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95
95화 아르칸의 검 (3)
레오녹스도 제니칼이 내민 서신을 다 읽고는 얼굴을 붉혔다.
“이런 미친. 지금 몸값으로 마정석을 내놓으라고 쓴 겁니까?”
현재 잡힌 마왕만 여섯이니, 마정석이 여섯 개나 필요했다.
심지어 하나씩 교환하는 것도 번거로우니 한꺼번에 교환하는 게 아니면 사양한단다.
단, 먼저 잡힌 셋이나 나중에 잡힌 셋 이렇게 셋 교환하는 건 양해해 준다고 하는 게 오히려 열받는 지점이었다.
“건방진 녀석! 제가 가서 본때를 보여 주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저희가 가서 쓸어버리겠습니다!”
레오녹스에 이어서 주변의 심복들과 부하들이 앞다퉈서 나섰다.
그 모습을 보며 제니칼은 내심 흡족해했다.
부하들이 바리스탄 마왕의 자식을 상대로도 주눅 들지 않고 패기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 비둘기 수인족이 푸드덕거리며 날아 들어왔다.
이곳에 저렇게 소란스럽게 들어왔다는 건, 아주 긴급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가 틀림없었다.
제니칼의 기다란 코가 비둘기 수인의 목을 움켜쥐었다.
“커억!”
“무슨 일이냐! 어서 말해라!”
“커억! 컥!”
“어서 말하라니까!”
인상을 쓰며 다그치는 제니칼을 레오녹스가 다급한 목소리로 불렀다.
“제니칼 님, 제니칼 님. 목을 놓으셔야 말을 하죠.”
“아, 그렇지. 진작 말하지.”
제니칼은 그제야 풀어 주며 말했다.
다들 저 태도에 황당했지만, 지적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겨우 숨통이 트인 비둘기 수인은 여전히 괴로웠지만, 지체하다간 또 목을 잡힐까 봐 필사적으로 말했다.
“시, 신용사가 나타났답니다.”
“그게 정말이냐?”
제니칼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에 나타난 거냐!”
“북쪽 경계 끝입니다.”
본앰브로스 파벌과 맞닿아 있는 곳이었다.
“그래? 다들 들었지? 모두 신용사를 잡으러 갈 준비를 하도록. 이번에야말로 그 건방진 녀석을 잡겠다!”
금방이라도 달려갈 기세인 걸 보고, 레오녹스가 물었다.
“아르칸은 어떡합니까?”
“내버려 둬. 신용사부터 잡는 게 우선이다.”
“괜찮으시면 이 레오녹스가 그 망나니 마왕을 혼쭐내 줘도 되겠습니까?”
“호오, 그래? 자신 있나?”
“네! 사로잡힌 마왕들도 다시 제니칼 마왕님 앞에 대령하겠습니다!”
“알겠다. 아르칸 건은 네게 맡기겠다.”
자신이 넘치는 레오녹스를 보고 제니칼이 흔쾌히 허락했다.
“이런, 한발 늦었군.”
“내가 먼저 말할 걸 그랬어.”
그걸 본 다른 심복들이 아쉬워했다.
욕심 많은 제니칼은 부하들에게 어지간해서는 마정석을 내어 주지 않고, 독립도 시켜 주지 않았다.
따로 마왕이 된 수인족들은 대부분 독자적으로 마정석을 구해서 된 거였다.
그런데 마정석을 내놓으라는 아르칸을 혼내고 마왕들을 데려오면, 이번에 패배한 세 마왕의 마정석 중 하나는 하사할지도 몰랐다.
제니칼의 심복인 레오녹스의 마력은 무려 6성급.
그를 따르는 상급 마족도 여럿 있었다.
마정석을 하사받아 마왕이 되기만 하면 바로 마왕성 랭킹 안에 들 자신도 있었다.
“그럼 좋은 소식을 기대하겠다.”
“아주 만족하실 겁니다.”.
제니칼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 레오녹스는 눈빛을 반짝였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어. 반드시 아르칸을 해치운다.”
