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6
6화 거래와 협박 사이 (3)
드리켈라 마왕성은 위치는 마계 서쪽 구석.
덕분에 사방에는 온통 같은 파벌의 마왕뿐이다.
마왕성을 육성할 방법은 주변의 몬스터를 잡는 게 전부.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마왕성 랭킹에 들기는커녕 도태될 뿐이다.’
나름대로 야망이 있던 드리켈라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인계 원정에 나섰다.
동원된 병력은 마족 5인에 마인 병사 3백 명과 용병 20명.
마왕성 전력의 절반 넘게 끌고 나온 거였다.
원정 초반은 순조로웠다.
마주친 몬스터들을 손쉽게 쓰러트리자 병사들의 사기도 하늘을 찔렀다.
‘이 기세를 몰아 인간의 성을 차지한다. 그러면 내 이름이 유명해지는 건 물론이고, 대마왕 바리스탄 님의 심복이 되고도 남을 테지.’
자신감이 넘쳤던 드리켈라는 망나니 마왕으로 유명한 아르칸이 찾아왔을 때도 실컷 조롱했다.
대마왕 바리스탄 님도, 내놓은 자식보단 원정에 성공한 개선장군을 우대하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험준한 산맥을 넘어 인간족 영역에 들어온 드리켈라는 목표인 레오벤 성을 향해 거침없이 진군하며 그 사이에 있는 마을을 몇 개나 초토화했다.
그날도 마을 하나를 깡그리 불태운 뒤, 술과 음식을 마음껏 들며 승전의 기쁨을 누렸다.
그때 외곽이 소란스러워서 알아보니 웬 인간이 혼자 쳐들어왔다는 게 아닌가?
“맹랑한 놈이로다. 잡아서 끌고 와. 누군지 한번 봐야겠다.”
달려와 보고한 부하에게 드리켈라가 호기롭게 지시했다.
그러고 얼마 안 지나 습격자를 볼 수 있었다.
부하가 잡아 온 게 아니라, 그 인간이 직접 나타난 거였지만.
그것도 수백에 달하는 병사들을 뚫고, 그들을 지휘하던 마족들마저 무차별로 해치우면서 말이다.
“히익! 어떻게 저렇게 강할 수가!”
대마왕에 버금가는 압도적인 무력에 드리켈라는 공포를 느꼈다.
드리켈라는 몰랐지만, 상대는 이 소설의 주인공인 용사였다.
자신이 신세 졌던 마을이 불탄 걸 보고 복수하러 달려온 거였다.
드리켈라는 허겁지겁 자신의 권능인 그림자걷기를 사용해 겨우 몸을 뺐다.
지휘관이 도망치자 병사들도 와르르 흩어졌다.
다음 날이 되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 드리켈라는 퇴각한 부대와 합류했다.
다행히 병력을 크게 잃진 않았다.
아무리 엄청난 무력을 소유한 인간이라고 해도 혼자라 큰 타격을 주진 못한 거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레오벤 성의 기사단이 습격해 왔다.
그것도 그 무서운 인간과 함께.
“힉! 도, 도망쳐라!”
드리켈라는 기겁하며 다시 그림자 속으로 숨었고, 이번에야말로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남은 마족은 겨우 둘.
병력 절반 이상이 죽거나 크게 다쳤고, 살아남은 용병들도 모조리 도망쳤다.
‘……일단 마계로 돌아가자.’
원정을 포기하고 남은 부대를 수습해 귀환길에 나섰다.
다행히 적이 추격하지 않아 금방 마계로 넘어올 수 있었다.
문제는 험준한 산맥을 넘는 과정에서 부상자들의 상태가 더욱 악화했다는 거였다.
부하들은 더는 못 움직이겠다고 퍼져 버렸다.
‘젠장, 이래서야 언제 마왕성으로 돌아간단 말인가.’
하는 수 없이 드리켈라는 진통제든 뭐든 약을 구해 오라 지시했다.
잠시 후.
돌아온 부하들의 보고는 실망스러웠다. 통증 완화에 필수적인 세틱이 일대에 완전히 동나 버렸다는 거였다.
