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7
7화 거래와 협박 사이 (4)
세틱 상자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복귀한 드리켈라는 부하들에게 아르칸과 있었던 일을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물론, 3천 골드라는 거금을 주고 산 거라고 하진 않고, 아르칸을 윽박질러서 빼앗은 거라고 각색했다.
“하핫, 내가 호통치니까 눈물을 찔끔하더니 눈도 못 마주치더군!”
“우와! 그럼 이걸 그냥 받아 오셨단 말입니까?”
“역시 드리켈라 님, 대단하십니다! 지금 그 녀석은 저번처럼 질질 짜고 있겠군요!”
곧이곧대로 믿은 조스타와 메섹이 감탄했다.
그 반응에 만족한 드리켈라가 근엄하게 말했다.
“어떻게 가져왔는지보다 중요한 건 세틱이 예상보다 많이 남아 있었다는 거다. 이걸 병사들에게 모두 쓰면 치료하는 데 큰 도움이 되겠지.”
“정말입니까? 이 조스타, 진심으로 감동했습니다.”
“그게 다 얼마인데……. 그렇게까지 무리하실 필요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병사들을 치료한 뒤, 다시 원정을 재개할 생각이다. 이대로 돌아가는 건 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군.”
호기로운 말에 부하들은 감동했지만, 정작 드리켈라는 속앓이 중이었다.
‘그나저나 죄를 무마할 만한 성과를 얻으려면 어디로 원정을 가야 한단 말인가.’
* * *
드리켈라가 떠나자마자 오웬은 마왕실로 들어왔다.
“마왕님, 다시 원래대로 치우겠습니다.”
“어, 덕분에 살았어. 그보다 이거 받아.”
아르칸은 골드 지급 보증서를 오웬에게 건넸다.
이번 거래에 큰 기대가 없었던 오웬은 무심하게 골드 지급 보증서를 받아 들었다가 거기에 적힌 숫자를 보고는 눈이 커졌다.
“이, 이거……. 3천 골드라고 적혀 있는데, 맞습니까?”
“맞아.”
아르칸의 확인에도 오웬은 보증서를 뚫을 것처럼 다시 쳐다봤다.
몇 번을 다시 봐도 3천 골드라고 쓰여 있었다.
드리켈라가 세틱이 필요하니 2백 골드의 두 배는 받을 수 있나 싶었는데, 무려 15배로 판 거였다.
‘허허, 설마 마왕이 아니라, 상인 쪽으로 재능이 있으신 건가?’
“잘 보관해 둬.”
“……아, 알겠습니다.”
보증서를 소중히 품 안에 넣은 오웬은 마왕실을 나왔다
‘최근 달라진 모습도 그렇고. 이거 괜히 기대하게 되는군.’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
쿨럭!
피가 섞인 기침이 튀어나왔다.
오웬은 평소처럼 손수건을 꺼내 피를 닦으려다가 멈칫했다.
피가 먹물처럼 새까맣다.
마심장의 손상으로 유출된 마력이 신체를 공격하다 못해 피까지 오염시킨 거였다.
한마디로 오웬의 병증이 더욱 심각해졌다는 걸 의미했다.
‘이제 겨우 아르칸 님이 개심하셨는데, 아쉽게도 함께할 시간이 얼마 안 남았나 보군.’
오웬은 쓴웃음을 지으며 피를 닦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 * *
한편 마왕실 안에 있던 아르칸도 오웬의 기침 소리를 들었다.
‘역시 게티아에 나온 대로 오웬 상태가 많이 안 좋나 보네.’
아르칸은 무거운 마음으로 게티아를 펼쳤다.
[오웬] [마력 : *1성(5성)] [*주의 : 마심장이 손상되었습니다.] [마심장에 금이 가서 마력이 유출되고 있습니다. 원래 마력 등급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마심장을 복구해야 합니다.] [특성 : 검의 달인] [호감도 : 70]포그밀에게서 받은 술병을 오웬에게 건넬 때 게티아가 감정한 결과였다.
‘처음 봤을 때는 예상보다 호감도가 높아서 놀랐지.’
그저 대마왕 바리스탄의 명을 따르는 거라고 여겼는데 나름대로 애정이 있던 모양이었다.
그걸 알고 나니 조금 찔렸다.
자신이 대뜸 빙의해 아르칸의 몸을 차지해 버린 셈이었으니까.
‘빙의 안 됐더라도 얼마 안 지나 죽을 목숨이지만.’
어쨌든 회복만 하면 어지간한 하급 마왕에 필적하는 5성급 마력을 가진 전사.
그런 귀중한 인재를 그대로 죽게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든 치료할 작정이었다.
‘근데 아무리 소설 내용을 떠올려 봐도 당장 쓸 만한 게 떠오르지 않는단 말이야…….’
요 며칠간 소설 내용을 떠올리며 메모했다.
