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83
83화 되로 주고 말로 받기 (2)
소설 속 용사가 마계에서 아르칸을 포함해 여러 마왕을 해치우고 대마왕 바리스탄까지 쓰러트렸을 때, 당연히 인간족의 셀레스티온 왕국에서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대륙 중부 서쪽 방면은 험준한 카퓨 산맥이 가로막고 있어 서로 간에 대규모 병력은 보내기 힘들었지만.
동쪽은 평야.
용사가 소환되기 전에도 대마왕 제니칼과 셀레스티온 왕국 직할령이 맞닿아 있어 소규모 충돌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는 사이 여신에 의해 소환된 용사가 마계를 헤집고 다니며 마왕들을 썰어 버리자 마계 전역이 용사를 주목했다.
상대적으로 접경 지역의 방어는 느슨해질 수밖에 없었다.
왕국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규모 병력을 모아서 마계를 침공할 계획을 세웠다.
이에 국왕파에 선 귀족들 대부분이 참여했는데, 그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최소 5만 이상.
점점 많이 모이는 병력에 국왕파 귀족들과 장군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마계를 쓸어버리는 것도 가능하다고 여길 정도였다.
반면에 귀족파들은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질까 걱정했다.
‘어쩌면 용사를 붙잡아 성녀 후보생을 붙이려고 한 것도 그걸 만회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군.’
아르칸이 수인족 마왕들을 부하로 삼으며 제니칼을 도발하고 나서 자리를 비울 수 있었던 것도, 현재 제니칼이 쉽게 전력을 빼기 힘들어서이기도 했다.
괜히 아르칸을 건드렸다가 대마왕 바리스탄이 대대적으로 공격해 들어오면 곤란했으니까.
문제는 저 수많은 병력이 먹을 식량을 보급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거였다.
심지어 식량을 약탈하려고 해도 수인족 대마왕 제니칼 파벌의 먹을거리라고는 각종 짐승이나 풀과 과일을 따위.
인간족 병사들이 먹을 만한 게 별로 없었다.
‘그 때문에 식량난이 벌어졌다고 했지.’
이 기회를 노려서 한몫 잡아 보려는 상인도 있었다.
그 상인의 이름은 라자크.
라자크는 여러 귀족에게서 투자를 받은 막대한 자금력으로 일대의 식량을 모조리 사들였다.
시세보다 고가에 쳐주긴 했으나 당연히 거부하는 주민도 많았다.
그런 주민은 자신에게 투자한 귀족의 위세를 앞세워 영주를 움직였다. 주민들은 무기를 겨눈 병사들이 무서워 억지로 팔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물가는 몇 배나 뛰고, 주민들은 받은 돈으로는 다른 먹을 걸 사지 못해서 굶어 죽는 사람도 속출했다.
그때 마차 앞에 한 무리의 주민들이 우르르 튀어나와 가로막았다.
천천히 가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면 사람을 치고 갈 뻔했다.
급하게 마차를 멈춘 마부가 버럭 화냈다.
“이것들이 미쳤나. 어서 썩 비키지 못해?”
“죄, 죄송합니다. 혹시 먹을 게 있으면 조금만 팔아 주십시오.”
“감히 이분과 거래를 하려고? 이분이 누군지 알고 그러는 거냐?”
“아, 잠시만요.”
아르칸은 용사의 신분을 밝히려 하는 마부를 막았다.
“네? 하지만.”
“괜찮습니다. 사정이 딱한 듯한데 내려서 이야기 좀 할게요.”
“아, 네.”
그렇게 말한 용사가 아르칸을 돌아봤다.
“혹시 먹을 거 좀 있어?”
“이 녀석 아공간 주머니에 많습니다. 저도 좀 들고 있고요.”
도린이 먼저 대답하면서 훈제 고기가 든 주머니를 꺼냈다.
아르칸은 식량을 꺼내는 대신 물었다.
