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94
94화 아르칸의 검 (2)
한편 대마왕 제니칼이 아르칸 마왕성으로 보낸 마왕들은 느긋하게 이동 중이었다.
이번 사신단의 총책임자인 마왕성 랭킹 93위 곰 수인족, 마왕 아크테아가 헛기침을 하며 근엄하게 말했다.
“크흠. 용맹한 수인족 주제에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다니, 수인족의 수치다.”
“맞아, 맞아. 덕분에 제니칼 님이 화나셨잖아.”
거기에 맞장구치는 건 97위인 침팬지 수인 란카리.
그 옆에 음침한 얼굴을 한 98위 여우 수인족 아루나가 웅얼거렸다.
“뭐라고 하나?”
“아, 걔들 때문에 귀찮게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절대 가만 안 둘 거래. 내 말이 맞아? 아루나?”
란카리의 해석에 아루나가 고래를 끄덕였다.
“하핫. 저 마왕들을 제니칼 님께 데려갈 때 데려가더라도 혼쭐을 내 주긴 내 줘야지. 근데 아무리 대마왕 바리스탄의 자식이라고 해도 이렇게 많이 갈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아크테아의 말대로 현재 사신단의 규모는 모두 5백 명이 넘었다.
하위라고 해도 랭커인 마왕이 셋.
마족에 해당하는 상급 수인족들만 도합 20명에, 마인족 병사보다 훨씬 강한 정예들만 추려 모은 중급 수인족들이 5백 가까이 됐다.
이건 모두 아르칸을 얕보지 말고, 전력을 아끼지 말고 동원하라는 대마왕 제니칼의 명령에 충실히 따른 결과였다.
“겨우 랭킹 100위를 상대하는 데 과한 전력이긴 하지.”
“그래도 별말 없이 우리를 맞겠다고 하는 거로 봐서는 마왕들을 순순히 내주지 않을까?”
“흠, 그래야지. 지가 아무리 대마왕 바리스탄의 자식이라도 제니칼 님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으니까.”
“웅얼웅얼.”
“아루나도 동감이래.”
그렇게 그들은 기세등등하게 아르칸 마왕성에 도착했다.
“아르칸입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아르칸이 마중 나와 있는 걸 본 마왕들은 더욱 득의양양해졌다.
“훗, 제니칼 님의 서신을 받았겠지? 얌전히 마왕들을 내놓도록.”
“저기에 다 있네.”
란카리가 가리키자 나미라, 아그나르, 베리나 수인족 마왕 3인방이 움찔했다.
아르칸이 사신단을 마중 나간다며 모두 나오라고 하는 바람에 빠질 수 없이 나와 있던 참이었다.
아루나는 아예 웅얼거리면서 수인족 마왕들을 잡기 위해 다가갔다.
그 앞을 아르칸이 막으며 말했다.
“잠깐, 제니칼 님의 서신에 따르면 몸값을 준다고 들었는데?”
“크흠.”
그 말에 아크테아가 불쾌한 듯 콧김을 세게 내뱉었다.
“어련히 알아서 챙겨 줄 텐데, 품위 없게 바로 앞에서 몸값을 운운하기야?”
“웅얼웅얼.”
“아루나 말대로, 몸값은 쟤들 넘겨주면 제니칼 님이 제시한 그대로 줄 거야.”
한마디로 주는 대로 받고 떨어지라는 소리였다.
그 의미를 깨달은 아르칸 측의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옆에 있던 솔릭만은 이해 못 한 듯 눈을 멀뚱히 뜨고 있었다.
“흥정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닌데, 그래서 얼마를 준다는 거야?”
그 말에 아크테아가 입을 열었다.
“훗, 역시 망나니 마왕답군. 4성급 마석을 세 개 준비했다.”
“다해서 15만 정도인가.”
곧바로 계산한 아르칸의 말에 수인족 삼인방의 얼굴이 미묘해졌다.
자신들의 몸값이 5만 골드밖에 안 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란카리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아, 맞다. 제니칼 님이 저 마왕들의 마력이 탐나면 여기서 죽여서 흡수시켜도 된다고 하셨어.”
“그래도 모자른데?”
