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60
60화 대마왕성에서의 저녁 식사 (2)
흐뭇한 미소로 아르칸을 쳐다보던 아네스는 첫째와 둘째의 표정이 굳은 걸 눈치채고 바리스탄을 나무랐다.
“당신도 참, 늦게 와 놓고 애들부터 잡을 거예요? 따지면 애들이 내 생일 때문에 여기 오느라 그리된 거니 모두 내 탓이죠.”
“아니, 마왕이라면 부재중일 때도…….”
바리스탄이 쩔쩔매며 대꾸하는데 아네스는 그 말을 끊으며 빙긋 웃었다.
“그보다 배고프시죠? 내가 오랜만에 요리를 준비했어요.”
“뭐? 요리를??”
“네. 아르칸이 왔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죠. 몸에 좋은 건 다 넣어서 만들었어요.”
아네스의 말에 바리스탄만이 놀라는 게 아니라, 브리카와 길렉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왜 반응들이 저렇지?’
아르칸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였다.
쿠쿵!
댕댕댕댕댕댕댕댕댕!
뭔가가 부딪힌 듯 저택이 흔들리더니 경고하는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동시에 쩔쩔매던 바리스탄의 눈빛도 달랐다.
당장 사방에서 시커먼 기운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엇, 이건?’
아르칸은 그 기운을 보고는 어떤 상황인지 눈치챘다.
잠시 후.
침입자가 정체를 드러냈다. 세상을 부정하는 듯한 칠흑보다 더 어두운 기운 한가운데에 나타난 건 검은 로브를 걸친 엘더 리치였다.
‘역시 본앰브로스였어. 근데 왜 왔지?’
아르칸이 잠자코 지켜보고 있을 때, 바리스탄이 본앰브로스에게 다가갔다.
화르륵.
주변의 공기가 이글거린다 싶더니 본앰브로스의 몸이 순식간에 타올랐다.
그 맹렬한 화염은 본앰브로스를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헉, 아버지. 방금 뭐였죠?”
“대마왕 본앰브로스였다.”
“네? 그자가 왜? 어쨌거나 대마왕이라고 으스대더니 아버지 앞에서는 별거 아니네요?”
브리카가 환호하며 말했지만, 바리스칸은 여전히 잿더미가 된 본앰브로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걸로 끝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어서였다.
‘약한 거로 봐서는 아마도 분신이겠지.’
아르칸의 예상대로 본앰브로스는 순식간에 다시 모습을 되찾더니 투덜거렸다.
“거 성질머리는 여전히 급하군.”
“감히 내 저택에 침입해 오다니, 선전포고냐?”
“그럴 리가. 아르칸에게 볼일이 있어서 온 거다.”
“……! 아르칸에게??”
바리스탄은 물론, 식당 안 모두의 시선이 아르칸에게 모였다.
“흐흐, 모르는 걸 보니 약속을 잘 지켰나 보군.”
본앰브로스는 그 반응을 보고 만족스러운 듯 실실 웃더니 바리스탄을 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자식 하나는 잘 뒀군. 부러워. 내 리치가 된 건 후회한 적이 없지만, 아르칸만 한 자식을 가지지 못한 것만은 아쉽군.”
“어머.”
뜬금없는 칭찬에 아네스가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바리스탄도 여전히 굳은 표정이었지만,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자식 칭찬에 기쁜 거였다.
아네스가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무슨 인연으로 아르칸을 아시는 건가요?”
“인연이라……. 아주 중요한 거래 상대다.”
그 말에 형제들은 충격을 받았다.
아니 저 망나니 마왕이 아버지와 동격인 대마왕과 거래를 한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다.
놀랄 만한 사실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최근 아르칸이 5백만 골드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저 녀석한테서 나온 거였나 보군.”
“5, 5백만 골드??”
“그렇게나 부자였어?”
두 형제는 화들짝 놀랐다.
5백만 골드의 거금은 단숨에 마왕성 계층을 늘리고도 남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사이 본앰브로스가 아르칸에게 주머니를 하나 던졌다.
“이번 의뢰다. 보수도 그 안에 있으니 챙겨 가도록.”
“알겠습니다.”
아르칸이 챙기면서 보니 아공간 주머니였다.
‘아공간 주머니를 이렇게 막 내주다니, 과연 대마왕.’
감탄하는데, 본앰브로스가 뜻밖에도 정중하게 사과해 왔다.
“나야 식사를 못 하는 몸이긴 하네만, 그대의 가족과 아르칸의 식사를 방해할 생각은 없었네. 사과의 뜻으로 그대에게 빚을 하나 진 거로 하겠네.”
그러더니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브리카가 황급히 물었다.
