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56
56화 대마왕성으로 가는 길에서 (4)
아르칸의 물음에 용아병이 단호하게 말했다.
“저희가 어찌 주인님께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런 뜻이 아니고. 어째서 회복할 수 있다는 거야?”
“아공간 주머니의 기능입니다. 공기 중 미세한 마력을 흡수해 저택을 중심으로 주변에 공급합니다. 그 덕분에 저희도 영원히 움직일 수 있는 거죠.”
‘하긴, 그게 아니면 아무리 드래곤의 이빨로 만든 용아병이라고 해도 무한정으로 움직일 수는 없겠지.’
“단, 회복할 여력을 가진 존재만이 그 마력으로 회복할 수 있습니다. 본래 마정석이나 마석의 마력을 늘리진 못하지만, 이 마정석의 경우 활성화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마력까지 회복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군. 혹시 오웬은 치료가 안 되나?”
“오웬 님의 경우는 마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증상이 아니라서 힘듭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그럴 거 같았는데,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니까.”
아쉽지만, 회복 기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만 해도 큰 수확이었다.
아르칸은 용아병에게 마정석을 건넸다.
“그럼 이것 좀 부탁할게.”
“네, 철저히 관리하겠습니다.”
용아병은 믿음직스러운 대답과 함께 마정석을 건네받아 아공간 주머니에 들어갔다.
그런데 다시 나오지 않는 게 아닌가?
“왜 안 나오지?”
“아, 마정석을 지키고 있을 겁니다.”
“거기 두면 누가 훔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놔두고 오면 될 텐데.”
그 말에 용아병이 미소 지었다.
“배려에 감사합니다만, 괜찮습니다. 저희가 보고 듣고 느낀 걸 나중에 공유하면 되니까요.”
그런 것까지 되다니 신기하긴 했다.
“참, 피용이 만든 용아병은?”
“저택에서 열심히 훈련하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공유해 줄 수는 없어서요.”
“그렇군.”
그때 오웬이 죽이지 않고 잡아 둔 할포와 그 병사들을 보며 물었다.
“아르칸 님, 이들은 어쩌실 겁니까?”
“브리카 마왕성에 데려다줘야지. 처분은 그쪽에서 알아서 하라고 할 거다.”
“알겠습니다.”
오웬은 적절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할포와 그 병사들을 데리고 브리카 마왕성에 갔더니 당연히 난리가 났다.
아르칸은 알아서 하라고 하며 신병을 넘겨주고 다시 바리스탄 대마왕성을 향해 떠났다.
* * *
아르칸은 마차를 타고 있었다.
브리카 마왕성의 집사가 혼란스러운 와중에서도 아르칸과 오웬을 보고 마차를 내준 덕분이었다.
마부석에서 직접 마차를 몰던 오웬이 말했다.
“저기 불빛들이 보입니다. 마을이 있는 것 같은데 오늘은 저기서 쉬고 가시지요.”
“그러지.”
마차를 타고 가면 빠르긴 하지만, 말도 휴식이 필요했다.
마을은 제법 컸는데, 특이하게 곳곳에 아주 굵은 거미줄이 처져 있었다.
“특이한 장식을 해 뒀군.”
“원래 저런 거 없었는데요. 분위기도 뭔가 이상합니다.”
“확실히 다들 표정도 어두운 게,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것 같은데. 여기는 둘째 형의 영역이지?”
브리카 형처럼 부하들이 도적들과 결탁해 괴롭히는 걸지도 몰랐다.
“네, 마왕 길렉 님의 영역입니다. 숙소에서 쉬시는 동안 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아니, 오웬도 피곤할 텐데 쉬어. 차라리 아버지에게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보고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그렇긴 합니다만.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 두는 게 낫겠다 싶어서 말입니다. 아까 도적 떼도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요.”
“그런 거라면 같이 알아보자. 어차피 바로 잘 것도 아니니까.”
“아, 그러시겠습니까?”
오웬은 기뻐하는 얼굴로 되물었다.
아무래도 아르칸이 정의감에 나서는 거라고 오해하는 듯했다. 하지만 아르칸은 아까 도적 떼 대장인 쿠르크에게서 마정석을 얻었듯이, 여기 도적 떼한테도 쓸 만한 보물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번 알아보기로 한 거였다.
‘별거 아니면 알아서 하라고 해야지.’
그러나 막상 알아보니 도적 떼가 문제가 아니었다.
“거대 거미 무리가 습격해 온단 말이냐?”
“네. 요 며칠 밤마다 습격해 와서 사람들을 잡아가요. 손님들도 위험하니 어서 도망치세요. 아직 어두워지기까지 시간이 있으니까요.”
설명하던 마을 소녀가 진심으로 걱정하며 말했다.
“우리는 괜찮다. 그보다 여긴 길렉 님의 영역이 아닌가. 길렉 님께 도와달라고 청했느냐?”
바리스탄의 둘째 아들인 길렉은 바리스탄의 힘을 물려받았다고 평해질 만큼 강한 마왕.
