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86
86화 드워프 왕국에서 (1)
드워프 왕국과 셀레스티온 왕국이 맺은 조약은 누가 봐도 불공정했다.
칼더 산맥 아래는 모두 셀레스티온 왕국의 영토니, 드워프 왕국 밖으로 나올 때는 모두 허가를 받으라고 했다.
그것까지는 이해한다고 치더라도 드워프가 셀레스티온 왕국 내에서 기사나 병사를 공격하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엄격히 처벌한다는 게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도 드워프들이 별다른 불만이 없는 이유는 단 하나.
셀레스티온 왕국에서 우호의 표시로 술을 보내오기 때문이다.
그것도 매달, 술통을 잔뜩 실은 수레 수십 대가 온다.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만 알지 정확히 어느 정도 인지는 드워프들도 몰랐다.
“확실한 건 술고래라고 일컬어진 드워프들이 아무리 마셔도 다 못 마시고 남길 정도로 많다는 겁니다. 다들 밤낮 가리지 않고 술을 마셔 대 나태해졌지요.”
한마디로 셀레스티온 왕국이 드워프 왕국을 술독에 빠트려 버린 거였다.
그 결과.
금방 봤듯이 성문을 지키는 경비병들조차 술에 취해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있었다.
무엇보다 조약이 유지되는 한 술 걱정이 없다는 이유에서 모든 드워프들이 조약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
“음, 그런 일이……. 그래도 수도에서 열심히 일하는 드워프분을 보긴 했는데요.”
용사가 일전에 아르칸이 했던 말과 똑같이 했다.
“손재주 있는 장인들은 혹할 만한 조건을 내세워 대부분 데려갔지요. 그래서 더욱 왕국이 이 꼴입니다.”
“그렇군요.”
착잡한 표정으로 토해 내듯 말하는 도린에게 용사도, 아르칸도 별다른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없었다.
아르칸도 직접 보기 전에는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소설에서 용사는 선대 용사의 동료 중에 드워프가 있다는 이유로 예의상 잠깐 이곳에 들른 게 전부.
곧장 지하를 탐험하고 다시 마계로 향했기에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그나저나 이러니 도린이 술을 끊지.’
아무리 술을 좋아하더라도 술 때문에 나라가 망가진 걸 보면 술맛이 떨어질 게 분명했다.
그때 바깥이 소란스럽더니, 한 무리의 드워프가 들이닥쳤다.
드워프 왕국군인 듯, 성문 경비병들보다 더 화려한 갑옷을 입고 있었다.
“도린 님! 정말 돌아오셨군요!”
선두에 선 드워프가 도린을 보고 불렀다. 도린도 그 드워프를 보며 웃으며 반겼다.
“쿠르단! 자네가 올 줄이야. 오랜만이다.”
성문 경비병들이 그래도 도린이 왔다고 연락한 모양이었다.
“그동안 걱정이 많았는데, 무사히 귀환하셔서 다행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지만, 국왕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 어서 가자.”
도린은 그렇게 말하고는 용사와 아르칸을 돌아봤다.
“죄송합니다만, 지금 가 봐야겠습니다. 이거 제가 떠든다고 먹지도 못했군요.”
“괜찮습니다.”
“그래, 가면 더 대접해 줄 거 아니야?”
“뭐, 틀린 말은 아니지. 그럼 가자.”
아르칸의 너스레에 도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왕성도 아주 크고 웅장했다.
드래곤이 들어가 살 수 있을 정도.
‘이 정도 만들 수 있으니까 드워프들을 납치해 다가 일을 시키나 보네.’
아르칸은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 장식도 아주 고풍스럽고 화려했는데, 다만 구석구석에 술통이 나뒹굴고 있었다.
성안을 오가는 이들도 하나같이 알딸딸하게 취한 듯했다.
그건 아르칸을 데리러 온 드워프 쿠르단은 물론.
심지어 드워프의 왕 스루쿤도 마찬가지였다.
“도린,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다. 그래, 이번에 손님들을 데려왔다고 들었다.”
정말 도린이 인간족 둘과 함께 왔다고만 아는 듯했다.