아르칸의 말에 아크테아가 발을 구르며 위협했다
“시끄럽다! 감히 제니칼 님의 결정에 토를 다는 거냐!”
“잠깐, 진정해 봐. 그래서 얼마를 원하는데?”
란카리의 말에 아르칸이 고심하는 척 턱을 쓰다듬었다.
“마왕의 몸값이 되려면 적어도 마정석은 되어야지.”
그 말에 제니칼이 보낸 수인족 마왕들의 눈빛이 살벌해졌다.
아무리 일벌백계를 위한 거라지만, 저런 하급 마왕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마정석을 내놓을 리는 없었다.
터무니없는 요구를 말한 건 제니칼의 제안을 거절하기 위해서가 분명했다.
아르칸은 거기에 아예 불을 질렀다.
“마정석이 없으면 너희가 대신 잡혀 있든가.”
“제니칼 님께서 대마왕 바리스탄의 자식이라고 예우해 줬더니 건방지군.”
“맞아. 이대로 마왕성을 박살 내 주마.”
“웅얼웅얼.”
“너도 무릎 꿇릴 거래.”
그때였다.
아르칸의 뒤에서 한 노신사가 검을 들고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당신들이야말로 대마왕 제니칼의 부하로서 예우받고 있다는 걸 아셔야 할 겁니다.”
오웬이었다.
맹렬한 기세가 뿜어져 나오며 금방이라도 찌를 듯이 위협하자 수인족 마왕들이 움찔했다.
“크흠.”
“강해, 어떻게 이런 힘을 가진 존재가 이런 곳에…….”
“…….”
아르칸이 웃으며 그 의문을 풀어 줬다.
“너희, 바리스탄의 검이라고 들어 봤나?”
“설마 저 노인이 바리스탄의 검이라고?”
“웅얼웅얼.”
“맞아. 분명 다쳐서 은퇴했다고 들었는데?”
“오늘부로 복귀하기로 했어.”
아르칸의 천연덕스러운 말에 수인족 마왕들이 낭패스러운 얼굴이 됐다.
대마왕의 심복 정도 되면 어지간한 마왕보다 강했다.
그중에서 바리스탄의 검은 한창때 여러 마왕을 상대로 압살한 전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그 위명이 사실인 듯 피부로 느껴지는 강함에 패배를 직감했다.
그런 마왕들을 보며 아르칸은 장난기 어린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 할래? 아니면, 싸워서 뺏어 가도 되는데?”
아크테아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낭패로군. 쉬운 임무라고 생각했거늘.”
“그렇다고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어.”
“웅얼웅엉.”
“네 말대로 제니칼 님께 죽을 거야.”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한번 싸워 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크테아가 다른 마왕들에게 말했다.
“보니까 무서운 건 저 바리스탄의 검뿐이다. 내가 저걸 막고 있을 테니, 나머지가 아르칸을 친다.”
“알았어. 중간에 방해가 있으면 내가 상대하고, 우리 중 제일 빠른 아루나가 아르칸을 사로잡아.”
“웅얼웅얼.”
진지하게 작전을 짠 뒤, 아크테아가 대표로 말했다.
“좋다. 우리가 힘으로 저 마왕들을 데려가겠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오늘은 일단 물러가겠다! 내일 아침에 공격을 개시하겠다.”
그 말에 아르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일은 왜? 지금 안 붙고.”
“불러내 놓고 바로 선전포고 하고 공격하면 비겁한 짓이니까 그렇지.”
“내가 괜찮다는데도?”
아르칸의 반문에 아크테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오만하군. 저 바리스탄의 검을 믿는 건가?”
“후회할 짓 하지 말고 물러나는 게 좋을걸.”
“웅얼웅얼.”
“됐어. 마왕성 어지럽히기 싫으니까. 여기서 바로 붙자.”
“이 자식이, 후회하지 마라.”
“나중에 뒷말하면 안 돼!”
“웅얼웅얼!”
아르칸이 팔을 걷어붙이고 하는 말에 마왕들이 엄포를 놨다.
그러면서도 서로 눈을 마주치며 미소를 지었다.
“잘됐군.”
“망나니 마왕답게 멍청해서 다행이야.”
“웅얼웅얼.”