직접 나서면 거대 거미 정도는 손쉽게 정리하고도 남았다.
“그게, 마을 어르신들이 요청한 것 같지만…… 길렉 님은 부재중이시니 기다리라고만 해서…….”
“아무래도 길렉 님까지 대마왕성에 가 계시나 봅니다. 거기서 생일잔치까지 마치고 돌아오려면 열흘은 걸릴 텐데요.”
“네? 열흘이나요?”
오웬의 말에 마을 소녀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하루 이틀만 더 참으면 이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열흘이나 기다려야 한다니.
그것도 길렉이 곧바로 움직인다는 전제하에 계산된 날짜.
지체하면 열흘이 아니라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이 죄다 잡혀갈 거예요.”
“그런데 왜 안 도망치고 이러고 있어?”
“아무도 함부로 마을을 떠나선 안 된다고 길렉 님이 명령하셔서…….”
실제로 영역 내의 마인족을 통제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몬스터로부터 지켜 주는 대신 그 마인족에게 골드와 식량을 세금으로 걷으니까.
그런데 몬스터로부터 보호해 주지도 않으면서 이동을 금지한다? 폭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를 어쩐다.”
오웬은 난감했다.
이곳은 비록 마왕 길렉의 영역이긴 해도 넓게 보면 대마왕 바리스탄 님의 영역이나 마찬가지.
그 안에 사는 마인족이 곤란하다니 외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은 어디까지나 아르칸 님을 수행해 왕비님의 생일잔치까지 대마왕성으로 모시는 역할.
마음대로 움직이기 힘들뿐더러 현재 몸 상태로는 몬스터 무리를 멸절시키기 힘들었다.
‘아르칸 님이 나서면 해결하고도 남으시겠지만.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
오웬은 뒤늦게 아르칸이 내내 잠자코 있다는 걸 깨닫고 쳐다봤다.
아르칸은 턱에 손가락을 대고 뭔가 깊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르칸 님? 괜찮으십니까?”
“음. 아, 괜찮아.”
“어쩌면 좋을까요?”
“어쩌기는. 이곳은 둘째 형의 영역이자, 크게 보면 아버지의 영역 아니냐? 이곳의 주민들이 고생하고 있다는데 내 일처럼 나서서 도와줘야지.”
“크윽.”
오웬의 걱정과 달리 아르칸은 시원스레 돕겠다 나서는 게 아닌가?
특히 자신이 염두에 뒀던 대의를 그대로 읊다니,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배포가 넓으시다니, 분명 아르칸 님은 대성하실 거야.’
그러나 정작 아르칸에게는 다른 속셈이 있었다.
‘설마 여기에서 그걸 마주칠 줄이야.’
아르칸은 마을을 습격했다는 거대 거미의 정체를 알았다.
그건 바로 거미 여왕 믈라네스!
수많은 거대 거미를 거느린 믈라네스는 마왕도 아니면서 마계 전역으로 세력을 넓혀 갔다.
그 때문에 마신이 마왕으로 임명하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
‘소설 속에서는 용사에게 걸려서 죽지만.’
문제는 믈라네스가 가지고 있는 보물이었다.
용사가 믈라네스를 해치우며 몸통을 가르자 웬 마도구가 떨어졌는데, 그게 바로 수호의 팔찌였다.
보기에는 투박했지만, 그 기능은 최상급.
대부분 수호의 기능을 가진 마도구는 일회성이지만, 이 수호의 팔찌는 무려 두 번까지 방어할 수 있다.
또한 마석으로 마력을 보충하면 그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믈라네스가 수많은 거대 거미를 거느릴 수 있었던 것도 수호의 팔찌의 힘 덕분이었다.
‘이걸 수호의 반지 대신 용사에게 주면 되겠네.’
용사에게 줄 수호의 반지를 어머니께 선물하기로 한 마당에, 마침 적절한 마도구를 얻을 기회가 생긴 거였다.
“그래서 그 거대 거미는 어디에 있어?”
아르칸은 마을 소녀에게 물었는데, 마을 소녀가 움츠린 게 잔뜩 겁먹은 것 같아 보였다.
“얘 왜 이래?”
“둘째 형이니 아버지니 하시던데……. 혹시 아르칸 님이신가요?”
“어, 맞는데?”
“꺅!”
아르칸의 말에 마을 소녀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마리야, 왜 그래?”
“거기 무슨 일이야?”
그 소리에 마을 사람들이 다가왔다.
마리의 엄마처럼 보이는 여인은 마리를 끌어안고 이쪽을 흘겨봤다.
마을 사람들도 화내려고 했지만, 아르칸의 뿔과 검을 찬 오웬을 보고는 입을 다물고 불쾌한 기색만 내비쳤다.
“거기 왜 모여 있어? 녀석들이 쳐들어오기 전에 창문이랑 문 보강해야지!”
그때 한 건장한 사내가 저 멀리서 소리쳤다.