“우리 식량은 왜? 가져다가 팔게?”
“팔기는, 좀 나눠 주게. 아니다. 네 식량을 나한테 팔아. 그러면 문제없지?”
“문제야 없는데, 그래 봐야 저 사람들 한 끼 식사도 안 될 텐데?”
버네르가가 만든 아공간 주머니는 용량이 아주 컸다. 마음만 먹으면 성도 집어넣을 수도 있겠지만, 그거야 미리 준비해 뒀을 때 이야기.
혼자서 한 달 정도 먹을 식량은 넣어 뒀지만, 마을 주민들을 배불리 먹을 정도의 식량은 없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야 나을 테니까.”
“좋아. 돈은 안 받을게. 대신에 이번 일은 내 말대로 하자. 그리고 부탁 하나만 들어줘.”
“음……. 좋아, 네 말대로 할게. 부탁은 어지간하면 들어주긴 할 텐데. 쓸데없는 거면 죽인다?”
“마왕 죽이라는 건데?”
“음, 그런 거라면 들어주지.”
용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르칸은 마차에서 내려 아공간 주머니에서 먹을 걸 잔뜩 꺼냈다.
“자 자, 먹을 거 나눠 드릴 테니까 이리 오세요.”
“저기, 얼마나 하나요?”
“방금 못 들었어요? 나눠 드린다고요. 대신 어린아이부터 먼저입니다.”
그 말에 아이들이 미소를 지으며 아르칸에게 다가왔고, 몇몇 주민들은 분주히 자리를 피했다. 아이를 데리러 간 거였다.
용사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미소 지으며 먹을 걸 나눠 주는 아르칸을 묘한 눈으로 바라봤다.
‘마왕만 아니어도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아르칸은 자신을 도와주러 온 빙의자라고 해도 결국에는 마신이 될 존재. 이렇게 어울리는 것도 잠깐뿐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은 이 세계의 평화를 되찾으면 돌아갈 거였으니까.
‘그러고 보니 저 녀석은 어쩔 생각이지? 마신이 되어 계속 여기 있을 작정인가?’
“이제 다 떨어졌네요.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며칠은 버틸 겁니다.”
아르칸의 말에 주민들은 고마워했다.
그러나 주민들의 표정은 아직 어두웠다.
그도 그럴 것이, 며칠을 버틴다고 말은 했지만, 손에 쥔 건 한두 끼 정도밖에 안 되는 식량이었기 때문이다.
용사가 그걸 눈치챘는지 굳은 얼굴이 됐다.
“이거로는 식량이 모자르네.”
“확실히 밑 빠진 술독에 술 붓기네요.”
도린마저도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보며 아르칸이 말했다.
“모자르면 더 구하러 가야지.”
“구한다고?”
“정말? 어디서?”
놀라서 돌아오는 용사와 도린에게 아르칸이 피식 웃으며 바로 앞에 있던 주민을 불렀다.
“아, 저기.”
“네, 무슨 일입니까?”
아르칸이 부른 주민은 물론, 주변의 주민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아르칸이 뭔가 도움을 청하면 뭐라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아, 별거 아닙니다. 여러분한테서 식량 사 간 상인은 어디 있는지 혹시 아십니까? 아직 이 마을에 있나요?”
“아, 네. 저기 저 여관에 머물고 있습니다.”
주민이 뒤편에 유난히 큰 건물을 가리켰다.
“감사합니다.”
아르칸이 인사하고 여관으로 향하자, 용사와 도린이 따라와서 물었다.
“야, 뭐 하게?”
“설마 저 상인한테서 식량을 되사려고?”
“어, 그러려고.”
“그럴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아주 비싸게 부르지 않을까?”
용사가 걱정했다.
실제로 소설에서 용사도 라자크에게 가서 식량을 살 때 엄청 바가지를 썼다.
가진 돈을 몽땅 털어 주고 성검까지 임시로 맡겼다.