“그래, 바로 작전대로 하자!”
“뭐 해? 어서 덤비지 않고!”
아르칸의 도발에 발끈한 마왕들이 움직였다.
아크테아는 권능을 발휘해 거대한 곰의 모습으로 변한 뒤, 그대로 아르칸을 향해 내달렸다.
“제 경고를 무시하는군요.”
오웬이 검을 휘둘러 베려 하자, 이미 짐작하고 있던 아크테아가 옆으로 피하면서 소리쳤다.
“자, 뭐 해! 어서 아르칸을 공격해!”
“알았어!”
침팬지 수인족 란카리가 자신의 가슴을 쿵쾅 친 뒤, 그 기세를 모아 지면을 내리치고는 크게 점프했다.
그 뒤를 아루나가 빠르게 쫓았다.
함께 왔던 수인족들도 마왕들의 공격에 호응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5백의 군세가 아르칸을 향해 덮쳤다.
그걸 본 수인족 마왕 삼인방도 다급히 나섰다.
“어엇, 위험하다! 막아!”
“다들 왜 안 막아?”
“츠츳, 우리가 나설 수밖에.”
그걸 본 란카리가 화를 냈다.
“너희 때문에 싸우게 됐는데, 우리를 막아? 가만 안 둘 거야!”
“어쩔 수 없잖아.”
“우리도 살길을 찾아야지. 안 그래?”
“츠츳. 살길은 아르칸을 돕는 것밖에 없으니까.”
“정말 뻔뻔하네. 이것들은 내가 잡을 테니까. 아루나, 너만 믿는다.”
아루나가 웅얼거리면서 셋을 번개처럼 지나치자 삼인방이 쫓으려고 했다.
“어딜.”
하지만 그 앞을 기다란 꼬리가 가로막았다. 란카리가 권능, 자유롭게 늘어나는 꼬리를 사용한 거였다.
‘이제는 내가 해치워야 해.’
아루나는 웅얼거리면서 여전히 여유롭게 서 있는 아르칸을 바라봤다.
뿔이나 모습을 봐서는 일신의 전투력은 그리 높지 않아 보였다.
한마디로 지금의 랭킹은 아버지인 대마왕 바리스탄에게서 우수한 부하와 자원을 지원받은 덕분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아루나는 달랐다.
여우 수인족 중에서 특출 나게 강해서 마왕이 된 거였으니까.
‘이번 승부는 내가 결정한다!’
승리를 확신한 아루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을 때쯤. 뭔가가 이마를 강타했다.
퍽!
아루나는 그대로 뒤로 회전해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방금은 무슨 공격이지? 하지만 그리 강하진 않았어.’
그러고 다시 덤비려고 할 때, 아르칸이 자신을 향해 주먹을 내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 팔뚝에는 작은 석궁이 달려 있었다.
‘잔재주를 부리다니, 가볍게 피해 주지.’
아루나가 그러면서 공격이 날아오는 걸 주시하는데, 순간 번쩍하면서 무언가가 자신의 허벅지를 강타했다.
“으아악!”
결국 쓰러진 아루나는 크게 비명을 질렀다.
번갯불이 허벅지를 꿰뚫은 것처럼 아주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작전 성공!”
아르칸이 환호했다.
먼저 마탄을 날려 상대의 돌진을 저지한 뒤, 이번에 얻은 마력을 발사하는 석궁으로 공격한 거였다.
짧은 시간에 연속 공격이 가능해진 걸 이용한 연속기였다.
“나머진 저희가 상대하겠습니다.”
“이제야 재미 좀 보겠군.”
마왕 솔릭과 백호 수인족 볼가가 뛰쳐나와 상처 입은 아루나를 공격했다.
거기에 센시아와 트릴 등 휘하의 부하들과 어느덧 성인 남자 정도로 커진 해츨링 피용까지 가세하자, 사신단의 병력이 일방적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오웬의 검격에 상처투성이가 된 아크테아가 주변 상황을 보고 경악했다.
“믿을 수 없다. 이게 어떻게 마왕성 랭킹 100위의 전력이야.”
난전이 되어 가기 전에 뒤로 물러나려던 아르칸이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아아, 몰랐어? 나 89위인데?”
