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77
77화 여신척결평화수호결사단 (2)
성녀 후보생 엘리시아는 아르칸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저분의 정체는 대체 뭘까?’
이제는 대륙에서 보기 힘들다는 마법사 같기도 하면서도 힘도 아주 강했다.
거기다가 어디선가 신비로워 보이는 병사들을 불러내 수족으로 부리기까지 했다.
엘리시아는 문득 신전에까지 들려온 소문을 떠올렸다.
여신의 신탁을 받은 용사님과 다른, 마계와 인간계를 떠돌며 몬스터를 무찌르고 사람들을 돕는다고 알려진 용사였다.
용사는 특별한 이름이 없이 용사였기에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이렇게 불렀다.
‘혹시 신용사 님?’
용사님과 연락을 주고받는 걸 보니 그 심증은 더욱 굳어졌다.
‘근데 그렇고 그런 사이라니, 대체 무슨 사이일까?’
어릴 때부터 신전에서 자란 엘리시아는 속인들의 미묘한 말을 능숙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 말에 담긴 복잡하고 비밀스러운 감정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아니,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있을 뿐. 이미 엘리시아 스스로는 깨닫고 있었다.
‘연인 사이는 아니라도, 심상치 않은 관계임은 틀림없어.’
엘리시아는 아르칸을 처음 봤을 때를 떠올렸다.
잿빛 머리카락은 밝게 빛나는 달빛 아래에 있는 것처럼 찬란했고, 조각품처럼 완벽한 이목구비에 무채색의 피부도 여신의 축복을 받은 것처럼 빛을 발했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흑요석 같은 검은 눈동자에 온화한 미소가 걸린 그 신비로운 모습은 영락없이 엘리시아가 상상하던 용사였다.
용사가 아니라고 했을 때는 의아했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아르칸 님은 분명 여신의 가호를 받고 계실 거야!’
안 그래도 엘리시아는 용사의 동료가 되라는 데 부담감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현재 성녀님이 버젓이 생존해 계신데, 용사의 동료가 되라는 건 성녀님을 밀어내야 한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성녀님을 대신할 수 있겠어.’
……라고 생각했지만.
사제님들은 반드시 용사님의 동료가 되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안 그러면 기부금이 대폭 줄어들어서 곤란해진다는 거였다.
극심한 압박에 마음 놓고 한숨 쉬지도 못하고 속앓이만 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신용사 님을 만날 줄이야.’
어쩌면 이 만남이 여신의 계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설렜다.
‘저 용사님을 도와서 여신의 빛과 가르침을 따라 새로운 길을 나선다면……?’
그 상상만으로도 황홀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용사와 신용사 님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머리가 어지럽고 가슴이 갑갑했다.
이 느낌은 아무래도 속인들이 말하던 질투라는 감정 같았다.
‘여신님, 어찌 제게 이런 시련을…….’
엘리시아가 끙끙 앓으며 괴로워할 때였다.
훅.
뭔가가 불어오는 소리와 함께 방 안이 어두워졌다.
내부를 밝히는 등이 꺼진 건 아니었다.
등불이 주변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거였다. 심지어 어둡기만 할 뿐 사물의 형체는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
“뭐, 뭐지?”
아르칸도 난데없는 상황에 당황한 듯했다.
그때 엘리시아의 신성력이 한 줄기 사악한 기운을 감지했다.
“아, 아르칸 님. 저기.”
엘리시아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허공에는 사악한 기운이 회오리치고 있었다.
그 회오리는 점점 빨라지더니 중심에서부터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전체적으로 검은 불길에 뒤덮여 있었고, 머리에는 시커먼 뱀이 잔뜩 붙어 있었다.
그 가운데 타오르는 듯한 붉은빛이 번뜩이자, 사악한 기운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압도적인 존재감이었다.
“저, 저건 대체…….”
엘리시아의 공포에 질린 목소리에 사악하고 불길한 존재가 입을 열었다.
