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72
72화 후손들 (1)
-죽겠다. 살려 줘.
전후 처리 중인 아르칸에게 용사가 보내온 메시지였다.
대마왕까지 해치울 수 있는 용사가 죽을 위기에 처했으니 살려 달라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아르칸은 일단 모두에게 아르칸 마왕성으로 가 있으라고 지시한 뒤, 심각한 표정으로 용사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잠시 후, 왜 저런 메시지를 보냈는지 알게 된 아르칸은 허탈했다.
“이거 또 호구 잡혔네.”
예전에 용사는 대귀족들이 벌이는 결투의 심판 역할을 하기 위해서 수도에 머물고 있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때가 언젠데 여태까지 잡혀 있다니…….’
심지어 어떻게 결투할지도 못 정하고 무작정 대기 중이라고 했다.
예전에 연락할 때도 심심했지만, 지금은 도저히 못 견딜 지경이랬다.
그냥 뛰쳐나오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랬다가는 전쟁이 일어난다는 게 아닌가.
‘대귀족끼리의 전쟁이라.’
확실히 이 세계를 평화롭게 만드는 게 목표인 용사로서는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근데 이거 뭔가 냄새가 나는데?’
이 시기에 소설 속 용사는 대마왕 바리스탄과 싸운 뒤로, 아직 마계에 있을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용사를 불러들였다니, 뭔가 변화가 있을 게 분명했다.
‘대체 뭐가 바뀌었지? 용사가 뭘 했지?’
짚이는 거라면, 아르칸의 부탁으로 마왕 둘을 한 번에 해치운 거밖에 없었다.
‘설마 마왕을 빨리 해치울까 봐 붙잡아 둔 건가?’
이곳의 귀족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바로 왕당파와 귀족파.
이 둘의 이해관계는 복잡해서 정치적인 문제로 용사의 발목을 몇 번이나 잡긴 했다.
말릴 수 없는 게, 용사의 속도를 조절하려는 건 왕당파나 귀족파나 매한가지라는 거였다.
‘대귀족 둘이서 그러는 거로 봐서는 귀족파에서 꾸민 짓 같은데…….’
아르칸은 자신의 의견을 용사에게 전하면서 쌩까고 나와도 된다고 했다.
놀랍게도 용사는 그런 낌새는 자신도 알고 있다고 했다.
‘하긴, 전시안이 있는데 모를 리가 없나.’
다만, 대귀족 나리께서는 용사를 자신의 의도대로 붙잡아 두기 위해 실제 전쟁을 불사한다고 했다.
‘쯧, 자기들 목숨을 걸고 싸우면 안 그럴 텐데.’
잠깐, 고민하던 아르칸은 씩 웃으며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구해 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구해 준다고?
-그래. 일주일 안에 구해 줄게. 자세한 건 그때 가면 알게 될 거야.
아르칸은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고는 세계수의 쌍잎을 품속에 넣었다.
‘그럼 수도로 갈 준비를 해야겠네.’
아르칸은 최대한 빨리 출발 준비를 했다.
오크 로드 나크룸은 물론, 쓰러트린 마왕들과 차례차례 계약을 맺고 마정석을 빼내 아르칸 마왕성에 흡수시켰다.
갈수록 마력이 많이 필요한지 마정석 여섯 개를 합쳤음에도 계층을 올리는 데 조금 모자랐다.
이후, 오웬에게 말해 혼자서 훌쩍 마왕성을 나왔다.
물론, 오웬에게는 수도로 간다고 하지 않고 오웬의 다친 마심장 대신 인공 마심장을 이식할 기술자를 데리고 올 거라고 했다.
오웬을 데리고 가서 바로 치료하고 싶었지만, 왕복으로 보름 이상은 걸릴 여행길이다 보니 오웬이 마왕성을 맡아 줘야 안심이 됐다.
반대로 오웬도 안심하고 아르칸을 혼자 보낸 건, 지금의 아르칸이라면 자신의 몸을 스스로 지킬 정도는 된다고 여겨서였다.
현재 아르칸은 할루시네이션으로 위장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피용과 용아병들을 아공간 주머니에서 언제든지 꺼낼 수 있었다.
그 정도 전력이면 랭킹에 들지 못하는 하급 마왕성은 아르칸 혼자서 초토화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이 정도면 인간계에서 나를 위협할 만한 적은 거의 없지.’
게다가 아르칸이 인간계로 넘어가기 위해 이용하는 건 험한 곳이라 오가는 이가 거의 없는 카퓨 산맥.
외곽에 인간의 마을이 하나 있긴 한데, 피난민이 모인 마을로 신경 안 써도 된다고 했다.
‘이번에야말로 무슨 일이 있겠어?’
가벼운 마음으로 카퓨 산맥을 넘는데, 놀랍게도 소란에 휘말렸다.
***
아르칸이 카퓨 산맥의 가장 험한 곳을 넘자, 저 멀리 엘프를 감금해 구출한다고 공격했던 토돌 백작의 성이 보였다.
