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75
75화 마석열차를 타고 (2)
도린은 이틀간 역에 살면서 열차로부터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출발하는 날 다시 만났을 때는 열차 박사가 되어 있었다.
문제는 옆에서 열차에 대해 쉴 새 없이 떠들어 댄다는 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대 용사가 제안했다는 이 열차는 정말 혁신적이야. 말과 수레를 사용한 기존의 교통수단으로는 불가능한……. 거기다가 이 마석열차의 구조를 보면 아주 놀라운 역학적 특성을……. 게다가 객실은 편하지? 이건 사실……. 어쩌고저쩌고…….”
아르칸은 귀에서 피가 나올 것만 같았다.
‘그나마 다른 승객이랑 마주칠 일 없는 객실 형태라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항의받았을 거야.’
그렇게 한창 떠들던 도린이 대뜸 물었다.
“혹시 그거 알아? 이 위대한 발명품을 누가 만들었는지?”
“너희 할아버지가 만들었지.”
“어, 어떻게 알았나?”
소설을 읽어서 아는 거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이런 정교한 물건은 드워프가 아니면 누가 만들었겠어? 용사의 의견으로 만들었다고 했으니, 용사가 있을 때 당대 가장 뛰어난 드워프라면 용사와 함께했던 네 할아버지일 테니까, 네 할아버지가 만들었겠지.”
“마, 맞다. 우리 할아버지가 대단하긴 대단하시지.”
도린은 아르칸의 노골적인 칭찬에 멋쩍었는지 입을 닫고, 옆에 있던 두꺼운 마석열차 팸플릿을 읽기 시작했다.
아르칸의 시선도 팸플릿에 향했다.
거기에는 선대 용사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그나저나 증기기관차가 아니고 왜 마석열차지? 나도 대충 원리만 하는 정도지만, 그 원리를 알려 주면 여기 기술자들이 어떻게든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오히려 마석열차를 만드는 게 더 어렵게 느껴졌다.
‘여기에는 갑자기 사라졌다고 나오지만. 원래 세계로 돌아갔겠지?’
지금 용사도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하니까, 선대 용사도 그렇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었다.
다만, 오면서 마주친 용사의 후손 발다의 처지를 생각하면 후손이 있는지 몰랐던 모양이었다.
‘알았다면 뭐라도 해 놓고 갔겠지. 적어도 동료들에게 부탁이라도 해 놓든가.’
이번 용사는 솔플을 고집했지만, 선대 용사의 경우에는 동료가 여럿 있었다.
그중에서도 후대까지 손꼽히는 이들로는 도린의 할아버지인 드워프부터 해서 엘프, 전사, 성녀, 마법사까지.
‘일부러 이렇게 모집한 것처럼 정석적인 파티였지.’
아쉽게도 지금 용사는 혼자 다닌다고 설치는 바람에 원래 동료가 되었을 만한 캐릭터의 이름을 알 수 없었다.
‘기껏해야 성녀와 전사 정도인가…….’
한창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팸플릿을 다 읽었는지 도린이 말했다.
“슬슬 배가 고픈데, 뭔가 시켜 먹자.”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 둔 비상식 대신 열차에서 주문할 수 있는 요리를 먹자는 이야기였다.
“그래, 열차에서 먹는 식사도 특별하긴 하지.”
“그럼 직원 부른다?”
도린이 객실 구석에 있는 호출 끈을 잡아당기려고 할 때였다.
콰쾅!
폭발음과 함께 열차가 크게 흔들렸다.
아르칸과 도린은 균형을 잡아 간신히 넘어지지 않았지만, 내부의 장식과 물건들이 충격에 나뒹굴었다.
그 와중에 도린이 읽던 팸플릿도 엎어지면서 펼쳐졌다.
거기에는 간혹 열차 강도의 습격을 받으니 귀중품 등 개인 소지품 관리를 철저히 하고, 만약 습격을 받으면 객실의 문을 걸어 잠그라고 쓰여 있었다.
또 평상시에는 의심스러운 사람이나 상황을 발견하면 열차 직원에게 알려 달라고도 했다.
이미 그걸 한 번 읽은 도린은 그 페이지를 보자마자 소리쳤다.
“설마 우리 열차 강도를 당한 거야?”
“그렇지 않을까?”
아르칸은 애매하게 대답하면서 객실 문을 열었다.
“나가게? 팸플릿에는 객실 문을 잠그고 가만히 있으라는데.”
“어, 무슨 일인지 살펴보려고.”
“하긴, 가만히 있다가 이곳에 오는 강도들을 해치우기만 해도 되겠지만, 이 열차는 위험해. 고속으로 움직이는데 탈선이라도 하거나 폭발이라도 하면 나라도 무사하기 힘들지. 무슨 일인지 확인하고 조치하는 게 나아.”
