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84
84화 되로 주고 말로 받기 (3)
라자크와 용병들이 금화를 들고 모두 나간 뒤, 도린이 어두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저걸 그렇게 덜컥 사도 돼? 보고 있던 내가 다 식은땀이 난다.”
도린이 명색이 드워프 왕국의 왕자라고 해도 그토록 많은 돈을 쓰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괜찮아. 돈이라면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까.”
“뭐? 정말? 너 정말 돈 많구나. 너 정체가 뭐야? 혹시 왕자나 대귀족의 도련님 같은 거냐?”
“비슷하다면 비슷하지.”
“그래 놓고 내가 드워프 왕자라고 했을 때 왜 그리 놀랐어?”
“왕자인데 잡혀 있으니까 놀랐지. 그보다 주민들 식량 좀 더 나눠 줘.”
“아, 맞다. 네가 큰돈을 썼는데, 그 정도는 내가 해야지. 창고가 저쪽인가?”
도린은 그렇게 말하고 창고로 향하려다가 발걸음을 멈추고는 말했다.
“용사님은 비웃었지만, 난 네가 사람이 좋다는 말에 동의해.”
“응? 그, 그래. 고맙다.”
아르칸이 어색하게 대답하자 도린도 쑥스러운지 고개를 숙이고 달려갔다.
‘그나저나 용사는 잘하고 있겠지?’
그때 도린이 돌아와서 외쳤다.
“근데 이거 물량이 너무 많아서 나 혼자서는 무리일 거 같은데……!”
“……마을 주민들더러 도와달라고 해. 아니면 와서 받아 가라고 해도 되고.”
“아, 그렇지.”
도린은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고는 마을 쪽으로 달려갔다.
‘확실히 사람이 더 필요해.’
다른 창고야 보관비를 주고 보관하고 있으니 문제없지만, 여기만 해도 둘이서 관리하는 건 무리였다.
다행히 아르칸에게는 충성스러운 부하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아르칸은 용아병들을 모조리 소환한 뒤, 할루시네이션을 써 용병단으로 위장했다.
‘일부러 용사 앞에서는 용아병을 소환 안 했는데, 용사 없을 때는 이렇게 돌아다니면 되겠는데?’
용아병이 물었다.
“주인님, 무엇을 하면 됩니까?”
“너희는 용병이니까 여기서는 나를 고용주라고 부르도록. 식량 창고를 지키고 드워프 도린이 오면 마을 주민들에게 식량을 나눠 주는 걸 도와줘.”
“알겠습니다, 고용주님.”
잠시 후.
마을 주민들과 함께 나타난 도린은 용아병들을 보고 놀랐다.
“아니, 이 사람들은 다 뭐야?”
“내가 고용한 용병들이야. 마음껏 부려 먹어.”
“또 언제 고용했어? 어쨌든 잘됐다. 저기 창고로 같이 좀 갑시다.”
도린이 용아병 몇을 데리고 가려는데 아르칸이 말했다.
“맞다. 식량 나눠 주는 건 좋은데 최소한으로 나눠 줘야 해.”
“당연하지. 이게 얼마나 비싼 식량인데. 딱 구황작물 재배하기 전까지 버틸 정도로만 줄 거야.”
도린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하고 달려갔다.
‘아니 그 정도로 빡빡하게 굴 것까지는 없는데.’
아르칸은 말리려고 하다가 말았다. 어차피 잘 모르니까 맡겨 둘 생각이었다.
‘그럼 라자크가 돌아오는 걸 기다려 볼까.’
***
다음 날.
라자크는 정보상으로부터 동부 평야의 전황을 전해 듣고 폭소를 터트렸다.
“우키키키키키킷!”
“왜 그리 웃나?”
“아니, 자네가 방금 말했지 않은가. 전선에 용사가 나타나서 다 쓸어버렸다고.”
