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76
76화 여신척결평화수호결사단 (1)
용사에게 메시지를 보낸 아르칸은 세계수의 쌍잎을 품에 넣었다.
‘근데 용사가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리려나?’
수도에 있던 용사가 대뜸 마석열차가 습격당해 성녀 후보생이 납치당했으니 구하러 가겠다고 나설 수는 없었다.
사고가 났다는 보고를 받고서야 움직이는 게 자연스러웠다.
문제는 보고받을 때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는 거였다.
‘그나저나 도린한테는 조금 미안하네.’
그래도 성녀 후보생을 납치하는 데 도린을 휘말리게 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납치될 때도 드워프 왕국의 왕자로서 외교적인 문제를 걱정해서 순순히 잡혔을 정도니까.
정말 목숨이 위험하지 않으면 밝히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통로에서 침입자들이랑 싸우는 모습을 본 승객이 있을 테니, 좋은 대우 받으면서 치료 중이겠지. 이따가 용사가 오면 함께 가서 소개해 주면 기분도 풀릴 거야.’
그때 용아병이 와서 보고했다.
“모두 가둬 뒀습니다.”
“그래, 잘했어.”
여신척결평화수호결사단의 은신처에는 모두 30여 명이나 있었지만, 대부분이 병사 수준으로 약해 아르칸이 소환한 용아병들의 상대가 안 됐다.
모두 붙잡아 좁은 방에 가둬 두라고 했다.
죽이는 게 편하긴 하지만, 그랬다가는 용사가 화낼까 봐 걱정됐다.
용사는 마왕이나 마인족을 해치는 데는 거리낌 없지만, 인간족을 죽이는 건 꺼렸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엘프가 토돌 백작의 성에 갇혔을 때도 못 구하러 간 거였다.
‘내가 보기에는 마인족이나 인간족이나 별로 달라 보이지도 않지만.’
계속 넋이 나가 있던 성녀 후보생이 이제 겨우 정신을 차렸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세요? 도대체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의문이 생길 만도 했다.
결사단에 납치당할 뻔한 상황에서 구해 주는 줄 알았더니 함께 납치하질 않나.
또 은신처에 와서는 같은 편이 아니라며 모조리 박살을 내놓았다.
아르칸이 생각해도 종잡을 수 없게 굴긴 했다.
“나? 누군지 몰라도 돼. 그보다 용사를 불렀으니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면 데리러 올 거야.”
“용사님을 불렀다고요? 설마 절 미끼로 쓴 건가요?”
“아, 아니야. 사건에 휘말린 김에 수도에 있던 용사를 불러내려고 한 것뿐이야. 너도 알지? 용사가 한동안 계속 귀족들한테 붙들려 있었잖아.”
아르칸이 기겁하며 설명했다.
오해를 받더라도 인질범이 되는 건 사양이다.
‘실제로는 사건에 휘말렸다기보다는 사건이 벌어지길 기다리고 있던 거였지만.’
아르칸은 결사단이 성녀 후보생을 노리는 걸 알고 있기에 요 며칠 신전을 들락거리며 성녀 후보생이 언제쯤 오는지 파악했었다.
그 정황은 성녀 후보생도 아는지 바로 납득했다.
“……네. 사제님들이 제가 가서 용사님의 동료가 되면, 귀족들도 용사님을 놓아줄 테니 설득하라고 하셨어요.”
“흠, 대귀족들이 겨우 그걸로 놔준다고?”
아르칸은 이해가 안 됐지만, 성녀 후보생도 들은 말일 뿐이라 딱히 딴죽을 걸진 않았다.
“그러면 용사님의 동료세요?”
“어…….”
성녀 후보생의 물음에 아르칸은 말문이 막혔다.
‘그러고 보니 무슨 관계지? 동료라고 하면 용사가 화낼 텐데…….’
대답할 말이 궁색했던 아르칸은 적당히 얼버무렸다.
“그냥 그렇고 그런 사이야.”
“……그렇고 그런 사이?”
성녀 후보생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걸 본 아르칸은 더 묻기 전에 화제를 돌렸다.
“난 아르칸이라고 하는데, 네 이름은?”
“아, 전 엘리시아라고 합니다.”
“엘리시아……였군.”
성녀 후보생은 소설에서는 용사에게 구조당하는 역할로 잠깐 등장한 다음, 그 뒤로 나오지 않아 이름을 몰랐다.
“근데 왜 여기로 온 건가요? 용사님을 불러내는 거면 다른 곳에 가서 불러내도 되지 않나요?”
그 물음에는 답할 수 있었다.
“이번 기회에 일망타진해야지 다음에 널 납치 못 할 테니까.”
“저, 저를 위해서요?”
‘그냥 내버려 뒀다가는 납치당해서 눈 뽑히고 고문당할 테니까. 덤으로 용사의 멘탈도 나가고.’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용사를 위해서라고 하기에는 낯간지럽기도 했다.
“뭐, 그렇긴 하지.”
