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99
99화 정글 속에 숨겨진 마왕성 (4)
엘로라 마왕성에서는 마정석 말고도 챙겨 갈 게 많았다.
먼저 엘로라를 비롯해 두꺼비 수인족의 시체부터 챙겼다.
성장의 샘물 덕에 강력해진 만큼 마력이 아주 높을 게 분명했다.
엘로라의 시체를 감정하니 무려 7성급 마력의 마심장을 가지고 있었다.
“대박이군. 반드시 가져가서 마왕성에 흡수시켜야겠어.”
오웬도 놀라워했다.
“이 정도 마왕이 이 외딴곳에 조용히 지냈다니, 신기하군요.”
“아무래도 성장의 샘물을 제니칼에게 들키는 게 싫었겠지.”
나미라도 끼어들어서 한마디 했다.
“하긴, 제니칼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당장 뺏으려 들었을걸요. 조금만 더 강해지면 다른 대마왕들을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아르칸도 나미라의 말에 동의했다.
제니칼이야 성장이 멈췄다고 하더라도, 이것만 있으면 강력한 부하들을 잔뜩 육성할 수 있었다.
일단은 샘물을 다 퍼 갈 테지만, 한참 뒤에 샘물이 다시 찬 뒤에도 제니칼이 이용하는 걸 막으려면 무슨 수를 써야 했다.
아르칸은 나미라에게 여기까지 안내해 준 마수를 부르라고 했다.
“여기 샘물이 다시 차면 들어가라고 해. 더욱 커지고 강해질 수 있다고 하면 좋아할 거야. 그리고 다른 녀석이 못 들어가도록 지키라고 하고.”
원래 아르칸이 생각한 마수들의 보상은 성장의 샘물을 조금 나눠 주는 거였는데, 이대로 지키게 하면 될 것 같았다.
“좋다고 하네요.”
마수들이 지시를 안 따르더라도 별수 없긴 했다. 남아서 여길 계속 지키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때 오웬이 넌지시 물었다.
“아르칸 님은 성장의 샘물에 안 들어가십니까?”
긴박한 와중에도 틈을 봐서 들어가 봤던 오웬인 만큼, 아르칸도 한번 들어가 보길 바라는 거였다.
비록 자신은 별다른 효과를 못 봤지만, 나미라와 볼가는 물론, 피용까지 샘물의 효능으로 강해지는 걸 봤으니 추천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들어가 봐야지.”
대답은 했지만, 아르칸은 들어가기 조금 망설여졌다.
원래부터 마력이 거의 없던 만큼 성장의 샘물에 들어가도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 같은데, 괜히 들어갔다가 실망만 할 것 같아서였다.
‘에이, 권능이 있는 것만 해도 어디야. 효과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다행인 거고, 아니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마음을 다잡은 아르칸은 성장의 샘물로 천천히 걸어갔다.
피용이 들어가서 거대해지는 바람에 박살이 나 버리는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다행히 무사했다.
대신 가득 찼던 샘물은 반의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르칸이 샘 안으로 들어가자 샘물이 반응하며 빛을 발했다.
그러나 전처럼 찬란하게 빛을 내뿜지는 않았다.
‘별다른 변화는 없는 거 같은데…….’
나미라처럼 꼬리가 생기지도, 볼가처럼 덩치가 커지지도 않았다.
피용처럼 순식간에 성장하지도 않았다.
눈을 감고 마력을 느껴 봐도 딱히 늘어난 느낌은 없었다.
오웬처럼 머리카락만 길어진 듯했다.
‘그러고 보니, 오웬도 그렇고 나도 수염은 안 나네?’
문득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게티아를 펼쳐서 보던 아르칸은 화들짝 놀랐다.
“아니! 이게 왜 있어?”
마심장 밑에 새로운 항목이 생겨 있었다.
[정령 친화력 : 8성]정령 친화력.
마인족에게 마심장이 있듯이 흔히 엘프들이 가진 선천적인 능력이었다.
놀라운 건 그 수준이 무려 8성이나 된다는 거였다.
현재 드래곤인 피용의 마력과 같은 수준이었다.
‘어쩐지 정령들이 날 좋아하더라.’
아르칸은 엘프 리트를 구할 때 자신의 주변을 맴돌던 정령을 떠올렸다.
다만 정령 친화력이 높다고 해도 마계에서는 정령을 제대로 쓰기 어려웠다.
정령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고 해도, 마계에서는 정령의 힘이 반감되는데, 그 때문에 실체화할 정도로 강한 정령은 마계에서 지내길 꺼려 만나기 힘들었다.