앞으로 쓸 만한 내용을 체크하며 기억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한글로 썼기에 유출될 걱정도 없었다. 다른 사람이 봐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을 테니까.
문제는 오웬의 병세를 완화할 방법만은 생각날 듯하면서도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는 거였다.
치료법은 몇 가지가 있긴 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아주 많이 필요하거나, 지금 능력으로는 접근하기 힘든 곳을 탐험해야 했다.
당장 아픈 오웬에게는 쓸모없는 방법들이었다.
소설에서는 용사에게 살해당했으니 용사가 오기 전까지는 버티겠지만, 그 후에 어찌 될지 아르칸도 몰랐다.
‘그러니 당장 쓸 수 있는 걸 생각해 내야 해.’
답답한 마음에 갈증을 느낀 아르칸은 주전자의 물을 잔에 따랐다.
빙의하자마자 목이 말라 주전자째로 들이켰다가 술을 마신 뒤로 생긴 습관이었다.
“분명 쓸 만한 게 있을 텐데……. 앗! 차가워!”
주전자를 기울인 채 정신을 팔고 있다가 잔의 물이 넘쳤다.
‘쯧, 어서 닦아야지. 어, 이건…….’
얼른 치우려던 아르칸은 이 난장판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금방까지 오웬의 치료 방법을 골몰해서인지, 엉망진창이 된 이 상황 자체가 오웬의 병세처럼 느껴져서였다.
원래 마심장에서 생성된 마력은 전신을 돈 뒤, 다시 마심장으로 흡수된다.
하지만 전투 중에 크게 손상된 오웬의 마심장은 마력을 만들어 내긴 하지만, 흡수하지는 못하는 상태.
그 탓에 체내의 마력이 가득 찬 잔에 물을 더 붓는 것처럼 넘치고 있었다.
그 부작용으로 피를 토하고,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신을 불에 지지고 갈기갈기 찢는 것처럼 고통스럽다던데. 인내심이 대단해.’
실제로 비슷한 증상을 보인 이는 대부분 얼마 못 버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라고 했다.
‘그렇다고 방금 주전자를 치운 것처럼 마력 생성을 멈출 수도 없단 말이지. 그렇다고 계속 나오는 물을 마셨다가는 배가 터질 테고……. 앗! 그러면 되겠는데?’
고민하던 아르칸의 머릿속에 뭔가가 번뜩였다.
* * *
“아르칸 님이 나를 찾으신다고?”
하인의 말에 오웬은 의아했지만,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신은 나중에 써야겠군.’
친우들에게 다행히도 문제가 해결됐으니 도움을 안 줘도 괜찮다고 서신을 보내려던 참이었다.
당장 급한 건 포그밀에게 줄 2천 골드였는데, 3천 골드나 되는 지급 보증서를 얻었으니 한숨 돌린 상황이었다.
그때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돈 쓸 데가 있다고 지급 보증서를 달라고 하시는 건 아니겠지?’
오웬은 움찔하면서 지급 보증서를 넣어 둔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이건 절대로 못 넘겨드린다.’
오웬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통제실로 향했다.
떨떠름한 표정이 티가 났는지 아르칸이 쓴웃음을 지었다.
“왜 그래? 설마 내가 지급 보증서 내놓으라고 할까 봐 그러는 거야?”
“크흠, 흠.”
“달라고 안 할 테니까, 와서 이것 좀 봐.”
“……네.”
골드 지급 보증서 이야기가 아니라니 다행이지만, 괜한 걱정을 했나 싶었다.
오웬은 멋쩍은 얼굴로 아르칸이 펼친 마도서를 쳐다봤다.
그런데 마도서 안에 아무것도 안 쓰여 있는 게 아닌가?
“아르칸 님, 뭘 보라는 겁니까?”
“음? 안 보여?”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백지로 보입니다만.”
“음, 계약자만 볼 수 있는가 보군. 여기에는 네 현재 상태가 쓰여 있다.”
“그렇습니까?”
오웬은 마도서를 유심히 쳐다봤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백지였다.
신경을 쓴 탓인지 갑자기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기침이 튀어나왔다.
“쿨럭! 쿨럭!”
피 기침이 튀는 걸 최대한 막으려다 보니 두 손이 피범벅이 됐다.
“……죄송합니다.”
“괜찮아. 이거로 어서 닦기나 해.”
“……!”
아르칸이 내민 손수건을 본 오웬의 눈이 커졌다.
‘저 아르칸 님이 나를 배려해 손수건을 주시다니!’
어찌나 감격스러운지 순간 고통도 잊을 정도였다. 곧이어 더욱 충격적인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네 마심장을 어떻게 고칠 방법이 없을까 하고 한동안 고민을 해 봤거든?”
‘내,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아르칸 님이 내 문제로 고민을 다 하실 줄이야……. 그럼 요 며칠간 뭔가 쓰고 계신 것도?’
