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68
68화 1 대 6의 상황에서 승리하는 법 (3)
솔릭은 처음 리카르 마왕성의 소식을 들었을 때, 믿기지 않았다.
분명 며칠 전까지는 멀쩡했는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마왕성이 무력화된단 말인가.
놀라서 리카르 마왕성에 달려간 솔릭은, 그 소식이 자신을 놀래 주려는 질 나쁜 농담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새카만 연기가 마왕성에서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사방에는 연기에 질식하거나 중독된 시신이 잔뜩 있었다.
그 검은 연기는 얼마나 지독한지, 다소 거리를 두고 있는데도 숨이 막히는 것만 같았다.
주위를 살펴보던 솔릭은 숨이 붙어 있는 마인족 하나를 발견하고는 다가갔다.
“어떻게 된 거냐?”
“쿨럭쿨럭,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어마어마한 연기가……. 쿨럭, 쿨럭.”
마인족은 말을 끝맺지 못하고 기침을 하더니 기절해 버렸다.
아직 숨이 가늘게 붙어 있긴 하지만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태로운 상태였다.
그때 한 무리의 마족과 마인족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리카르 마왕성에서 나온 듯 몸 여기저기에 거뭇거뭇한 재가 묻어 있었다.
선두에 선 마족은 리카르 휘하의 펠로스, 솔릭도 안면이 있었다.
“……솔릭 님.”
“펠로스,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냐? 너도 아는 거 없나?”
“베리나, 그 악독한 년이 쳐들어온 겁니다.”
“베리나가? 선전포고라도 있었나?”
솔릭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하지만 펠로스와 마인족들은 피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선전포고는 없었지만, 저희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저 지독한 연기를 피해 나왔더니, 뱀 수인족이 이쪽을 지켜보다가 가 버리는걸요. 베리나가 틀림없습니다!”
“그럴 수가……. 혹시 리카르는?”
“저희가 계속 지켜봤지만, 안 나오시는 걸로 봐서는…….”
펠로스가 말끝을 흐렸다.
그 말대로 지금까지 안 나왔다는 걸 보니, 안에서 질식사한 게 분명했다.
리카르가 이런 상황에서 버틸 만한 능력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솔릭은 문득 저번 회합을 떠올렸다.
자신이 독뱀 때문에 불평하자 비웃었던 베리나는, 리카르가 자신의 편을 들자 표정이 심상치 않았었다.
‘심지어 독뱀보다 더 굉장한 걸 준비한다고도 했었지.’
마왕성을 초토화한 이 무시무시한 공격이 그거였던 게 틀림없었다.
범인까지 확실한 이상, 솔릭이 할 건 한 가지였다.
“내 이 배신자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 지금 바로 베리나를 공격하러 간다!”
“저희도 따르겠습니다!”
솔릭의 외침에 펠로스와 마인족들이 힘차게 외쳤다.
솔릭은 자신의 마왕성으로 연락해 모든 전력을 데려오라고 명령을 내린 후, 자신은 그대로 베리나 마왕성으로 향했다.
이 사악한 배신자를 한시라도 빨리 응징하고 싶어서였다.
정작 리카르 마왕성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모르는 베리나는 갑작스레 솔릭과 그 부하들이 접근한다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나왔다.
“츠츳, 솔릭, 여긴 왜 온 거냐?”
“보면 모르냐?”
솔릭의 대꾸에 베리나가 뱀눈으로 솔릭과 그 병력을 훑었다.
“설마 우리 마왕성을 공격하러 온 거냐?”
“그렇다.”
“멍청한 건 알았지만, 선전포고도 없이 연합을 깨고 공격해 올 줄이야.”
“흥! 네가 먼저 연합을 깨고 리카르를 쳤잖아. 난 리카르의 복수를 하러 온 거다!”
“츠츳, 리카르의 복수? 대체 무슨 소리 하는 건지 모르겠군.”
“아무리 시치미 뗀다고 해도 날 속일 수는 없다. 긴말할 거 없이 복수를 하겠다!”
“이 자식이 정말! 저번에도 트집 잡더니, 그렇게 싸우고 싶다면 상대해 주지.”
분노에 휩싸인 솔릭은 베리나의 말을 듣지 않았고, 저번 회합에서 기분이 상했던 베리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솔릭과 베리나는 그대로 마왕성 밖에서 일전을 벌였다.
각자의 부하들도 마왕의 뜻에 따라 뒤엉켜 싸웠다.
솔릭은 자신의 강철 같은 주먹을 앞세워 베리나에게 덤볐다.
반면에 베리나는 그 공격을 유연하게 피하면서 독 가시를 날렸다.
“젠장, 도망치지 마라.”
솔릭은 이를 갈면서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둘렀다. 그 공격에서 빈틈을 찾은 베리나는 그대로 솔릭의 몸을 휘감았다.
꽈드득.
바위도 부수는 굉장한 악력이 솔릭의 육신에 가해졌다.
“크아아아악!”
솔릭이 괴로워하면서도 남은 한 손으로 베리나의 몸통을 가격했다.