그래도 명색이 왕인데, 저렇게 정보에 어두울 수가.
안 그래도 스루쿤은 나이가 제법 됐는데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스루쿤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걸 파악한 도린이 나서서 말했다.
“할아버지, 이분이 용사님이십니다.”
“뭐라고? 정말이야?”
그제야 스루쿤은 눈을 크게 뜨고 용사를 쳐다보고는 허리의 성검을 바라봤다.
“저건 분명 성검을 넣기 위해 우리 아버지가 만든 검집. 정말이구나. 정말 반갑소, 용사님.”
스루쿤은 갑자기 반가워하며 왕좌에서 내려와 용사에게 두 팔을 벌리며 다가갔다.
용사는 꼼짝 못 하고 드워프의 두꺼운 팔에 안겨서 어색하게 웃었다.
“바, 반갑습니다.”
“도린, 왜 미리 알리지 않았나. 용사님은 이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나서 영웅. 그뿐 아니라 우리 선대의 동료였던 분의 후계자 아닌가. 미리 알았으면 국빈으로 모시고 환영 행사라도 열었을 것을.”
“죄송합니다.”
도린이 고개를 숙였다.
아르칸은 이해가 안 됐다. 아들이 그런 영웅인 용사를 데리고 온 것만으로 칭찬할 일이 아닌가?
안 그래도 용사는 혼자 다니지 않는 거로 유명했다.
최근 도린과 함께 다닌 것만으로 저 드워프는 누구지? 하며 주목받았을 게 분명했다.
그때 스루쿤이 아르칸을 쳐다봤다.
“용사님 옆의 인간분은 누구시냐?”
“어, 그게…….”
도린이 당황스러웠다.
아르칸에게 구해지고부터 여기까지 오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함께 겪었지만, 막상 뭐라고 소개하면 좋을지 몰라서였다.
그 고민은 아르칸이 해결해 줬다.
“아르칸이라고 합니다.”
“그게 전부인가? 혹시 용사님의 동료…….”
“아니요.”
“아닙니다!”
아르칸이 아니라고 하는데, 용사도 나서서 부정했다.
스루쿤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옆에 있던 시종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럼 뭐…… 그보다 뭣들 하느냐? 용사님을 모시지 않고.”
“네, 네.”
드워프들이 용사에게 달려들어 시중을 들었다.
왕의 의중을 어찌나 잘 아는지 아르칸은 완전히 무시하는 상황.
“음?”
“어, 어.”
그걸 본 용사는 물론, 도린까지 당황했다.
아르칸은 피식 웃으면서 도린에게 말했다.
“난 저런 대접 안 받아도 되니까. 브롬에게 안내해 줘.”
“아, 그렇지. 바로 가자.”
스루쿤은 이미 용사와 함께 사라진 뒤라 더 있을 필요도 없었다.
브롬은 아르칸이 도린에게 용사를 소개해 주면서 소개받기로 약속한 드워프.
도린에게 말은 안 했지만, 브롬은 오웬의 손상된 마심장을 인공 마심장으로 바꿔 줄 기술자기도 했다.
아르칸은 도린의 뒤를 따라 접견실을 나와 왕성 밖으로 나왔는데, 골목길로 들어갈수록 취해서 너부러져 있는 드워프들이 잔뜩 보였다.
앞장선 도린은 그들을 못마땅한 눈으로 슬쩍 보더니 발걸음을 빨리했다.
그러더니 슬쩍 아르칸에게 물었다.
“……방법이 없을까?”
“응? 무슨 소리야?”
“지금 우리 왕국의 상황을 바꿀 방법이 있겠느냐고.”
아무래도 돌아와 드워프 왕국의 상황을 다시 보니 갑갑한 모양이었다.
“뭐야? 용사에게 무기도 만들어 주고, 동료가 되어서 드워프 왕국의 입지를 높인다며? 그걸 바탕으로 셀레스티온 왕국과 조약을 재협상한다는 계획 아니었어?”
“그 생각으로 왕국을 뛰쳐나오긴 했는데 아무래도 그것만으로는 안 될 것 같군. 솔직히 말해서 용사님이 직접 나서도 안 될 것 같다.”
