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80
80화 아르칸의 정체 (3)
사실 길리암이 뜬금없이 연구실을 정리한 건, 그저 거액의 투자금에 신나서가 아니었다.
연구실을 정리하고 아르칸을 따라 마계로 넘어가기로 해서였다.
오리할콘을 본 길리암은 화들짝 놀랐지만, 그걸 보며 좋아하던 아르칸도 잠시 후 놀랄 일이 생겼다.
게티아가 갑자기 가름끈을 쭉 뻗더니 길리암을 감정한 거였다.
“왜 그래?”
“크릉.”
아르칸의 물음에 게티아가 어서 보라는 듯이 마도서를 펼쳐 내부를 보여 줬다.
[호감도 : 100] [대상을 신하로 임명할 수 있습니다.] [군주의 권능을 사용해 길리암을 신하로 임명하시겠습니까?]“어, 호감도가 100이 됐잖아. 이걸 감지하고 보여 준 거야?”
“크릉. 크릉.”
“호오, 제법인데?”
아르칸은 게티아를 쓰다듬으며 칭찬했다.
게티아가 호감도를 감지할 수 있으면 일일이 접촉해서 호감도를 측정할 필요가 없게 된 거였다.
‘능력은 감정해야겠지만, 이것만 해도 어디야. 근데 뭐 했다고 호감도가 100이 됐지? 설마 거액을 투자하고 오리할콘을 보여 준 게 그렇게 좋았나? 연구자의 마음은 잘 모르겠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왜 호감도가 100이 됐는지가 아니었다.
‘바로 신하로 임명해야지. 성녀 후보생도 신하로 만들었는데, 마법사도 못 만들 건 없지.’
게다가 마법사인 만큼, 제법 마력을 많이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르칸은 곧바로 길리암을 신하로 임명했다.
[길리암이 새로운 신하로 임명됐습니다.]그때 오리할콘에 정신이 팔려 있던 길리암이 움찔하더니 자신의 팔찌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음, 이상하네요.”
“왜, 왜?”
“제 마력에 변화가 생겼어요. 아주 미세하게 감소한 데다 계속해서 유출되는데, 그에 상응하는 이질적인 마력이 유입되고 있어요. 마치 뭔가가 연결된 거 같은…….”
길리암의 설명을 듣던 아르칸은 깜짝 놀랐다.
마력을 수준급으로 다루는 오웬도 못 느낀 걸 감지하다니.
“그런 거는 어떻게 아는 거야?”
“아, 여기 마력 감지기를 차고 있어서요.”
길리암이 신난 얼굴로 팔목을 보였다.
복잡한 문양이 새겨진 팔찌를 차고 있었다.
그 문양 중간에 들어온 빛은 계산기 액정의 작은 선들이 켜지거나 꺼지면서 숫자를 표현하는 것처럼 숫자와 글자를 표현하는 듯했다.
“연결된 마력은 임의로 차단도 안 되는 거 같은데 흥미롭네요. 어떻게 된 건지 좀 더 연구해 봐야겠어요. 아, 당연히 아르칸 님이 투자해 주신 마력 변환 방출 연구부터 해 놓고요.”
길리암이 오해하지 말라는 듯 손사래를 치는 걸 보고 아르칸은 입을 열었다.
“방금 건 연구할 필요 없어. 그건 내 권능의 효과니까.”
“권능이요? 권능이라면 설마…….”
“그래, 나는 마왕이다.”
아르칸은 환영 마법 할루시네이션을 해제하고 본모습을 드러냈다. 그래 봐야 바뀌는 건 머리에 뿔이 생겨나는 것뿐이지만.
“아, 그래서 블랙마켓으로 흘러갔을 제 물건을 아르칸 님이 가지고 계신 거였군요.”
“별로 안 놀라네?”
“놀라긴 했는데 그보다 궁금증이 풀려서 속이 후련하네요. 그런데 아르칸 님의 권능이 대체 뭐길래 마력 변환을 일으키나요?”
“자세한 건 알려 줄 수 없지만. 중요한 건 네가 내 신하가 됐다는 거야.”
“신하가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물론 그냥 되는 건 아니고, 내 신하가 될 조건에 맞더군.”
“그렇군요. 맞다, 용사는요? 아르칸 님이 마왕이라는 걸 알고 있나요?”
