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88
88화 드워프 왕국에서 (3)
소설에서 브롬은 인공 마심장 이식수술을 할 수 있는 기술자 중 하나로 언급된다.
하지만 갓 연구를 마친 상태로 오웬을 시술하도록 할 생각은 없었다.
브롬 역시 폭음으로 인한 간부전증에 걸린 친구들을 구하는 게 목적이었던 만큼, 친구들에게 가장 먼저 인공 간 이식을 시행할 생각이었다.
“리젠라이트, 오랜만에 보는군.”
브롬은 자신의 떨리는 손 위에 올려진 영롱한 초록색 빛을 발하는 돌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도린, 가져온다고 고생했네.”
“고생은 뭘. 용사님이 안 계셨으면 꼼짝없이 죽었을 거야. 아르칸도 도와줬고. 맞다, 아르칸 너는 왜 갑자기 사라졌어?”
“내가 거기 있으면 귀찮은 일이 많이 생길 거 같아서. 용사는 용사님이다 보니 멋대로 들어가도 뭐라고 하지 못할 테지만. 나는 또 모르잖아?”
“하긴 그렇긴 하지.”
도린은 씁쓸한 얼굴로 납득했다.
나중에 지상에서 만났을 때, 용사도 그 말에 별소리를 못 했다.
‘거기에 더 신경 쓸 여지도 없었겠지만.’
지하 광산 속에 들어갔던 탐험대가 락트롤 무리에게 공격당해 몰살당할 뻔했다는 소식은 금방 드워프 왕국 전역에 퍼졌다.
당연히 드워프 국왕은 그 보고를 받고 화를 내면서도 아들의 무사 귀환에 안도했다.
무엇보다 용사에게 연신 감사를 전하며 머무는 내내 연회를 열어 용사의 영웅적인 행동을 기리며 건배할 거라고 했다.
당연히 왜 들어갔는지도 추궁하지 않았다.
한편 도린은 자신의 귀환에 안심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그간의 앙금이 조금 풀리는 듯했지만, 이내 연회를 열어 건배한다는 말에는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용사에게 구원받은 고마움과 별개로 이 일을 핑계로 또 거하게 술판을 벌일 마음이 가득한 게 보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것으로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까 바로 시술에 들어가야겠다.”
“뭐? 바로?”
“그래, 네가 리젠라이트를 가지러 가는 중에 시술 준비를 모두 마쳤거든. 탈리도 저 안에 누워 있어.”
“성질 급하기는. 어쨌든 무사히 성공했으면 좋겠다.”
“너무 걱정하지 마. 잘될 거야.”
아르칸이 위로해 주자 브롬이 피식 웃었다.
“이거 나는 긴장돼 죽겠는데, 잘될 거라니. 너무 속 편한 거 아니야?”
“그래도 덕분에 긴장은 좀 풀렸지?”
“어, 그건 그러네.”
브롬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살짝 떨리던 손이 어느덧 멈춰 있었다.
“그럼 조금 기다리고 있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으니까.”
브롬은 그렇게 말하고는 환자가 누워 있는 방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시술이 잘되기를 바랐지만 끔찍한 장면을 직관할 생각이 없었던 아르칸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용사와 도린은 긴장되는지 주변을 맴돌았다.
“정신 사나우니까 앉아 있어.”
“걱정되니까 그렇지.”
“걱정할 필요 없어. 특별한 일 없으면 성공할 테니까.”
자세한 방법은 모르지만, 가장 중요한 건 개복하자마자 빠르게 병든 간을 떼어 내고 인공 간을 붙이는 거였다.
그러고 나면 남은 부분은 호문쿨루스 제작에 쓰이는 것들과 리젠라이트가 해결해 준다고 했다.
잠시 후.
브롬이 나온 걸 본 아르칸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얼굴을 보니 성공했나 보네.”
“그래. 조금 더 두고 보는 게 좋지만, 금방 회복할 거 같아. 리젠라이트가 크게 도움이 됐다.”
“잘됐어. 이제 다른 드워프들도 치료할 수 있겠어.”
“응. 내일 오전에 바로 마르긴이랑 몇몇 지원자를 받아서 치료하려고.”