“아, 아버지. 본앰브로스 대마왕은 저희의 적인데 적과 거래해도 괜찮은 겁니까?”
“못난 녀석.”
바리스탄은 싸늘한 눈빛으로 브리카를 노려보더니 말했다.
“본앰브로스와는 사이가 나쁘지만, 마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사대마왕 중 하나. 거기다가 막대한 생산력으로 마계 전역에 식량을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느냐.”
“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괜한 트집 잡지 말거라. 그리고 아르칸도 어엿한 마왕이니 본앰브로스와 무슨 거래를 하는지도 캐묻지 말도록.”
“…….”
“왜 대답이 없나? 내 말이 말 같지 않나?”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브리카는 불만스러워하는 얼굴로 마지못해 대답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트집 잡던 게 실패했다.
반면에 바리스탄은 놀란 눈으로 다시 아르칸을 쳐다봤다.
“너는……. 이건……. 장한 정도가 아니구나. 오웬에게 전해 들었던 정도가 아니야.”
“과찬이십니다. 운이 좋았을 뿐이지요.”
아르칸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그렇게 일단락이 되나 싶었을 때, 아네스가 말했다.
“자, 불청객도 갔으니 내가 만든 요리를 내올게요. 다들 기대되죠?”
“기대되기는 한데…….”
바리스탄이 떨면서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아들들은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피할 방법을 찾았다.
“맞다. 아르칸을 위해서 만드셨다면서요. 아르칸이 다 먹는 게 좋겠네요.”
“저도 먹고 싶지만, 막냇동생에게 양보할게요.”
브리카와 길렉이 더듬거리면서 말하자 아네스가 미소를 지었다.
“어머, 형들이라고 양보하는 거니? 보기 좋구나.”
“동생을 챙기는 건 형뿐이지 않겠습니까?”
“브리카 형 말이 맞아요. 나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동생을 위하겠어요?”
“후후, 마음은 따뜻하지만, 그럴 필요 없단다. 그럴까 봐 잔뜩 만들어 뒀으니까. 우리 모두 다 먹고도 남을 거야.”
“허걱, 큰일이다.”
“어쩌지, 형?”
브리카와 길렉은 사색이 된 얼굴로 서로 걱정했다.
‘대체 어머니의 음식이 어떻길래 저러지?’
아르칸은 아버지와 형들이 벌벌 떠는 걸 보며 오히려 호기심이 생겼다.
‘뭐가 나오든 눈 딱 감고 먹지 뭐.’
상상 속의 어머니가 만든 음식은 극상이었다.
한편으로는 못 만든 음식을 잘 먹는 효자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아르칸은 어머니의 음식을 먹어 보는 게 더 중요했다.
비록 친어머니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아르칸이 마음속으로 다짐하는데 이내 아네스가 음식을 내왔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익숙한 향이 났다.
‘어, 이건…….’
매운 향을 느낀 건 아르칸만이 아닌 듯 다들 조용히 구시렁거렸다.
“크윽. 냄새만으로 맵군. 이런 걸 어떻게 먹으라고…….”
“오늘 죽었다.”
“자 자, 어서들 먹어. 엄마의 원기 회복 특제 요리란다.”
그러면서 아네스가 뚜껑을 열었다.
‘역시 이건 불닭이잖아.’
닭고기와 각종 야채가 볶아져 있는데, 무엇보다 그 양념이 아주 벌겠다.
냄새만으로도 보통 불닭이 아니라 캡사이신을 잔뜩 넣은 느낌을 줬다.
매운 것을 잘 먹는 한국인이라도 쉽게 손이 가기 어려워 보였다.
‘이런 거라면 아버지와 형들이 걱정할 만도 하지.’
그러나.
아르칸은 빙의 전부터 매운 요리를 아주 잘 먹었다. 맵긴 해도 그 자극적인 매운맛을 즐길 때는 순간적으로 근심 걱정이 사라졌으니까.
‘오히려 잘됐네.’
빙의하고서 김치는 포기했다고 하지만, 가끔 매운 음식이 당길 때가 있었다.
“자, 왜 보고만 있어? 어서들 들어.”
아네스의 재촉에도 형들은 음식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그때 아르칸이 나섰다.
“그럼 먼저 먹겠습니다.”
그러면서 포크로 양념이 비교적 적은 살코기를 하나 찍어 먹었다.
화악!
매운 기운이 올라왔지만, 살코기는 부드럽고 씹는 순간 육즙이 입 안 가득 퍼졌다.
“우와, 맛있어요.”
“어, 정말? 맛있다고?”
“아르칸, 괜찮아?”