오웬의 머릿속에 최근 뭔가 골똘히 고민하던 아르칸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토록 마음 씀씀이가 깊으신 분이었다니.’
“치료 방법은 진작에 찾았는데 그건 우리 형편이 이래서 당장에 쓸 수 없겠더라고.”
결국 방법이 없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지만, 오웬에게는 그 마음만으로 충분했다.
‘이 오웬,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전심전력으로 아르칸 님을 모시리라.’
그렇게 다짐하는데, 뜻밖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통증을 완화하는 방법을 찾았어.”
“……정말입니까?”
“정말이야. 지금 고통스러운 게 마심장에서 만들어진 마력이 흘러나온 것 때문이잖아. 내가 이렇게 잔이 넘치게 물을 부은 것처럼.”
아르칸은 자신의 앞에 물이 넘쳐흐른 테이블과 그 위의 잔을 가리켰다.
“넘치는 물을 빼듯 마력을 빼내면 아픈 게 훨씬 덜할 거야.”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만, 말씀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웬도 시도해 본 적이 있는 방법이었다.
문제는 억지로 마력을 움직이려 하면 안 그래도 불안정한 마심장에 무리가 가면서 극심한 고통이 발생한다는 거였다.
“마심장에 무리를 안 가는 방법을 하나 생각해 봤는데, 한번 시도해 볼래?”
“아르칸 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오웬은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의 아르칸이었다면 못 미더웠겠지만, 최근의 일들을 보면 확실히 달라졌다.
특히 바로 앞에 감격해서 마음속으로나마 충성을 맹세한 만큼 거절하기 싫었다.
설사 잘못되어 극한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더라도 말이다.
“특별히 할 건 없어. 가만히만 있으면 돼. 게티아, 오웬의 마력을 흡수해 봐.”
“게티아?”
“크릉!”
오웬이 돌아보는 순간, 게티아가 기다렸다는 듯이 가름끈으로 손을 휘감았다.
이내 가름끈이 꿀렁이며 마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오웬은 긴장하는 한편으로 내심 감탄했다.
‘허, 마도서로 마력을 흡수하는 방법을 생각하시다니 아르칸 님이 자신 있을 만도 하시군. 과연 효과가 있을까?’
“혹시라도 아프면 말해. 바로 중단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오웬은 대답하며 눈을 감았다.
마력 흐름을 잘 느끼기 위해서였는데, 몸 안의 마력을 감지하자마자 탄식이 나왔다.
‘내 마력이 이렇게 적을 줄이야…….’
전성기 때와 비교하면 너무 미미했다.
그런 와중에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작은데? 어? 그러고 보니…….’
전신을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이 어느새 사라진 상태였다.
갈피를 못 잡고 체내에서 맴돌던 마력을 마도서가 흡수하는 데 성공한 거였다.
“아르칸 님,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좋아, 1단계는 성공이네. 게티아, 마심장의 마력도 흡수해.”
“크르릉. 그릉.”
우우우웅.
게티아가 이제 마심장의 마력을 빼내 가기 시작한 건지, 마심장이 미세하게 떨렸다.
다행히 고통스럽진 않았다.
‘스스로 마력을 움직일 때보다 부담이 적군.’
잠시 후.
게티아가 물러나자 전신의 마력이 고갈되어 바닥을 친 게 느껴졌다.
탈력감이 느껴지긴 해도 불쾌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전력을 다해 싸운 뒤처럼 기분 좋은 개운함만이 가득했다.
‘이런 상쾌한 기분을 다시 느끼는 날이 오다니!’
당장 임시 조치라고 해도 꿈만 같은 상황이었다. 눈물이 맺힐 정도였다.
‘노인네가 주책맞게…….’
자책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동안 겪었던 고통스러운 나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처음 마심장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오웬은 절망했다.
바리스탄의 검이 싸우지 못하는 몸이 되다니.
‘쓸모없어졌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지.’
심지어 점점 병색이 심해지면서 최후가 얼마 안 남았다고 마음의 준비까지 했다.
그런데 지금 그 자신을 옭아매던 통증이 눈 녹듯 사라진 거다.
눈물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그래도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지.’
오웬은 얼른 품속의 손수건을 꺼내 피 대신 눈물을 닦으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아르칸 님께 이런 추한 꼴을 보이다니.”
“그런 소리 하지 말아. 아파서 고생하는데 속만 썩인 내가 더 미안하니까.”
“아르칸 님…….”
“당분간은 이걸로 좀 참고 버텨. 언젠가는 완벽히 고쳐 줄 테니까.”
“아닙니다. 이것만 해도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아니, 반드시 고쳐 줄 테니까. 그날만 기다리고 있어.”
아르칸의 진심을 느낀 오웬은 다시 새어 나오려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아르칸 님, 고맙습니다.”
* * *
다음 날.
포그밀이 아침 일찍부터 아르칸 마왕성을 찾았다.
한시라도 빨리 마정석을 가져가기 위해서였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