베리나도 지지 않고 솔릭의 팔을 깨물고 독을 주입했다.
두 마왕이 끝장을 볼 것처럼 엎치락뒤치락하며 싸우는 동안, 주변에 있던 부하들도 마찬가지로 치열하게 싸웠다.
초반에는 전투태세를 갖추고 쳐들어왔던 솔릭의 부하들이 우세했지만.
외부의 소란을 듣고 뛰쳐나온 베리나의 부하들이 가세하자 전세가 역전됐다.
베리나 측이 승기를 점하나 싶을 때, 솔릭이 이리로 오기 전에 부른 부하들이 가세했다.
덕분에 다시 솔릭의 부하들이 약간 우세해졌으나, 마왕성 앞에서 싸우는 베리나의 부하들도 필사적으로 싸웠다.
거기다가 독뱀들이 돕고 나서자 솔릭 부하들의 피해도 점점 누적되어 갔다.
그렇게 한참 동안 격렬한 전면전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그만! 싸움을 멈춰라!”
중후한 외침과 함께, 바람이 양 군대를 순간적으로 밀어 냈다.
“크윽, 이 힘은?”
“츠츳, 알라스타르?”
솔릭과 베리나가 알라스타르의 등장에 멈칫했다.
부하들도 마찬가지. 그 틈에 마왕 나미라와 아그나르까지 등장했다.
“지금 이게 무슨 짓들이야?”
알라스타르가 화가 나서 외쳤다.
혈전을 벌이던 솔릭과 베리나도 상처투성이였지만, 부하들도 그사이 많이 죽거나 다쳐 있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겼다면 이토록 피해가 심하지 않았겠지만, 전세가 오락가락하다 보니 피해가 더 커진 거였다.
“츠츳. 억울하다. 솔릭이 미쳐서 우리 마왕성에 쳐들어온 거다.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는 없잖아.”
“끝까지 발뺌하는 거야? 네가 리카르의 마왕성을 공격하고, 리카르까지 죽였잖아! 저번 회합 때의 원한으로!”
베리나와 솔릭은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서로 간에 피해가 큰 와중이라 물러설 수도 없었다.
“리카르가 죽었다고? 이게 무슨 일이람?”
“나도 금방 보고받았어. 근데 베리나가 안 했으면 누가 공격했다는 거지?”
아그나르와 나미라도 난감한 얼굴이 됐다.
골치 아픈 상황에 이마를 짚던 알라스타르가 물었다.
“솔릭, 배리나가 공격했다고 한 증거가 있나?”
“제, 제가 봤습니다.”
마족 펠로스가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리카르 마왕성의 생존자였다. 살아나긴 했지만, 독 안개를 마신 덕분에 괴로워하다가 몸이 조금 회복되자마자 쫓아온 거였다.
“츠츳, 뭐라고? 거짓말하면 죽는다.”
“그래, 나도 죽여라! 리카르 님의 뒤를 따라가겠다.”
“츠츳. 돌겠네, 정말.”
베리나는 억울한 듯 가슴을 두드렸다.
문제는 죽음을 각오할 정도로 확고한 증인이 나왔다는 거였다.
“증인도 있는데 순순히 인정해.”
“츠츳, 내가 안 했다니까.”
한편 상황을 지켜보던 나미라와 아그나르가 입을 열었다.
“베리나가 성격이 좀 음침하긴 해도 이럴 애는 아니긴 해.”
“음습하게 괴롭히는 게 베리나 스타일이잖아? 너희도 화끈하게 날려 버리는 건 베리나답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아?”
“츠츳. 이것들이 지금 편드는 거야, 욕하는 거야?”
베리나는 투덜거리면서도 표정은 밝았다.
적어도 자신이 범인으로 몰려서 이 마왕 연합의 공적이 되는 것만은 피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릭의 얼굴은 구겨졌다.
“이것들이 같은 수인족 마왕이라고 편드는 거야?”
“말이 좀 심한데.”
“뭐라고 했어? 믿기 어려운 말을 들은 거 같은데?”
당연히 나미라와 아그나르는 곧바로 반발했다.
솔릭은 알라스타르를 쳐다보며 도움을 청했지만, 알라스타르는 그 시선을 피하고 말했다.
“둘 다 흥분한 거 같은데, 일단 물러나는 게 어떤가?”
“하지만 알라스타르…….”
솔릭은 물러나지 않으려고 했지만, 알라스타르가 조종하는 바람이 속삭이는 말에 입을 다물었다.
“저들이 딴마음을 먹은 게 사실이라면, 더더욱 물러나야 한다. 이대로 싸우면 불리하다. 리카르의 복수는커녕 우리마저 위험해진다.”
단순한 솔릭이라도 그 정도로 풀어서 이야기하자 이해했다.
솔릭 혼자서는 베리나도 이기지 못하는 상황. 아무리 알라스타르가 강하다고 해도 저 마왕 둘을 상대로는 이기기 힘들었다.
“알았어. 일단 돌아간다! 돌아가면 될 거 아니야!”