【나는 말고라스. 어둠…….】
“어둠과 파괴의 신이시다! 이 세계를 불안과 혼란으로 몰아넣은 마신과 여신을 내쫓고 균형을 가져다줄 상징이시지!”
어느새 나타난 결사대가 대신 외쳤다.
온통 피를 뒤집어쓰고 광기 어린 눈이 광신도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엘리시아는 그 모습에 이상함을 못 느낄 정도로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만큼 저 말고라스라는 악신의 힘이 너무나도 거대하고 강대하다는 걸 느껴서였다.
“대체 이런 존재를 어떻게 불러온 거죠?”
“후후, 우리를 한데 가둔 게 실수였다. 모두의 목숨을 제물로 바쳐 이 위대하신 존재를 불러들일 수 있었으니까.”
“아, 그런 거였나? 어쩐지.”
왠지 모르게 속이 시원하다는 투로 아르칸이 말했다.
이 상황에서 그게 중요한 건가?
엘리시아는 순간 의문을 느꼈으나 이내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악신 말고라스 머리에 있던 수많은 뱀 중 하나가 그대로 결사대를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버러지 주제에 내 말을 가로막다니.】
불쾌한 듯 내뱉은 악신 말고라스의 머리 뱀들이 일제히 엘리시아와 아르칸에게 향했다.
【하찮은 것들 때문에 내 힘을 모두 가지고 오진 못했군. 그래도 여기 썩 괜찮은 먹잇감이 있지 않은가. 너희는 내가 갈구하는 힘이 될 것이니.】
그러면서 머리 뱀 두 개가 엘리시아와 아르칸을 덮쳤다.
입이 찢어질 정도로 크게 벌린 머리 뱀 속의 끝없는 어둠을 본 엘리시아는 절망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불경한 생각을 한 탓에 신벌을 받는 거야.’
그때였다.
“엎드려!”
아르칸이 외치며 등을 눌러 몸을 굽혔다. 동시에 어마어마한 기운이 머리 위를 지나갔다.
펑!
***
폭발음이 들리면서 악신 말고라스의 몸에 커다란 구멍이 뚫었다.
“해치웠나? 아차, 이 말 하면 안 되는데.”
아르칸의 후회대로 말고라스의 몸은 천천히 회복되어 갔다.
【흐흐, 잔재주를 부리다니. 이 정도로 이 몸을 해치울 수 있을 거 같으냐?】
“젠장, 역시 이 정도로는 무린가.”
아르칸은 혀를 쳤다.
말고라스와 결사대가 떠드는 동안 준비한 최대 출력 마탄이 무위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화력 자체는 피용의 드래곤 브레스가 더 강력하겠지만, 이걸 실내에서 쓰긴 어려웠다.
‘그나저나 동료들을 제물로 저런 걸 소환하다니. 이런 광신도일 줄은 몰랐는데.’
소설 속 용사도 이들을 되도록 해치지 않고 사로잡는다.
나중에 성녀 후보생이 눈알이 뽑히고 고문당한 걸 알고 살의를 품지만.
자신의 뒤에 들이닥친 성기사들과 왕국의 기사들이 데려가 버린 다음이었다.
【얌전히 내게 먹히거라.】
“주인님! 위험합니다.”
“피. 피이.”
원래 모습을 회복한 말고라스가 다시 공격해 왔다.
수많은 뱀이 일제히 아르칸을 노리자, 아공간 주머니에서 소환해 둔 용아병들과 피용이 나서서 싸웠다.
다만, 머리 뱀의 공격을 간신히 저지할 뿐.
역공할 엄두를 못 냈다.
아니, 상대하는 것만으로 조금씩 타격을 입는지 상처가 쌓여 갔고.
그 방어를 뚫고 온 공격은 게티아가 간신히 막아 줬다.
‘이대로라면 지겠는데? 차라리 도망치는 게 나으려나? 그래도 용사가 오면 해볼 만한데 언제 올지 모르니…….’
아르칸이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피잇!”
“주인님.”