“그래, 국왕님이 아주 기뻐하실 거야.”
“그러고 나면 저 친구를 따라가서 치료해 줘야지. 어차피 추가로 인공 간을 배양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니까. 그사이에 다녀오면 될 거야.”
“아, 그렇지.”
도린이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 다음 시술을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니, 얼른 약속을 지키고 다녀오는 게 났다고 보는 거였다.
그러다 브롬은 한 가지 확인해야 할 것을 깜빡했다는 걸 깨달았다.
“맞다. 네가 치료 부탁한다는 사람은 무슨 장기를 이식해야 하는데? 이식할 장기부터 배양해야 할 텐데.”
“아, 그건 준비되어 있어.”
그 물음에 대꾸하면서도 아르칸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계속 숨길 수는 없다.
괜히 숨기고 갔다가 막상 시술할 때 못 하겠다고 드러누우면 곤란하니까.
그렇게 되면 절대로 굽히지 않는다는 드워프답게 목숨을 위협해도 싫다고 거절할 게 분명했다.
“그래? 어떤 건지 지금 한번 보여 줄 수 있나? 아니면 가서 봐야 하냐?”
“아니, 지금 보여 줄게. 이거야, 인공 마심장.”
아르칸은 아무렇지 않게 아공간 주머니에서 인공 마심장을 꺼내 보여 줬다.
“오, 이거 참 수준 높아 보이는 인공 마심장이로군……. 뭐? 인공 마심장?”
감탄하던 브롬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게 인공 마심장이라는 걸 깨닫고는 화들짝 놀랐다.
놀란 건 도린도 마찬가지였다.
“마, 마심장이라니. 누굴 치료하려는 거야?”
“마족. 그러니 마심장을 준비했지.”
“말장난은 그만하고, 네 정체를 밝혀라.”
“나? 마왕이야.”
그러자 도린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장난치지 말고. 너 마왕이 아니라 신용사잖아. 혹시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마족을 살려서 정보를 캐내려고 했던 거야?”
“아, 그렇게 둘러대면 됐었네.”
아르칸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브롬을 그렇게 속이기는 어렵다는 걸 진작 알고 있었다.
“그보다 신용사 그거 아니라니까. 진짜 마왕이야. 이거 봐.”
아르칸은 할루시네이션으로 가린 환영을 풀고, 뿔을 내보였다.
문득 마력이 높아져서 그럭저럭 보여 줄 만한 뿔이 생겨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냥 뿔도 환영으로 만들면 되니까 상관없나?’
그때 놀란 도린이 바로 옆의 용사를 보며 소리쳤다.
“요, 용사님! 이 자식이 마왕이랍니다!”
‘이런, 고자질하다니.’
당연한 게 따지고 보면 이 자리에서 아르칸을 확실히 해치울 수 있는 건 용사밖에 없었다.
문제는.
용사가 난처한 얼굴로 나직이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용사도 아르칸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거였다.
“아, 알고 있다고요??”
도린은 큰 충격을 받았는지 그대로 주저앉았다.
아르칸이 마왕이라는 것도 믿기지 않았지만, 용사가 그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다는 것도 믿기 어려웠던 거였다.
비교적 빨리 받아들인 건 브롬이었다.
“드워프 왕국 안에서 마왕인 걸 밝히다니, 마왕답게 오만하군.”
“널 여기서 속이고 데려가 봐야 시술을 거부할 테니까.”
“당연하지. 누가 마왕 따위의 의뢰를 받을까 보냐!”
분노한 브롬을 향해 아르칸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근데 이미 의뢰비는 받은 거 아니야? 선불로?”
“뭐? 아.”
브롬은 그제야 낭패한 얼굴이 됐다.
처음 아르칸의 의뢰에 인공장기 이식술이 미완이라고 거절했었다.
그런데 아르칸이 호문쿨루스 책을 줘서 연구를 완성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아르칸이 없었다면 이 연구는 아직 미완성으로 남았을 것이고, 친구를 고칠 수도 없었을 거다.
심지어 도린 말로는 이 리젠라이트를 구하는 데도 힘을 보탰고, 도린의 목숨까지 구해 줬다.