‘이런 게 바로 빛 좋은 개살구인가…….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특히 나중에 엘프 마을에 들르게 되면 아주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생긴 거지? 내 먼 조상 중에 엘프라도 있나?’
아르칸은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일단 성장의 샘물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주변의 분위기가 무거운 거 아닌가?
나미라와 볼가도 시선을 피하고, 오웬도 침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르칸 님, 괜찮으십니까? 제가 괜히 들어가라고 해서…….”
“응? 괜찮은데? 왜 무슨 일 있어?”
“아닙니다. 그렇게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마음을 편히 먹는 게 중요하지요.”
“마음을 편히 먹다니? 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그게…… 저기 들어가 나오셨는데도 별다른 변화가 없으셔서 그렇죠.”
“재미없는 이야기지만, 어쩌면 샘물의 효력이 다한 게 아닐까? 드래곤이 들어간 탓에.”
“변화가 없다니 여기 머리 길어졌잖아. 아!”
나미라와 볼가의 말에 대꾸하던 아르칸은 그제야 왜 다들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았는지 눈치챘다.
아르칸이 성장의 샘물에 들어갔다가 나왔는데도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이는 데다, 아르칸이 혼란스러워하는 걸 보고 실망한 모습으로 비친 모양이었다.
“괜찮아. 나도 뭔가 변화가 생기긴 했어.”
“앗, 정말이에요?”
“흐음, 갑자기 재밌어지는군.”
“…….”
다들 흥미를 보이는데, 오웬이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뭔가 짚이는 데라도 있나?’
분위기를 봐서는 지금 물으면 안 될 거 같았다.
아르칸은 너스레를 떨며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수 없으니까, 돌아갈 준비 해.”
그 말에 시체를 천으로 싸고 있던 용아병들의 움직임이 더욱 분주해졌다.
원정 나오는 김에 마왕 엘로라처럼 마력이 제법 되는 시체는 챙겨서 마왕성에 가져가기로 했다.
딱히 더러워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용아병들은 적어도 시체를 깨끗하게 싸서 넣게 해 달라고 해서 천과 상자를 잔뜩 준비해 온 참이었다.
‘이 짓도 번거로우니 다른 아공간 주머니를 구하는 게 좋을 거 같네.’
아르칸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커다란 물통을 꺼냈다.
이번 원정의 최대 목표인 성장의 샘물을 깡그리 퍼 갈 생각이었다.
샘물 자체에 효능이 있어 물통에 옮겨 담아도 황금빛은 여전했다.
이걸 가지고 다른 부하들에게도 쓰고, 다른 용도로도 쓸 예정이었다.
그렇게 아르칸은 이곳에서 마왕 엘로라를 비롯해 두꺼비 수인족의 시체, 성장의 샘물, 식물 몬스터들까지 알뜰히 챙겨 나왔다.
***
한편 한창 전투 중이었던 레오녹스는 대마왕 제니칼로부터 서신을 받았다.
그 소식에 끊임없는 전투 끝에 지쳐 있던 부하들이 기뻐했다.
“제니칼 님이 역시 우리를 잊지 않으신 거야.”
“바리스탄의 영역 안으로 꽤 침투했으니 칭찬하시겠지?”
“레오녹스 님, 제니칼 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잠시만 기다려 봐. 아직 펼치지도 않았다.”
레오녹스는 웃는 얼굴로 대꾸하면서 서신을 펼쳤다.
그도 제니칼의 서신이 반가웠다.
‘마침 사기를 올릴 필요가 있었는데, 제때 보내셨군.’
가벼운 마음으로 서신을 읽던 레오녹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툭 하고 서신을 떨어트렸다.
“레오녹스 님?”
“왜 그러십니까?”
“서신에 뭐라고 적혀 있길래 그러십니까?”
“아, 아르칸이…… 아르칸이 우리 영역에 있다고 한다.”
부하들도 난데없는 소식에 놀라서 되물었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 영역에 있다니요?”
“아르칸 마왕성은 저쪽에 있지 않습니까?”
“마왕성 말고! 아르칸이 지금 제니칼 님의 영역에 있다는 게 포착되었단다! 화가 잔뜩 난 제니칼 님이 우리더러 거기서 뭐 하느냐고 서신을 보내신 거야!”
레오녹스의 외침에 부하들도 굳어 버렸다.
제니칼 님이 화가 났다니,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근데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레오녹스도 무턱대고 싸우지 않고, 마수와 동물들을 이용해 정보를 수집했다.
분명 아르칸을 지키기 위해 온 지원군들이 미적대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지만, 아르칸이 마왕성에 없다는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이게 다 함정이었다는 소린가.’