피용과 용아병이 동시에 외쳤다.
몰래 뒤로 숨어든 머리 뱀 하나가 아르칸의 등 뒤를 노렸기 때문이다.
츠츳!
머리 뱀이 혀를 날름거리며 아르칸의 목을 노리며 날았다.
그러나 아르칸의 몸을 감싼 황금빛에 닿자마자 녹아내렸다.
“음?”
아르칸이 돌아보니 엘리시아가 목걸이를 양손에 모아 쥐고 있었다.
신성력을 발휘한 거였다.
“아, 그렇지.”
엘리시아는 용사의 동료로 붙이려고 데려온 성녀 후보생. 어지간한 신관보다는 강력할 게 분명했다.
아르칸은 엘리시아를 보며 빙긋 웃었다.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다,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저도 구해 주셨잖아요.”
엘리시아가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대꾸했다.
“그래, 어쨌든 힘을 합쳐서 저걸 물리치자고.”
“네!”
엘리시아가 눈을 감고 신성력을 발휘하자 눈부신 황금빛이 말고라스에게 쏘아졌다.
그 공격을 본 아르칸은 아쉬움을 느꼈다.
‘아무래도 좀 약해 보이는데…….’
그러나.
【크아아아앗!】
정작 그 황금빛을 맞은 말고라스가 아주 괴로운 듯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어떻게 된 거지? 설마 상성 때문인가?’
신난 아르칸이 외쳤다.
“공격이 통하네! 조금만 더 힘내!”
“아, 알겠습니다.”
알레시아도 자신의 공격이 먹히는 걸 확인하고는 힘차게 대답했다. 그러자 황금빛이 더욱 맹렬해졌다.
그러나.
【크흐흐흐. 어디 계속해 보아라. 나는 어둠과 파괴의 신. 파괴로는 나를 해치울 수가 없으리니…….】
머리를 울리는 듯한 큰 소리.
말고라스의 말대로 신성력에 파괴된 그의 몸체는 다시 서서히 복구되고 있었다.
반면에 알레시아는 슬슬 힘에 부치는 듯, 빛이 현저히 약해졌다.
‘이런, 이대로라면 안 되겠는데. 무슨 약점이라도 없나?’
아르칸은 게티아를 펼쳤다.
게티아가 머리 뱀의 공격을 몇 번이나 막아 내며 접촉했으니, 감정이 되어 있을 게 분명했다.
‘감정이 된다면 말이지.’
[어둠과 파괴의 신 말고라스] [차원등급 : 2성] [소환율 : 7%] [특징 : 어둠이 존재하는 한, 완전히 파괴되지 않는다. 현재 차원문을 통해 어둠이 밀려오는 중이다.]다행히 감정이 됐다.
심지어 약점은 못 찾았지만, 어떻게 쓰러트리면 좋을지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말고라스의 뒤에 있는 소용돌이. 저게 차원문일 게 분명했다.
“엘리시아.”
“네?”
“저 뒤의 소용돌이를 공격할 수 있겠어?”
“네, 해 볼게요.”
엘리시아가 파리한 안색으로 대꾸하더니 다시 기도했다.
처음보다 훨씬 희미해진 빛이 소용돌이에 닿았지만,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죄, 죄송해요. 힘이 다 빠져서.”
【흐흐. 그 여신의 시녀가 지닌 전력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다.】
말고라스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다른 방법이…….”
아르칸이 힐끗 게티아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호감도 : 100] [대상을 신하로 임명할 수 있습니다.] [군주의 권능을 사용해 엘리시아를 신하로 임명하시겠습니까?]엘리시아를 신하로 삼을 수 있다고 뜬 거였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성녀 후보생을 신하로 삼으라고? 마왕이??’
되는 것도 놀라웠지만, 신하로 삼았다가는 그 후폭풍이 무서웠다.
용사의 동료로 삼기 위해 신전에서 보낸 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나?’
엘리시아도 지쳤을 뿐만 아니라, 피용과 용아병들도 타격을 많이 입은 상황.