“어떻게 된 거야?”
“상인들이 말하기로는 마왕 아르칸이 전부 사들였다고 합니다.”
“전부?”
“네, 이 일대의 물량을 싹 쓸어가 버렸다고…….”
마족 조스타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르칸 마왕님이 그걸 왜 사 갔을까요?”
“마왕님은 무슨, 그 망나니 행동이야 뻔하지. 그걸로 마약 만들어서 향락에 쓰려는 거 아니겠어?”
맞은편에 서 있던 마족 메섹의 말에 조스타가 미간을 찌푸렸다.
“흠, 마약이라……. 귀한 약재를 마약으로 써먹다니, 확실히 망나니라고 불릴 만하군요.”
“크크. 넌 그날 경계 서느라 못 봤지? 직접 보면 소문 이상이야. 얼마나 찌질해 보이던지.”
“그렇습니까? 그보다 병사들이 걱정입니다. 안 그래도 사기가 바닥인데, 약도 못 구했다고 그러면…….”
조스타의 말에 드리켈라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안 그래도 탈영병이 하나둘 나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도착할 때쯤에는 남은 병사가 하나도 없을지도 몰랐다.
그랬다가는 망나니 마왕처럼 두고두고 조롱거리가 될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는 것만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마왕님! 차라리 마왕성을 칩시다. 지키는 병력도 없다던데 거기 마정석을 얻는다면 이번 원정의 성과로 충분하다 못해 남을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메섹의 주장에 드리켈라가 호통쳤다.
“저 마왕성은 바리스탄 님이 하사하신 거다. 그걸 뺏자고? 목숨이 아깝지 않나?”
“…….”
“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서 세틱이나 내놓으라고 해!”
“아, 알겠습니다.”
대꾸할 말이 없던 메섹이 허겁지겁 막사 밖을 나갔다.
한참 뒤.
메섹이 잔뜩 굳은 얼굴로 돌아왔다.
“꼴을 보니 허탕 쳤나 보군.”
“실망시켜 드려 죄송합니다, 드리켈라 님.”
메섹이 고개를 숙였다.
사실 드리켈라도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망나니의 명성을 생각하면, 진작 다 써 버렸겠지.’
오히려 그걸 이용해 병사들의 분노를 아르칸에게 향하게 할까 싶던 참이었다.
억만금을 주고서라도 약을 사려고 했으나 아르칸이 환락을 즐기는 데 모두 써 버렸다고 하면 충분했다.
“괜찮다. 어쩔 수 없지 않나. 그 망나니가 마약으로 다 써 버렸을 테니.”
“……그게, 세틱은 저희가 필요한 만큼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뭐라고? 그런데 왜 빈손으로 왔나?”
“무례하게도 필요하면 드리켈라 님더러 직접 오라고 하지 뭡니까.”
“뭣이!!”
콰직!
드리켈라가 의자 손잡이를 으끄러트렸다.
조스타도 화를 냈다.
“어찌 저리 오만방자할 수가! 드리켈라 님, 이번 기회에 본때를 보여 줘야 합니다! 명령만 내려 주시면 이 조스타가 앞장서겠습니다!”
“쯧, 대마왕 바리스탄 님을 믿고 저러는 건데 뒷감당은 어쩌려고?”
“아, 죄송합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드리켈라의 물음에 조스타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그나저나 직접 오라는 걸 보니 저번 일로 앙심을 품었나 보군. 내게 사과를 받고 싶은 모양이야.”
“그렇게 졸렬할 수가…….”
“완전히 미쳐 버렸군요.”
부하들이 분해하는 것과 달리, 드리켈라는 여유가 있었다.
“바라는 대로 내 가지. 가서 한 방 먹여 주겠다. 이쪽은 마약이라는 약점을 쥐고 있잖은가.”
“맞다. 마약을 한 걸 바리스탄 님께 고한다고 하면 쩔쩔매겠군요. 흐흐흐,”
메섹이 사악하게 웃으며 하는 말에 드리켈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오히려 잘됐군. 이 기회에 아예 아르칸 마왕성에 눌러앉아 거점으로 삼아 버려야겠어.”
