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73
73화 후손들 (2)
아르칸은 카퓨 산맥을 내려와 바로 성안으로 들어갔다.
발다의 말대로 경계가 강화됐는지 성문 앞에서부터 성 곳곳에 병사들이 잔뜩 보였다.
‘그래 봐야 소용없지만.’
아르칸은 할루시네이션으로 투명화한 상태로 성문을 통과했다.
‘어, 근데 원래 저런 깃발이었나?’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성벽에 걸린 깃발이 전과는 다른 색 같았다.
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영주가 바뀌었다는 게 아닌가?
원래 영주는 멜스크 후작에게 엘프를 못 바쳤다고 목이 날아간 거였다.
심지어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고 혹시 카퓨 산맥에 도망친 엘프가 있지 않을까 가끔 수색에 나선다고 했다.
‘진짜 독한 녀석이군.’
아르칸은 혀를 차면서 드워프를 어디 가뒀는지 찾아봤다.
알아보니 놀랍게도 저번에 엘프 리트를 잡아다 가둔 첨탑에다가 드워프를 가둬 놨다.
덕분에 찾기는 어렵지 않았으나,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었다.
‘드워프까지 함부로 잡아 가둬도 되나?’
마신 전쟁 이후, 세계수가 있던 터전이 마계에 속하게 되어 쇠락한 엘프였지만.
왕국 서쪽 칼더 산맥에 자리 잡은 드워프 왕국은 건재했다.
교류가 끊어진 것도 아니고, 수도에서 일하는 드워프 장인도 많았다.
‘이 일이 새어 나가면 난리가 날 텐데. 변방이라 신경 안 쓰나 보군. 하긴, 여긴 실제로 멜스크 후작의 관할이나 마찬가지지.’
토돌 백작까지 간단히 날려 버린 마당에 지금 영주에게 책임지게 하면 문젯거리라고도 하기 힘들어 보였다.
첨탑 입구를 보니 경비병이 문을 걸어 잠근 채 그 앞에 앉아서 지키고 있었다.
‘소란 안 일으키려면 위로 날아가야겠네.’
전처럼 정령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지만, 아르칸에게는 피용이 있었다.
아르칸은 아공간 주머니 속에서 피용을 불러냈다.
“저기 위로 올려 줘.”
“피. 피.”
대답한 피용은 곧바로 날아올랐다. 아르칸은 얼른 피용의 다리를 붙잡았다.
아직 체구는 아르칸이 더 큰 탓에 커다란 풍선에 매달린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피용은 아르칸의 무게를 못 느끼는 듯 가볍게 떠올랐다.
엘프 리트를 지키고 있을 때와는 달리 입구를 지키고 있는 병사는 없었다.
아르칸은 조악한 자물쇠를 힘으로 부수고 문을 열었다.
안에는 검붉은 색 머리칼과 수염을 가진 드워프가 등을 돌리고 누워 있었다.
“어이, 도린. 구하러 왔다.”
“술 생각 없다니까. 어? 구하러 왔다고? 그보다 내 이름은 어떻게 아는 거냐?”
놀란 도린이 뒤를 돌아봤다.
“네가 여기까지 데려온 발다와 레아 알지? 그 녀석들이 널 구하러 보냈다.”
“뭐? 정말?”
“그래.”
아르칸이 긍정하자 도린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그 녀석들은 딱히 돈 될 만한 게 없는데, 설마 너한테 오리할콘을 준다고 했나?”
“어.”
“젠장, 나한테도 오리할콘을 주기로 했는데.”
그 말에 아르칸도 황당했다.
은인으로 은인을 구하는 은인 돌려 막기에 이어서, 은인에게 줄 보답을 다른 은인에게 주는 보답 돌려 막기까지 했을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뭐, 그래도 최후에는 나한테 주기로 한 거니까. 내가 가지는 게 맞겠지?’
오리할콘은 전설급 회귀 아이템.
양보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보다 어서 탈출하자.”
“어, 그래야지.”
도린도 여기서 우물쭈물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르칸이 첨탑 밖으로 걸어가는 게 아닌가?
“뭐, 뭐 하는 거야? 마법?”
피용이 보이지 않는 도린으로서는 아르칸이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 해츨링이 날고 있으니까. 어서 와, 밑에는 경비병이 지키고 있어서 이리로 가야 해.”
“해츨링? 넌 대체 뭐 하는 녀석이지?”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어서 가자.”
“제기랄.”
도린은 이를 악물고 아르칸이 내민 손을 잡고 허공에 발을 내디뎠다.
당연히 발에 닿는 부분이 없어 버둥거렸지만. 다시 첨탑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는 않았다.
‘드워프치고는 제법 용감한데?’
대부분 드워프들은 키가 작은 탓에 높은 곳을 싫어한다. 덕분에 말을 타는 것도 질색할 정도였다.
피용은 도린이 추가로 매달렸음에도 별거 아니라는 듯 천천히 지면으로 내려왔다.