그러고는 이 사정을 알리고 돈을 구하러 왕성으로 향하는데, 상인들이 고용한 용병들이 습격해 왔다.
용사가 강한 건 어디까지나 신의 힘이 깃든 성검 덕분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용사는 맨손으로 용병단을 박살 낸 뒤, 이후 돈을 구해 돌아왔다.
라자크는 지독하게도 그러고도 성검을 안 주려고 버티다가 왕당파의 제1기사 로버른 경이 나서고서야 돌려줬다.
‘아주 극한의 고구마 파트였지.’
지금에 와서 왜 그렇게 전개했을까 싶었는데, 용사가 그런 성격이었던 탓이었다.
‘작가로서는 억울할 만도 해.’
그 후로 로버른 경이 나서서 라자크를 응징하고, 용사는 그 보답으로 왕국 기사단과 함께 동부 전선에서 싸우기도 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여관 앞에는 무장한 용병들이 잔뜩 있었다.
아르칸은 먼저 용사에게 당부했다.
“너 용사인 거 티 내지 마.”
“왜?”
“음, 알았다.”
무슨 영문인지 묻는 도린과 달리 용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은 아르칸 말대로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르칸이 여관에 들어서려고 하자 용병들이 가로막았다.
그중에 콧수염을 기른 용병이 잔뜩 인상을 쓰며 물었다.
“멈춰! 누군데 들어가려고 하나?”
“손님.”
“돌아가! 여기는 우리 고용주가 전세 내서 빈방 없다!”
“아니, 너희 고용주 손님이라고.”
“아, 그렇습니까?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콧수염은 그렇게 말한 뒤 부하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부하가 뛰어 들어가더니 이내 비쩍 마른 사내가 나왔다.
“헉, 쥐 수인족인 줄 알았네.”
도린이 아르칸에게 귓속말했다.
비쩍 마른 상인은 눈도 작고 툭 튀어나온 앞니에 가는 턱수염을 길게 기르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작은 손을 비비고 있는 게 영락없이 쥐처럼 보이긴 했다.
상인은 이쪽을 훑어보더니 빙긋 웃으며 맞이했다.
“손님이 왔다길래 나왔더니 처음 뵙는 분이로군요. 저는 라자크라고 합니다. 무슨 일이시죠?”
“아르칸이다. 식량을 사러 왔다. 네가 여기 식량을 다 샀다고 들었거든.”
“아, 네. 혹시 왕국군에서 오셨습니까?”
“아니, 보면 모르나?”
“히히, 확인차 물어본 겁니다.”
라자크는 비열하게 웃더니 곤란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이래 봬도 애국자라서요. 식량이 부족할 거 같은 국왕군에 팔려고 미리 사 둔 겁니다.”
“세 배.”
“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묻는 라자크에게 아르칸이 친절히 설명했다.
“네가 매입한 가격의 세 배를 쳐주지. 단, 전부 다 파는 게 조건이다.”
그 말에 주변에 있던 용병들도 물론, 용사와 도린도 화들짝 놀랐다.
아무리 그래도 그만큼 비싼 값으로 되살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야, 무리하는 거 아니야?”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세 배는 너무 비싼데.”
“세 배라…….”
라자크도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원래 왕국군이 식량을 찾을 때, 두 배는 충분히 받을 자신이 있었다.
상황에 따라서는 세 배까지 받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데 아예 확정적으로 세 배로 매입하겠다는 구매자가 나타난 거였다.
라자크는 평소라면 하지 않을 질문을 던졌다.
“혹시 무슨 이유로 식량을 사려는 겁니까?”
“배고픈 애들을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서 말이야. 내가 사람이 너무 좋거든.”
“풋. 커억커억!”
용사는 순간 사레가 걸렸다.
마왕 주제에 사람이 너무 좋다니.
그래도 용사라는 걸 티 내지 않기로 했기에 얼른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괜찮아. 어때 그 이유면 충분하지?”