그를 본 마을 사람들이 반색하며 소리쳤다.
“랄프! 여기 좀 와 봐!”
“마리가 외부인과 대화하다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어.”
“뭐라고? 마리가?”
랄프는 인상을 쓰며 달려왔다가 다른 마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르칸과 오웬의 행색을 보고는 정중하게 물었다.
“높으신 분 같은데, 아이한테 무슨 몹쓸 짓을 했길래 아이가 저럽니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네. 그냥 마을에 우환이 있는 거 같아서 물어본 거네. 도와주고 싶어서 말이야.”
“아, 그러셨습니까. 그런데 왜 마리는…….”
오웬의 설명에 랄프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당장 쳐들어올 거대 거미 무리를 생각하면 도움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리에게 해코지를 한 게 사실이라면 그냥 둘 수도 없었다.
“그건 나 때문인 것 같다. 우리 대화를 듣고 내 정체를 눈치챈 거 같거든.”
아르칸의 말에 오웬이 쓴웃음을 지었지만, 영문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더욱 아리송할 뿐이었다.
랄프도 궁금했던지 정중하게 물었다.
“실례지만, 어떤 분이신지 저희에게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나? 마왕 아르칸이다.”
“아…….”
해답을 들은 랄프가 많은 의미를 담은 신음을 냈다.
마을 사람들도 웅성거렸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게. 아르칸 님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자네들의 사정을 딱하게 여기시고 여기서 자네들을 돕겠다고 나섰네.”
“……아, 네.”
오웬이 설명했지만, 랄프는 아직 조금 미심쩍은 듯했다.
그러나.
“오웬, 그만해. 내가 악명 높아서 그런 걸 어쩌겠어?”
아르칸이 오웬을 부르자 랄프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호, 혹시. 오웬 님이십니까?”
“맞네만. 왜 그러나?”
“정녕 대마왕 바리스탄의 검이라고 불렀던 오웬 님이 맞으신 겁니까?”
재차 묻는 걸 봐서는 오웬에 대해서는 잘 아는 모양이었다.
“옛날 일이지.”
오웬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지만, 랄프는 그러든 말든 하늘로 두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와아! 우리 살았다! 살았다고! 오웬 님이 도와주신다고 하신다!”
오웬은 당황해서 정정하려고 나섰다.
“아니, 돕겠다고 결정하신 건 아르칸 님이신데.”
“내버려 둬. 그걸로 저들이 안심할 수 있다면 그편이 나으니까.”
“아르칸 님…….”
오웬이 감동한 얼굴로 아르칸을 바라봤다.
그때 잠깐 쓰러졌던 마을 소녀 마리가 엄마의 품에서 나와 아르칸 앞에 고개를 숙였다.
“마왕님, 죄송해요. 너무 놀라서 그랬어요.”
“괜찮다. 그럴 수도 있지. 그보다 이거 애한테 사과받는다고 내 악명만 더 퍼질 거 같은데?”
“아앗!”
마리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더니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런 거 아니에요. 다들 오해하지 마세요.”
그 귀여운 모습에 마을 사람들의 분위기도 한층 부드러워졌다.
“그런데 그 거대 거미의 둥지는 어디 있나? 바로 해치워 버리려는데.”
“죄송합니다. 저희는 마을을 지키는 데도 급급해서 그게 어디 있는지 전혀 모릅니다.”
“하는 수 없지. 오늘 막아 내면서 알아보는 수밖에.”
“네, 뒤를 쫓아가면 충분할 겁니다.”
아르칸의 말에 오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듣고 희망에 찬 랄프가 마을 주민들에게 외쳤다.
“자 자! 다들 들었지? 오웬 님과 아르칸 님이 우리를 지켜 주실 뿐만 아니라 그 거대 거미의 둥지까지 박살 내신다고 한다! 그래도 오늘 살아남으려면 각자 창문과 문을 보강해서 하니까 더 늦기 전에 어서 움직여!”
“오옷!”
마을 사람들도 힘차게 대답했다.
그 후 다들 흩어지려고 할 때, 아르칸이 다급하게 불렀다.
“잠깐만.”
“왜 그러십니까?”
“설마 지금까지 각자 자기 집에서 숨어 있던 거야?”
“네, 그러면 어디에 숨습니까?”
랄프가 도리어 다른 수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 자기 집에서 숨어 있었나 본데.’
혼자서 아무리 문과 창문을 보강해도 나무 주택이 안전한 보호처가 될 리 만무했다.
‘아니, 생각해 보면 특별히 잘못된 작전은 아닌가?’
거대 거미 무리가 먹잇감으로 데려가는 인간은 한계가 있을 테니까.
옆집이 먹히면 자신은 오늘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르칸과 오웬이 함께하는 상황.
충분히 효율적인 방법으로 마을을 지켜 낼 수 있었다.
아르칸은 랄프에게 말했다.
“여기 가장 큰 집 있지? 거기로 마을 사람들을 다 모아.”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