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74
74화 마석열차를 타고 (1)
“어떻게 된 거냐? 용사랑 아는 사이냐?”
“잘 알지.”
소설을 읽은 덕분에 그간의 행적을 속속들이 알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연락도 주고받고 있었다.
‘심지어 목숨까지 위협받은 적도 있고…….’
당연히 그렇게 말할 수는 없기에 아르칸은 적당히 둘러댔다.
“여러모로 인연이 깊거든.”
“인연이라……. 어쨌든 내게 용사를 소개해 줄 수 있나? 아무래도 용사에게 물어보고 원하는 장비를 만들어 주는 게 좋겠지.”
“오리할콘으로 장비를 만들어 줘도 용사가 동료로 안 삼을지도 모르는데?”
“흠, 용사가 내 매력을 모른다면 하는 수 없지. 그래도 용사가 내가 만든 장비를 쓴다는 것만으로도 드워프 왕국의 입지가 나아질 거다.”
“그렇다면야. 근데 소개해 주면 나한테 뭐 해 줄 수 있어?”
“어, 그게…….”
아르칸이 요구를 해 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지 도린이 당황했다.
“설마, 목숨도 구해 준 은인한테, 아무것도 없이 그냥 부탁하려고 했어? 염치없이?”
“아, 아니야. 그럴 리가! 오, 옳지! 네가 받은 오리할콘으로 용사의 장비를 만들 때, 네 것도 같이 만들어 주겠다.”
“누굴 바보로 아나? 이건 어느 드워프한테 가져다줘도 신나서 만들어 줄 텐데? 내 말이 틀려?”
살면서 한 번도 보기 힘든 희귀 금속이니만큼, 오리할콘 한번 만져 보고 싶어 하는 드워프가 한둘이 아녔다.
“에잉, 그럼 네가 원하는 걸 말해.”
“브롬이라는 분한테 작업을 부탁하고 싶은데. 알아?”
“브롬? 알기는 아는데. 굳이? 괴팍한 양반인데……. 아, 아니야. 그 정도야 어렵지 않을 거야.”
도린은 탐탁지 않은 듯했다가 아르칸이 혹시 마음을 바꿀까 곧바로 된다고 했다.
하지만 아르칸의 요구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참고로 드워프 왕국에서 이 근방까지 와서 작업해야 하거든. 그 허가도 받아 줘.”
“허가가 쉽지 않을 텐데, 그 전에 그 괴팍한 양반이 여기까지 오려고 할까?”
“브롬을 설득하는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허가만 받아 주면 돼.”
“음, 좋아. 그 정도는 내가 어떻게 해 주지.”
도린의 말에 아르칸이 씩 웃었다.
“좋아, 그럼 출발하자고.”
그렇게 아르칸에게 드워프 동료가 생겼다.
‘이거 나한테 동료가 생길 게 아니라, 용사한테 생겨야 하는데…….’
아르칸은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
여행에 필요한 건 아르칸이 들고 있는 아공간 주머니에 모두 들어 있었다.
심지어 노숙하기 싫으면, 아공간 주머니 안에 있는 저택에 들어가서 쉬어도 된다.
하지만 아르칸은 초행길이니만큼 주변 풍광을 즐기면서 갈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도중에 꼭 이용해야 할 시설도 있고.’
물론 직접 이동한다고 해도 궁상떨 생각은 없었다.
아르칸은 성에서 가장 크고 튼튼한 마차를 샀다.
마차만 사는 걸 보고 상인이 물었다.
“정말 마부와 말은 필요 없으십니까?”
“어, 괜찮다. 저기 있으니까. 어이, 이 마차를 끌고 갈 거야.”
아르칸의 말에 마부와 말이 마차에 다가갔다.
그걸 본 상인이 깜짝 놀랐다.
마부는 둘째 치더라도, 말들이 손님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마차에 가서 섰기 때문이다.
사실 마부와 말은 모두 용아병이 할루시네이션으로 위장한 거였다.
‘마부는 그렇다 치고 용아병에게 말처럼 마차를 끌라고 하는 건 좀 그런데, 자기들이 좋다는데 어쩌겠어.’
용아병을 소환해 마부로 쓸 거라고 하니까, 다른 용아병들을 더 소환해 마차를 끄는 게 좋겠다고 먼저 제안해 왔다.
실제 말은 지치기에 휴식도 줘야 하는 데다, 먹는 것이나 관리에도 신경 써야 하니 용아병이 끄는 게 훨씬 낫다는 거였다.
틀린 말은 아니기에 아르칸도 용아병을 쓰기로 했다.
아공간 주머니에만 있던 용아병들은 바깥 구경할 기회만 있으면 이렇게 자처해서 나섰다.
마부에게 경험을 공유받아도 직접 체험하는 건 아무래도 다른 모양이었다.
놀라운 건 이런 경향은 버네르가의 둥지를 지키고 있던 용아병들도 마찬가지였다는 거였다.
아공간 주머니 속 생활이 익숙해지고 버네르가의 시신의 안전이 보장되자, 둥지 용아병들에게도 여유가 생겼다.