* * *
“……아르칸 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오웬의 걱정 어린 물음에 뭔가를 쓰고 있던 아르칸이 고개를 들었다.
“뭐가?”
“금방 드리켈라 님의 사자를 박대하신 것 말입니다.”
“왜? 열받아서 쳐들어올까 무서워?”
“그건 아닙니다만, 드리켈라 님께 약재를 팔려던 거 아니었습니까? 근데 그대로 가 버리면…….”
“다시 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
아르칸이 자신만만하게 대꾸했지만, 오웬의 속은 타들어 갔다.
‘하긴 이게 무슨 소용인가. 파나 안 파나 마찬가지인 것을.’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드리켈라 원정군이 패퇴할 거라는 걸 예상하고 약재를 준비시킨 건 놀라웠다.
그러나 그걸 다 팔아도 빚을 갚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세틱 1천 개를 대략 2백 골드에 매입했으니, 2천 골드를 갚기 위해서는 매입가의 열 배로 팔아야 했다.
‘아무리 필요하다 해도 그렇게 고가에 살 리가 없지. 1천 개나 필요하지도 않을 테고.’
워낙 고가다 보니 마족의 치료에만 쓴다고 치면 기껏해야 십여 개 정도?
아무리 따져 봐도 답이 안 나왔다.
‘도움의 손길이 늦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는가.’
무력감을 느끼던 오웬의 눈에 다시 뭔가를 쓰기 시작한 아르칸이 보였다.
‘그런데 대체 뭘 쓰시는 거지? 그것도 난생처음 보는 문자인데…….’
잠시 후.
하인이 쫓아와 마왕 드리켈라가 왔다고 알렸다.
아르칸은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오웬에게 웃음으로 답하며 펜을 놓고 손님을 맞으러 나갔다.
“드라켈라 님, 어서 오시지요.”
“허허, 아르칸. 내가 있는 곳은 언제든지 달려오겠다더니 그간 엉덩이가 무거워졌나 보군.”
“원래 아쉬운 쪽이 움직여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흐흐, 저 오만한 꼴을 보니 내가 자신의 약점을 잡은 걸 눈치 못 채고 있나 보군.’
드리켈라는 기분 나빠하기는커녕 속으로 기뻐했다.
“하긴 틀린 말은 아니군. 그럼 둘이서 조용히 이야기해 볼까?”
“둘이서 말입니까?”
“서로 체면도 있으니 이런 이야기는 단둘이 하는 게 좋지 않겠나.”
“그렇긴 한데, 마땅한 곳이…….”
아르칸이 난처해할 때, 오웬이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마왕실에 준비해 뒀으니 거기로 모시지요. 세틱도 가져다 뒀습니다.”
“아, 고마워. 이리로 오시죠.”
아르칸은 드리켈라를 마왕실로 안내했다.
빙의한 뒤 굴러다니던 술병부터 해서 방 안을 깨끗하게 치우긴 했지만, 그래도 커다란 침대가 있어 어수선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니 오웬이 어느새 커튼으로 침대를 가리고, 커다란 테이블과 의자까지 준비해 놨다.
덕분에 그럭저럭 응접실 구색은 갖췄다.
안으로 들어온 아르칸은 앉으라고 권유도 하지 않고 먼저 안쪽 의자에 앉았다.
무례한 태도에도 드리켈라는 웃으며 반대편 의자에 앉더니 입을 열었다.
“이제 만족했나? 마약 건이 바리스탄 님 귀에 들어가는 걸 원치 않으면 장난은 이쯤 하지.”
“마약?”
“그래, 자식이 마약을 한다는 소리가 바리스탄 님 귀에 들어가면 아주 실망하시겠지. 나도 그런 일은 원치 않네.”
자신의 말에 아르칸이 겁을 먹었다고 생각한 드리켈라는 득의양양했지만, 아르칸은 겁먹기보다는 황당했다.
‘협박하려고 했는데, 도리어 협박당하다니.’
심지어 마약은 사실무근. 마약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협박 카드는 아르칸이 가진 게 더욱 강했다.