“내 정체를 알고 있지.”
“세상에! 마왕과 용사가 협력 관계라니 정말 재밌네요. 연구 외에도 이렇게 재밌는 일은 처음이에요.”
“그렇다면 다행이네. 기왕 이렇게 된 거 여기 있을 게 아니라, 마왕성에 가서 연구하지 않겠나? 내가 최대한 지원해 주지.”
“네? 정말인가요? 바로 갈 준비를 하겠습니다!”
길리암은 뛸 듯이 기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안 그래도 자금 부족으로 이 외곽에 밀려난 게 불만이었다.
투자를 많이 받아서 옮긴다고 해도 최근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라, 쓸 만한 연구소를 얻는다면 거기에 자금이 많이 소모될 게 빤했다.
‘아예 옮겨서 새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마력 연구에 필요한 마석도 많이 지원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럼 어서 준비해. 짐은 내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 가면 되니까.”
“아, 네. 알겠습니다.”
마침 스승에게 물려받았던 아공간 주머니마저도 팔아 치웠던 길리암은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서 들고 갈 물건을 허겁지겁 자루 안에 쓸어 담았다.
좁은 공간이다 보니 그 자루가 가득 차자 다른 자루를 꺼내서 집어넣기가 곤란했다.
“아르칸 님, 이것만 먼저 좀 넣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래.”
아르칸은 자루를 가볍게 들어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아공간 주머니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앗, 설마 아공간 주머니가 다 찼나?’
길리암은 의아했다. 아무리 그래도 마왕이 가지고 다니는 아공간 주머니인데 저 정도로 공간에 여유가 없을 리가.
정작 아르칸도 당황한 기색이었다.
“어, 뭐지?”
그때 아공간 주머니에 뭔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거대한 상아로 만든 병사 모양의 조각상의 모습, 용아병이었다.
“주인님, 죄송합니다. 방금 들여보내신 물건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문제?”
“먼지가 달라붙어 지저분하고, 악취가 배어 냄새가 납니다. 저희가 닦고 정리해서 넣으면 안 되겠습니까?”
아르칸은 용아병이 왜 저러는지 이해했다.
그들의 창조주인 고룡 버네르가가 만든 아공간 주머니에, 또 자신들이 지키는 저택에 쓰레기가 들어오는 게 싫었던 거였다.
반면에 길리암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죄, 죄송합니다.”
“아니야. 그래도 이 녀석 말대로 닦아서 넣는 게 좋겠군. 이 녀석 고룡 버네르가 님이 만든 용아병이거든. 이 아공간 주머니도 버네르가 님이 만드신 거고.”
“네? 용아병이요?”
길리암은 그제야 용아병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드래곤의 이빨에 잠재된 마력을 동력원으로 움직이는 용아병은 꼭 한번 연구해 보고 싶었었다.
‘오리할콘에 마왕에 용아병까지. 오늘 신기한 거 참으로 많이 보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차피 가서도 정리해야 하는 거면 여기서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가 나와서 정리 후 닦아서 넣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 그편이 빠를 테니. 길리암이 보고 잘 알려 줘.”
“아, 알겠습니다.”
용아병이 아공간 주머니에 들어가더니 다섯 용아병이 나왔다.
그러고는 연구소 내의 물건들을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길리암은 황홀하게 지켜봤다. 그러다 용아병의 물음에 정신이 돌아왔다.
“넣을 걸 지정해 주시면 자루에 넣을 필요 없이 안에 정리해 두겠습니다.”
“아, 응. 이거랑 이거.”
청소와 정리는 순식간에 끝나 길리암이 챙길 걸 알려 주는 데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자, 슬슬 돌아오겠다. 들어가 있어.”
“알겠습니다.”
아르칸의 말에 용아병은 곧바로 아공간 주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맞다. 너도 이 안에 들어갈래?”
“어, 들어갈 수 있나요?”
“방법이 있지. 내부에 마력을 회복시키는 기능도 있다고 하니까. 한번 살펴보면 재밌을 거야.”
“뭐, 뭐라고요? 아공간 주머니 안에 그런 기능이?”
그 말만으로도 길리암은 전율이 일었다.