***
한편 아르칸은 전후 처리 중인 부하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먼저 잡혔던 수인족 마왕 삼인방은 이번에 활약했다고 어깨에 힘을 주고 있었는데, 반대로 이번에 붙잡힌 마왕들은 부하가 되기를 거부해 구속구를 채운 채 포로로 취급하기로 했다.
‘저것들의 마정석까지 얻으면 좋겠지만 안 되겠지.’
물어보니 하나같이 마왕성이 제니칼 파벌 깊숙한 곳에 있다고 했다.
‘맞다. 그 마왕성들은 어떻게 되지?’
문득 의문이 생긴 아르칸은 수인족 삼인방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 녀석들이 포로로 잡힌 상황에서 마왕성은 어떻게 되나?”
“제니칼 님의 기분에 따라 달라요.”
“틀린 말은 아닐걸.”
“츠츳, 마왕으로 유지하고 있으면 마왕성도 유지되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나미라, 아그나르, 베리나가 차례대로 대답했다.
“바로 밑의 부하들이 차지하려고 들지 않아? 수인족들은 하극상이 흔하잖아.”
“그거야 마왕이 건재할 때의 이야기죠.”
“없을 때 차지하는 건 치사하잖아?”
“츠츳, 치사하게 굴면 제니칼 님에게 혼나요.”
“음, 그런가. 잘 알았어.”
그런 거라면 마왕이 없으니 비교적 쉽게 공략할 수 있지만, 제니칼 파벌 내에서는 섣불리 움직이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당장 마정석을 더 못 얻는 건 아쉽군.’
마왕성이 5계층이 넘어서기 시작하면 마왕성에서 흡수하는 걸 넘어서 마왕도 마왕성의 마력 일부를 쓸 수 있게 된다.
그 때문에 5계층을 넘는 마왕과 아닌 마왕의 격차는 더욱 크다.
‘그러고 보니 마력 공유와 비슷한 거 같은데…….’
어쨌거나 제니칼 마왕의 사신에게서 공격받았으니, 제니칼 파벌의 마왕성을 공격할 명분이 생긴 상황.
아르칸은 이걸 그냥 넘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마왕성으로 돌아간 아르칸은 회의를 소집했다.
“조만간 제니칼 파벌의 영역으로 원정을 갈 테니 준비하도록.”
“알겠습니다.”
아르칸의 지시에 오웬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수인족 삼인방이 반대했다.
“원정이라니, 무리입니다. 방어 준비를 해도 모자를 겁니다.”
“제니칼 님 성격상 이번 공격이 실패했으니 더욱 거세게 공격해 올 텐데요?”
“츠츳.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비해야 해요.”
“괜찮아. 오히려 공식적으로 쳐들어오면 대비하기 더 좋으니까. 안 그래, 오웬?”
“그렇지요.”
오웬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전투와 달리 대마왕 제니칼 측이 선전포고를 하고 쳐들어온다면, 파벌 간의 전쟁이 되는 셈.
그럼 이번에야말로 아버지 바리스탄 대마왕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잠자코 듣고 있던 볼가가 물었다.
“그런데 어느 마왕성으로 가실 겁니까?”
혹시 자신의 어머니가 있던 마왕성을 공략하러 가는지 궁금했던 모양.
아쉽게도 현재로는 무리였다.
거기는 제니칼 마왕성 근처라 공격하러 가기도 어려운 데다, 공략에 성공한다고 해도 제니칼이 건재한 이상 방어하기 어려웠다.
‘바로 빠져나올 수는 있겠지만, 그건 볼가도 원하는 바는 아니겠지.’
아르칸은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생각하는 곳은 제니칼의 숨통을 끊을 정도가 아니면 당분간은 무리야.”
“그렇습니까. 재미를 보려면 조금 참아야겠군요.”
볼가도 큰 기대는 안 했는지 순순히 납득했다.
그러자 데시무스가 물었다.
“그럼 어디를 공격하실 겁니까?”
