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57
57화 대마왕성으로 가는 길에서 (5)
아르칸은 마을 주민을 한곳에 모아 지킬 생각이었다.
그러나 랄프의 대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그 정도로 커다란 집은 저희 마을에 없습니다.”
“그래?”
“그나마 여관이라면 절반 가까이 수용할 수 있겠지만, 거기는 지금도 협력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경호병도 있고 자체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고요.”
“그렇게 이기적일 수가. 아르칸 님, 제가 가서 한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아니, 내버려 둬.”
오웬이 나서려는 걸 아르칸은 막았다.
“아르칸 님?”
“딱 봐도 대화가 안 통할 것 같은데, 괜히 시간만 낭비할 거야.”
그 말에 랄프가 의외라는 듯 쳐다봤다.
여관 주인은 자기가 손해 보는 건 지극히 싫어하는 인간이라, 협력하자고 백번 말해 봐야 소용없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마왕이, 그것도 이곳을 영역으로 두고 있는 마왕과 친분이 있는 아르칸의 말이라면 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아르칸이 마음만 먹으면, 말이 안 통할 시 돈으로, 그걸로도 안 되면 힘으로 빼앗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르칸은 마을 주민들 모두 들어가지도 못하는 여관에서 힘을 빼느니, 내버려 두되 다른 임무를 줄 생각이었다.
“그보다 다른 곳은 없어? 마을 주민들이 모두 들어갈 수 있으면 창고라도 괜찮은데.”
“아, 마을 공동 창고가 있습니다.”
“그럼 거기로 다 모이라고 해.”
그러자 랄프가 바로 옆에 보이는 창고를 가리켰다.
“저기 보이는 게 바로 그 창고입니다만 입구 근처라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거대 거미가 저쪽으로 들어옵니다.”
“상관없어. 저기로 모이라고 해.”
“흠, 알겠습니다.”
랄프는 납득이 안 되는 듯했지만, 일단 따르기로 한 만큼 아르칸의 지시대로 주민들에게 외쳤다.
“오늘은 저 창고에 모두 모여 피신할 테니까, 다들 전파해서 집에 있는 사람들 모두 창고로 오라고 해!”
“랄프, 진심이야?”
“저기서 어떻게 버티려고!”
“저기 있다가는 우리 모두 다 죽을 거야!”
“마왕님의 지시다. ”
그 말에 반발하던 마을 주민들이 입을 다물더니 인상만 구겼다.
나서서 반발은 못 하겠지만, 여전히 내키지 않은 탓이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아르칸이 나섰다.
“내 말에 따르지 않아도 괜찮다. 모이고 싶은 사람만 모여.”
어차피 아르칸의 목적은 거미 여왕이 가진 수호의 팔찌.
마을 주민을 모두 지킬 의무도 필요도 없다.
여관도 그렇고, 싫다는 이까지 애써서 지킬 생각은 없었다.
그때 아까 기절했던 소녀가 말했다.
“저는 마왕님 말대로 할래요. 엄마, 엄마도 같이 가자.”
“애가 정말.”
엄마가 나무랐지만, 소녀는 완고했다.
“나는 아르칸 마왕님을 따르기로 했다! 나머지는 알아서들 해! 자, 모시겠습니다. 따라오시죠.”
그걸 보며 결심한 랄프가 크게 외치고는 몸을 돌려 창고로 향했다.
아르칸과 오웬은 그 뒤를 따랐다.
주민들은 웅성거리다가 대부분 창고로 왔고, 몇 가구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아르칸은 그 말을 듣고도 별말 없이 내버려 뒀다.
도리어 랄프가 눈치를 보며 변명했다.
“저 녀석들 대부분 마을 중앙에 집이 있어서 그럽니다. 여관도 그렇고 지금까지 중심부까지 거대 거미들이 오지 않아서요.”
“괜찮다. 각자 판단하고 그 결과도 스스로 지면 되니까.”
아르칸이 창고를 살펴보니 안은 정리가 안 되어 엉망이었지만, 건물 자체는 튼튼했다.
