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8
8화 거래와 협박 사이 (5)
포그밀은 가마를 타고 가는 내내 웃음이 나왔다.
‘푸히힉, 이제 마정석은 내 거다.’
오웬이 돈을 지원해 달라며 보냈던 서신들은 손을 써서 모두 가로챘다.
그 후로도 누가 골드를 가지고 오는 게 아닌지 감시를 늦추지 않았는데 아무도 없었다.
마왕 드리켈라가 잠깐 들르긴 했지만, 골드를 가져가기는커녕 오히려 최근 아르칸이 사들인 세틱을 뺏어 왔다고 했다.
한마디로 자신에게 빌린 골드를 갚을 길이 전혀 없는 상황.
아르칸에게 남은 선택지는 자신에게 순순히 마정석을 양보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서 보니 아르칸의 얼굴에 여유가 가득한 게 아닌가?
‘설마 한 번만 봐달라고 하고 넘어갈 생각은 아니겠지?’
대마왕의 자식으로 망나니처럼 살았으니 그런 억지를 부리고도 남았다. 그러나 마정석이 걸려 있는 만큼 봐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오늘은 빈손으로 왔나?”
태연한 아르칸의 물음에 포그밀은 코웃음이 나왔다.
“푸히힉. 곧 마왕도 아니게 되실 텐데, 더 대접할 이유가 없지요. 그보다 어서 통제실로 안내나 해 주시죠.”
“안내? 내가 왜?”
“인제 와서 모르는 척하시기로 한 겁니까? 그래도 소용없습니다.”
포그밀은 곧바로 계약서를 꺼내 흔들었다.
“여기 이거 보이죠? 아르칸 님이 피로 서명한 계약서입니다. 계약을 어기면 목숨이 위험하실지도 모릅니다?”
“내 목숨이 왜 위험해? 계약서대로 빌린 돈 갚을 텐데.”
“그러니 순순히……. 네? 갚는다고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포그밀이 당황하는 걸 본 아르칸이 웃으며 손짓했다. 그러자 오웬이 기다렸다는 듯이 골드 지급 보증서를 내밀었다.
그걸 본 포그밀이 눈을 부릅떴다.
“골드 지급 보증서?? 대체 어떻게……!”
“무려 마왕 드리켈라 님이 보증하신 거야. 봐 봐. 저기 서명 보이지?”
그 말대로 드리켈라의 서명이 있었다.
혹시나 위조한 게 아닐까 살펴봤지만, 그마저도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드리켈라가 대체 왜 망나니한테 저만큼 큰돈을 준 거야!’
포그밀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드리켈라는 망나니짓을 하는 아르칸을 혐오했다.
실제로 일전에 자신의 진영에 찾아온 아르칸을 조롱했다는 사실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서로 사이가 좋을 리 없었다.
무엇보다 드리켈라는 현재 대패해서 돌아가는 처지. 돌려줄 여력도 없는 이 망나니 마왕에게 이런 거금을 빌려줄 여유도 이유도 없었다.
‘근데 대체 왜……. 앗, 설마 대마왕 바리스탄에게 잘 봐달라고 뇌물을 준 건가?’
그 가설은 즉시 부정했다.
안 그래도 바리스탄이 저 망나니를 못마땅해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괜히 엮였다가는 불똥만 떨어지리라는 걸 드리켈라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머리가 복잡한 와중에 아르칸이 되려 독촉하는 게 아닌가?
“뭐 해? 1천 골드 줘.”
“1천 골드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거기 지급 보증서에 적혀 있잖아. 3천 골드. 빚진 2천 골드 제하고 1천 골드 거슬러 줘야지.”
“아…….”
그러고 보니 정말 보증서에 3천 골드라고 쓰여 있었다.
“1천 골드 정도는 들고 다니지?”
“네…….”
‘예상대로군.’
궁지에 몰린 드리켈라를 잘 구슬리면 3천 골드가 아니라 4천, 5천 골드짜리를 받아 낼 수도 있었다.
문제는 드리켈라가 인간족과 내통했다는 게 드러나는 순간 지급 보증서가 휴지 조각이 되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교환하는 게 좋은데, 거슬러 줄 금액이 많으면 포그밀이 거스름돈이 없다고 거부할 수 있어 곤란했다.
그 때문에 포그밀이 바로 줄 수 있을 정도만 요구한 거였다.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거야? 어서 정산해 줘.”