그 와중에 저택 용아병들과 의식을 공유한 덕분인지 바깥세상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기회가 되면 나오고 싶어 했다.
‘덕분에 전투도 사양하지 않을 테니 적극적으로 불러 달라고 했지.’
아쉽게도 충성심까지는 공유하지 않는지 신하가 되지는 않았다.
한편 아르칸이 커다란 마차를 끌고 나오는 걸 본 도린은 아주 기뻐했다.
말은 무서워도 못 타기에 내내 그 짧은 다리로 열심히 걸어 다녔기 때문이다.
“이런 큰 마차를 가져올 줄이야. 돈 좀 썼겠는데?”
“돈은 많으니까 경비 걱정은 안 해도 돼.”
“그런가? 이거 덕분에 아주 편하게 가겠구먼.”
도린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마음까지 그리 편하지는 않았다.
마차가 달려 몇몇 작은 마을을 지나가는데 하나같이 분위기가 어두웠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땀과 흙먼지를 뒤집어쓰면서 일하고 있었는데도, 하나같이 제대로 못 먹었는지 야위고 말라 있었다.
어린아이들까지 초점이 없는 눈으로 일을 거들고 있었다.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이들만이 멍한 얼굴로 나와 앉아 있었다.
바리스탄 대마왕성으로 가면서 들렀던, 거대 거미에 습격받던 마을의 주민들보다 우울한 분위기였다.
“이거 다들 먹고살기 힘든가 보네.”
아르칸이 그 광경을 보며 중얼거리자 도린이 설명해 줬다.
“대부분 영주가 세금을 늘리고 강제 노역까지 시키면서 엄청 착취당하는 중이라는구먼. 발다와 레아도 못 견디다가 난민촌으로 갈 결심을 했다고 들었네.”
의외였다. 인간계가 있는 남쪽 땅은 아주 비옥해 먹을 걱정은 없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인간족들은 욕심이 너무 많아. 너무 많아서 서로의 것을 어떻게든 빼앗아서 탐욕을 채우려고 하는 거지.”
“부정은 못 하겠네.”
그러고 작은 오솔길을 넘어가는데, 마차 앞에 한 무리의 인간족들이 가로막았다.
“주, 죽기 싫으면 가진 거 다 내놔!”
도적질하려는 거 같은데, 녹슬고 낡은 농기구를 내밀며 위협하는 게 애처로워 보였다.
아무래도 영주의 착취를 못 이겨 뛰쳐나온 탈주민 같았다.
“야, 무섭게 죽이긴 뭘 죽여.”
“무슨 소리야. 그래야 겁먹을 거 아니야?”
“게다가 다 뺏을 필요는 없어. 먹을 거 살 정도면 충분해.”
심지어 자기들끼리 다투기도 했다.
마부로 위장한 용아병이 물었다.
“주인님, 비키게 할까요?”
저들은 말을 달리기만 해도 혼비백산해서 비킬 것만 같았다.
“자, 잠깐만 기다려 봐!”
도린이 말리더니 주머니를 뒤적거려 금화를 꺼냈다. 그걸 본 아르칸이 도린의 금화를 낚아챘다.
“뭐 하는 거야?”
“보니까 먹고살기 힘들어서 저러는 거 같은데, 통행세 내는 셈치고 좀 쥐여 주게.”
“그래 봐야 뭐가 달라진다고.”
아르칸은 마차 문을 열고 내리면서 용아병들을 소환했다.
“어, 저건 뭐야? 소환수 같은 건가?”
“비슷해.”
난데없이 나타난 기괴한 병사들에게 포위되자, 탈주민들은 겁을 집어먹은 듯 들고 있던 농기구를 집어 던지고 엎드렸다.
“사, 살려 주십시오.”
“죽기 싫으면 가진 거 다 내놓으라며? 남을 죽일 각오를 했으면, 자기가 죽을 각오도 해야지?”
“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이가 배를 굶고 있어서 나무껍질을 삶아 먹는 것도 이제 한계입니다.”
정말 탈주민들 뒤에는 아이들이 서 있었는데, 나뭇가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삐쩍 말라 있었다.
그걸 보며 도린이 혀를 찼다.
“쯔쯧. 저런 딱한 일이……. 우리가 좀 도와줘도 될 거 같은데.”
아르칸은 그 말을 무시하며 탈주민들에게 말했다.
“여기서 도둑질할 바에는 차라리 카퓨 산맥으로 가라.”
“거긴 몬스터가 사는 곳이잖아요? 저희더러 몬스터의 밥이 되라는 소립니까?”
“아니, 거기에 난민촌이 있으니까. 거기서 개척하고 살라는 소리다.”
그렇게 말한 아르칸은 드워프에게서 뺏은 금화를 주민들의 앞에 던졌다.
“이거면 몸을 회복해서 거기까지 갈 여비로는 충분하겠지.”
“……!!”
주민들은 놀란 눈으로 바로 앞에 떨어진 금화와 아르칸을 번갈아 쳐다봤다.
다만, 주변의 기괴한 병사들이 무서워 차마 금화에 손을 대진 못했다.