커다란 정문을 제외하면 창문도 몇 개 없어, 신경 써서 막아야 하는 곳도 별로 없었다.
“여기면 되겠어. 저 창문들은 단단히 막고, 사람들은 중앙에 모아.”
“알겠습니다. 근데 정문도 보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튼튼한 편이긴 합니다만.”
“아니, 거긴 내가 막을 거야.”
아르칸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용아병을 불러냈다.
특이한 외형이긴 해도 순식간에 서른둘의 정예병이 나타난 걸 보고 모두 감탄하고, 일부는 안도했다.
아르칸은 멍하니 용아병들을 바라보고 있는 랄프를 채근했다.
“뭐 해? 빨리 창문 막지 않고.”
“아, 죄송합니다. 지금 구경하게 생겼어? 다들 어서 움직여!”
정신 차린 랄프가 마을 사람들을 다그쳤지만, 그 목소리는 약간 들떠 있었다.
그는 용아병의 등장에 진정한 희망을 엿보고 안심했다.
아르칸은 전면에 용아병을 20명, 나머지를 삼면에 나눠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 * *
거대 거미의 습격을 대비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 땅거미가 졌다.
용아병의 등장에 희망에 찼던 분위기는 어느새 가라앉았다. 한곳에 모인 주민들은 불안한 얼굴로 말없이 몸을 웅크렸다.
며칠 사이 겪었던 거대 거미에 대한 공포가 쉽게 지워질 리 없었다.
정작 아르칸은 기약 없이 기다리다 보니 지루했다.
“슬슬 나타날 때 안 됐나? 이거 오늘 안 오는 거 아니야?”
타다다닥.
참다못한 아르칸이 묻자마자 저 멀리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소리에 겁먹은 마을 주민들은 더욱 몸을 움츠렸다.
거대 거미가 나타난 것.
그 길고 가느다란 다리가 땅을 긁는 소리는 점점 커졌다.
거기다 거대 거미는 이곳에 먹잇감이 잔뜩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창고 주위를 열심히 더듬었다.
그러다가 가장 취약한 곳을 발견하고는 쿵쿵거리며 부딪쳐 왔다.
바로 평소처럼 나무 걸쇠 하나로 막아 둔 정문이었다.
쿵! 쿵! 콰직! 쾅!!
결국, 걸쇠가 부서지고 거대 거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로도 거미들이 잔뜩 있었다.
“으아악! 거대 거미다!”
“꺄아악!”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과 함께 거미들이 낫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송곳니를 들이대며 달려들었다.
“막아! 한 마리도 통과시키면 안 된다!”
“주인님의 명을 받듭니다.”
용아병들은 정문 주위로 반원으로, 그것도 이중으로 둘러섰는데, 아르칸의 지시대로 단 하나의 거대 거미도 놓치지 않았다.
그러자 거대 거미들이 거리를 두고 거미줄을 쏘기 시작했다.
일부는 화살처럼 일부는 그물처럼 쏘아 댔다.
용아병들은 가볍게 피하고 거미줄에 걸렸다고 해도 금방 자르고 벗어났다.
문제는 사방이 거미줄투성이가 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내가 나서야겠군.’
아르칸은 게티아를 꺼내 파이어 볼트를 사용했다.
그걸 본 주민들이 감탄했다.
“우왓! 아르칸 님이 권능을 쓰신다.”
“역시 바리스탄 님의 자식답게 화염을 쓰시는 건가.”
“저 병사들을 소환하는 게 권능이 아니었나 봐.”
주민들은 용아병들이 선전하자 두려움을 떨쳐 버린 듯 어느새 관전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도움도 안 되는데 실컷 구경이나 하라지.’
아르칸은 속으로 웃으면서 파이어 볼트를 난사했다.
거대 거미를 노리기보다는 주로 거미줄을 제거하는 데 애썼다.
“엇, 거미줄이 불타 없어지고 있어. 아무리 불 질러도 끄떡없었는데.”
거미줄에 희미하긴 해도 마력이 있어서 그렇다.