“그렇지? 그럼 살펴보고 올게.”
“잠깐, 나도 같이 가. 이 열차를 구한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도린이 신나서 소리쳤다.
아르칸이 정의감에 움직이는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닌데.’
어차피 작전을 알려 줄 수 없으니 말리지 않고 객실 밖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검은 옷에 하얀 복면을 쓴 수상한 자들이 소리쳤다.
단검까지 들고 있는 거로 봐서는 침입자들이 분명했다.
“앗, 목격자다! 죽어라!”
“자기들 얼굴도 다 가려 놓고 목격자라니.”
아르칸이 지적했지만, 상대는 받아들이지 않고 덤볐다.
그걸 본 도린이 소리쳤다.
“이 자식이 어딜 감히 덤벼! 내 도끼로 대갈통을 부숴 주마! 앗! 내 도끼!”
도린은 그제야 자신의 도끼를 따로 맡겨 둔 걸 깨닫고는 당황했다.
대신 아르칸이 침입자에게 마탄을 날렸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장갑이다 보니 그대로 끼고 있던 참이었다.
“크악!”
마탄을 얻어맞은 침입자는 한 방에 쓰러졌다.
“오, 자네는 역시 마법사였군.”
“그보다 다른 녀석들을 잡아야지. 자, 이거 받아.”
“오! 이 자식들, 다 죽었다.”
도린은 아르칸이 내민 단검을 들고 침입자들에게 덤볐다.
아르칸은 그 틈에 마탄에 맞고 정신을 잃은 침입자를 잡고 뺨을 때렸다.
“야, 야. 일어나. 지금 자고 있을 때야?”
“크윽.”
침입자가 겨우 눈을 떴을 때, 그 짧은 시간에 다른 침입자를 모두 해치운 도린이 다가왔다.
“뭐 하는 녀석이래?”
“여신척결평화수호결사단이라는군. 이 열차에 탄 성녀 후보생을 납치하러 왔대.”
“어, 어떻게? 나는 아무 말도…….”
퍽!
아르칸은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침입자를 다시 기절시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린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방금 뭐라고 더 말하려고 한 거 아니야?”
“중요한 이야기는 다 들었으니까 됐어. 저 앞 칸에 성녀 후보생이 있다니까 구하러 가자. 납치하는 데 실패하면 이대로 열차를 폭발시킬 거라고 했어.”
“이 귀중한 열차를 폭발시킨다고? 이런 악독한 녀석들이 있나. 가만 안 두겠다.”
도린은 마석열차를 폭발시킨다는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듯 그대로 앞으로 달려갔다.
아르칸이 짧은 시간에 이 정보를 다 어디서 얻었는지는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듯했다.
사실 아르칸은 오늘 마석열차가 공격당하고, 성녀 후보생이 납치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소설에서도 성녀 후보생이 납치당한 다음에, 용사가 구하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도에는 용사의 동료로 정해진 성녀가 이미 존재했다.
그러나 용사가 동료로 맞아들이길 거부하자, 신전에서는 성녀가 마음에 안 들어서라고 판단한다.
그래서 새로운 성녀 후보생을 수도로 보냈으나, 그 와중에 여신척결평화수호결사단에 납치당한다.
이 긴 이름의 단체는 마신이 존재하는 건 여신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세계에서 마신과 마왕들이 사라지기 위해서는 먼저 여신, 그 여신의 종이라고 일컬어지는 성녀부터 제거해야 한다는 거였다.
‘대체 이런 조직은 왜 있나 싶지만, 원래 세계에도 황당한 테러 조직은 많으니까.’
어쨌든 소설에서는 용사가 마계에서 이 소식을 듣고 성녀 후보생을 구하러 돌아왔다.
‘지금은 수도에 붙잡혀 있지만, 이 일을 핑계로 나올 수 있겠지.’
아르칸이 용사를 구해 준다고 기다리라고 했던 것도 이 사건을 이용할 계획이었다.
사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용사가 나서서 구하겠지만.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이 지독한 녀석들은 용사가 구하러 오기 전에 성녀 후보생의 눈을 뽑고 고문까지 자행했기 때문이다.
용사는 자신 때문에 성녀 후보생이 처참한 일을 당해야 했다며 자책하면서 더욱 솔플을 고집하게 된다.
‘멘탈이 나가기 전에 미리 나서서 구해 둬야지.’
아르칸은 앞장서서 침입자들을 박살 내는 도린을 뒤따라갔다.
기관차 바로 뒤의 열차 쪽 침입자들은 이미 성녀 후보생을 붙잡은 채였다.
