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82
82화 되로 주고 말로 받기 (1)
몇 번의 폭력과 회복을 반복한 끝에 열차 강도, 게일런은 자신의 이름부터 해서 모든 걸 순순히 털어놓기 시작했다.
용사가 저 눈빛으로 보는 한 거짓말로 속이는 것도 불가능하고.
저 마왕 같은 녀석이 있는 한 아무리 버텨도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죽는 것도 마음대로 안 될 것 같았다.
한편 게일런의 말을 들은 아르칸과 용사, 그 밖의 모두는 충격을 받았다.
이들은 아르칸이 짐작한 대로 광신도, 악신을 위해 왕국에 큰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게 사명이며, 마석열차 강도도 그 일환 중 하나일 뿐이라고 했다.
‘확실히 마석열차는 셀레스티온 왕국의 상징. 거기에 문제가 생기면 아무래도 사람들이 불안해할 수밖에 없지.’
심지어 그 배후는 악신과 연관되어 있다고 하니 심각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너는 여신척결평화수호결사단이냐?”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하찮은 것들과 궤가 다릅니다.”
게일런은 비교당하는 것부터가 불쾌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아르칸이 다시 물었다.
“너희가 모시고 있다는 악신은 말고라스인가?”
“하찮은 제가 어찌 감히 그분의 이름에 대해 말하겠습니까?”
스윽.
용사가 주먹을 들자 곧바로 공포를 느낀 게일런이 얼른 말했다.
“이, 이름은 정말 모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여신척결평화수호결사단이 모시는 말고라스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어때?”
“정말이다.”
용사의 확인을 받은 아르칸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소설에서 이교도와 악신에 대해서 나오긴 하지만, 이건 마계 근처에 있는 자리 잡은 녀석들에 관한 것.
여신척결평화수호결사단에서 불러낸 악신 말고라스나, 이 마석열차 강도들이 모신다는 악신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래도 상대하는 게 낫겠어. 차원의 조각을 하나 더 얻을 기회잖아.’
결심한 아르칸은 슬쩍 용사를 쳐다봤다.
차원의 조각을 얻을 때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건 용사였다.
악신 말고라스 때를 생각하면 제물로 최소 수십 명의 사람 목숨이 바쳐야 할지도 모르는 데다, 차원 조각의 존재를 알게 되면 달라고 할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용사를 배제할 수도 없었다.
이미 이 정보를 들은 이상 용사는 반드시 나서려고 할 테고, 현재 아르칸은 혼자 힘으로 악신을 잡을 수도 없었다.
‘저번에도 엘리시아가 없었으면 토벌하기는커녕 도망치기 바빴을 테니까.’
“아르칸, 아무래도 다른 수작을 더 부리기 전에 막아야 할 거 같은데.”
“당연히 그래야지.”
“당연히?”
용사가 눈을 크게 뜨고 아르칸을 쳐다봤다.
여기 다른 이들은 모르지만, 용사는 아르칸이 마왕이라는 걸 잘 알았다.
아무리 빙의자로 마신이 되어 평화를 이룩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지라도 마왕은 마왕.
왕국이 혼란에 빠지길 바라지 않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나서서 도와준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용사는 전시안을 발동한 채로 아르칸을 쳐다보며 물었다.
“혹시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고?”
“있어.”
“사실이로군. 무슨 꿍꿍이인지 말해 봐.”
“저번에 악신을 퇴치했을 때, 차원의 조각이라는 걸 얻었거든. 그걸 쓰면 마신의 힘이 약화한다고 해.”
“그래? 그러면 악신을 반드시 퇴치해야겠군.”
“근데 악신을 쓰러트리려면 그 전에 소환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제물이 잔뜩 필요하잖아.”
아르칸은 아예 솔직하게 말했다.
어차피 혼자 못 잡는 마당에 속일 이유도 없었다.
한편 옆에서 듣고 있던 도린이 놀라서 물었다.
