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65
65화 또 다른 불청객 (2)
바리스탄 대마왕의 부인인 아네스의 생일 첫날 오전.
저택의 거대한 문이 열리자 손님들의 출입이 시작됐다.
손님들은 각자 들고 온 선물을 집사에게 맡기고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연회장에는 화려한 조명과 아름다운 장식은 물론, 수많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손님들을 위한 다양한 음식들이 가득했다.
한쪽에 마련된 무대에는 무희가 춤추고 음유시인들이 노래했다.
손님들은 거기에서 향연을 즐기며 서로 인사를 나눴다.
‘정말 많이도 왔네.’
아르칸은 손님들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손님만 벌써 백이 넘게 왔고, 앞으로 얼마나 더 올지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한숨이 나오는 건 형들과 함께 그 인파 속을 거닐며 인사하고 덕담을 주고받아야 한다는 거였다.
대부분은 아르칸의 환심을 사려 했고, 몇몇은 아르칸이 저게 그 유명한 망나니 마왕이라며 멀리서 조소했다.
‘뭐, 상관없지만.’
다만, 아무래도 아르칸 마왕성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다 보니 아르칸 마왕성의 변화에 대해서 아는 이는 없어 보였다.
게다가 다행히 지금 손님들의 주요 화제는 다른 사건이었다
요 며칠 사이에 대마왕 본앰브로스와 키클로테스가 차례로 저택에 나타났다.
그보다 큰 화제가 있을 리 없었다.
특히 키클로테스의 경우 상공을 날아다닌 데다, 공방을 주고받으면서 저택 지붕 일부가 부서지기도 해서 소문이 쫙 퍼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두 대마왕 다 아르칸과 관련 있다는 소식이 새어 나가진 않았다는 거였다.
‘그랬다가는 오늘 종일 손님들의 관심에 시달려 쓰러졌을 거야.’
마력 덕분에 체력이 높아졌다고 해도 정신력까지 늘어나지는 않은 듯했다.
지나가던 브리카와 길렉이 아르칸을 보고 다가왔다.
“어,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힘들면 조금 쉬어.”
“맞아. 원래 이런 거 잘 못 하잖아.”
어제 일로 아르칸과의 앙금이 사라진 형들이 다정하게 대해 주었다.
오늘도 형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진작 쓰러질지도 몰랐다.
“아직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좀 쉬러 가야겠다.”
“너는 인마! 저쪽에 새로 온 손님들한테 인사하러 가.”
길렉이 내빼려는 걸 브리카가 잡고 입구 쪽으로 떠밀었다.
그때 한 마왕이 의기양양한 걸음으로 다가와서 인사했다.
“마침 여기 다 모여 계셨군요. 인사드리러 안 헤매도 되어서 다행입니다.”
브리카는 그 마왕을 보고 알은체했다.
“콜킨! 자네 왔는가.”
“아, 이 녀석이 콜킨인가.”
길렉마저도 이름을 들어 봤는지 신기하게 쳐다봤다.
그러나 아르칸은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었다.
소설에서 본 적도 없고, 기억 속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아, 아르칸은 잘 모를 거야. 올해 마왕이 된 친구거든. 이제 한 3개월 됐나?”
“네, 정확하십니다.”
“갓 마왕이 됐는데 벌써 마왕성 랭킹에 오르다니 대단한 친구야.”
“오, 그래요?”
아르칸이 놀란 눈으로 콜킨을 바라봤다.
마왕이 되고도 마왕성 랭킹에 오르는 건 마신을 제외한 99명뿐.
대부분 마왕이 랭킹에 오르길 원하고, 랭킹에 있더라도 순위를 올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그만큼 치열하기에 평생 랭킹에 오르지 못하는 마왕도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마왕이 된 지 얼마 안 되어서 바로 랭킹에 오르다니, 보통이 아닌 건 확실하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저 자신 있는 모습도 이해가 갔다.
“아직 두 분에 비하면 멀었죠. 이제 겨우 100위일 뿐인데요.”
참고로 브리카는 89위, 길렉이 91위였다.
‘실력도 좋으면서 겸손한데?’
콜킨의 말에 아르칸은 호감을 느꼈지만, 이내 그 생각을 철회해야 했다.
“그보다 위대한 바리스타 님의 자식 중에 마왕성 랭커가 아닌 자가 있는 게 안타까운 일이지요.”
자신을 대놓고 비웃었기 때문이다.
‘아르칸이 비뚤어진 건 이런 녀석들의 책임도 조금이나마 있지.’
바리스탄 대마왕의 자식이라는 것만으로 주위에서 보는 시선이 다르다.
남들보다 못하면 비웃음을 사기 일쑤.
브리카와 길렉도 현재 랭커긴 하지만, 바리스탄의 자식치고는 아쉽다는 말이 나와 애쓰고 있다고 들었다.
“크흠.”
“뭐라고?”
한편 금방까지 칭찬하던 브리카와 길렉의 안색이 굳었다.