“어, 지금 난리도 아니야. 어찌나 강한지 선두에 나섰던 수인족 마왕을 단칼에 베었다는군. 그 후로 마왕군은 후퇴하기 바쁘고. 왕국군은 기세등등해져서 진군하고 있다나. 이대로라면 전쟁이 금방 끝날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어.”
“그렇지. 웃음이 터질 수밖에. 사실 어제 긁어모았던 모든 식량을 팔아 치웠거든. 그것도 매입가의 네 배로 말이지.”
“뭐라고?? 네 배??”
정보상은 화들짝 놀랐다. 라자크가 매입해 둔 식량의 규모나 매입가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 배라니. 정말 떼돈을 벌었겠구먼. 아!”
정보상은 그제야 라자크가 왜 박장대소했는지 깨달았다.
누가 어마어마한 자금으로 라자크의 식량을 매입했는지는 몰랐지만, 전쟁이 마무리되면 식량이 그만큼 필요 없어진다.
네 배는커녕 제값을 주고 팔기에도 힘들어질지도 몰랐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야. 용사님이 하루 늦게 나타나서 살았네. 용사님 만세다.”
“참으로 다행이네. 그보다 좋은 일 있으면 정보료도 좀 더 쓰지?”
정보상의 말에 라자크가 정색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치, 치사하기는.”
다음 날, 또다시 정보상이 들렀다.
“오늘은 오는 날이 아닌데, 왜 또 왔나? 혹시 전황이 바뀌기라도 했어?”
“아니, 용사가 여전히 활약하고 있다는군. 대신 네 투자자들이 보낸 서신을 가져왔다.”
“오, 그래? 어서 줘 보게.”
라자크는 손바닥을 비비며 서신을 받았다.
투자자들에게는 아직 식량을 판매했다고 연락하진 않았다.
분명 용사의 참전 소식을 전해 듣고 식량 가격이 폭락하기 전에 어서 팔아 치우라고 압박하는 연락일 게 분명했다.
당장 오늘 시세만 해도 많이 떨어졌으니까.
‘그때 내가 ‘사실은 예상보다 훨씬 더 비싸게 싹 팔았습니다.’라고 하는 거지.’
그러면 자신의 능력을 알아보고 귀족이 되었을 때도 다들 친하게 지내려고 할 게 분명했다.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찢어질 정도로 좋았는지 라자크의 입꼬리는 광대까지 치솟아 있었다.
“왜 그래? 그리 좋은 이야기가 쓰여 있나?”
“아니, 아직 안 읽었어.”
라자크는 그제야 서신을 읽었다.
처음에는 여유 있게 웃으면서 읽던 라자크였지만, 이내 표정이 굳더니 끝까지 읽었을 때는 그 가는 턱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왜, 왜 그러나?”
그 급격한 변화에 정보상까지 긴장하며 물었다.
“크, 큰일 났어! 큰일 났다고! 나 이만 간다.”
라자크는 호들갑을 떨더니 금방 사라져 버렸다.
심지어 서신까지 내팽개친 채였다.
“이거 챙겨 가야지.”
그렇게 말한 정보상은 서신을 집어 들고 내용을 읽었다. 서신의 봉인을 떼면 안 되지만, 봉인을 떼 놓고 놔둔 건 자신더러 읽어도 된다고 한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서신을 읽은 정보상은 헛웃음이 나왔다.
“이럴 수가. 세상일이 예측대로 안 돌아간다더니, 딱 이럴 때 쓰는 말이군.”
어제는 용사가 참전해서 전황이 우세한 걸 보고 전쟁이 조기에 종결될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 때문에 식량 가격이 폭락할 거라는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서신에 적힌 상황은 반대였다.
동부 전선의 전황이 수도에 도착하자 수도가 뒤집혔다.
다들 용사가 나선 이상, 전쟁이 조기 종결이 될 거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했다.
문제는 그 후에 예상 밖의 움직임이 나타났다는 거였다.