“아직 생각 중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디로 원정을 나갈지도 이미 생각해 둔 곳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계속 점령하지는 못할 테지만, 일단 볼가를 마왕으로 만들어 준 기연이 있는 곳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웬이 걱정하던 마왕성 운영자금을 충당할 돈벌이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리 말했다가 위치가 새어 나가면 상대가 대비할지도 모르는 데다, 오웬도 그곳에 가는 건 위험하다고 반대할지도 몰랐다.
“일단 병사들은 피로할 테니 푹 쉬게 하고, 마왕들과 마족들만 언제든 원정에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하도록.”
아르칸은 그 말을 끝으로 회의를 마쳤다.
‘나도 준비할 게 있지.’
공방 구역으로 가 보려는데, 오웬이 조용히 불렀다.
“아르칸 님. 센시아와 한번 이야기해 보시지요.”
“센시아는 왜?”
“아무래도 센시아가 고민이 많아 보여서 드린 말씀입니다.”
확실히 오늘 센시아의 모습을 봤을 때 조금 울적한 것 같기도 했다.
평소 무표정해서 알아보기 힘들지만.
“음, 한번 이야기해 볼게. 알려 줘서 고마워.”
아르칸의 대답에 오웬이 미소 지었다.
부하의 마음까지 헤아리려는 성군다운 모습을 엿봤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 때문에 그러지?’
센시아가 화내고 나갔던 병사들의 임금 문제는 해결된 지 오래였다.
현재 아르칸이 벌어들인 돈이 어마어마해 앞으로 자금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아도 됐다.
“뭐,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
공방 구역에 들러 지시를 내린 아르칸은 조용히 센시아를 찾았다.
마왕성 밖 근처 절벽에 있다는 말에 올라가 본 아르칸은 깜짝 놀랐다.
센시아가 피용과 함께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
센시아는 상념에 잠긴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전투에서 대승했건만 마음이 싱숭생숭해서였다.
‘나 아무래도 경비대장을 그만두는 게 좋으려나.’
최근 아르칸 님이 여러 방법으로 데려온 인재들은 하나같이 강력했다.
백호 수인족 볼가부터 해서 부하로 들인 마왕들도 센시아보다 월등히 강했다.
용아병보다는 조금 낫다고 자신할 수 있었지만, 그런 용아병들은 모두 몇십이나 된다.
아팠던 오웬 님마저 멋지게 회복해 더욱 강해지셨다.
어느새 센시아는 마왕성의 간부급 중에서는 가장 약체가 된 거였다.
‘데시무스가 있긴 하지만, 걔는 인간족이니까.’
이번 전투로 뼈저리게 체감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싸웠지만, 활약했다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이런 자신이 경비대장을 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차라리 솔릭이 하는 게 나을지도……. 그게 아니면…….’
센시아는 고개를 들어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거인족인 자신의 아버지가 살고 있는 거인섬의 방향이었다.
자신을 내버리다시피 한 아버지가 그리운 건 아니었다.
저 거인섬에서 성인식을 치르면 진정한 거인의 힘을 되찾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 때문이었다.
센시아의 특성은 거인화.
거인화를 한다고 해도 다른 거인에 비하면 어린아이 수준인 데다, 크게 강력해지지도 않았다.
‘왜 그런지 알아봤더니 성인식을 치르지 않아서라고 했지.’
문제는 거인섬을 찾아간다고 해서 자신에게 쉽게 성인식을 치르게 해 주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그건 센시아 자신이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해도, 대마왕 제니칼 파벌과 분쟁이 벌어진 이런 급박한 시기에 경비대장이 자리를 비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한창 고민 중일 때 옆에 뭔가가 앉았다.
피용이었다.
어느덧 어른만 해진 피용은 센시아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 동그란 눈빛은 여전히 귀여웠지만, 오늘은 도저히 껴안고 귀여워해 줄 기분이 아니었다.
센시아는 다시 한숨을 내쉬고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그런 센시아의 반응에 큰 충격을 받은 피용은 마찬가지로 한숨을 내쉬며 앞을 바라봤다.
“너도 고민이 있나 보구나.”
“피. 피.”
그러고 있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둘이 다정한 게 보기 좋은데?”