데실론이 아르칸을 찾아와 랭킹을 갱신하기 전에 출발한 탓에 몰랐던 거였다.
“뭐라고? 그, 그럴 수가.”
아크테아가 절망했다.
오웬이 없다고 해도 처음부터 쉽게 이기기 힘든 상대였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신뿐만이 아니라, 란카리와 아루나도 밀리고 있었다.
“아셨으면 이제 패배를 인정하고 항복하시죠.”
오웬의 권유에 아크테아는 매서운 눈빛으로 대꾸했다.
“이렇게 된 이상, 명예롭게 싸우다가 죽겠다.”
“착각하시면 안 됩니다.”
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아크테아의 기를 누른 오웬이 말을 이어 갔다.
“패배한 이상, 당신들의 목숨은 이제 아르칸 님의 것이니까요. 죽음도 허락받아야 할 겁니다.”
“그, 그럴 수가.”
아크테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
대마왕 제니칼은 골치가 아팠다.
최근 신용사라는 게, 본앰브로스와 자신의 파벌 경계선에 신출귀몰 나타나 신경을 긁어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용사가 나타나서 평야의 요새를 점령했다고 한다.
이 기회에 용사를 제거해 버리겠다며 뛰쳐나가려고 했지만, 또 금방 돌아가 버렸다는 게 아닌가.
그런 와중에 황당한 소식을 접했다.
수인족 마왕들이 셋이 오크 부족을 공격해서 승리한 건 좋은데, 이후 그 오크 부족을 후원하는 아르칸에게 패배했다는 거였다.
그 망나니 마왕에게!
최근 마왕성 랭킹에 올랐다곤 해도 100위로 겨우 랭킹에 진입한 상황.
수인족의 수치였다.
더욱 큰 수치는, 그 못난 마왕들이 아르칸에게 항복해 목숨을 구걸했다는 거였다
그 생각만 해도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른 제니칼은 긴 팔 같은 코끼리 코로 옥좌의 손잡이를 탁탁 쳤다.
주변의 마족들은 움찔하면서 눈치를 봤다.
‘성질 같아서는 확 엎어 버리고 싶은데 말이지.’
문제는 그 망나니 마왕이 바로 대마왕 바리스탄의 자식이라는 거였다.
듣기로는 대마왕 본앰브로스와 대마왕 키클로테스까지 바리스탄 대마왕성에 나타났다는데, 자신만 빼고 무슨 모의를 했는지 몰랐다.
그런데 자신이 바리스탄의 자식을 친다? 분명 그걸 빌미 삼아 셋이서 자신을 칠지도 몰랐다.
그래도 그냥 놔둘 수 없기에 아르칸에게 서신을 보내 항복한 마왕들을 돌려달라고 해 뒀다.
그 마왕들을 데리고 올 마왕까지 사신으로 보낸 참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돌아오는 길에, 웬 백호 수인족에게서 암습을 당했다.
당연히 자신에게 이빨도 발톱도 박히지 않았지만, 불쾌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백호, 왠지 낯선 느낌은 아니었지.’
어쨌든 하나같이 안 풀리는 일 투성이었다.
“뭔가 좋은 소식이 하나라도 들려오면 좋겠군.”
그때였다.
“제니칼 님, 마왕 아르칸으로부터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그 망나니 마왕이? 답신은 기대 안 했는데.”
제니칼은 팔짱을 낀 채 시종장이 주는 서신을 코로 펼쳐 읽었다.
서신을 읽는 눈동자가 점점 아래로 내려갈수록 제니칼의 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극도로 분노하는 중이라는 걸 잘 아는 하인들은 미리 거리를 벌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
제니칼이 옥좌의 손잡이를 내려치자 그대로 박살이 났다.
주변에 서 있던 마족들은 그러려니 하고 있었지만, 하인들은 대비하고 있었음에도 까무러칠 정도였다.
심복인 사자 수인족 레오녹스가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일로 그렇게 노하셨습니까?”
“이것 좀 봐라! 마왕들을 데려오라고 기껏 보내 놨더니 그 세 명마저 사로잡았다 하지 않느냐! 이런 망신을 당하다니! 어쩌면 좋단 말이냐!”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