소설에서 드리켈라는 원정에 나섰다가 용사에게 당해 마왕성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서 처형당하는데, 인간족과 내통했다는 죄목이었다.
자신만만하게 원정에 나선 것도 인간족에게 공략할 만하다고 정보를 얻어서였다.
성공했다면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었겠지만 대패했으니 처형을 피할 수 없었다.
그 과정을 잘 아는 아르칸은 인간족과 내통한 걸 가지고 드리켈라를 협박할 작정이었다.
세틱은 어디까지나 드리켈라와 대화를 유도하고, 적당히 거래하는 모양새를 취하기 위해서 사들인 거였다.
“왜 말이 없나? 혹시 바리스탄 님 귀에 마약 이야기가 들어가길 원하나?”
‘이 양반이.’
아르칸은 심드렁한 얼굴로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드리켈라 님이야말로 안 좋은 소문이 돌던데 말입니다?”
“소문?”
“네, 인간족과 내통하신다던데요?”
뜨끔.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반응이 너무 솔직했다. 그만큼 허를 찔렀나?
“소문으로는 내통한 인간족이 낚은 거라던데요?”
“낚은 거였다고? 정말인가?”
“네, 강한 인간족이 있는 곳으로 보낼 테니 대패할 거라더라고요. 그 소리에 세틱을 사들였죠. 근데 딱 맞아떨어질 줄이야.”
그 말에 곰곰이 생각하던 드리켈라가 버럭 화를 냈다.
“이 내가 배신당하다니! 암, 배신만 안 당했다면 내가 원정에 실패했을 리가 없지!”
실제로는 드리켈라가 패배하자 인간족 첩자가 다른 마왕에게 줄을 대다가 걸린 탓이지만. 드리켈라는 알 도리가 없었다.
어쨌든 간에 자신의 처참한 패배에 그럴싸한 변명거리가 생기자 목소리에 힘이 붙은 거였다.
“중요한 건 내통한 사실이죠. 이겼다면 변명의 여지가 있겠습니다만. 이대로 돌아가시면 즉결 처형당하시겠지요.”
“…….”
즉결 처형이라는 말이 무겁게 다가왔는지 드리켈라가 마른침을 삼켰다.
아르칸은 거기에 한마디 더 보탰다.
“아시다시피 저희 아버지가 워낙에 불같은 성미 아닙니까?”
드리켈라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정말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깨달은 거였다.
“어, 어떻게 해야 좋겠나?”
“당장은 피해야죠. 그런 다음 변명할 만한 작은 성과라도 내는 수밖에요.”
“성과라……. 지금 남은 병력 대부분이 다친 상태인데.”
아르칸은 기다렸다는 듯 테이블 아래에 뒀던 상자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메추리알 크기의 세틱 열매가 가득 들어 있었다.
“이걸로 치료하시죠. 1천 개쯤 되니 충분할 겁니다.”
“1천 개나?”
그 정도라면 당장 모든 병사에게 쓰고도 남았다.
“고, 고맙네. 내 이 은혜는 잊지 않겠네.”
드리켈라가 상자에 손을 뻗자 아르칸이 살짝 뒤로 뺐다.
“음?”
“아무리 그래도 이걸 공짜로 드릴 수는 없죠. 딱 3천 골드에 넘겨드리겠습니다.”
“3천?? 이게 그렇게나 비싸단 말인가?”
“물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골드가 많이 필요하시겠지요. 그러니 현금 대신 골드 지급 보증서를 써 주십시오.”
골드 지급 보증서는 대량의 골드를 거래할 때 쓰는 것으로, 수표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
아르칸이 쓴 보증서라면 안 받겠지만, 드리켈라가 쓴 거라면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나중에 드리켈라가 내통한 게 들키면 휴지 조각이 될 수도 있지만, 그 전에 쓸 거니 상관없지.’
“오, 그거면 되겠는가? 당장 써 주겠네.”
드리켈라가 반색했다.
어차피 이대로 마왕성으로 못 돌아가는 처지.
가지고 있는 골드 대신 지급한다면 손해 볼 거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둘은 모두가 만족스러운 거래를 마쳤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