이후 아르칸이 돌아가자마자 연구소는 문을 닫았고. 그 후로 이곳에서 길리암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한편 용사가 떠난 뒤 중단되었던 귀족 회의는 얼마 뒤 다시 열렸다.
다만 회의라기보다는 용사에 관한 보고회였다. 카즈그림 백작이 웃는 낯으로 말했다.
“다들 들었지만, 용사가 벌써 성녀 후보생을 구했답니다.”
“이렇게나 빨리? 역시 용사로군.”
“무엇보다 성녀의 도움도 받지 않고 구했으니 참으로 좋게 되었소.”
“맞다. 그 성녀 후보생은 무사한가?”
“네, 아무래도 충격이 클 테니 휴식 중이긴 한데 크게 다치진 않았다고 보고받았습니다.”
“다행이로군.”
이름도 모르는 성녀 후보생의 안위를 걱정한 건 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해서가 아니었다.
“그렇지. 어디 다치기라도 하면 용사의 동료가 못 될 테니까 말이야.”
“그보다 용사는 어떤가? 성녀 후보생을 마음에 들어 하는 거 같나?”
그 물음에 카즈그림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글쎄요. 일단 별 반응이 없어 보인다는데, 워낙 속내를 안 드러내니까요.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거 같습니다.”
“쩝, 아직 혈기왕성할 때일 텐데 왜 그러는지 참.”
“그보다 성녀 후보생도 덤덤하다고 합니다.”
“성녀 후보생 쪽은 상관없다. 중요한 건 용사가 마음에 들어 하냐는 거지.”
“그도 그렇지만 성녀 후보생도 용사에게 푹 빠져야 적극적으로 매력을 발산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쩝, 신전 쪽에서는 왜 그런 목석을 보낸 건지.”
“아닙니다. 안 그래도 그런 쪽으로 로망을 가진 아이를 뽑아 달라고 했습니다. 연애소설도 좋아하니 분명 먹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 말에 귀족들이 의아해했다.
“놀라서 그런가?”
“그럼 우리 계획이 실패한 건가?”
용사가 성녀를 동료로 안 맞이하는 걸 보고, 왕당파인 성녀 대신 귀족파인 자신들의 입김이 통하는 성녀 후보생을 용사의 동료로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그쪽은 일단 두고 봐야 할 거 같습니다. 그보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용사가 한 인간과 함께 드워프를 만나러 갔답니다.”
그 말에 회의실 안에 있던 귀족들이 술렁였다.
“정말인가? 용사가 다른 사람과 함께 움직였다고?”
“믿기 어려운걸. 같이 갔다는 인간은 대체 누군가?”
“돈이 많은지 아르칸이라는 이름으로 마석열차표를 사긴 했지만, 가명인지 기록에 없습니다. 조사한 바로는 마법사 같습니다. 무엇보다 용사와 그 마법사가 만났던 드워프가 바로 드워프 왕국의 왕자라고 합니다.”
“드워프 왕자? 그렇다는 건…….”
놀란 귀족의 말에 카즈그림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용사가 드디어 혼자서 마계 토벌하는 걸 그만두고 동료를 모으고 있다고 짐작됩니다.”
“잘됐군. 그래야 우리도 좀 끼어들 틈이 있지.”
“마법사와 드워프라, 성직자는 성녀 후보생이 있고, 남은 건 엘프와 전사인가?”
“엘프는 걱정하지 말게. 전문가인 멜스크 후작이 있지 않은가? 연락하면 당장 말 잘 듣는 엘프를 보내올 거야.”
“흐흐, 그렇겠지요? 그보다 전사가 문제입니다. 분명 로버른 경이 나서려고 할 텐데, 저희에게는 그보다 강한 기사가 없습니다.”
카즈그림의 말에 귀족들의 얼굴이 굳었다.
로버른 경은 왕국 기사단의 일원으로, 국왕의 신뢰를 듬뿍 받는 실력자였기 때문이다.
“끙. 로버른 경은 용사가 이미 몇 번이나 동료로 삼지 않겠다고 거절하지 않았나?”
“상황이 달라졌지 않습니까? 오히려 로버른 경에 성녀까지 동료로 삼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곤란한데.”
다들 난감해하는 상황에서 시종이 서신을 가지고 왔다.
“용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뭐라고? 어디 보자.”