브리카와 길렉이 놀라면서 걱정까지 해 줬다.
“확실히 맵기는 한데, 속이 확 풀리는 게 시원합니다.”
“시원하다고?”
바리스탄이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한 입 먹었다가 눈을 부릅뜨더니 물을 연신 들이켰다.
“많이 매우실 땐 우유를 마시면 좀 낫습니다.”
“우유?”
바리스탄은 곧바로 우유를 들이켜고는 평온을 되찾았다.
“저 녀석 예전에는 먹기 싫다고 했는데, 이제 막 먹는구나.”
“엄마랑 입맛이 같아서 그런가 봐.”
브리카와 길렉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아르칸이 먹는 걸 유심히 지켜봤다.
아르칸도 먹긴 먹되 확실히 매운지, 먹고 입을 열리고 손 부채질하면서 열을 식히기도 하고 땀도 흘렸다.
다만 아주 맛있게 먹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보며 브리카와 길렉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나도 한번 먹어 볼까? 어머니도 좋아하시는데.”
그 말대로 아네스는 아르칸이 거침없이 자신의 요리를 먹자 아주 기뻐하고 있었다.
그걸 보니 안 먹을 수가 없었다.
“나, 나도 먹을 거야.”
그렇게 브리카와 길렉도 아네스의 요리에 도전했다.
“어머 어머, 다들 너무 잘 먹네. 다음에 또 해 줄게.”
“크흠, 아무래도 한동안 바쁠 거 같군.”
지친 바리스탄의 대꾸에 브리카와 길렉은 물론, 아르칸마저 웃음을 참아야 했다.
그렇게 험난할 것 같았던 대마왕성에서의 저녁 식사는 뜻밖에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
무리하게 매운 음식을 먹은 브리카와 길렉의 엉덩이는 무사하지 못했지만.
* * *
식사 후.
더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지만, 다들 배가 아프다며 하나둘 자리를 비운 덕분에 아르칸도 쉬러 나올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서재로 돌아온 아르칸은 아까 본앰브로스에게 받은 아공간 주머니를 꺼냈다.
그 안에 손을 넣고 마원석을 하나하나 꺼내서 탁자 위에 올려놨다.
그렇게 다섯 개째 마원석을 꺼내고 여섯 개째를 꺼내려는데, 촉감이 반들반들한 게 마원석 같지가 않았다.
꺼내 보니 동그란 구슬처럼 가공된 마석이었다.
거기에는 본앰브로스가 남긴 작은 쪽지가 붙어 있었다.
-이건 내 보수다.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 있으면 해치운 뒤, 이곳에 가둬. 그러면 내가 아주 고통스럽게 만들어 주지.
‘일종의 고문 기구인 셈인가?’
보수를 요구할까 했는데, 알아서 챙겨 준 건 좋았지만 쓸 일이 있을까 싶었다.
‘근데 이게 정확히 뭐지?’
게티아로 감정해 보니, 영혼석이라고 알려 줬다.
“아, 이게 영혼석이구나.”
소설에서 종종 언급되긴 했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여기에 가두라고 했는데 어떻게 쓰는 거야?’
아르칸은 곧바로 게티아에 써진 설명서를 읽었다.
‘갈 곳 없는 영혼 주위에서 이걸 들고 있으면 영혼석이 알아서 끌어당긴다라…….’
해치운 시체 곁에 있으면 시체에서 분리된 영혼을 끌어당길 수 있어서 저런 사용법을 남긴 듯했다.
그때였다.
영혼석 안에 작은 블랙홀 같은 게 생기더니 소용돌이치면서 주위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영혼석이 작동된 거였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이 주위에 무슨 영혼이라도 있었나?”
당황한 아르칸은 주변을 살폈지만, 딱히 느껴지는 게 없었다.
현실과 달리 이세계의 유령과 같은 부정적인 존재는 일정 이상의 마력을 가진 존재라면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이제 3성급 마력을 가지게 된 아르칸도 마찬가지.
분명 아무것도 없는데 이러는 거였다.
아니, 아무것도 없지 않았다.
‘설마 날?’
그 순간 아르칸은 자신의 손끝이 빨려 들어가는 감각을 느꼈다.
하지만 마력을 끌어올려 억지로 버텼다.
그렇게 얼마나 버텼을까? 다행히도 영혼석의 흡수가 멈췄다.
‘휴, 이거 무슨 함정 카드도 아니고.’
아르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영혼석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어이, 내 말이 들려? 나 아르칸이야.
자신과 똑같은 목소리에 아르칸은 깜짝 놀랐다.
아르칸의 원래 의식이 영혼석에 들어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몸 안에 같이 있던 거였어?’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