‘엘프 자매들은 무사히 돌아갔겠지? 거기도 한번 들러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토돌 백작 성 쪽으로 내려오는데, 인간족 병사들이 다른 무리에게 무기를 겨누고 있는 게 아닌가?
병사들은 모두 여섯. 한쪽은 추레한 차림의 노인과 여자아이였다.
병사들이 무기로 위협하는 등 분위기가 험악한 게, 병사들이 저 노약자를 상대로 강도질하는 듯했다.
‘젠장, 아예 투명화하고 움직일 걸 그랬나?’
예전에 지나가던 새나 동물과 부딪힌 적이 있어서 뿔만 감춘 거였는데, 더욱 귀찮게 된 상황이었다.
‘원래 토돌 백작의 병사는 이쪽으로는 성벽에서 감시만 할 뿐, 순찰하진 않았을 텐데.’
“잠깐, 너는 또 뭐야?”
당연히 병사 하나가 아르칸을 보고는 소리쳤다.
“그냥 못 본 척하지? 안 그러면 후회할 텐데?”
“뭐라고? 이 자식이. 일루 와.”
병사가 화내면서 아르칸을 붙잡으려고 했다.
아르칸은 그 손을 붙잡아 꺾었다.
“으아악!”
병사가 비명을 질렀다.
“이크, 힘이 너무 셌나.”
아르칸은 병사를 놔줬지만, 병사는 팔이라도 빠진 듯 어깨를 붙잡고 쓰러졌다.
아르칸은 할루시네이션으로 뿔을 감춰서 평범한 인간으로 보였지만, 3성급 마력을 가진 마왕.
마력으로 강화된 신체는 영화 속 초인에 버금갔지만, 딱히 힘을 쓴 적이 없어 힘 조절에 실패한 거였다.
“어이, 괜찮아?”
“뭐야, 이 자식!”
“제압해. 아니, 해치워!”
병사들이 소리치면서 아르칸에게 덤볐다.
“어, 정말 덤비려고?”
아르칸은 쓰러져 있던 병사를 집어서 달려오는 병사들에게 던졌다.
“으악!”
“컥!”
“어이쿠.”
병사들 셋이 와르르 무너졌다.
“이거 힘쓰는 것도 나름 재밌는데?”
아르칸이 흥이 나려고 할 때쯤, 나머지 둘은 아르칸의 괴력에 놀라 도망쳤다.
“뭐야? 벌써 끝이야?”
아르칸은 혀를 차면서 아공간 주머니에서 저택 용아병들을 소환했다.
“병사들을 해치우고, 흔적이 안 남도록 정리해.”
“주인님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한 용아병이 대답하자마자 다른 용아병들이 먼저 움직였다.
둘은 도망치는 병사들을 해치운 뒤, 나머지 셋은 쓰러진 병사들을 해치웠다. 그런 다음 시체를 가지고 저 멀리 사라졌다.
“……!!”
한편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노인과 여자아이가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아르칸이 다가가자 정신을 차린 노인은 여자아이의 몸을 누르며 자신도 몸을 숙였다.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가, 감사합니다.”
노인은 추레한 행색과 달리 나름대로 품위 있는 모습이었다.
‘뭔가 사연이 있나?’
그때 몸을 일으킨 노인이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발다, 이쪽은 손녀딸인 레아라고 합니다. 여기 있다는 난민촌을 찾던 중에 병사들이 잡으려고 했습니다.”
“아, 그렇군.”
흉년과 영주의 착복으로 먹고살기 어려워진 영지민들이 마인족과 인간족 경계로 도망쳐 와 모여 산다고 듣긴 했다.
카퓨 산맥은 왕국은 물론이고, 영주의 손길조차 닿지 않는 곳이니까.
여기 있는 난민촌도 생긴 지는 얼마 안 된 데다 규모도 크진 않았다.
그 때문에 아르칸은 물론이고, 토돌 백작도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근데 병사들이 왜 여기까지 올라왔지? 너희를 쫓아온 건가?”
“그런 건 아닙니다. 저희가 듣기로는 얼마 전에 마왕군이 쳐들어와서 경계가 강화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나 때문이었나?’
그럴 만도 했다. 성을 함락시킬 생각은 없었지만, 아주 들쑤셔 놓았으니까.
‘아무래도 완전히 투명화한 채로 지나가는 게 낫겠네.’
그때 레아라는 여자아이가 불렀다.
“저, 저기.”
“응? 왜?”
“아저씨, 좀 도와주세요. 여기까지 오는 데 도와준 아저씨가 잡혔어요.”
정작 그 이야기를 들은 아르칸은 머리가 띵했다.
아직 창창한 자신에게 아저씨라고 부른 것 때문은 아니었다.
‘딱히 가진 것도 없어 보여 감사 인사도 말로만 받았는데, 여기서 부탁을 더 하다니.’
게다가 도적 떼를 상대하는 것도 아니니, 예전의 마정석처럼 뭔가 대단한 걸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시하고 가야겠군.’
그렇게 결정한 아르칸이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 발다가 나서서 손녀딸을 타일렀다.
“레아, 어찌 은인한테 그런 무리한 부탁을 할 수 있니.”