“고마워, 피용아. 바로 들어갈 거야?”
“피. 피.”
피용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아공간 주머니로 들어갔다.
아공간 주머니에 한 번 들어간 뒤로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 거기서 머물고 있었다.
종류는 다르지만, 드래곤 버네르가가 만든 곳이다 보니 편안한 건가?
심지어 아공간 주머니의 효능 덕분에 빠르게 성장하는 중이었다.
다만,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며 늘 곁에 있던 피용이 거기에만 틀어박혀 있자 새삼스레 섭섭했다.
그때 도린이 아르칸의 옷을 잡아끌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야, 저기 병사 온다.”
“괜찮아. 우리 모습은 안 보일 테니까.”
그 말대로 병사 둘은 잡담하면서 지나갔다.
아르칸과 도린이 옆에 있다는 건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대단하군. 마법사였나?”
“비슷한 거야. 그보다 어서 가자.”
아르칸은 도린과 함께 무사히 성을 빠져나왔다.
한쪽 구석에 있던 도린의 도끼와 짐도 모조리 챙겼다.
자신의 도끼를 되찾자 도린의 표정이 밝아졌다.
힘찬 걸음으로 카퓨 산맥을 올라가며 도린이 중얼거렸다.
“이걸 다시는 손에 못 쥐는 줄 알았지. 인간족이 감히 나를 가둬 둘 줄이야.”
“그거 알아? 거기에 엘프도 갇혀 있었다는 거?”
“뭐라고? 어쩐지 냄새가 지독하다 했다.”
엘프의 냄새가 지독하다니, 아르칸은 킁킁대는 도린의 모습이 황당했다.
‘서로 앙숙이라 그런가? 그보다 도린도 제법 세 보이는데?’
아까는 첨탑 안의 감옥에 갇혀 있어서 몰랐지만, 자신의 도끼를 든 도린의 기세는 범상치 않았다.
마왕급은 못 되지만, 3성급 마력을 가진 마족과는 충분히 견줄 만해 보였다.
“너 정도 되는 드워프가 병사들한테 잡히다니 이상한데?”
“모르나? 우리 드워프들은 인간들을 공격하면 안 돼. 그러면 큰일 난다. 인간과의 조약을 어긴 셈이 되거든.”
“조약?”
“아, 하긴 윗사람들 빼고는 모를 만도 하지. 아주 엿 같은 조약이 있어. 드워프는 허가 없이 왕국 밖을 못 나간다든가. 드워프 왕국 밖에서 기사나 병사를 공격하면 안 된다든가.”
“그것만 들어 봐도 불공정한 조약 같은데…….”
“그렇지? 성질 같아서는 엎어 버리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고.”
인간족과 드워프 간 맺었다는 조약은 정말 뜻밖의 이야기였다.
소설에서도 용사가 솔플하며 당연히 전대 용사와 달리 드워프 동료도 없기에 다뤄지지 않은 듯했다.
“근데 왕국 수도를 비롯해 곳곳에서 드워프들은 일하고 있지 않아?”
“아, 그거? 인간들 밑에서 일할 때는 괜찮아. 인간들 밑에서 일할 때는. ……라는 게 기가 막히지 않나?”
“듣고 보니 그러네. 그러면 너도 일하러 나오는 김에 발다와 레아를 만나게 된 거야?”
“나는…….”
도린이 뭐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저 앞에 발다와 레아가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아저씨,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레아가 달려와서 껴안자 도린이 엄지로 코를 훔치며 투덜댔다.
“아저씨 아니라니까. 그보다 너희도 무사해서 다행이다.”
“옆에 계신 은인 덕분입니다.”
발다의 말에 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이런 놀라운 녀석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혹시 네가 신용사인가?”
“신용사?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난 아니야.”
“유명한 이야기인데 모르나?”
“혹시 소문의 당사자시라 모르는 게 아닐까요?”
말하는 거로 봐서는 레아도 아는 듯했지만, 아르칸은 정말 처음 듣는 소리였다.
“아니라니까. 어쨌든 그 소리는 그만하고, 내 오리할콘이나 줘.”
“아, 맞다. 나한테 먼저 주기로 했잖아. 설마 나눠 가지라는 건 아니겠지?”
아르칸이 손을 내밀며 하는 말에 도린도 지지 않고 나섰다.
그러자 발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오리할콘은 두 개가 있으니까요.”
“두 개? 검과 방패가 따로 있는 건가.”
“아, 그렇겠군.”
아르칸과 도린은 안도했다. 그 상황이 재밌는지 레아가 웃음을 참았다.
멋쩍어할 때, 발다가 품에서 주먹만 한 쇳덩어리를 차례로 꺼내 아크란과 도린에게 건넸다.
“이게 오리할콘인가?”
“맞아. 확실해.”
도린은 곧바로 자신의 허리 쪽에 있는 작은 주머니에 오리할콘을 넣었다.
저것도 아공간 주머니 같았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발다의 말에 도린이 걱정했다.