당장 저 집요한 공격을 생각하면 도망치기에도 여의치 않았다.
게티아로 한 가지를 더 확인한 아르칸은 곧바로 엘리시아를 신하로 임명했다.
[엘리시아가 새로운 신하로 임명됐습니다.]정말 신하가 되어 버렸다.
‘기왕 저질러 버렸으니 끝장을 보자.’
아르칸은 최대한 마력을 끌어모아 마력 공유로 엘리시아에게 전달했다.
“아앗, 신성력이 차오르고 있어요! 여신께 기도도 안 했는데.”
“내가 보내는 거야.”
게티아에게 확인했다. 마력 공유로 엘리시아에게 마력을 전달하면 그 힘이 어떻게 되냐고.
다행히 신성력으로 변환된다고 했다.
한편 그 말에 엘리시아는 진정으로 놀라고 감격하는 중이었다. 몸속에 차오르는 신성력이 온몸을 따뜻하게 물들였기 때문이다.
마치 여신이 감싸 안은 것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이런 신성력을……. 역시 아르칸 님은 신용사. 그것도 여신의 가호를 받는 존재임이 틀림없어.’
【안 돼. 뭐 하는 짓이냐.】
곧바로 위기감을 느낀 말고라스가 전력을 다해 방해하려 했다.
아르칸의 신성력이 몸속에 가득 차는 이 충만감을 방해받기 싫었던 엘리시아는 무심히 손바닥을 내밀었다.
파앗.
동시에 강력한 황금빛이 말고라스를 옴짝달싹 못 하게 했다.
그때 아르칸의 목소리가 들렸다.
“집중해. 저 녀석을 물리치려면 소용돌이를 없애야 해.”
“네, 알겠어요.”
엘리시아는 아르칸의 당부대로 소용돌이에 황금빛을 내뿜었다. 그러자 소용돌이가 닫히기 시작했다.
그러자 말고라스의 힘이 반대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이럴 수가 어떻게 여기에 왔는데……. 아, 안 돼. 안 돼……. 내 반드시 복수…….】
말고라스는 저항하려 했지만, 결국에는 소용돌이에 완전히 빨려 들어갔다.
이 세계에서 쫓아내는 데 성공한 거였다.
소용돌이가 닫히면서 뭔가가 바닥에 떨어졌다.
‘저건 뭘까?’
엘리시아가 의문을 품는 순간, 몸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무한히 샘솟는 것 같던 신성력은 어느덧 사라지고, 어마어마한 탈력감이 밀려왔다.
“앗.”
결국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려는데, 누군가 한 손으로는 바닥을 집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엘리시아를 잡았다.
아르칸이 전처럼 쓰러질 뻔한 엘리시아를 부축한 거였다.
그 품 안에 기대어 이루 말할 수 없는 따스함을 느낀 엘리시아는 속으로 결심했다.
‘그래, 신전이 곤란해지든 말든, 사제님이 뭐라고 하든 말든. 아르칸 님을 나만의 용사로 모시며 함께하는 거야.’
그때였다.
쾅! 하고 벽이 박살 나면서 누군가 뛰어 들어왔다.
엘리시아는 또 뭔가 나타나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아르칸이 알은척했다.
“젠장, 용사가 올 줄 알았으면 조금만 기다릴 걸 그랬네.”
“기다려? 그보다 방금 뭐냐? 강대하고도 사악한 기운이 느껴져서 들어왔다.”
“아, 그거? 여기 광신도들이 악신을 소환해서 퇴치한 거야.”
‘저분이 용사…….’
엘리시아는 용사를 보며 스스로가 놀랐다.
여기까지 오면서 기대했던 것과 달리 전혀 가슴이 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내게는 나만의 용사님이 계시니까 그렇겠지.’
그 생각에 배시시 웃는데 용사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는 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
“악신을 해치우다니, 마왕 주제에 대단하군.”
‘뭐, 마왕이라고??’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