그 말에 엘리시아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자신을 위해 나선 게 아무래도 감격스러운 모양이었다.
‘뭐, 저것도 내가 마왕인 걸 알면 돌변할 테지만.’
아르칸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다 문득 결사단이 왜 엘리시아를 납치해 고문했는지 의문이 생겼다.
‘그냥 마석열차에서 해치우는 게 가장 간편했을 텐데 말이지.’
옆방에 잡아 둔 결사단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지독한 놈들이라 어지간해서는 입을 열지 않을 게 분명한 데다, 용사가 오면 전시안을 통해 알아내면 됐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빨리 왔으면 좋겠네.’
***
한편 용사는 아르칸의 메시지를 받고도 믿기지 않았다.
“이 자식, 미친 거 아니야?”
다른 이도 아니고, 성녀 후보생을 납치해 뒀단다.
아무리 자신을 빼내기 위해서 한 짓이라도 너무 과격했다.
‘역시 마왕은 마왕인가? 당장 가서 버릇을 고쳐 놓아야…….’
분노한 용사가 나서려고 할 때, 시종이 불렀다.
“용사님, 회의 시간입니다.”
“……지금 나가겠습니다.”
용사는 그 말에 가슴이 답답해지는 걸 느끼며 간신히 대답했다.
어느새 화낼 기운도 잃어버렸다.
지금 시종이 말한 회의 안건은 왕국에서 손꼽히는 대귀족인 발토르 공작과 매그누스 공작가의 분쟁을 중재하는 것과 관련 있었다.
안 그래도 마계의 침공에 대비해야 하는 와중에 전쟁을 일으킨다는 두 대귀족이 용사는 못마땅했지만, 다행히 결투로 결정한다고 했다.
결투 방식은 왕국의 대형 결투장에서 진영별로 50명씩 붙어서 상대의 깃발을 쟁취하는 것.
실제 장비를 사용하기에 부상은 예사고 사망자도 다수 발생한다.
그래서 대형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용사에게 결투의 심판을 맡아 달라고 한 거였다.
다만 아직 결투 방식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서 연일 회의 중이었다.
용사는 결정되면 다시 불러 달라고 했지만, 심판이니 용사도 참석해야 한다고 했다.
용사는 전시안으로 이 모든 것이 자신을 붙들어 두려는 음모라는 걸 다 보고 있었다.
‘문제는 다 보고 있어 봐야 소용없다는 거지만.’
속마음을 들여다보니 결투가 무산되면 자신을 붙들어 두기 위해 정말 전쟁을 일으킬 판이였다.
오히려 속마음을 알기에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회의장에 들어서니 이미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왜 갑옷에 장식을 달자는 걸 반대하는 겁니까? 원래 매그누스 공작가의 병사들은 모두 갑옷에 장식을 단다고요.”
“발토르 공작가는 그런 허세를 부리지 않소. 게다가 병사가 몇인데 거기에 다 장식을 달라고? 돈이 썩어 넘치나 보군. 그냥 색깔 있는 천을 두르면 간단하지 않소?”
“그러면 다른 이들이 우리 결투를 너무 하찮게 보지 않겠소? 비용이 걱정되면 지휘하는 기사들에게만 고급스러운 장식을 답시다.”
“백병전이 벌어지면 아군 적군이 헷갈릴 테니 그걸 정지하려는 건데, 기사에게만 달아서 무엇 합니까!”
오늘은 결투 시 병사들의 구분을 어떻게 할지 토론하는 모양.
‘다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잘한단 말이지. 그보다 언제 보고가 들어오려나…….’
용사는 쓴웃음을 지으며 누군가 납치 소식을 보고하러 오기만 기다렸다.
아르칸의 말대로 그때 성녀 후보생을 구하러 가는 게 이 지옥에서 나갈 유일한 기회인 것만 같았다.
“용사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희 의견이 더 타당하지 않습니까?”
“타당은 무슨, 우리 의견이 합리적이지요.”
“…….”
귀족들이 물었지만, 용사는 아무런 대답을 못 했다.
제대로 듣고 있지 않아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확실히 말씀해 주십시오.”
“맞습니다. 어느 쪽 의견이 좋습니까?”
“글쎄요…….”
용사는 얼버무리면서 문 쪽을 힐끔거렸다.
‘대체 언제 납치됐다고 알려 주는 거야. 설마 아르칸 녀석이 거짓말한 건 아니겠지? 아니면 금방 납치했으니까 소식이 들어오는 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리려나? 대체 언제 오는 거야?’
평소와 달리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니 미련이 커졌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벌컥 열리며 기사 하나가 들어왔다.
“큰일 났습니다! 성녀 후보생이 납치됐답니다!”
‘드, 드디어!’
심각한 사건이었지만, 남모르게 기다리고 있던 용사는 속이 후련했다.
그런데 이어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그게 무슨 소린가? 성녀 후보생은 마석열차를 타고 무사히 출발했다고 들었다만, 시간상으로는 곧 도착할 텐데?”