마력이 사라지면 거미줄도 흩어지지만, 그 전까지는 보통 불로는 없앨 수 없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며 거대 거미를 막아 내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거대 거미의 숫자가 많이 줄어 있는 게 아닌가?
오웬은 제일 먼저 그걸 눈치채고는 아르칸에게 말했다.
“거대 거미들이 철수하는 모양입니다.”
“이쪽의 저항이 완강하니 포기한 거지.”
그렇게 대꾸한 아르칸은 파이어 볼트 마법을 쓰는 대신 홀드 마법으로 거대 거미 하나를 붙잡았다.
“이거 묶어 둬. 나중에 풀어서 둥지를 찾는 데 쓸 거다.”
“알겠습니다.”
용아병들은 곧장 달려들어 거대 거미를 꼼짝 못 하게 꽁꽁 묶었다.
한편 곁에서 듣고 있던 랄프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이대로 거대 거미를 소탕하러 가실 겁니까?”
“그러니까 둥지를 물어본 거지.”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랄프는 바닥에 엎드려서 이마를 땅에 박으며 감사를 표했다.
“부담스러우니까 그쯤 해 둬.”
“아, 죄송합니다.”
랄프는 벌떡 일어났지만, 여전히 감격이 안 가신 듯 보였다.
아르칸은 못 본 척하며 당부했다.
“너무 좋아할 건 없어. 둥지로 가서 여왕 거미는 잡겠지만, 거대 거미까지는 다 못 잡으니까. 브리카 마왕군에 말은 해 두겠지만, 한동안 조심하도록.”
“알겠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합니다.”
거미들이 지나다니는 섬뜩한 소리가 그쳤을 즈음, 동이 트기 시작했다.
거대 거미가 물러가고 날이 밝아 온 것.
“와아! 살았다. 살아남았다고!”
“휴, 오늘은 비교적 편안히 버텼네.”
“애들도 안심이 됐는지 푹 잠들었어요.”
마을 주민들은 오늘도 무사히 생존한 걸 기뻐하더니 입구로 달려와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르칸 님과 오웬 님 덕분에 살았어요!”
“아니, 난 한 게 없는데.”
멋쩍어하는 오웬을 보며 아르칸이 웃으며 말했다.
“미리 인사받아 둬. 어차피 둥지로 가면 실컷 싸워야 할 테니까.”
그때 랄프가 와서 조용히 목소리로 불렀다.
“저기, 아르칸 마왕님.”
“응? 왜?”
“더 시키실 일이나 따로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지요?”
“없는데?”
“그럼 이제 마을 사람들 해산시켜도 되겠습니까?”
“아.”
마을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여 있기만 했지만, 대부분 꼬박 밤을 새운 탓에 피곤함에 절어 있었다.
“그래, 해산시켜. 어차피 둥지는 나랑 오웬만 가려고 했으니까.”
그때 오웬이 제안했다.
“그 전에 마을을 한번 살펴보는 게 어떻습니까? 남아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하긴, 평소와 달리 모여 있었으니 확인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랄프까지 동의하자 아르칸이 승낙했다.
“그럼 그러자. 한 바퀴 돌아보고 바로 둥지 찾으러 가는 게 낫겠어. 용아병은 거대 거미 데리고 마을 입구에서 기다리고.”
“알겠습니다.”
그 후, 아르칸과 오웬은 랄프의 안내를 받으며 마을을 돌아봤다.
안내하는 랄프의 목소리는 한층 들떴다.
“빈집은 오히려 피해가 없군요. 매번 난장판이었는데, 다행입니다.”
“먹잇감이 없으니까.”
“아무래도 그래 보이는군요.”
그때 랄프의 발걸음이 순간 멈췄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피해가 적었던 마을 중심가 쪽의 저택이 박살 난 거였다.
심지어 여관은 완전히 무너져 있고, 저항하다가 잔혹하게 죽었는지 여기저기 살점과 피투성이가 난무했다.
“허, 여기가 무너지다니.”