면전에서 동생을 조롱하다니 불쾌한 거였다. 그건 앙금이 사라지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형들이 화내려는 걸 아르칸이 막았다.
“괜찮습니다. 사실이니까요. 앞으로 제가 더 노력해야 할 일이지요.”
“크흠,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아르칸이라면 금방 랭킹에 오를 거야.”
“맞아, 신경 쓸 거 없어.”
브리카와 길렉이 진정하면서 위로했다.
아르칸은 콜킨이 시비를 거는데 응할 생각이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 화를 내는 건 저 녀석을 더 이롭게 할 뿐이니까.’
아르칸은 주위를 슬쩍 봤다.
손님들은 어느새 목소리를 낮추고 이쪽을 주목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화를 내면 바리스탄 대마왕의 자식들과 새로운 신성인 콜킨의 대치 구도가 된다.
바리스탄에게 충성스러운 마왕도 많지만, 대마왕의 자리를 노리는 마왕도 적지 않았다.
그런 마왕들은 콜킨에게 관심을 가지거나 더 키워 주기 위해 후원할지도 몰랐다.
실제로 콜킨은 그걸 노리고 일부러 시비 건 것이기도 했다.
오히려 아르칸이 겸손하게 나오자, 콜킨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젠장, 어떻게 된 거지? 망나니 마왕이라길래 버럭 화낼 줄 알았는데.’
화를 내면 이쪽이 더 큰 목소리로 맞받아치면서 난리를 피울 생각이었다. 어쩌면 정식으로 마왕전을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면 바리스탄의 눈치 볼 거 없이 아르칸을 정식으로 짓밟아 줄 작정이었다.
‘이대로 물러날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화를 낼까?’
콜킨이 고민하고 있을 때, 입구 근처의 손님들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어, 저건 데실론?”
“여기에는 무슨 일이지?”
“설마 최근에 마왕성 랭킹에 변동이 있나?”
콜킨의 귀가 쫑긋했다.
‘그레이드워커 데실론이 나타났다고?’
검은 로브로 몸을 감싸고 은색 가면을 쓴 데실론의 정체는 아무도 모르지만, 마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다.
손님들이 궁금해하는 것처럼 마왕성 랭킹에 변화가 생겼을 때 나타나 마왕에게 직접 통보하기 때문이다.
데실론의 통보가 이뤄져야 마왕성 랭킹의 변화가 적용되기에 아주 중요한 의식이었다.
당연히 콜킨도 최근에 처음 만났었다.
그런데 데실론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어? 저쪽으로 가잖아.”
“저기에 누가 있지? 바리스탄의 자식들과 콜킨인가.”
“설마 콜킨의 랭킹이 또 오른 거야?”
손님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이쪽으로 쏠렸다.
‘어, 정말 나한테 오나? 또 랭킹이 올랐나 보네.’
콜킨은 은근히 기대했다. 랭킹 안에 진입한 이후로도 마왕성의 마력을 많이 늘렸기 때문이다.
데실론은 자연스레 길을 내주는 인파를 헤치고 정말 콜킨 앞에 멈춰 서서 무감정한 목소리로 불렀다.
“마왕 콜킨.”
“훗. 설마 했는데 나를 찾아왔군. 또 랭킹이 올랐나?”
콜린이 한껏 잘난 체하며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왕성 랭킹이 하나 변하면 그 아래 랭킹도 모두 영향을 받는다.
그 모두에게 통보할 수 없으니 데실론이 통보하는 건 어디까지나 랭킹 변화가 큰 마왕에 한한다.
즉, 데실론이 통보한다는 것 자체가 랭킹이 올랐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어진 데실론의 말은 콜킨을 경악하게 했다.
“마왕 콜킨은 현 시간부로 마왕성 랭킹에서 제외된다.”
100위 밖으로 밀려났다는 의미였다.
“뭐라고? 말도 안 돼! 뭔가 잘못된 거야.”
놀란 콜린이 부정했지만, 데실론에게는 소용없었다.
오히려 다른 이의 비웃음을 샀다.
“랭킹에 들었으면 나갈 수도 있는 건데 왜 호들갑이람?”
“잘난 체하더니 꼴좋게 됐군.”
“콜킨보다 대단한 신인이 나타났나 보네. 빛나기도 전에 신성이 교체된 건가.”
콜킨도 주목받는 만큼 시기의 대상이기도 했다.
“젠장!”
결국 랭킹 밖으로 밀려난 걸 받아들인 콜킨은 주먹을 꽉 쥐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더니 아르칸을 노려보며 윽박질렀다.
“비웃지 마! 곧 다시 랭킹에 들 테니까.”
“나? 안 비웃었는데?”
아르칸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반문했다.
주위에 있던 손님들도 편을 들었다.
“맞아. 아까부터 옆에 있었는데 아무 소리도 안 했는데.”
“오히려 처음에 콜킨이 시비 걸었던 거 아닌가? 왜 뒤집어씌우지?”
“아무리 자격지심이 있다고 해도 저건 좀 추한데.”
“크윽.”