한편 다른 침입자를 해치우고 안으로 들어온 아르칸과 도린을 본 침입자들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너, 너희는 뭐냐?”
“훗, 우리 말인가?”
“홀드.”
펑! 펑! 퍼펑!
도린이 자기소개 하려는 순간, 아르칸은 성녀 후보생을 붙잡고 있던 침입자에게 홀드 마법을 걸고, 나머지에게는 마탄을 연속으로 날렸다.
순식간에 열차 안의 모든 침입자를 쓰러트린 거였다.
“미, 민망하군.”
“아니야. 덕분에 기습할 수 있었어.”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군. 앗!”
도린이 소리쳤다.
성녀 후보생이 쓰러지려 해서였다.
자신을 붙잡고 있던 침입자가 홀드 마법에 걸린 건 다행이었지만, 막상 침입자가 놓으니 다리에 힘이 풀려 서 있을 힘이 없었다.
아르칸이 얼른 다가가서 성녀 후보생이 바닥에 쓰러지기 전에 허리를 받쳐서 받았다.
“괜찮아?”
성녀 후보생은 큰 눈동자로 아르칸을 보며 물었다.
“……당신은 용사님?”
‘마왕한테 용사님이라니. 이거 성녀 후보생 실격이네. 그나저나 요즘 왜 나한테 용사라는 애들이 많지?’
아르칸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 그러신가요?”
성녀 후보생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큰 눈을 깜빡거리더니 눈을 감고 두 손을 빗장뼈 중앙에 모은 뒤 고개를 숙였다.
이 세계의 기도 자세였다.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신께서도 기뻐하시며 축복을 내려 주실 겁니다.”
“축복 안 해 줄 거 같은데…….”
“네? 여신님을 안 믿으시나요?”
‘여신은 믿지만, 마왕이라서 말이지.’
이렇게 대놓고 말하진 못했다.
성녀 후보생인데 마왕에게 구해진 걸 알면 기겁할지도 몰랐으니까.
무엇보다.
아르칸은 여기에 성녀 후보생을 구하러 온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신이야 믿지만, 일단 너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서 말이지.”
“네??”
“뭐라고?”
성녀 후보생은 물론, 도린도 화들짝 놀랐다.
심지어 침입자마저도 놀란 눈으로 아르칸을 쳐다보고 있었다.
“들었지? 그러니까 너희 은신처로 안내해.”
“……혹시 마신척결평화수호결사단인가?”
‘그건 또 뭐야?’
아르칸도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었지만, 기왕 오해하는 걸 적극적으로 이용해 먹기로 했다.
“맞다.”
그 이야기를 들은 도린이 화를 내며 덤볐다.
“어쩐지 수상하다고 했다. 뭔지 모르지만, 그런 불순한 단체에 몸을 담고 있었다니!”
아르칸은 도린이 접근하기 전에 마탄을 날려 쓰러트렸다.
그런 다음 성녀 후보생의 팔뚝을 붙잡으며 말했다.
“너는 얌전히 따라오고. 너는 안내해.”
동시에 침입자의 홀드 마법을 풀었다.
침입자가 도린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 드워프는 안 죽이나?”
‘칫, 눈치챘나.’
도린에게 날린 마탄은 출력을 약하게 한 것. 덕분에 정신만 잃었지, 죽지는 않았다.
“굳이 죽일 필요가 없으니까.”
“너희라면 그게 당연한가? 하긴, 마신과 싸우려면 드워프의 힘도 필요하지.”
다행히 멋대로 납득한 침입자는 창밖으로 신호탄을 쐈다.
그러자 마석열차가 급제동을 걸더니 이내 멈췄다.
먼저 열차에서 내린 침입자가 아르칸을 보며 말했다.
“따라와라.”
아르칸은 그대로 성녀 후보생을 데리고, 침입자를 뒤쫓았다.
잠시 후.
수도 외곽에 숨겨져 있던 여신척결평화수호결사단의 은신처에 도착한 아르칸은 용아병을 불러내 결사단을 모조리 쓰러트리고 은신처를 박살 냈다.
한편 아르칸을 데리고 왔던 침입자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물었다.
“마, 마신척결평화수호결사단이 아니었나?”
“난 그게 뭔지도 모르거든. 끌고 가.”
그렇게 대꾸한 아르칸은 용아병을 쳐다보며 지시한 뒤, 용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성녀 후보생을 납치해 뒀으니까. 네가 구하러 갈 거라고 말하고 여기로 와라. 그 정도면 충분한 핑곗거리가 될 거야.
-뭐, 뭐라고? 지금 무슨 소리야. 성녀 후보생을 납치했다니?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조금 있으면 거기까지 보고가 들어갈 테니까. 최대한 빨리 와.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