전쟁을 주도하고 있던 왕당파의 귀족 중에서 아직 참전하지 못했던 이들이 급하게 출전했다.
심지어 귀족파의 귀족들까지 소수나마 가문의 병력을 보냈다.
승리가 확실시되기 전에, 작은 거라고 하지만 공을 세우고자 하는 거였다. 그게 아니라도 최소한 참전했다는 기록이라도 남기려는 거였다.
그렇게 허겁지겁 병력을 보내다 보니 당연히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 이유에서 식량 시세가 최소 열 배 이상 폭등할 것으로 예상되니 참고하라고 서신에 적혀 있었다.
정보상은 혀를 끌끌 찼다.
“최소 열 배가 예상된다니. 네 배 가격으로 팔았다고 하면 라자크의 목숨도 위험하겠어.”
50만 골드가 투자금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50만 골드로 매입한 물건을 2백만 골드에 팔았다면 무려 400%의 수익률.
하지만 이 귀족들은 최소 5백만 골드를 벌어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라자크가 2백만 골드를 벌었다고 해 봤자 안 먹힌다. 오히려 라자크 때문에 3백만 골드를 손해 봤다고 여길 게 분명했다.
3백만 골드 대신 모든 재산을 내놓으라고 하면 다행이고, 화나서 죽여 버릴지도 몰랐다.
억지 부리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라자크의 투자자들은 하나같이 귀족.
그 위세를 빌어 강제로 매집해 왔던 게, 이제는 반대로 독으로 작용하게 된 거였다.
한편 라자크는 아직 포기한 건 아니었다.
분명 자신에게 식량을 사 갔던 아르칸이 아직 그 마을에 머물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시 사들여야 해. 네 배, 다섯 배를 준다고 하면 팔겠지.’
최소 열 배의 가격이 짐작된다고 했으니 능력껏 그 이상으로 팔기만 하면 이 상황을 모면하는 게 가능했다.
마침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아르칸이 보였다.
라자크는 숨을 가라앉히고, 최대한 태연한 얼굴로 물었다.
“나와 계셨군요. 지금 많이 바쁘십니까?”
“아니, 한가하네. 슬슬 떠나려고 했거든.”
“마침 떠나기 전에 와서 잘됐네요. 실은 제가 여기 주민들이 굶은 거 생각하니 뒤늦게 마음이 아파서 말입니다. 판매한 식량을 제가 다시 매입하고 식량 나눠 준 건 제가 공짜로 나눠 준 거로 하겠습니다.”
아주 급박한 상황에서도 최대한 이득을 보기 위해 거래 전 상황으로 되돌리려고 한 거였다.
“오, 정말?”
“네, 그리하시겠습니까?”
“그 전에 나도 한번 물어봐야겠네. 무슨 이유로 팔았던 식량을 되살려고 그래?”
아르칸에게 물었던 것처럼 질문을 받게 된 거였다.
당연히 식량 가격이 폭등할 거라고 그대로 말할 수는 없으니 변명을 했다.
“실은 제가 몰랐는데 다른 지역의 식량은 이미 판매 계약이 되어 있다지 뭡니까. 저 혼자 하는 일도 아니라서 확인해야 했는데, 양해 부탁드립니다. 안 그랬다가는 아주 큰 위약금을 내야 해서요.”
아르칸은 거짓말인 걸 간파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사정은 알았고. 그럼 얼마나 더 낼래?”
“네?”
“위약금 내기 싫어서 다시 사들이려고 하는 건데, 팔았던 가격 그대로 사려고?”
“그, 그건…….”
라자크는 당황하면서도 속으로는 욕심쟁이라고 욕했다.
한편으로는 아르칸의 말에 조금 안도했다.
일단 저런 요구를 한다는 거 자체가 자신에게 되팔 여지가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괜히 어설프게 흥정해서는 안 돼. 아르칸이 했던 것처럼 크게 질러야지.’
