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85
85화 되로 주고 말로 받기 (4)
아르칸은 마차를 타고 다시 드워프 왕국으로 출발했다.
마을 주민들은 아르칸의 베풂에 감사해하며 머무는 동안 도와줄 일이 있는지 묻거나, 오랜만에 얻은 식량으로 자신들만의 특제 요리를 만들어 오거나 했다.
굶주림에서 벗어난 아이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꽃 왕관을 만들어 왔고, 아끼던 예쁜 잡동사니 같은 걸 선물이랍시고 가지고 오기도 했다.
그렇게 훈훈하게 지내다 보니 아르칸과 도린이 떠날 때도 마을 주민들이 모두 나와서 배웅했다.
“다들 잘 있어. 그래그래, 다음에 또 놀러 올게.”
도린은 마차 밖으로 손을 흔들면서 아르칸에게 말했다.
“너도 가만히 있지 말고 손 좀 흔들어 줘라.”
“이미 흔들고 있거든.”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지!”
도린은 그러면서 더욱 힘차게 자신의 손을 흔들었다.
용사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자신이었다면 있는 식량을 나눠 주고, 필요하다면 가진 돈을 털어서 식량 조금 사서 주는 게 전부였을 텐데.
지금은 다음 수확 때까지 버틸 식량이 넉넉한 탓에 다들 웃음이 가득했다.
코앞의 배고픔만 가시게 한 게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 품게 해 준 거였다.
“그러고 보니 용병들이 안 보이네. 다 어디 갔어? 작별 인사도 못 했는데.”
“용병들?”
“네. 아르칸이 어디서 갑자기 데려왔어요. 용병답지 않게 다들 착하고 일 잘했는데. 마음 같아서는 장기로 고용하고 싶을 정도.”
‘그 말을 들으면 용아병들이 기뻐하겠는데.’
아르칸은 내심 그렇게 생각하며 대꾸했다.
“일이 다 끝나서 돌아갔지. 그 친구들 몸값 비싸거든.”
“치, 돈도 많으면서. 맞다. 이번에 얼마나 번 거야?”
“147만 골드.”
아르칸의 말에 도린이 탄성을 내뱉었다.
“크으, 대박이네. 앉은자리에서 사고팔고 해서 150만 골드를 벌어?”
그거야 미리 주가를 보고 주식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이거야말로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셈이지.’
소설에서는 용사가 라자크에게 성검을 되찾는 과정에서 로버른에게 도움을 받는데, 그 보답으로 로버른과 함께 전선으로 향한다.
용사가 나선 것만으로 전세가 왕국군 쪽으로 확 기울어 금방이라도 승리할 것 같았다.
문제는 그 소식이 수도로 전해지자 수많은 귀족이 승전이 확실한 전투에 숟가락 얹기 위해 나섰다는 거였다.
덕분에 후방이 식량 부족으로 난리가 나서 물가가 폭등했다며 로버른이 곤란해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용사는 자신 때문이라며 자책하고는 편지 한 장을 남겨 놓고, 혼자 훌쩍 마계로 떠났다.
그러자 다시 전세는 팽팽해졌고, 전국에서 달려오던 귀족과 기사들은 대부분이 갑작스레 아프다든가, 급한 일이 생겼다든지 하는 핑계를 대며 되돌아갔다.
그걸 아는 아르칸이 용사를 거래 상황에 맞춰 움직이게 한 거였다.
한편 아르칸의 말을 들은 용사는 입을 떡하니 벌렸다.
“내가 잠깐 싸우고 온 사이에 그만큼 벌었다고?”
“좋은 일도 하고 돈도 벌고 이보다 더 수지맞는 일이 어디 있겠어?”
“그건 그렇군.”
용사는 실없이 웃더니, 먼 곳을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어제까지 있던 전장 쪽이었다.
‘다들 잘 싸우고 있는지 걱정되나 보네.’
용사가 혼자 다니려고 하는 건 마음이 여려서가 컸다.
한번 함께 싸웠던 이들이 자신이 빠졌다는 이유로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견디기 힘든 거였다.
‘여신은 왜 대체 이런 녀석을 용사로 소환한 거지.’
용사를 볼 때마다 여신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뒤에서 말을 탄 무리가 이쪽으로 빠르게 달려오며 소리쳤다.
“멈춰라!”
“죽기 싫으면 가진 거 모두 내놔라!”
“뭐야? 또 강도야?”
이미 열차 강도(?)에게 두 번이나 당한 도린이 투덜거렸지만, 아르칸은 예상한 일이었다.
‘음, 역시 그냥 안 넘어가는군.’
저들은 분명 라자크가 보낸 용병.
소설 속 라자크가 자신에게 성검을 맡긴 용사를 습격해 성검을 차지하려 했듯이, 궁지에 몰리자 거금을 들고 있을 아르칸을 공격해 뺏으려는 거였다.
“아니요. 저 콧수염을 보니 처음에 봤던 용병입니다.”