“그건 그래.”
아르칸이 보기에도 그 방법으로는 답이 없었다.
“이 자식이…… 그래서 너는 어떻게 생각해? 네가 보기에도 정말 방법이 없어? 절대 이 지옥에서 못 벗어날까?”
“절대라는 건 없지.”
“그럴 줄 알았어. 너라면 뭔가 방법을 궁리할 줄 알았다. 뭔데? 어서 알려 줘.”
희망을 품은 도린의 재촉에 아르칸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별로 마음에 드는 방법은 아닐 텐데.”
“뭔데 그래?”
아르칸은 발걸음을 멈추고, 누가 들을세라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들은 도린의 안색이 굳었다.
“그, 그런…… 그렇게까지 해야 한다고?”
“이게 싫으면 내부에서부터 개혁하는 수밖에.”
“음, 안 들은 거로 할게.”
“뭐, 네가 선택할 일이니까. 그보다 브롬의 공방은 아직 멀었어?”
“……안 그래도 거의 다 왔다.”
그렇게 도착한 공방은 허름해 보였다.
아르칸은 그 공방 안으로 들어가면서 길리암의 연구실을 떠올렸다.
‘왜 내가 찾아가는 곳은 죄다 이렇게 허름할까?’
***
“오! 도린? 돌아왔구나!”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대머리에 수염까지 짧게 자른 드워프가 도린을 맞았다.
아르칸은 드워프로서 희귀한 그 인상착의를 보자마자 브롬이라는 걸 눈치챘다.
브롬이 다른 드워프와 다른 건 외모뿐이 아니었다.
술을 안 마시는지 얼굴도 멀쩡했고, 공방 안에도 술통은커녕 허름할지언정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건 길리암과는 다르네.’
“이쪽 분은 누구신가? 네가 허투루 아무나 데려오진 않잖아.”
브롬이 아르칸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 안녕하세요. 아르칸이라고 합니다.”
“반갑소. 브롬이오.”
“아르칸이 네게 일을 맡기고 싶다네.”
도린의 설명에 브롬이 곧바로 흥미를 보였다.
“의뢰인가? 돈만 된다면 뭐든지 하지. 안 그래도 요즘 돈이 많이 필요하거든.”
“돈이라면 걱정하지 마. 이 녀석 아주 부자거든.”
“호오, 그래? 그런 거라면 절대 거절하면 안 되겠는데. 그래서 의뢰는 뭔가?”
“인공장기 이식.”
아르칸의 짧은 말에 사람 좋게 웃던 브롬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건 어디서 들었나? 브론, 네가 말했어?”
“뭘? 인공장기? 너 그런 걸 연구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음, 그랬지.”
“근데 인공장기는 왜 연구한 거야?”
“탈리와 마르긴이 아파서 앓아누운 거 알지?”
“어.”
“그거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래. 다른 드워프들도 마찬가지고. 점점 똑같이 아픈 드워프들이 늘어나고 있어.”
“그, 그 정도로 심각하단 말이야?”
“아주 심각하지. 아무리 드워프들이 술을 잘 마신다고 해도 그렇게 폭주하면 몸에 이상이 생길 수밖에 없어. 대부분 간에 문제가 생기는데, 상태가 심각한 경우 인공장기로 대체하는 수밖에 없을 거 같더라고. 그래서 연구하고 있었지.”
“그랬군. 꼭 필요한 연구인 거 같은데. 그것 때문에 돈이 필요했던 거야? 왕실에 지원해 달라고 해 봤어?”
“그래. 왕실에 슬쩍 이야기는 했지만, 관심이 없나 보더라고. 그보다 그쪽은 왜 인공장기 이식이 필요한데?”
도린과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던 브롬이 대뜸 아르칸을 쳐다봤다.
“내가 할 게 아니라, 고쳐 주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
“그래? 아주 소중한 사람인가 봐?”
“응.”
그 말에 심각하던 브롬의 표정이 풀렸다.
자신도 절친이 아픈 걸 고치려고 연구를 시작했던 것만큼, 동질감을 느낀 거였다.