익숙한 목소리에 돌아보니 아르칸이었다.
“여기는 무슨 일로…….”
“아무래도 고민이 있어 보인다고……. 오웬이 알려 주더라고.”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든 센시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별일 아닙니다. 괜히 걱정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말하기 싫어?”
“…….”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아르칸은 그렇게 말하고는 센시아가 보던 방향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내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마왕 노릇을 잘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거든.”
“이미 훌륭한 마왕이십니다.”
센시아가 곧장 대답했다.
마왕성 랭킹에 든 이상 누구도 그 말에 토를 달기 힘들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지. 너도 잘 알잖아.”
“……네.”
그것도 아르칸의 망나니짓을 아는 이라면 동의하고도 남았다.
“어떻게 해서 바뀌었는지 알아?”
아르칸의 말에 센시아가 귀를 쫑긋했다.
망나니 마왕이던 아르칸이 어떻게 마왕성 랭킹에 들 정도로 달라졌는지 늘 궁금하긴 해서였다.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하기에는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어.’
빙의해서 내용물이 갈아 치워졌던 덕분이지만, 센시아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것도 아르칸이 고민 끝에 내린 해답이기도 했다.
“현재 내 처지를 솔직하게 받아들인 거야. 마력도, 권능도 없고, 마왕성은 개판 쳐 놨고. 그걸 하나씩 고치기 위해 움직이다 보니 뭔가 달라지더라고.”
‘내 처지를 솔직하게…….’
센시아는 금방까지 고민하던 자신의 처지를 되새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아르칸이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었다.
“괜한 소리 했나. 그래도 네 고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
그러고 몸을 돌려 돌아가려는데, 센시아가 결심한 듯 불렀다.
“아르칸 님.”
“음?”
“잠시 고향에 다녀오고 싶습니다. 거기 가서 더 강해져서 오겠습니다.”
“그래, 알았어.”
아르칸은 더 캐묻지 않고 승낙했다.
오히려 놀란 센시아가 반문할 정도였다.
“어, 정말 괜찮습니까?”
“거기 가서 더 강해져 오겠다며? 나로서는 대환영이지.”
아르칸의 말에 센시아는 순간 시무룩해졌다.
정말 자신이 약해서 필요 없다고 아르칸이 생각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필요 없어. 더 강해져서 아르칸 님 앞에 당당히 서면 되는 거야.’
곧바로 마음을 다잡은 센시아는 아르칸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최대한 빨리 출발하겠습니다.”
그러고는 아르칸과 피용을 남겨 두고 먼저 내려갔다.
사실 아르칸은 오자마자 뒤에서 조용히 게티아를 접촉시켜서 고민을 알아냈다.
하지만 기분 나쁘거나 창피해하지 않도록 모르는 척 말을 건 거였다.
‘거인의 진정함 힘이라…….’
확실히 거인족들은 숫자가 적었지만, 그 하나하나가 마왕 정도로 강하긴 했다.
센시아가 그 정도로 강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거다.
센시아처럼 믿음직한 신하는 구하기 어려운 데다, 지금 보니 향상심까지 있었으니까.
“센시아가 원하는 바를 잘 이뤘으면 좋겠다. 그치, 피용아?”
“피. 피.”
피용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슬쩍 아르칸의 눈치를 봤다.
아르칸은 그런 피용의 턱을 긁으면서 말했다.
“넌 언제나 귀여우니까. 신경 안 써도 돼.”
“피이. 피이이.”
피용이 자신 없게 울었다.
아르칸은 피용의 고민도 읽었다.
‘참 귀여운 고민이란 말이지.’
아르칸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빠르게 성장하는 건 괜찮았지만, 크면서 귀여움을 잃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었다.
특히나 전처럼 아르칸의 어깨 위에 앉아 있지 못하게 된 게 더욱 신경 쓰였던 모양.
‘피용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원정에 나서야겠네.’
아르칸은 그러면서 피용을 더욱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그리고 며칠 뒤,
대마왕 제니칼의 심복이자 간부로 알려진 레오녹스가 마왕 아르칸에게 공식적으로 선전포고 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