“인신 공양……. 아니, 언제 또 악신이랑 싸웠어?”
“내가 말 안 했나? 우리를 습격해 온 녀석들도 이런 광신도였거든.”
그 말에 잠자코 있던 게일런이 항변했다.
“여신척결평화수호결사단과 저희 마신척결평화수호결사단은 다릅니다!”
“뭐야? 너희가 마신 쪽이었냐……. 어쨌든 조용히 해.”
“……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 거 같나?”
용사의 물음에 아르칸은 게일런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떻게라니. 일단 은신처를 쳐야지. 이 녀석한테 은신처부터 물어봐.”
“말해.”
“신이시여, 용서하십시오. 아니면 그냥 절 죽이시든가요.”
용사가 주먹을 들자 게일런이 기도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게일런은 모든 걸 포기하고 순순히 대답했다.
아르칸은 게일런이 말한 은신처를 기억하면서도 속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바본가? 악신은 오히려 우리를 바라고 있을 텐데.’
악신 말고라스를 보니 악신들은 추종자들이 자신을 위해 세계에 혼란을 빠트리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는 듯했다.
원하는 건 이 세계에 강림하는 것뿐.
많은 제물로 자신의 힘을 최대한 발휘하면 좋겠지만, 일단 소환되면 스스로 먹잇감을 찾아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아르칸은 용사와 도린과 함께 마신척결평화수호결사단 은신처를 향해 달렸다.
물론, 그 전에 짐칸에서 성검과 도린의 도끼, 짐들을 찾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 두면 될 텐데.”
“아공간 주머니라면 나도 있지만, 성검은 안 들어가더군.”
“아, 그래?”
“그거랑 상관없이 너한테 성검을 맡길 리도 없지만 말이야.”
“그렇죠. 어떻게 자신의 손때 묻은 무기를 남한테 맡깁니까?”
도린이 끼어들어 한마디 하자 용사가 답답하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아르칸이 마왕이라서 그런 건데, 그렇다고 아르칸이 마왕이라고 말해 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디 있는지 알지? 먼저 갈 테니까. 따라와.”
눈을 뜬 용사는 그렇게 말하더니 대답도 듣지 않고 그대로 먼저 가 버렸다.
“이런, 성질 급하기는.”
악신을 퇴치하려면 뒤의 소용돌이를 공격하라고 말해 주려고 했는데 순식간에 저 멀리 가 있었다.
“저렇게 잘난 체하는데 혼자 고생 좀 하라고 우리는 천천히 갈까?”
“그럴 수는 없지! 어서 따라가야…….”
도린은 말끝을 흐렸다.
자신의 짧은 다리로는 도저히 용사를 쫓아갈 엄두가 안 났기 때문이다.
***
“역시 용사. 강하긴 강하네.”
아르칸은 감탄했다.
대도시 헤이븐 외곽에 있는 마신척결평화수호결사단의 은신처에 겨우 도착했더니 용사가 이미 다 박살을 내 놓은 게 아닌가?
심지어 혼자서 악신까지 해치웠단다.
아르칸은 놀라서 물었다.
“악신은 어떻게 된 거야? 제물을 바치도록 한 거야?”
“아니, 고민은 됐지만 괜한 고민이었다. 내가 용사라는 걸 알자마자 자진해서 제물이 되더니 악신을 소환했다. 우르곤타르라는 이름의 악신이 나왔다.”
“정말 괜한 고민이었군.”
하긴 다른 적도 아니고, 마왕까지 쉽게 해치우는 용사다.
거기에 대항하려면 악신을 소환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도 할 수 있었다.
‘어쩐지 소설에서도 금방 악신을 소환하더라.’
아르칸은 문득 생각나서 물었다.
“근데 악신의 뒤편에 있는 소용돌이는 어떻게 공격했어? 거기가 약점인데.”