이미 의뢰비를 차고 넘치게 받은 셈이었다.
“이미 마신 술은 뱉어 낼 수 없다더니 딱 그 꼴이 됐군.”
“이거 저도 본의 아니게 속인 꼴이 됐군요. 죄송합니다.”
용사가 정중히 사과했다.
그러자 브롬이 혼란스러운 듯 이마를 짚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용사님이시니만큼, 무슨 사연이 있으시겠죠.”
그걸 본 아르칸은 감탄했다.
‘이 와중에도 용사가 한 짓이라고 선하게 해석하다니, 이것이 바로 용사 프리미엄인가.’
“그렇긴 합니다. 적어도 저 마왕은 다른 마왕과는 조금 다릅니다.”
“조금 다르다니. 섭섭한데.”
“죽기 싫으면 조용히 해.”
아르칸의 너스레에 용사가 버럭 화냈다.
한편 반쯤 넋이 나가 있던 도린이 중얼거리면서 일어났다.
“나, 나는 어쩌면 네가 신용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용사님보다 더 용사로서 어울린다고…….”
“계속 아니랬잖아. 그보다 여기서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다른 이도 아니고 용사 앞에서 용사보다 더 어울린다고 하다니.
현재 도린은 정말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했다.
그런 도린이 대뜸 물었다.
“혹시 우리 드워프 왕국더러 중립국이 되라는 것도 무슨 속셈이 있던 거였나?”
“중립국?”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난데없는 소리에 브롬과 용사가 놀라서 되물었다.
“여기가 이렇게 술독에 빠져서 엉망이 된 나라를 구할 방법이 없냐길래, 드워프 왕국이 중립국으로서 셀레스티온 왕국과 마왕 사이에서 줄타기해야 한다고 했지.”
“흠.”
아르칸의 설명에 도린처럼 문제를 느끼고 있던 브롬은 고민에 빠졌지만, 용사는 버럭 화를 냈다.
“아무리 그래도 드워프 왕국이 어떤 곳인데! 마왕과 손을 잡다니, 그게 말이나 돼?”
“내가 강제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내 의견을 말한 것뿐이야. ”
“크음.”
“원래 강대국 사이에 낀 나라의 운명이라는 게 다 그렇잖아. 너도 잘 알지 않나?”
아르칸이 물었다.
원래 세계에 살던 나라가 어떤 처지인지 되새겨 보라는 의도였다.
“…….”
용사도 그 의도를 알아챘는지 더는 나무라지 않았다.
아르칸은 여전히 화난 듯 보이는 도린에게 말했다.
“그리고 내 조언은 철저히 드워프 왕국 입장에서 한 거야. 나 좋다고 했으면 우리 아버지랑 손잡자고 했겠지.”
“아, 아버지?”
“서쪽의 바리스탄 대마왕이 우리 아버지거든.”
“너도 날 놀린 것치고는 보통 신분은 아니었군……. 그래서 거기에 있었구나.”
그렇게 중얼거린 도린은 다소 정신을 차린 듯했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심각한 표정이었다.
아르칸은 그런 도린은 내버려 두고, 브롬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쩔 거야? 싫다고 하면 억지로 데려가지는 않을게.”
인공장기 이식 기술자가 브롬만 있는 것도 아니라서, 굳이 목맬 생각은 없었다.
“아니, 의리 없게 이미 받을 거 다 받아 놓고 모른 척할 수는 없지. 대신 철저히 비밀로 해 줘. 이 일이 새어 나갔다는 드워프 왕국은 물론, 셀레스티온 왕국에서도 난리가 날 테니까.”
“그건 걱정할 거 없어. 내가 밝히기 전까지는 다들 마왕인 줄 몰랐잖아.”
“하긴…… 어쨌든 너만 믿는다.”
그렇게 브롬은 함께 가기로 결정했다.
절친인 마르긴까지 치료한 뒤, 인공장기 이식술은 브롬이 돌아오기 전까지 비밀로 하기로 했다.
이 일이 드워프 왕국에 퍼지면 한동안 소란스러울 게 분명했다. 다른 건 둘째 치고 브롬이 드워프 왕국 밖으로 나가는 것부터 불가능해질지도 몰랐다.