사실이라 대꾸할 말을 잃은 콜킨이 부들부들 떨 때, 데실론이 아르칸을 쳐다봤다.
콜킨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설마? 아니야?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금방처럼 비웃음당할까 두려웠던 콜킨은 속으로만 절규하며 자신의 짐작을 부정했지만, 그 예상은 사실이 됐다.
“마왕 아르칸, 마왕성 랭킹에 든 걸 축하한다. 그대의 랭킹은 100위다.”
콜킨이 빠진 자리에 아르칸이 들어간 거였다.
“이럴 수가…….”
좌절한 콜킨이 주저앉았다.
그걸 본 사람들이 더욱 고소한 듯 웃었다.
“크크, 망나니 마왕한테 뒤지다니, 살기 싫겠다.”
“이런 극적인 상황을 직접 보게 됐다니. 오늘 여기 온 보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보면 모르겠어? 다 연출된 거지. 부인의 생일날 골칫덩이였던 막내아들이 마왕성 랭킹에 들어간다. 이보다 축하받을 일이 어딨겠어? ”
“그럼 저 콜킨도?”
“콜킨 저 녀석은 잘난 체하다가 자업자득한 거고,”
“그나저나 저 망나니까지 랭킹에 들게 하다니 돈을 얼마나 쓴 걸까?”
다들 웅성거리면서 떠드는 사이에, 데실론은 돌아가고 브리카와 길렉이 다가왔다.
“아르칸, 축하한다. 돈으로 랭킹에 들었다니 하는 쓸데없는 소리는 신경 쓸 필요 없어. 우리도 늘 듣는 소리니까.”
“맞아. 우리 아빠가 얼마나 엄한데.”
“아, 감사합니다.”
아르칸은 진의를 떠나 가족이 자신의 편을 들어 준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그나저나 그 상태에서 벌써 마왕성 랭킹에 들다니, 이대로라면 금방 쫓아오겠는걸? 형으로서 부끄럽지 않으려면 더욱 노력해야겠어.”
“맞아, 나도 열심히 할 거야.”
“말은 그랬지만, 아르칸 덕분에 랭킹이 오를 거 같지만.”
“그건 무슨 소린가요?”
아르칸은 브리카의 말이 이해가 안 갔다.
‘딱히 도움 준 게 기억이 없는데 내 덕분이라니?’
“할포를 엄벌에 처하고 앞으로 도적들에게 당하지 않도록 마왕성의 병사들을 순찰을 돌릴 거라고 하니까, 영역 내 주민들이 세금을 더 내겠다는군. 지금까지는 그 도적 떼가 내게 올 세금을 뺏어 갔던 셈이야.”
“……아, 잘됐네요.”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잘 풀렸다니 천만다행이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기렉도 멋쩍어하면서 말했다.
“사실 나도 조만간 랭킹이 올라갈 거 같아. 그것도 아르칸 덕분이지.”
“어, 그렇습니까?”
“아르칸이 퇴치한 거대 거미의 사체를 보이는 대로 모두 마왕성에 옮겨서 흡수하고 있거든. 어찌나 많은지 옮기는 데 애를 먹을 정도였어.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돕겠다고 나서길래, 마을을 복구하는 데 도움을 주기로 했어.”
‘마을 주민들까지 도움을 받다니, 마무리까지 더할 나위 없이 잘 풀렸네.’
무엇보다 아르칸은 자신의 행동이 형들에게 도움이 됐다는 데 뿌듯함을 느꼈다.
그때 브리카가 주머니를 내밀었다.
“자, 받아. 보답으로 나중에 주려고 챙겨 놓은 건데 말 나온 김에 줘야겠다.”
“이게 뭔가요? 마석?”
주머니 안을 본 아르칸은 깜짝 놀랐다.
마석이 들어 있어서였다.
그간 감정한다고 여러 마석을 살펴본 덕분에 보기만 해도 구하기 힘든 5성급은 되는 마석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 네 덕분인데 이 정도 보상은 해야지. 마왕성 랭킹에 진입한 축하도 이걸로 대신해야겠다.”
“어? 사실 나도 준비했는데.”
길렉은 그렇게 말하면서 주머니를 꺼내 아르칸에게 건넸다. 거기에도 똑같은 5성급 정도로 되어 보이는 마석이 들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뭘 이 정도로.”
“그래, 별거 아니야.”
브리카와 길렉은 멋쩍어하면서 대꾸했다.
그러다가 브리카가 말했다.
“그보다 앞으로도 형제들끼리 힘을 합쳐서 서로 돕자고.”
“알겠습니다.”
아르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아주 기쁜 순간이면서도 한 가지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대체 왜 랭킹에 든 거지?’
랭킹에 든 건 좋은 소식이었지만, 석연치 않았다.
마왕성의 문을 닫고 버티는 데 드는 마력을 아끼기 위해 적어도 아르칸이 떠나 있는 동안 3계층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 때문에 마석이나 고블린이나 오크들의 시체를 흡수하는 것도 미뤄 뒀었는데, 랭킹에 들다니.
‘마왕성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게 틀림없어.’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