랄프는 망연자실했지만, 아르칸은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
거대 거미들이 매일 찾아와 사람을 잡아간다는 건 단순한 배고픔을 떠나서 여왕 거미의 명령에 따라 사냥하는 것.
그 명령이 절대적이었기에 이곳의 저항이 아무리 강해도 필사적으로 먹잇감을 잡아가려고 할 게 분명했다.
‘마지막 하나가 남을 때까지 싸웠겠지.’
그러나 다른 곳에 손쉬운 먹잇감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단 오늘은 그쪽을 가지고 돌아가면 되니까.’
그동안 이곳이 멀쩡했던 것도 그저 단단해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이 안쪽까지 와서 잡아갈 필요가 없어서 내버려 뒀던 거였다.
“음. 어쨌든 더는 거대 거미는 안 보이는 거 같군.”
“……네. 이제 돌아가서 주민들더러 일단 해산하라고 하겠습니다.”
랄프는 충격받았는지 비틀거리며 창고로 걸어갔다.
아르칸과 오웬은 그대로 마을을 나서서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용아병과 합류했다.
“그러면 둥지를 찾으러 가자고.”
아르칸의 말에 용아병이 거대 거미의 포박을 풀었다. 그러자 거대 거미가 후다닥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놓치지 않도록 몸 줄은 길게 묶어 뒀다.
덕분에 거미 여왕의 둥지를 찾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용사 이 미친 녀석. 이걸 혼자서 다 박살 냈단 말이야?’
소설로 읽긴 했지만, 거대한 호수 너머로 보이는 거미 여왕의 둥지는 생각보다 거대했다.
그 넓이는 인간의 성을 방불케 할 정도였는데, 곳곳에 보이는 거대 거미만 해도 그 숫자가 수백 마리는 족히 되어 보였다.
“이거 저희 힘만으로는 무리일 것 같습니다. 마왕성에 요청해서 마왕군을 불러야겠습니다.”
오웬마저 약한 소리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만에 하나 다른 이가 나서서 해치워 버리기라도 하면 상급 수호의 팔찌를 빼앗길 테니까.
‘방법이 없을까. ……아.’
아르칸은 소설 내용을 떠올리다가 쓸 만한 방법을 떠올렸다.
“그러지 말고 거미 여왕만 잡고 가자. 거미 여왕만 잡아도 마을을 습격하는 일이 줄어들 거야.”
“그러면 좋지만 거미 여왕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잡으러 갑니까. 만약 잡으려고 하면 저 많은 거대 거미가 모두 몰려들 텐데요.”
어디 있는지는 아르칸이 알고 있었다.
이 호수가 은신처랑 연결되어 있어서 호수를 통해서 들어가면 된다.
소설에서는 용사가 거미 여왕을 해치운 뒤 찝찝해서 호수 안에 들어갔다가 깊길래 한참 수영해서 나왔더니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되어 있었다.
아르칸은 그 반대로 할 작정이었다.
‘물론 소설에서 읽었다고 할 수 없으니 둘러대야겠지만.’
그때 오웬이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사실 짐작 가는 곳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래?”
“네. 거미 여왕은 지하에 숨어 알을 물속에 띄워 둔다고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 호수와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래? 한번 확인해 볼 만하겠군.”
“하지만 어떻게 확인합니까? 호수 속으로 잠수해서 찾아봐야 할 텐데요.”
“저는 가능합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용아병이 나섰다.
용아병은 아무래도 물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듯했다.
“좋아. 그러면 셋이 들어가서 찾아보고 와.”
“네, 감사합니다.”
잠시 후, 호수 안으로 들어갔던 용아병 중 하나가 돌아와서 보고했다.
“이 호수 너머에 거미 여왕이 있습니다. 그것도 혼자 있습니다.”
“좋아, 가자고.”
“그런데 거미 여왕이 있는 곳의 호수는 아주 넓고 깊습니다. 아르칸 님과 오웬 님이 그냥 건너긴 힘듭니다.”
“괜찮아.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으니까.”
아르칸은 걱정하는 용아병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