“여신척살평화수호결사단이 마석열차를 습격해서 납치해 간 거라고 합니다.”
“뭐라고?”
용사도 깜짝 놀랐다.
그 이름도 긴 결사단은 국왕도 용사가 즉결심판 해도 좋다고 허가할 만큼 과격한 단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을 해칠 생각은 없었지만, 주의해야 하긴 했다.
‘근데 아르칸이 납치해 뒀다고 하지 않았나? 그들이랑 손을 잡았을 리는 없는데.’
용사가 여신에게 듣기로는, 그 결사단은 마신과 여신 모두 이 세계에 혼돈과 파괴를 가져온다고 싫어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잠재울 존재를 바란다고 들었다.
소환 직후는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했지만, 갈수록 힘이 세지니 마주치면 반드시 제거하라고 했다.
그 말인즉 아무리 강해도 용사인 자신이 제거할 수 있을 정도의 존재라는 거긴 했다.
‘어쨌든, 직접 가서 확인해야겠군.’
용사는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구하러 가겠습니다.”
그 말에 회의실에 있던 귀족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회의를 주도하던 귀족이 대표로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
용사가 회의실을 떠난 직후.
한창 떠들던 귀족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그사이 회의를 주도하던 귀족, 카즈그림 백작이 창밖을 보고 있다가 귀족들에게 알려 줬다.
“이제 갔습니다.”
“휴, 그래?”
“오늘은 이만 떠들어도 되겠군.”
이들은 모두 귀족파로, 용사가 파악한 대로 실제로 결투에는 관심이 없고 용사를 붙잡고 시간을 끄는 게 목적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성녀 때문이었다.
현재 용사가 동료로 데리고 다니진 않지만, 여신의 신탁을 전하는 성녀는 왕당파.
특별히 왕당파라고 밝히진 않았지만, 오랜 궁정 생활로 국왕과 왕비, 그 일족과 친했다.
그 때문에 귀족파인 다른 동료를 넣으려고 해도 용사가 한사코 거부했다.
심지어 이대로 용사가 마신을 토벌하는 데 성공하기라도 하면 국왕의 입지만 강해지는 아주 곤란한 상황.
그 때문에 신전에 힘을 써서 자신들의 입김이 미칠 수 있는 성녀 후보생을 데려오게 했다.
용사의 마음에 들어 동료가 되면 성녀를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였다.
하지만 뜻밖의 상황이 벌어진 거였다.
“그보다 마침 이곳에 오던 성녀 후보생이 납치당하다니, 혹시 발토르 공작님의 계획인가?”
그 말에 카즈그림 백작이 고개를 저었다.
“전혀 아닙니다. 아무리 그래도 결사대와 엮일 수는 없죠.”
“어쨌든 잘되었군.”
한 귀족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납치와 구원이라는 인연으로 둘이 엮이게 된 거였다.
구해진 성녀 후보생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은혜를 갚을 테니 동료로 삼아 달라고 적극적으로 나설 테고.
용사도 성녀 후보생이 결사단의 목표가 됐다는 걸 안 이상, 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게 분명했다.
카즈그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지만, 최대한 이용해야죠. 이제 다들 돌아가셔도 되겠습니다.”
“흐흐, 그래. 다들 돌아가서 한잔합시다. 근데 그 성녀 후보생 이름이 뭐였지?”
“지금 이름이 뭐가 중요합니까. 나중에 동료가 되면 알면 되죠.”
“하긴, 그건 그러네. 못해도 그 성녀만 몰아낼 수 있으면 좋겠단 말이지.”
카즈그림의 말에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을 때, 눈부시도록 새하얀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다.
그를 본 귀족들이 움찔했다. 방금까지 그녀에 대해서 이야기 나눴기 때문이었다.
바로 성녀 엘로디아였다.
그 와중에 카즈그림은 태연한 얼굴로 맞았다.
“아, 성녀님. 이곳에는 웬일입니까?”
“용사님이 여기 계시다고 해서 왔습니다. 성녀 후보생이 납치되었으니 구하러 가시라고요.”
“아,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이미 용사님이 구출하러 가셨습니다.”
“뭐라고요? 어딘지 알고요?”
엘로디아는 의아했다.
성녀 후보생이 납치되어 행방을 알 수 없다는 소식을 들은 엘로디아는 여신께 기도를 올려 신탁을 받아 오던 참이었다.
하지만 용사는 여신이 선택한 구원자라고 해도 신탁을 받지 못한다.
여신께서 내려 주신 전시안으로 많은 걸 볼 수 있지만, 일일이 전시안으로 확인해서 은신처를 찾으려면 한참이 걸릴 게 분명했다.
엘로디아가 당황하는 모습을 본 카즈그림이 고소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뭘 그리 걱정하십니까. 용사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죠.”
“……실례했습니다.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엘로디아는 불쾌했지만, 대응하지 않고 그대로 회의실을 나왔다.
그 시각.
밖으로 나오자마자 아르칸에게 정확한 위치를 들은 용사는 그야말로 날듯이 은신처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