“아저씨도 저희 은인인데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잖아요. 무서운 병사들에게 잡혀갔으니 큰일 났을 거예요. 제발요, 할아버지! 은혜를 입고 모른 척하면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하긴, 네 말이 맞다.”
발다가 결심한 듯 아르칸의 앞에 엎드렸다.
“염치없지만, 제발 좀 구해 주십시오.”
‘둘이서 빈다고 들어줄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르칸이 무시하려고 할 때였다.
“그냥 도와달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오리할콘을 드리겠습니다.”
“하, 할아버지?”
이번에는 레아가 놀란 눈으로 발다를 쳐다봤다.
아르칸도 화들짝 놀랐다.
‘방금 오리할콘이라고 했나?’
오리할콘은 이 세계에 얼마 없다는 전설 속의 금속으로, 얼핏 보면 철과 다를 바 없지만 마력 반응성이 아주 뛰어나다.
실제로 용사가 쓰는 검도 오리할콘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했다.
“네, 오리할콘입니다.”
“어디서 나서 그걸 가지고 있어?”
“그게…….”
발다가 차분히 사정을 설명했다.
놀랍게도, 발다는 수백 년 전 마신 전쟁 때 활약했던 선대 용사의 후손이라고 했다.
선대 용사는 마신 전쟁 이후 사라졌지만, 그의 아이를 밴 여인이 있었다.
문제는 그 여인이 평민이라는 것.
선대 용사의 자식은 나름대로 대우를 받았지만, 용사와 달리 특출 난 점이 없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고 나서는 용사의 후손이라고 해도 별거 없이 평범한 영주민으로 살아온 거였다.
발다는 숲에서 일하던 아들 내외가 사고로 죽고, 세금을 못 낼 형편이 되자 손녀딸을 데리고 난민촌을 찾아 나섰다고 했다.
‘아무리 별 능력이 없다고 해도 세계를 위해 싸웠던 용사의 후손이 이런 꼴이 되다니.’
아르칸은 입맛이 씁쓸했다.
생각해 보면 원래 세계의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근데 오리할콘이라면 부르는 게 값일 텐데 왜 안 팔았어?”
“못 팝니다. 원래 왕국의 것이니 신전의 것이니 하면서 서로 빼앗아 가려고 했으니까요.”
원래 후손에게 남은 거라고는 용사였던 선조가 쓰던 검과 방패가 전부였는데, 빼앗길까 봐 쇳덩어리로 만들어 대대로 물려줬다고 했다.
‘그래서 용사의 검이나 방패를 준다는 게 아니라, 오리할콘을 준다고 했구나.’
하긴, 아무리 값있는 물건이라고 해도 그 값을 제대로 치를 상대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당한 거래도 힘이 있어야 가능하지, 자칫하다가는 물건만 빼앗기고 비명횡사할 수도 있었다.
“근데 나한테 구구절절 말해도 되겠어? 그 은인을 구하는 것보다 너희를 해치고 오리할콘을 뺏는 게 더 쉬운 일일 텐데.”
“앗.”
놀란 레아가 사색이 되어 할아버지의 옷자락을 잡았다.
병사를 잡아 던질 정도의 괴력을 가진 아르칸도 무서웠지만, 아르칸이 불러낸 괴상한 병사들도 공포스러웠기 때문이다.
문득 은인을 구해야겠다고 매달린 게 실수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러나 발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 그렇게 하실 거면 그런 말씀도 안 하셨겠죠.”
“그렇긴 하지.”
아르칸의 대답에 레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그 은인이라는 게 누구길래? 인상착의라도 말해 봐.”
“아. 도린이라는 드워프입니다.”
“도린이라…….”
이름은 기억에 없지만, 드워프라면 오리할콘을 직접 사용할 테고 신의도 있으니 적절한 상대긴 했다.
‘그보다 드워프라…… 이거 좋은 기회인데.’
오웬의 마심장을 인공 마심장으로 교체하기 위해서는 기술자인 드워프가 필요했다. 그 때문에 드워프 왕국에 들를 생각이었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원래라면 수도에서 일하는 드워프를 통할 생각이었는데.
우연찮게 드워프를 일찍 만나게 된 거였다.
거기까지 계산을 마친 아르칸은 흔쾌히 승낙했다.
“좋아. 그 드워프를 구해 주겠다.”
“감사합니다. 저희는 이 근처에 숨어 있겠습니다.”
“그래? 알았어.”
아르칸은 그러고 토돌 백작의 성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췄다.
“그나저나 내가 누군 줄 알고 그 귀한 오리할콘을 주겠다는 거야?”
“어. 새로 나타났다는 용사님 아니신가요?”
레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답했다.
‘마왕에게 용사라니 대체 뭘 보고?’
아르칸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아닌데.”
“네? 아니에요?”
아르칸의 부정에 레아는 깜짝 놀랐다.
그런데도 발다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사람 보는 눈이 있거든요. 좋은 사람이신 건 확신합니다.”
‘보는 눈은 없는 거 같은데……. 뭐, 굳이 밝힐 필요는 없겠지.’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