아르칸은 브롬에게 필요한 짐을 챙기라고 한 뒤, 아예 브롬을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다.
용아병들은 길리암과 달리 전혀 반발하지 않았다.
브롬은 아공간 주머니 내부를 보며 경악하면서도 저택의 위용을 보며 극찬해서 용아병들의 호감을 샀다.
‘늘 잔소리만 듣는 길리암과 달리 말이지.’
***
다음 날.
모든 용건을 마친 아르칸은 며칠 더 환대받아야 탈출할 수 있는 용사를 내버려 두고 먼저 떠나기로 했다.
오리할콘으로 용사의 무기를 만들고 있는 도린을 찾아가 작별 인사를 하는데, 도린이 대뜸 말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네 말이 맞는 거 같다.”
“왜 갑자기 생각이 변했어?”
“너랑 카퓨 산맥에서 여기까지 함께 오면서 여러 일을 겪었잖아. 너 같은 녀석이랑 손잡는 거라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거든.”
“그래?”
그럴 만한 행동을 했나 의문이 들지만, 상대방이 좋게 본다는데 딱히 정정해 줄 필요는 못 느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드워프 왕국이 중립국 선언을 쉽게 할 수는 없을 거야.”
“그건 네가 하기 나름이지.”
“그런가? 그렇겠지.”
도린은 뭔가를 깨달은 듯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
드워프 왕국을 나선 아르칸은 왔던 길로 돌아가는 것보다, 곧바로 한창 전쟁 중인 평야로 향했다.
거기 상황이 어떤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어서였다.
그러고 나서 제니칼 영역을 가로질러서 마왕성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평야의 양쪽 끝에는 각 진영이 새운 요새가 두 개 있었다.
평야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어 단번에 점령하기 어려웠던 탓에, 각 진영은 상대방의 요새를 점령하는 걸 목표로 했다.
하지만 어느 쪽도 성공하지 못하고 대치하고 있던 와중에, 용사가 잠시 참전했을 때 마왕군의 요새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고 들었다.
다만 오늘 와서 상황을 보니 그 후 도로 빼앗긴 모양이었다.
아르칸은 투명화한 채로 요새를 살폈다.
‘여기서 최대 화력으로 드래곤 브레스를 날리면 저 탑을 초토화할 수 있으려나.’
가능할 것 같긴 해도 지금 아르칸에게는 어느 쪽을 없애도 딱히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인간 쪽 요새를 공격하면 제니칼이 기세등등해질 테고, 전력을 돌려 아르칸을 공격하려고 나설지도 몰랐다.
반면에 제니칼의 요새를 초토화해서 곤란하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드래곤 브레스를 한 번만 쓰고 말 것도 아닌데, 나중에 공격한 게 밝혀지면 아르칸이 곤란해졌다.
‘일단 돌아가자. 돌아가면서 볼가를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무리겠지?’
이렇게 제니칼 영역으로 귀환하는 건 이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영역이 넓으니까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워낙 눈에 띄는 녀석이라 지나가면서 혹시 마주칠까 싶었기 때문이다.
‘저렇게 허연 게 돌아다니면 볼가인 게 분명하니까. 어? 저거 볼가잖아.’
평야를 나와 숲길을 걷던 아르칸은 눈을 비볐다.
정말 볼가를 발견한 거였다. 게다가 데시무스도 함께였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거의 10여 마리에 달하는 마족들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
‘흐흐, 어디 깜짝 놀라게 해 볼까?’
아르칸은 지켜보다가 곤란해할 때 나서려고 쫓아갔다.
‘자신만만하던 볼가가 고맙다고 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볼가와 데시무스는 한참 도망치다가 마족들에게 포위당했다.
데시무스가 돌부리에 넘어지자 볼가가 안고 뛰다 보니 따라잡힌 거였다.
누가 봐도 궁지에 몰려 빠져나갈 길이 없는 상황.
최후라고 생각했는지 볼가와 데시무스가 비장하게 대화를 나눴다.
그 대화를 듣던 아르칸은 화들짝 놀랐다.
‘아니, 둘이 언제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거야?’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