“그랬어? 전력으로 베었더니 곧바로 사라졌다.”
“이런 괴물 같은 녀석.”
아르칸은 혀를 내둘렀다.
악신 말고라스는 엘리시아와 함께 그 고생을 하면서 겨우 이겼는데, 용사는 단숨에 악신을 해치운 거였다.
‘급해서 대충 소환한 거 아니야?’
그때 용사가 대뜸 뭔가를 내밀었다.
차원의 조각이었다.
대놓고 비교하지 않아도 아르칸이 얻은 것보다 커 보였다.
‘젠장.’
아르칸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물었다.
“이건 왜? 자랑하려고?”
“네가 들고 있어라.”
“어? 정말?”
아르칸이 놀라서 쳐다봤다.
마정석이야 용사가 쓸 수 없으니 넘겨준다고 했지만, 차원의 조각은 달랐다.
용사가 다 해치운 거나 다름없는 데다, 마신을 목표로 강해질 수 있는 건 뭐든지 하는 만큼 마신을 약화시킬 수 있는 차원의 조각도 무조건 챙기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막을 수 있던 것도 네 덕분이니까. 그대로 내버려 뒀으면 아주 곤란했을 거야.”
“어, 그런 이유로?”
아르칸이 납득이 안 되어서 멍하니 있을 때, 용사가 얼굴을 붉히며 버럭 화냈다.
“왜 군말이 많아? 기껏 생각해서 줬더니, 가지기 싫으면 내놓든가!”
“아, 아니야. 잘 쓸게.”
아르칸은 얼른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걸로 벌써 차원의 조각이 두 개나 됐다.
그때, 용사가 뒤처리를 위해 불렀다는 기사단의 단장이 다가왔다.
“용사님, 바로 출발하실 겁니까? 마차를 준비해 뒀습니다만.”
“마차? 고맙군.”
용사가 기사에게 인사했는데, 아무래도 마차를 준비해 달라고 말한 건 아닌 듯했다.
‘음, 무슨 꿍꿍이지?’
아르칸은 왠지 낌새가 이상했지만, 도린은 마차라는 소리에 반색했다.
“마차라니, 참으로 다행이야.”
“도린 님이 계시는데 말만 준비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럼 이만.”
기사단장은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는 자리를 옮겼다.
아르칸은 그것도 수상쩍었다.
‘도린의 이름은 어떻게 알지?’
“따로 준비하실 거 있으십니까? 없으시면 마차도 준비된 김에 바로 출발할까 합니다만.”
“네, 괜찮습니다.”
용사와 도린은 별로 신경 안 쓰이는지 최대한 빨리 떠나고자 했다.
‘하긴, 여기에 오래 있고 싶은 생각은 나도 없어.’
아르칸은 온갖 핏자국과 살덩어리가 난무하는 은신처를 빠져나왔다.
***
드워프 왕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마차를 타고 한참 더 들어가야 했다.
아르칸이 찜찜해하는 걸 눈치챘는지 용사가 툭 치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함정 같은 건 없으니까. 나를 빨리 보내려는 것뿐이더라.”
“그래, 알았어.”
전시안이 만능은 아니지만, 용사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닌 게 분명했다.
‘사실 용사가 있으면 어지간한 함정도 위협이 안 될 테니까.’
그렇게 용사와 아르칸, 도린을 태운 마차가 떠난 뒤 얼마 후.
마신척결평화수호결사단의 은신처로 두 명이 말을 따로 타고 달려왔다.
현장을 통제하고 있던 기사단장은 그들을 보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로버른 경, 성녀님. 여기까지는 어인 일이십니까?”
“용사님이 이곳에 오셨다고 들었다. 어디 계시냐?”
“벌써 출발하셨습니다.”
“뭐라고요? 분명 여기 도착하신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만.”
“어찌나 강하신지 오자마자 이곳의 광신도들을 싹 쓰러트리고 악신도 해치우셨다지 뭡니까.”