“아니요.”
그 말에 이번에는 다들 라자크한테 시선이 쏠렸다.
세 배의 가격에도 안 판다는 의미로 들렸기 때문이다.
라자크는 사악하게 웃으며 손을 비볐다.
“선생님 마음이 얼마나 좋으신지 확인해 보고 싶네요. 네 배는 주셔야겠습니다.”
용사가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저 자식, 두 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아르칸은 이미 예상한 바였다.
소설 속에서 용사도 라자크에게 질질 끌려다니면서 다섯 배나 더 높은 가격에 식량을 샀기 때문이다.
‘물론, 용사는 일부만 사는 거고, 나는 가진 걸 전부 산다는 차이가 있었지만.’
“왜 그러십니까? 역시 네 배까지는 안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아니, 네 배를 내지.”
“저, 정말입니까?”
오히려 라자크가 당황했다.
아르칸이 정말로 네 배를 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 잘난 체하던 아르칸이 쩔쩔매면 생색내면서 깎아 줄 생각이었다.
물론, 아르칸이 정말 마음씨가 착해서 매입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분명 비싸게 팔 다른 루트가 있는 거겠지.’
어쩌면 왕당파의 진군에 초를 치기 위해 귀족파에서 보낸 걸지도 몰랐다.
‘정확한 건 모르는 게 나아. 나야 돈만 벌면 되지.’
라자크는 얼른 두꺼운 장부를 내밀었다.
“자, 그럼 여기 장부 확인 마치시면 곧바로 거래에 들어가죠.”
“그러지.”
아르칸은 장부를 받아 들고는 바로 옆에 게티아를 펼쳤다. 라자크의 눈에는 그저 특이한 장부처럼 보였다.
장부를 슬쩍 훑어본 아르칸은 게티아에 뜬 숫자를 보고는 말했다.
“이 가격의 네 배면 196만 골드면 되겠군. 맞지?”
“어, 어. 정확합니다.”
라자크는 화들짝 놀랐다. 어제 계산해 둔 바에 따르면 매입 비용은 모두 49만 골드.
‘그걸 순식간에 훑어보고 계산해 내다니, 천재인가? 하긴, 저 정도 되니까 어느 세력인지 몰라도 큰돈을 맡겼겠지.’
“그럼 바로 거래해도 되겠지? 급해서 말이야.”
“아, 네. 물론입니다.”
아르칸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금화 상자 두 개를 꺼냈다. 그 금화 상자 중 하나에서 자루 네 개를 꺼냈다.
“이러면 딱 196만 골드야. 확인해 보도록.”
“네, 네.”
라자크는 얼른 금화를 확인했다. 허투루 할 수 없기에 금화가 진짜인지, 숫자는 얼마인지 저울까지 동원에 꼼꼼히 확인했다.
그사이 아르칸은 용사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용사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자리를 떴다.
한참 뒤.
라자크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저, 정확합니다.”
“그래, 고생했다. 창고째로 넘기기로 한 거니까 이 여관도 이제부터 우리가 쓴다. 불만 없지?”
“네, 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라자크가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그 말에 용병이 화들짝 놀라 말했다.
“고용주, 그럼 우리는 어디 가서 잡니까?”
“그건 이제부터 찾아봐야지. 보수를 두 배로 챙겨 줄 테니 잠자코 따라와.”
“뭐, 그런 거라면야…….”
용병은 입맛을 다시며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용병들이 금화를 옮기는 걸 보며 라자크는 주먹을 꽉 쥐고 속으로 외쳤다.
‘크크크, 대박 났다. 대박!’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이익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어다 줬을 뿐만 아니라, 라자크에게 떨어진 돈도 적지 않았다.
이 돈이라면 귀족이 되어서 대대손손 떵떵거리고 살 정도였다.
그러나 며칠 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라자크에게 당도했다.
“시, 식량 가격이 최소 열 배 이상 올랐다고?”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