의 말에 몇몇 병사들 사이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얼굴이 벌게진 할포가 외쳤다.
“어떤 녀석이 웃었어!”
“…….”
병사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한편 쿠르크는 뒤늦게 이해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하하핫! 굽실거리며 살 운명이라니.”
“쿠르크 님, 웃지만 마시고, 어서 해치워 주십시오.”
“어, 그러지. 바리스탄의 자식의 머리를 취하면 키클로테스 님도 기뻐하실 거다.”
쿠르크는 그러면서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아르칸 님.”
“이제 꺼낼 거야.”
진작 전투태세를 취한 오웬의 말에 아르칸이 대꾸하면서 아공간 주머니를 앞으로 내밀었다.
“나와라! 용아병! 저 녀석들을 상대해.”
“주인님의 명을 받듭니다.”
아공간 주머니에서 나온 용아병들은 곧바로 쿠르크와 할포를 비롯해 도적들과 병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크윽, 갑자기 이런 녀석들이 튀어나오다니.”
손쉽게 오웬과 아르칸을 해치울 생각이었던 쿠르크는 당황했다.
용아병 셋이 달려들자 꼼짝할 수 없을 정도로 밀렸다.
“크윽. 쿠르크 님, 도와주세요.”
할포는 용아병 하나도 상대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아르칸은 그런 할포를 가리키며 지시를 내렸다.
“저 녀석은 죽이지 마. 병사들도 잡기만 해.”
“알겠습니다.”
아르칸이 할포를 가리키자 가까이 있던 용아병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브리카 형의 부하들이기에 봐준 거였다.
그럴 여유도 충분했다.
‘무엇보다 전의를 꺾기에 좋지.’
“하, 항복하겠습니다.”
“저, 저도 안 싸웁니다.”
“봐주세요.”
아르칸의 의도대로 그 말을 들은 할포와 병사들은 곧바로 무기를 버리고 투항했다.
나머지 도적들은 용아병들이 하나도 남기지 않고 해치웠다.
“이 자식, 할포!”
상처투성이가 된 채로도 마지막까지 버텼던 쿠르크는 핏발이 선 눈으로 외쳤지만, 할포는 외면했다.
“명령대로 모두 해치웠습니다.”
“수고했다. 기왕 나온 김에 여기에서 돈 될 만한 것 좀 챙기는 거 도와줘.”
“알겠습니다.”
대답한 용아병들이 움직이는 걸 보고, 아르칸도 직접 쿠르크의 몸을 뒤졌다.
‘역시 귀중한 거라 직접 들고 있을 줄 알았지.’
아르칸은 쿠르크의 주머니에서 마정석을 찾아 들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내 실망으로 바뀌었다.
“이 마정석은 아무래도 마력이 거의 없는 것 같군요.”
오웬의 말대로 마정석이긴 하지만 내부는 어두웠다.
한마디로 폐급이었다.
그렇기에 쿠르크가 마정석을 손에 넣고도 마석을 사기 위해 도적질로 돈을 벌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젠장, 꽝이었나.”
아르칸이 혀를 차는데, 용아병이 뜻밖의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이 마정석, 저택에 두면 회복 가능합니다.”
“어, 정말??”
그러면 정말 횡재한 건데?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