아르칸의 채근에 포그밀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아르칸처럼 망나니 마왕이라면 모를까, 마왕의 지급 보증서를 거부하면 마계에서 장사를 그만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푸히이……. 상자를 가져와라.”
결국, 포그밀은 1천 골드를 담아 둔 상자를 아르칸에게 줬다.
“이야, 번쩍번쩍한 거 봐. 오웬, 이거 잘 챙겨 놔.”
희희낙락하는 아르칸의 모습을 보며 포그밀은 속으로 복수를 다짐했다.
‘이대로 넘어갈 줄 알았으면 오산이다. 내 본때를 보여 주마.’
사실 빌려줬다는 2천 골드도 사기도박으로 아르칸을 벗겨 먹은 것. 그것만 해도 크게 이득 본 거였지만, 손에 넣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여겼던 마정석이 날아갔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 없었다.
“푸힉.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어, 그래 잘 가.”
겨우 화를 삼키고 가마에 올라타는데, 등 뒤에서 들리는 쾌활한 아르칸의 목소리마저 얄미웠다.
그러고 마왕성 밖으로 나가는데, 부하가 멍청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
“그래도 다행히 2천 골드는 무사히 받았군요.”
결국, 화를 참지 못한 포그밀이 소리쳤다.
“푸익!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마정석을 못 얻었잖아!”
“죄, 죄송합니다. ……근데 마정석이 필요하시면 그냥 공격하면 되지 않습니까? 여기 병력도 거의 없는 거 같던데.”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그만해!”
저 망나니를 해치우는 건 일도 아니지만, 문제는 그 뒤처리였다.
‘아무리 망나니라 해도 대마왕의 자식이니까.’
다른 파벌의 마왕도 아닌, 일개 상인이 힘으로 빼앗았다가는 대마왕 바리스탄이 자신의 체면치레를 위해서라도 나서서 포그밀을 응징할지도 몰랐다.
그 때문에 아르칸 스스로 몰락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왕성을 드나들며 고가의 술을 진상해 환심을 산 뒤, 돈의 힘으로 마왕성을 부흥시키는 게 어떠냐고 바람을 넣었다.
아르칸이 관심을 가지자 돈을 쉽게 늘리는 방법이라며 도박에 끌어들인 다음, 적당히 몇 번 이기게 해 줬다.
그렇게 도박에 재능이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뒤, 크게 잃게 만들고 감당 못 할 돈을 빌리게 한 거였다.
몇 번의 패배 끝에 술에 잔뜩 취한 아르칸은 마정석을 넘긴다는 터무니없는 계약서에도 사인했다.
‘그때 다 끝난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럼 어떡하실 겁니까? 이대로 돌아가는 겁니까.”
“푸히힛. 그럴 리가. 몬스터 유도석을 준비하도록.”
“알겠습니다, 흐흐.”
포그밀의 의도를 파악한 부하가 사악한 웃음을 흘렸다.
몬스터 유도석은 이름 그대로 몬스터들을 불러모으는 마도구.
마왕성 문 앞에 두면 근방의 몬스터들이 마왕성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도록 만들 수 있었다.
‘이 근방의 몬스터라고 해 봐야 고블린이나 하급 마수가 전부겠지만, 그거면 이 마왕성을 공략하기에는 충분하지.’
지금 마왕성에는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이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아르칸만 해도 마왕이면서도 마력도 없고 권능도 없는 무능력 그 자체. 오웬도 과거 전사로서 유명했으나 크게 다친 후 힘을 잃었다.
원래 경비대장과 병사들도 탈주한 지 오래였다.
몬스터들이 마왕성을 박살 내 놓으면, 도와주러 온 척 마왕성에 쳐들어온 몬스터들을 물리치며 마정석을 차지한다는 게 포그밀의 잔적이었다.
‘그러면 바리스탄도 뭐라고 하기 힘들겠지.’
몬스터 유도석을 놓고 온 부하가 손바닥을 털며 말했다.
“이런 외딴곳에 드나드는 거 귀찮았는데, 진작 이럴 걸 그랬습니다.”
“아니, 가능하면 이러고 싶진 않았다. 마정석이 부서지면 복구하는 데 돈이 많이 들어가거든.”
“헉, 그렇습니까?”
“손상된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만 골드는 든다.”
“그, 그 정도라니…….”
어마어마한 금액에 부하가 깜짝 놀랐다.
‘하지만 내가 못 가지게 된 이상 앞뒤 가릴 상황이 아니지.’
포그밀은 사악한 웃음을 흘리며 마왕성 입구를 노려봤다.