그러나 브롬은 안타깝다는 얼굴로 말했다.
“도와주고 싶기는 한데, 당장은 무리다. 아직 연구가 다 안 끝났거든.”
“그래? 이거라면 도움이 될까?”
아르칸은 미리 챙겨 놓은 책 한 권을 내밀었다.
표지에는 호문쿨루스라고 적혀 있는, 버네르가의 둥지 속 보물 창고에서 얻은 책이었다.
“헛.”
제목을 보고 놀란 브롬이 책을 펼치더니 중얼거리면서 책을 빠르게 훑기 시작했다.
“이거였나. 오, 이거를 활용하면 되겠어. 이런 구조였을 줄이야. 지금까지 착각하고 있었군.”
순식간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브롬이 말했다.
“고맙네, 고마워. 이걸 참고하면 충분히 연구를 완성할 수 있겠어.”
인공 마심장 기술자 중 하나가 호물쿨루스라는 인공생명체를 만드는 방법이 많이 도움이 됐다고 해서 챙긴 거였는데, 확실히 도움이 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봐도 잘 모르지만.’
“아르칸, 잘됐다.”
도린도 기뻐해 줬다.
그때 브롬은 미안해하며 말했다.
“다만, 더 필요한 게 있는데…….”
“리젠라이트가 필요하지?”
“어, 그걸 어떻게 알았지?”
“거기에 쓰여 있던데? 생명체의 재생력을 강화해 주는 효과가 있는 돌인데, 이식한 장기를 신체에 정착시키려면 필요하다고.”
“그거라면 최상급 회복 포션에도 들어가는 거잖아.”
도린도 들은 적이 있는지 아는 체했다.
“맞아. 근데 지금 가진 게 하나도 없어. 아니, 시중에 유통되는 게 하나도 없을 거야.”
“어, 왜? 분명 여기 칼더 산맥에서 나오는 거잖아.”
놀라는 도린에게 브롬이 씁쓸한 얼굴로 설명했다.
“나오긴 하지. 예전에는 드워프들이 정기적으로 탐험해서 캐 왔는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잖아.”
“아.”
그제야 왜 그런지 깨달은 도린이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종일 술만 퍼마시며 아무것도 안 하니, 다칠 일도 없다.
다칠 일이 없으니 치료할 일도 없는데, 굳이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 곳으로 탐험하려는 드워프가 있을 리 없었다.
풀이 죽은 드워프들에게 아르칸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가서 캐 오면 되잖아?”
“위험할 텐데.”
“괜찮으니까, 허락만 맡아 줘.”
물론, 내부에 아주 위험한 몬스터가 있긴 했다.
‘하지만 어떤 몬스터가 있는지 아는 이상 충분히 대처할 방법이 있지.’
잠시 후.
지하 탐사를 위해 국왕께 허락을 받으러 간 도린은 오히려 타박을 들었다.
“아니, 손님에게 지하 탐험을 시키려고? 안 된다.”
아르칸이 퇴짜를 맞는 걸 보고 용사가 끼어들었다.
“지하 탐험입니까? 흥미가 생기는군요. 한번 가 봐도 되겠습니까?”
“이런, 용사님답게 마음씨가 참 고우시군요. 괜찮습니다. 저희 전사들을 보내면 되니까요.”
극진한 접대에 부담스러워하던 용사는 빠져나갈 구실이라고 생각했지만, 실패했다.
“아, 감사합니다.”
한편 도린은 아버지가 병력을 내줄 줄은 예상 못 했는지 기뻐했다.
한편 아르칸은 씁쓸한 표정이 됐다.
‘상황이 이렇게 바뀌었는데도 역시 소설대로 흘러가는 건가?’
소설에서는 드워프 왕국에 온 용사가 브롬의 딱한 사정을 듣고 지하 탐사에 나서려고 한다.
다만 지금처럼 용사는 국왕의 만류로 못 가는데, 탐사 중에 드워프들 몇이 크게 다쳤다.
그 일로 아주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있으니까.’
아르칸은 이 기회에 용사의 멘탈을 지키고 보물(?)을 얻을 작정이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