“괜찮겠어?”
“네, 이제 병사들도 안 보이니까요.”
“하지만 몬스터나 마왕군이 나타날지도 모르잖아.”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저기 마중 나왔으니까요.”
그 말에 뒤를 보니 저 멀리서 이쪽을 쳐다보는 인간족이 하나 있었다. 손에는 활이 들려 있는 게 사냥꾼인 듯했다.
‘난민촌에서 온 건가?’
“그럼 안심이로군. 거기서도 잘살도록.”
“감사합니다. 도린 님께도 행운이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덕분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어요.”
“아저씨 아니라니까. 어쨌든 모험 내내 씩씩했으니 스스로 자랑스러워해도 돼.”
도린이 레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키가 비슷하다 보니, 조금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렇게 발다와 레아를 보낸 도린은 후련하다는 얼굴로 아르칸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까 구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못 했군. 고맙다.”
“말로만?”
“큭, 욕심 많은 녀석. 나를 구해 주는 대가로 오리할콘을 받았잖아.”
“하핫. 농담이야. 그보다 술 한잔 하는 게 어때? 여행길이라 맛 좋은 술을 많이 챙겼거든.”
이 세계에서도 드워프들은 술을 아주 밝혔다.
오웬에게 인공 마심장을 이식할 기술자를 데려오기 위해 드워프 왕국에 들를 예정이었던 만큼, 당연히 맛나고 값비싼 술을 잔뜩 챙겼다.
뜻밖인 건 평소라면 아르칸이 술을 가까이하는 것만으로도 걱정했을 오웬이 태연했다는 거였다.
‘그만큼 나를 믿게 됐다는 뜻이겠지.’
한편 아르칸의 권유에 도린이 정색하며 거절했다.
“괜찮네. 나는 술을 끊었거든.”
아르칸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드워프가 술을 끊다니. 보통 드워프가 아닌 건 확실했다.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군. 하지만 내 사정을 안다면 자네도 이해할 거야. 그러고 보니 자네 이름을 모르는군.”
통성명하려는 걸 보니 술 권유가 기분 나쁘거나 한 건 같지는 않았다.
“아르칸이야. 그보다 무슨 사정인지 말해 줄 수 있어?”
만약 도린 혼자 금주하게 된 거라면 모르겠지만, 드워프 왕국에서 금주가 유행이라도 하게 된 거라면 다른 준비를 해야 했다.
도린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아련한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봤다.
“조약에 관해서까지 이야기했는데, 인제 와서 더 숨길 것도 없지. 왕국을 부흥시킬 방법을 찾으러 모험에 나선 거다.”
“왕국을 부흥시킨다고? 네가 무슨 왕자라도 돼?”
“…….”
아르칸의 물음에 도린이 멋쩍어하며 침묵했다.
그 침묵은 긍정의 의미가 분명했다.
“뭐, 정말 왕자야?”
“어차피 왕자가 한둘도 아니고, 딱히 왕위를 물려받을 생각도 없으니까.”
도린이 변명하듯 말했다.
정작 아르칸이 놀란 건, 도린이 왕자라면 금방 헤어졌던 발다와 마찬가지로 용사와 함께 싸웠던 드워프 동료의 후손이라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솔플을 고집하는 용사와 달리 당시 전대 용사는 여러 동료가 있었는데, 그때 함께했던 드워프가 왕이 되었다고 알고 있었다.
‘어쩌면 저들을 도와준 게 용사의 후손이어서일지도 모르겠군.’
“어쨌든 오리할콘도 얻었겠다, 용사를 만나러 수도로 갈 생각이다. 마침 수도에 있다더군.”
“만나서 뭐 하게?”
“용사를 만나서 장비를 만들어 주려고. 원래 전대 용사의 장비는 모두 검과 방패와 갑옷. 그러나 검과 방패는 분실했고, 하는 수 없이 갑옷을 녹여 검을 만들었다고 들었다.”
용사가 방패는 둘째 치고 갑옷도 안 입고 검만 들고 다닌다고 했더니 그런 사연이 있었던 모양.
“그렇게 용사에게 도움이 되어 드워프 왕국의 입지를 넓힐 생각인가 보네.”
“그래. 용사에게 장비를 만들어 주고 동료로 받아 달라고 할 거다.”
“나쁘지 않은 전략이네. 용사가 동료를 안 만들려고 하는 것만 빼고는……”
“나도 소문은 들었다. 그거야 매력적인 동료가 나타나질 않아서 그런 거 아니겠나?”
자신은 매력적인 동료라는 건가?
자존감이 강한 녀석이었다.
“어쨌든 용사를 만나러 간다면 잘됐네. 나도 용사에게 가는 길이었거든. 용사가 도와달라고 해서 말이지.”
“뭐? 용사가 도와달라고 했다고?”
아르칸이 넌지시 던진 말에 예상대로 도린이 관심을 보였다.
‘이거 일이 쉽게 풀리겠는데?’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