카즈그림은 시종에서 받은 서신을 유심히 읽었다. 다 읽었을 때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뭔가?”
“좋은 소식이라도 있는 건가?”
귀족들의 물음에 카즈그림이 서신을 직접 읽어 볼 수 있도록 건네며 말했다.
“회의가 무사히 끝났는지, 끝났으면 이제 결투가 언제 열리는지 확실히 알려 달랍니다. 오래 걸리면 마계로 들어갔다가 그 날짜에 맞춰서 다시 돌아오겠다는군요. 무엇보다 일단 드워프 왕국부터 들를 거니 외교적인 문제가 안 생기도록 조치해 달랍니다.”
“드워프 왕국이라……. 방금 들은 대로 드워프 왕자와 관련 있겠군.”
“혹시 최근 로버른 경과 성녀와는 접촉이 없었나?”
“네, 없었습니다.”
그 대답에 귀족들이 저마다 떠들면서 수군거렸다.
그걸 지켜보던 카즈그림이 제안했다.
“이렇게 된 이상, 로버른 경와 성녀에게 이 소식이 안 들어가게 최대한 막고, 용사가 빨리 움직일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죠.”
“결투는?”
“화해해서 없던 것으로 하면 됩니다.”
그 말에 귀족들이 모두 동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
다음 날.
아르칸은 용사와 도린과 함께 드워프 왕국으로 향하는 마석열차를 탔다.
예상보다 빠른 출발이었지만, 용사는 투덜거렸다.
“그렇게 난리 치더니만, 결투도 하지 않고 화해하다니 허무하군.”
“그래도 그편이 다행이지 않아? 결투라고 해도 많이들 다치고, 죽는 사람도 나온다며.”
“휴, 하긴 그렇지.”
용사는 한숨을 쉬며 납득하더니 주위를 둘러보며 씩 웃었다.
“그래도 이거 공짜로 타게 해 준 게 어디야?”
그 말에 아르칸이 깜짝 놀랐다.
“뭐야? 너도 이거 돈 내고 타?”
“당연하지. 아무리 용사라도 특혜를 받을 수 없으니까.”
아르칸은 뒷골이 당겼다.
“……용사라는 걸 자각 못 하는 거 아니야? 조금이라도 빨리 세계를 구하려면 특혜든 뭐든 다 받아야지.”
“시끄러워. 나 혼자라면 이것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거든.”
“아, 그래? 그럼 됐고.”
용사와 아르칸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도린은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었다.
“이걸 두 번이나 타게 될 줄은 몰랐네요.”
“저번에 사고 났는데 겁 안 나?”
아르칸의 물음에 도린이 정색하며 대꾸했다.
“마석열차 사고 횟수는 연간 4회. 그것도 오류로 정차되거나 실내 시설물의 고장이야. 이번처럼 열차가 습격당하는 경우는 3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거든. 겁난다면 마석열차보다 말 타는 게 더 겁나…….”
콰쾅!
도린이 자신만만하게 설명하는 와중에 굉음과 함께 열차가 크게 흔들렸다.
심지어 이번에는 폭발이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다시 한번 더 일어났다.
콰콰콰쾅!
더욱 강력한 폭발에, 열차가 탈선해 나뒹굴었다. 다행히 첫 번째 폭발로 열차가 급정지에 들어가서 피해가 크진 않았다.
다만 몇 바퀴 도는 건 피할 수 없었다.
반쯤 허공에 뜬 도린이 비명을 지르며 외쳤다.
“다, 다시는 마석열차에 안 탈 거야!”
“그러게, 탈 게 못 되네.”
아르칸은 공감하면서도 당황했다. 이번 건 예정(?)에 없었던 폭발이었기 때문이다.
‘대체 누가 공격해 온 거지? 이번에도 결사단이?’
“크흐흐흐흐.”
“가진 거 다 내놔.”
다행히(?) 이번에는 결사단이 아니라 열차 강도인 듯했다.
“이것들이…….”
아르칸이 화내려는데 용사가 이성이 나간 듯 실실 웃었다.
“흐흐, 이거 오랜만에 스트레스 좀 풀어야겠는데?”
그 섬뜩한 모습에 아르칸은 문득 강도의 명복을 빌어 주고 싶어졌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