용사도 용병인 걸 확인해 줬다.
심지어 보통 실력이 아닌 듯 그 콧수염을 비롯해 그 뒤의 셋이나 검신에 오러를 두르고 있었다.
용사의 오러 블레이드와는 비교도 미안한 종잇장 수준에 불과했지만.
“나리, 어, 어쩝니까?”
마부가 놀라서 묻는데 아르칸이 말했다.
“용사가 나가서 정리하고 와.”
“뭐? 네 부탁대로 움직이는 거는 끝났거든.”
“머리가 복잡할 때는 몸을 움직이는 게 좋아서 그래.”
“치, 핑계는.”
용사는 투덜대면서도 그대로 마차 밖으로 튀어 나가더니 용병들을 순식간에 박살 냈다.
별다른 호위병이 없는 걸 보고 만만하다고 여겼던 용병들은 그야말로 날벼락.
라자크는 용병들이 아르칸을 터는 데 실패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재빨리 도망쳤다.
물론, 그에게 투자한 귀족들은 눈에 불을 켜고 라자크를 잡아 족치려고 할 건 분명했다.
“자, 그럼 이제 드디어 드워프 왕국으로 가겠구나.”
아르칸은 저 멀리 드워프 왕국이 자리 잡고 있다는 칼더 산맥을 바라봤다.
***
“생각보다 머네…….”
아르칸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저 멀리 칼더 산맥은 보이긴 했지만, 한참을 가도 그대로였다.
그만큼 거대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산 끝자락부터 길이 험해서 마차가 들어가기 힘들었다.
용사가 마부에게 수고비를 주며 마차를 돌려보낸 후, 도린을 선두로 칼더 산맥을 올라갔다.
모두 신체 능력이 뛰어난 만큼 빠르게 움직였음에도 금방 어두워졌다.
어두워진 하늘처럼 도린의 얼굴도 어두웠다.
드워프 왕국의 상황을 떠올리면 돌아가는데도 마음이 무거워서였다.
한참을 걸어가던 아르칸이 말했다.
“오늘은 여기서 노숙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
라이트 마법으로 밝히고 있긴 했지만, 구름이 달까지 가리면서 사방이 깜깜했다.
그제야 도린이 아차 싶었는지 용사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올라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아래에서 하룻밤 자고 출발했어야 했는데, 제가 딴생각을 하느라…….”
“아니, 괜찮습니다. 이대로 올라가도 상관없습니다.”
“야, 드워프 경비병들도 좀 생각해야지. 이대로 새벽에 불쑥 도착하면 다들 얼마나 놀라겠어.”
“아, 그런가? 내가 생각이 짧았군.”
‘어? 저게 왜 저러지?
용사를 타박했던 아르칸은 순간 당황했다.
분명 투덜거릴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아, 용사님만 괜찮으시면 이대로 올라가죠. 왕성 근처에 도착하면 아마 새벽 무렵이라 괜찮을 겁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그걸 보며 아르칸이 물었다.
“나는 괜찮은지 왜 안 물어봐?”
“올라가도 괜찮아?”
“이거야 원, 엎드려 절받기네.”
“엎드려 절? 뭐?”
“아니, 그런 게 있어. 그보다 가자.”
그러고 다시 출발하는데, 문득 생각났는지 용사가 물었다.
“근데 드워프 왕성은 산속에 있는 거 아닙니까?”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판타지 소설 속 대부분의 드워프 왕국은 거대한 산맥 속 지하를 파서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말에 도린이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아, 옛날 책이라도 보신 겁니까? 마신 전쟁 이전에는 왕국이 지하 동굴에 있다고 저도 들었습니다만. 마왕성이 죄다 지하에 있다 보니 마왕으로 오해받지 않기 위해 지상에 다시 건설했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용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르칸은 힐끗 노려봤다.
’아니, 왜 날 노려봐? 내가 마왕성을 지하에 지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아르칸은 억울했지만, 마왕인 걸 숨기고 있던 참이라 입을 꾹 다물고 따라갔다.
한참 뒤 험준한 산맥에 세워진 높은 성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이 옆으로 가면 성문이 나올 겁니다.”
설명하는 도린에게 아르칸이 물었다.
“이런 험한 산맥에 이 정도로 높은 성벽이 필요해?”
“글쎄, 내 생각에는 선조들이 만들 수 있으니까 만들었을 뿐인 거 같은데.”
“한마디로 기술력 자랑이라는 건가.”
그거라면 이해가 갔다.
성문에 도착할 때쯤 되니 다행히 하늘이 순식간에 새파래지며 새벽이 됐다.
굳게 닫힌 성문을 보며 도린이 크게 외쳤다.
“도린이 돌아왔다! 성문을 열어라!”
“…….”
귀가 따가울 정도로 큰 소리였지만, 성벽 위는 조용했다.
아르칸과 용사는 무슨 일인지 몰라 조용히 있는데, 도린이 얼굴을 붉히며 다시 외쳤다.