“그렇군요.”
“성녀님, 우리가 조금 늦은 것 같습니다.”
기사단장은 시무룩한 두 사람을 보며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이런, 용사님이 성녀님까지 바람맞힐 줄이야. 설마 용사님이 여기 있다고 신탁을 못 받으신 겁니까?”
“말씀이 심하네.”
“이런, 실례했습니다. 그럼 이만.”
로버른의 면박에 기사단장은 건성으로 사과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로버른은 그런 기사단장을 노려보다가 성녀를 위로했다.
“너무 마음 쓰지 마시지요.”
“그보다 어쩌면 좋습니까? 용사님에게 알려 드려야 할 텐데.”
“하는 수 없지요. 이렇게 된 것도 여신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성녀는 대답 대신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도했다.
‘여신님, 정녕 용사를 바꾸실 작정이신가요? 지금까지 용사님께서 고생하신 건 다 어찌합니까.’
그러나 평소와 달리 여신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
한편 아르칸이 탄 마차 안은 조용했다.
고향인 드워프 왕국까지 며칠 안 남은 상황인데도 도린이 침울해하고 있었다.
‘아마 근처에 오니까 드워프 왕국의 일이 다시 걱정된 모양인가.’
용사도 머리가 복잡해 보였다.
‘마왕 때려잡기도 힘든데, 광신도들이 왕국에 암약하는 데다 악신까지 소환하는 걸 보니 걱정되나 보네.’
그런 둘을 보고 있자니 아르칸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용사에게 줄 게 떠올랐다.
“맞다. 이거 받아. 선물이다.”
그걸 보자마자 도린이 아는 체했다.
“오옷, 이건 수호의 팔찌잖아.”
만나고도 딱히 줄 만한 타이밍이 없어서 못 줬던 참이었다.
“수호의 팔찌?”
“위급 시에 방어막이 생겨서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이걸 나한테 왜?”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용사에게 아르칸이 말했다.
“네가 죽으면 곤란하니까.”
“내가 죽는다고?”
아르칸은 순간 아차 싶었다.
용사는 자신을 빙의자라고 알고 있지만, 그게 소설 속 세계에 빙의한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죽는다는 게 아니라, 혼자 돌아다니니까 걱정되어서 그러는 거지.”
“실없는 녀석. 어쨌든 고맙다.”
용사는 뜻밖에도 순순히 팔찌를 찼다.
그때 마부가 말했다.
“곧 마을에 도착합니다.”
기사단장이 붙여 준 마부였다.
“오늘은 저기 가서 쉬죠.”
용사의 말에 아르칸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도린은 슬쩍 투덜댔다.
“아르칸이 저번에 데려온 말들은 안 쉬어도 됐는데.”
“기사단장이 신경 써서 챙겨 줬는데, 잘 쓰고 돌려줘야지.”
아르칸이 도린을 달랬다.
그사이 마차가 천천히 마을 길을 지나가는데, 분위기가 여간 우울한 게 아니었다.
좌우로 울적한 모습의 마을 사람들이 보였다.
얼굴이 창백하고 눈이 움푹 들어간 마을 사람들은 기운이 없어 보였다. 몇몇은 절망에 가득 찬 눈빛으로 마차를 바라봤다.
또 곳곳의 어린이들은 배고픔에 울고 있었으며, 어미들은 무력한 표정으로 아이를 안고 있었다.
“뭔가 분위기가 너무 안 좋은데. 마치 전쟁터의 피난민 같네.”
“아, 여기 말입니까? 곧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다고 했는데, 먹을 걸 다 징발해 갔나 봅니다.”
“아무리 그래도 애들 먹을 것까지 가져가다니. 먹고살 정도는 줘야지.”
투덜거리는 도린의 말에 마부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한편 아르칸은 소설 속 내용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 지금이 그 시점인가? 그럼 떼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