솔릭은 그렇게 외치며 몸을 돌렸다.
알라스타르는 혹시나 수인족 마왕들이 뒤를 노리는 걸 대비해 경계하면서 그 뒤를 따랐다.
다행히 수인족 마왕들은 자기네들끼리 이야기하느라 바쁜 듯, 쫓아오진 않았다.
* * *
수인족 마왕들이 안 보인 지도 오래됐지만, 알라스타르는 생각에 잠긴 듯 아무 말이 없었다.
솔릭이 답답함을 참다못해 물었다.
“네 말대로 물러서긴 했는데, 저것들한테 어떻게 복수할 거야?”
“생각 중이다. 당장에 마땅한 방법이 없다. 처음부터 날 찾아왔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면 큰 피해 없이 베리나를 잡을 수 있었을 거다.”
“아, 미안. 순간 열받아서……. 하긴, 바리스탄 대마왕님도 안 도와주시겠지? 수인족에게 뒤통수 맞았다니, 도리어 불호령이 떨어질 거야.”
뒤늦게 정신을 차린 솔릭이 눈치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알라스타르는 눈을 번쩍 떴다.
“훗. 네 덕분에 도움을 청할 만한 곳이 생각났다.”
“어, 어디?”
“아르칸이다. 바리스탄의 막내아들인 아르칸 마왕에게 도와달라고 해야겠다.”
“그 망나니 마왕에게?”
“요즘 한창 잘나가는 중이니 연합의 대장으로 모신다고 하면 좋다고 받아들일 거다.”
그 말에 솔릭이 미간을 찌푸렸다.
“잠깐, 그러면 그 망나니만 좋은 일 시켜 주는 거 아닌가?”
“우리가 전력을 다한다면 그렇겠지만, 후방에서 싸움을 종용하면 된다. 그러면서 그 전력을 소진시키고 우리의 적을 해치우면 되는 거지.”
알라스타르의 설명에 솔릭의 표정이 풀렸다.
“오, 괜찮은데?”
“그럼 바로 찾아가자. 저들이 다른 수를 쓰기 전에 빨리 움직여야 한다.”
알라스타르의 말에 솔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한편 아르칸은 자신의 작전대로 마왕 솔릭이 베리나와 전투 중이라는 말에 기뻐했다.
“다행이야. 혹시라도 진범을 찾는다고 하면 곤란할 뻔했는데.”
“어느 연합이듯 약한 고리가 있기 마련입니다. 아르칸 님의 작전이 그걸 잘 노린 덕분 아니겠습니까?”
오웬의 분석대로 아르칸이 노린 건 마왕 연합 내 파벌이 다르다는 거였다. 파벌 간 앙숙인 데다, 저 마왕들은 모두 이웃해 있었다.
서로 사이가 좋을 리가 없었다.
“고블린들의 보고에 따르면 전투가 아주 치열하다니, 두 마왕은 한동안 전력을 발휘하기 힘들 겁니다.”
“하지만 아직 남은 마왕은 셋이나 되지. 하나만 더 줄이면 좋겠는데.”
“균형을 맞추려면 이번에는 알라스타르가 수인족을 기습한 것처럼 꾸미실 겁니까?”
“아무래도 그게 좋겠지만, 어떻게 기습할지 궁리 중이야.”
피용은 이번 드래곤 브레스를 쓰면서 많이 무리한 데다, 용아병들의 마력 소모도 적지 않았다.
전투에 참여할 수는 있지만, 드래곤 브레스를 곧바로 날릴 수는 없었다.
‘그게 됐다면 드래곤 브레스를 연사하고 끝내 버렸겠지.’
한참 동안 고민하고 있을 때, 센시아가 손님이 찾아왔다고 알려 왔다.
그것도 마왕 알라스타르와 솔릭이었다.
그 말에 아르칸와 오웬은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설마 들킨 걸까요?”
“아니야, 들켰다면 다른 마왕까지 같이 왔을 테지. 일단 이야기를 들어 보자.”
아르칸은 오웬을 안심시킨 다음, 알라스타르와 솔릭을 맞이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르칸에게 연합의 대장 자리를 제안하는 게 아닌가?
들킨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자 안심한 아르칸은 비딱하게 앉은 채로 물었다.
“내게 왜 그런 제안을 하는 거지?”
“솔직히 말씀드리면 바리스탄 님의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뭐라?”
“믿을 수 없는 수인족 마왕들과 연합해 공격을 받았습니다. 바리스탄 님께서 화내도 이상하지 않지요.”
“그렇지. 분명 너희를 숯불덩이로 만들어 버리실 거다.”
그 말에 잠자코 듣고 있던 솔릭이 깜짝 놀랐다.
실제로 틀린 말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르칸 님께서 저희를 이끌고 그 수인족을 벌하면 아르칸 님은 전공을 챙기시고, 저희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대장으로 모실 테니 목숨만 살려 달라는 거군.”
“그렇습니다.”
아르칸은 그 말에 탐욕 어린 눈빛으로 씩 웃으며 대꾸했다.
“재밌군.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