결심한 라자크가 말했다.
“원래 매입가의 다섯 배. 다섯 배를 드리겠습니다.”
며칠 사이에 약 50만 골드를 버는 셈이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도린이 깜짝 놀랐다.
“괜히 그 많은 돈을 들고 있는 게 아니었어. 돈은 이렇게 버는 거구나.”
하지만 아르칸은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에이, 위약금이 그것밖에 안 될 리가. 좀 더 쓰지?”
“……그럼 여섯 배?”
아르칸이 고개를 저었다.
“일곱 배? 이런 날강도…….”
매입가 49만 골드의 일곱 배면 무려 343만 골드를 달라는 말.
라자크가 버럭 화를 낼 만도 했다.
그러나 정작 아르칸은 씩 웃으며 말했다.
“싫으면 말든가. 살 돈 있으면서 안 사면 누가 곤란할까?”
그 말을 들은 라자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거 같았다.
라자크가 여러 귀족한테 긁어모은 자금이 대략 2백만 골드.
매입하는 데 대략 49만 골드를 쓰고, 그걸 팔아서 얻은 돈이 대략 196만 골드.
그 둘을 합치면 대략 일곱 배인 343만 골드가 나오는 거였다.
‘설마 어제 잠시 본 장부로 파악한 건가?’
정말이었다.
아르칸이 직접 분석해서 파악한 건 아니었지만, 게티아가 따로 정리해 둔 항목에 있었다.
‘아르칸은 무조건 그만큼은 뜯어내려는 게 분명해.’
그만큼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투자한 귀족들의 예상보다 훨씬 싸게 팔아 치웠다는 게 귀에 들어갔다가는 목숨이 위험할 테니까.
라자크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최소 열 배니까. 그 이상은 충분히 팔 수 있을 거야.’
계산해 보니 최소 매입가의 열세 배로 팔면 귀족들이 기대하고 있는 수익은 충분히 나올 거 같았다.
“싫으면 관둬.”
“아, 알겠습니다. 일곱 배에 매입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라자크의 말에 용병들이 화들짝 놀랐다.
“아니, 네 배에 팔아 놓고 왜 또 그걸 일곱 배로 사는 거요?”
“다 이유가 있으니까. 조용히 하고 골드나 가지러 가자.”
라자크는 밖으로 나오면서 용병들에게 설명했다.
지금 용사가 전장에 나타나서 귀족들이 잔뜩 몰려와 식량값이 폭등할 직전이라고 말이다.
“아, 그렇군. 참 장사가 쉽지 않단 말이야.”
용병은 납득하고 금화 상자를 수레에 싣다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우리 보수를 못 주는 일은 없겠지?”
“너희 소개해 주신 분들의 면을 봐서라도 돈은 줄 테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마.”
“그래야지.”
라자크의 대답에 용병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라자크는 금화 상자를 잔뜩 들고 아르칸에게 돌아갔다.
가니까 일전에 사라졌던 용병처럼 보이는 청년이 돌아와 있었다.
‘금화를 지키기 위해서 부른 건가. 그리 강해 보이지 않은데.’
라자크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거래를 마치고 아르칸과 헤어졌다.
‘이제 이걸 어떻게 비싸게 팔지 고민해야지. 열세 배가 뭐냐. 열다섯 배, 스무 배는 넘게 팔아 치워 버릴 거야!’
다시 식량을 되산 라자크는 의욕이 넘쳤다.
하지만 다음 날 찾아온 정보상의 말에 라자크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한창 전장에서 활약하던 용사가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는 게 아닌가?
곧바로 전세는 역전되어서 전선이 원래대로 밀려난 데다, 뒤늦게 전장을 향해 출발했던 기사단들도 소식을 전해 들고 회군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했다.
당연히 식량도 필요 없었다.
식량으로 폭리를 취하려던 라자크에게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라자크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주저앉았다.
“마, 망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