이미 몬스터 유도석의 효과가 발휘되고 있는지 마왕성 주위로 고블린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 * *
포그밀이 돌아간 뒤, 아르칸과 오웬은 남은 1천 골드를 어떻게 쓸지 논의했다.
“아르칸 님, 빚부터 갚아야 합니다.”
“당장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바로 갚을 필요는 없지 않나?”
“빚부터. 갚아야. 합니다.”
또박또박 끊어 말하는 오웬의 얼굴은 여간 심각한 게 아니었다.
빚 때문에 마정석을 뺏길 뻔했으니 저럴 만도 했다.
‘하긴 당장에 쓸 곳도 마땅찮고, 돈 벌 방법은 여러 가지 있으니까.’
잠깐 계산해 본 아르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빚부터 갚자.”
“감사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오웬이 재빨리 달려가더니 금방 두꺼운 장부를 가지고 왔다.
“여기에 23골드. 이 상단에는 저번 달에 주기로 했는데 밀려 있었죠. 121골드. 그리고…….”
빚을 지거나 외상을 달아 둔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구경도 못 해 본 돈을 모두 갚아야 하다니.
아르칸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빚이 참 많기도 많네.”
‘그게 다 누가 빌려 쓴 건데?’
한참 읊으며 체크하던 오웬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눈빛으로 아르칸을 쳐다봤다.
그 시선에 아르칸은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것도 내 업보려니 해야지.’
잠시 후.
오웬이 장부를 덮으며 말했다.
“여기 쓰인 빚을 전부 갚으면 대략 2백 골드가 남는군요.”
“오, 생각보다 많이 남는데.”
“그보다 혹시 여기에 없는 제가 모르는 빚이 더 있습니까?”
“잠시만.”
아르칸은 잠시 손가락을 턱에 대고 기억을 되새겼다.
몰래 빌리려고 했지만, 이미 여기저기에 손을 벌린 덕에 불가능했다.
다른 속셈이 있는 포그밀만 2천 골드라는 거액을 빌려준 거였다. 그것도 도박 빚이었지만.
‘도박 빚이라는 걸 오웬이 알면 난리 나겠지.’
아르칸은 고개를 저었다.
“없어.”
“……정말입니까?”
“정말이야.”
“……알겠습니다. 믿겠습니다.”
말과 달리 오웬은 아직 완전히 의심을 거두지는 않는듯했다.
‘하긴, 이번에 돈을 구한 것도 오웬에게는 내가 벌일 일을 스스로 수습한 것에 불과하니 그럴 만도 하지.’
“이제 당분간은 운영비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군요.”
“아, 남은 골드로 마법서를 좀 샀으면 하는데.”
“마법서 말입니까?”
“게티아에게 먹일 거야. 언제까지 홀드만 쓸 수 없고, 마력도 늘릴 수 있으니까. 1써클 마법서라도 좋으니 구해 봐. 그 정도는 살 여유 있지?”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마왕성을 지킬 병력도 고용해야 합니다.”
오웬이 슬쩍 꺼낸 화제에 아르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아, 그 전에 경비대장부터 영입해야 하지 않겠어?”
“그건…….”
오웬이 뭐라 대답하려는 차에 마정석이 울기 시작했다.
우웅우웅우웅!
동시에 붉은빛이 빠른 속도로 점멸했다.
마왕성 입구가 공격당하고 있는 경고 신호였다.
얼른 마정석을 확인하니, 몬스터들이 공격하는 듯했다.
“이런, 몬스터가 우연히 근처를 지나가다 덤벼들었나 봅니다.”
원래 마정석의 몬스터 유도 기능을 작동시키지 않은 상태에서는 몬스터가 먼저 쳐들어오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없다.
다만, 입구가 드러난 반지하 마왕성이기에 오웬의 말처럼 우연히 몬스터가 지나갔을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과연 우연일까?’
아르칸은 짚이는 게 있었지만, 지금 그걸 확인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유는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일단 막으러 나가자.”
아르칸이 통제실을 나서려는데 오웬이 불렀다.
“아르칸 님.”
“음?”
“이번 몬스터들은 제가 상대해도 되겠습니까?”
오웬은 어느새 검까지 들고 있었다.
‘몸이 회복되니까 근질근질한가?’
아파서 골골대는 것보다 의욕이 넘치는 모습이 훨씬 보기 좋았다.
“그럼 오랜만에 실력이나 볼까?”
아르칸의 허락이 떨어지자 오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