어쩔 줄 모르는 탈주민들에게 아르칸이 다시 말했다.
“내 말을 무시해도 상관없다. 다만 돌아오는 길에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으면 모조리 죽이겠다.”
그렇게 말한 아르칸은 다시 마차 안에 타면서 말했다.
“출발하자.”
“알겠습니다.”
마부가 대답하기도 전에 말들은 탈주민을 피해 옆으로 걷더니 다시 마차를 끌었다.
평소 말이 할 만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탈주민들은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할지에 정신이 팔렸기 때문이다.
한참 뒤.
마차가 사라지고 난 뒤 제일 앞에서 아르칸을 위협했던 탈주민이 금화를 집어 들었다.
“일단 이거로 배나 채우자고.”
“그래, 애들부터 먹이는 게 우선이지.”
다들 동의하는지 몸을 일으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만, 아르칸이 지나간 방향으로 돌아가기 두려워 그대로 근처 마을로 향했다.
그때 금화를 집어 든 탈주민은 아르칸이 사라진 방향을 슬쩍 쳐다봤다.
‘난민촌이라……. 한번 알아봐야겠어.’
한편 마차 안에서는 도린이 투덜거렸다.
“뭐 하는가 했더니 남의 돈으로 생색을 다 내다니.”
“싫어?”
“아니, 잘했어.”
“그럼 됐지.”
아르칸은 턱을 괴고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평소라면 무시했겠지만, 마른 아이를 보니 차마 그냥 지나치진 못했다.
집에서 학대당해 아사 직전에 구조되어 시설에 온 친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뭐 적어도 내 돈 나간 것은 아니니.
아르칸이 그런 감상에 잠겨 있을 때, 도린은 그런 아르칸의 모습을 잠자코 바라봤다.
***
이후에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린 끝에 사흘 만에 왕국의 5대도시 중 하나인 헤이븐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린은 저 멀리 보이는 대도시를 보며 감탄했다.
“벌써 헤이븐에 도착하다니, 이 말 덕분이야. 쉬지 않고 달려도 괜찮다니 명마가 따로 없군.”
그 칭찬이 기뻤는지 말들이 투레질했다.
‘더 이상하게 생각할 법도 한데, 말을 안 타서 모르는 건가?’
“이대로라면 이틀 만에 수도에 도착할 거 같은데.”
“아니, 마차는 이제 안 쓸 거야.”
“왜?”
“기껏 수도권역에 왔으니까. 그거 타고 가야지.”
인간계의 수도권역이란, 왕국 셀레스티온의 수도, 셀레스티아를 중심으로 다섯 개의 대도시 인근까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굳이 수도권역을 구분하는 건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아르칸의 말에 도린이 기대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설마 마석열차를 타고 가자는 건가?”
아르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게도 이 세계에는 열차가 있다.
수도를 중심으로 사방에 있는 대도시까지 방사형으로 뻗어 나가는 선로가 있는데, 그 위만 오가는 열차였다.
수도권역을 구분하는 이유는 바로 열차 선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순간 기뻐했던 도린은 이내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그걸 타고 갈 돈이 없는데…….”
도린이 걱정하듯이, 이 세계의 열차는 그 이름처럼 증기기관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마석으로 움직였다.
아주 비싼 몸이라 대부분은 수도와 대도시 간의 물자를 이동하는 데 쓰였고, 일부 승객만이 비싼 요금을 내고 탔다.
평소라면 아무리 돈이 넘쳐 나는 아르칸도 굳이 탈 일은 없었지만, 이번에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
“걱정하지 마. 탑승료는 내가 내줄 테니까.”
“뭐, 정말인가?”
“그래.”
“고, 고맙네.”
도린은 감격한 눈이 됐다.
물론, 아르칸도 나름대로 계산이 있었다.
‘어차피 결과적으로 돈이 안 들 테니까. 상관없지.’
헤이븐에 도착한 아르칸은 곧바로 열차로 달려가는 도린을 붙잡았다.
“왜 붙잡나? 어서 마석열차 타러 가야지.”
“잠깐, 알아볼 게 있어.”
“아, 그런가? 그럼 알아보고 와라. 가서 구경하고 있겠다.”
도린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마석열차가 있는 역으로 달려갔다.
‘오늘 바로 출발 안 할지도 모르는데…….’
신나서 달려가는 도린의 뒷모습을 보며 아르칸이 쓴웃음을 짓고는 몸을 돌렸다.
그대로 인근의 신전에 들렀던 아르칸은 다시 역으로 돌아와 도린을 찾았다.
“어, 벌써 볼일이 끝났나?”
“아니, 하루 이틀은 더 걸릴 거 같네.”
“그런가. 그러면 난 여기서 좀 더 구경하겠네. 편하게 일 보게.”
도린은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열차에 완전 정신이 팔린 거였다.
***
이틀 뒤에 아르칸과 도린은 셀레스티아행 마석열차에 탔다.
‘자, 그럼 한바탕 소란을 피워 볼까?’
신기한 듯 주변을 살펴보는 도린과 달리, 아르칸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