“그럼 어, 어떡합니까?”
부하가 걱정하며 묻자 레오녹스가 미간을 모으며 말했다
“어떡하기는, 우리가 살길은 하나뿐이다! 당장 회군해서 아르칸을 잡아야 해!”
“네? 여기까지 와서 회군한다고요?”
이 상황에도 볼멘소리 하는 부하들을 보며 레오녹스는 답답해했다.
“우리 목적이 뭔지 잊었느냐? 아르칸을 혼쭐내는 거다. 그래, 오히려 잘됐다.”
“잘됐다니요?”
“아르칸만 잡으면 다 끝나는 일 아니냐. 어차피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으니 붙잡아서 마왕들을 돌려받으면 된다.”
“아! 그렇군요.”
“우리 영역으로 들어온 건 아르칸을 포함해 네 명이 전부라니까, 지금처럼 지원군도 없을 테고 상대하기 수월할 거야.”
“그렇다면 이럴 게 아니라 당장 돌아갑시다.”
“어서 망나니 마왕을 잡읍시다!”
레오녹스의 설명을 들은 부하들은 금방 동조했다.
그 직후 레오녹스 원정대는 빠르게 움직였다.
회군을 결정한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한편, 사정을 전혀 모르는 토피아스는 난감했다.
“아니, 왜 갑자기 돌아가는 거지?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토피아스 님, 어떡합니까?”
“왜 저러는지 모르겠지만, 침입자를 얌전히 돌아가게 할 수는 없지.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 주마.”
토피아스는 다른 마왕들과 함께 후퇴하는 레오녹스 원정대를 추격해 공세를 펼쳤다.
“젠장, 갑자기 공격이 거세지다니. 치사한 녀석들!”
화가 난 레오녹스는 당장이라도 부대를 돌려 다 때려잡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어서 제니칼 영역으로 돌아가 한시라도 빨리 아르칸을 붙잡아야 했다.
그 때문에 이를 갈면서 아르칸을 붙잡을 때만을 기다렸다.
“아르칸 이 녀석, 나한테 잡히기만 해 봐라. 날 고생시킨 보답으로 팔다리를 부러트려 놓을 테니까.”
그렇게 며칠을 고생한 끝에 레오녹스는 겨우 대마왕 제니칼의 영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확인해 보니 병력이 1백밖에 남지 않았다. 병력의 5분의 4를 잃고 돌아온 상황이었다.
지금껏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손실이었다.
‘크윽, 아르칸을 잡지 못하면 난 정말 끝장이다.’
위안이 되는 건 그나마 남아 있는 병력이 그나마 강한 마족 위주라는 거였다.
거기다가 주변의 마왕까지 동원하면 충분히 잡고도 남아 보였다.
“아르칸은 어디 있느냐! 당장 찾아라!”
제니칼 님이 아르칸을 찾은 건 영역 내의 모든 마수와 동물들이 복종하기 때문.
아무리 은밀히 잠입하려고 해도 그 눈을 모두 피할 수 없었다.
오히려 아무리 소수라고 해도 발견이 늦은 게 이상할 정도였다.
레오녹스의 지시에 마수와 동물을 다루는 특성을 가진 부하들이 왜 그런지 알아냈다.
아르칸과 그 일행은 한적한 곳에서만 잠깐 모습을 드러내다가, 이내 사라진다는 거였다.
“특별한 능력이나 마도구를 쓰는 게 틀림없었습니다.”
“이동 경로를 살펴보니 시리디움 정글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나오고 다시 되돌아오는 중이라는데, 저기서 수련이라도 한 걸까요?”
“아니면, 마석을 구하러 간 걸지도 모르지.”
시리디움 정글은 거대한 마수들이 종종 나오기에 수인족들 사이에서 수련 장소로 유명했다.
또한, 마수들이 거대한 만큼 여전히 극악의 확률이긴 해도 마석이 나오는 확률도 비교적 높다고 알려져 있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지금 어디 있느냐는 거다, 지금!”
“아, 그건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현재 이동 경로를 봐서는 내일 중으로 이곳을 지나갈 겁니다.”
“그래? 진작 이야기하지.”
그제야 레오녹스의 얼굴이 풀렸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아르칸을 잡는다! 다들 철저히 위장해서 아르칸을 기습할 수 있게 준비하도록!”
그 말에 부하들이 큰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편 아르칸도 레오녹스의 지시를 저 멀리서 전해 듣고 있었다.
그 소리를 전달해 주는 건 엘로라 마왕성 밖으로 나오자마자 찾아온 바람의 정령이었다.
‘이거 정령이 편하긴 편하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