“도린이 돌아왔다!! 성문을 열어라!!”
“…….”
그러나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용사가 걱정 어린 얼굴로 조용히 물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 아닐까요?”
“아, 아닐 겁니다.”
도린은 식은땀을 흘리며 이번에는 도끼로 성문을 부서져라 쾅쾅 내려치며 소리쳤다.
“야!! 그만 일어나!!”
얼마 뒤, 위에서 짜증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새벽부터 어떤 자식이 시끄럽게 해?”
“도린이다. 문 열어라!”
“뭐? 누구라고?”
“도린이라고!!”
“어엇, 도린 님?”
그제야 성벽 위가 소란스러워졌다.
“어이, 일어나! 도린 님이 돌아왔대.”
“뭐? 돌았냐고? 이 자식이 말 다 했어?”
“이 자식 술이 덜 깼네. 그게 아니라 도린 님이 돌아왔다고.”
“뭐? 뭐 해? 어서 문 열지 않고!”
저 위에서 들리는 소리에 도린은 창피함에 얼굴을 들지 못했다.
누가 봐도 성벽 위에 있던 드워프들이 경계는커녕, 술을 퍼마시고 자고 있던 게 분명해서였다.
그 분위기를 눈치챈 아르칸과 용사는 아무 말 없이 잠자코 있었다.
잠시 후.
거대한 성문이 열리고 시뻘건 코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드워프들이 마중 나왔다.
멀리서도 술 냄새가 나는 게 술통에 빠졌다가 나왔다고 해도 믿길 정도였다.
경비대장 드워프가 뒤통수를 긁으며 변명했다.
“도린 님, 돌아오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새벽이라…….”
“크흠, 그래.”
도린은 화가 났지만, 손님들 앞이라 꾹 참았다.
“내가 돌아왔다고 아버지께 알렸나?”
“아, 그게……. 지금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아무래도 정신없는 와중이라 깜빡한 모양이었다.
“그럼 됐다. 지금 가도 주무시고 계실 테니, 좀 쉬었다가 찾아가겠다.”
“아, 그러시겠습니까? 그럼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자, 빨리 잔칫상 차리고 최상급 술통도 하나 가져와!”
“됐어. 나 술 끊은 거 잊었나?”
“아, 그랬죠. 근데 옆에 손님들도 안 드십니까?”
“괜찮습니다.”
“나도 술 안 마셔.”
용사와 아르칸이 곧바로 대답했다.
마시고 싶어도 마신다고 하면 안 될 분위기였다.
그걸 보고 경비대장이 피식 웃었다.
“도린 님답게 이런 재미없는 분들을 다 모시고 오셨네.”
“야!”
“이런, 그럼 편히 쉬십시오. 헤헷.”
경비대장 드워프는 실실 웃으면서 사라졌다.
도린은 한숨을 내쉬더니 꾸벅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이것들이 손님들한테도 버릇없이 굴다니…….”
“아니요. 허물없이 지내는 거 같아서 보기 나쁘지 않은데요.”
용사는 손사래 쳤다.
“괜찮으시면 제가 자주 가는 식당으로 모시겠습니다. 햄이랑 치즈를 아주 기가 막히게 만드는 곳이죠. 따뜻한 수프도 먹을 수 있고요.”
“좋네요. 그럼 안내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고 식당으로 가는데, 야외에 앉아서 자고 있는 드워프들이 보였다.
대부분 근처에 술병을 안고 자거나 커다란 술잔을 쥐고 있는 거로 봐서는 밖에서 마시다가 잠든 듯했다.
식당 안도 마찬가지.
바닥이며 테이블이며 쓰러져 있는 드워프들이 많았다.
다행히 빈자리가 하나 있었다.
도린은 거기에 앉아 있으라고 하더니 요리를 주문하겠다고 잠들어 있는 주인아저씨를 흔들어 깨웠다.
“드워프들이 술을 좋아한다는 건 알겠는데, 생각보다 과한 거 같은데.”
“그러게. 도린이 금주하는 게 저 꼴이 싫어서 같네.”
도린은 불공정 조약에 고통받는 드워프 왕국을 부흥시킬 방법을 찾으러 나왔다고 했었다.
‘부흥시킨다는 말에 드워프 왕국 상태가 안 좋을 거라고는 짐작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잠시 후.
도린은 커다란 쟁반에 여러 가지 햄과 치즈, 빵과 말린 과일까지. 다양한 음식을 올린 걸 직접 들고 왔다.
“자 자, 마음껏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
그 말을 끝으로 다들 조용히 음식을 들었다.
도린도 햄을 먹으려다가 대뜸 말했다.
“이런 꼴을 보여 주고 싶지는 않았는데, 너무 실망스럽지요?”
“…….”
용사는 아니라고도 못 하고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대답을 바랐던 게 아니었는지 도린은 침울한 얼굴로 어떻게 됐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술.
그놈의 술이 문제였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