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단기결전 (1)
어둠만이 가득한 복도.
그 속에서 은은한 빛무리를 뿌리는 민준의 성력은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오롯이 빛나고 있었다.
타다닥-
그리고 민준은 그 북극성을 길동무 삼아, 나침반이 이끄는 붉은 선을 길잡이 삼아, 어둠 속을 빠른 속도로 주파했다.
그 길은 우리 내 인생처럼 뒤죽박죽이었으면서도 외졌다.
‘놈들도 아라네움 안에 이런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까?’
분명 부화장으로 사도들이 몰려든다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런데, 놈들은 아틀낙을 지키느라 그 근처를 위시하고 있을 게 확실했으니.
정말 이 나침반이 자신을 아틀낙의 곁으로 이끄는 것이 맞다면, 이렇게 조용할 게 아니라 이미 제 앞을 막아서는 놈들과 몇 번은 마주치고 전투를 벌였어야 했다.
그런데…. 이건 마치 아틀낙이 있을 중심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민준의 고개가 갸웃하고 기울어졌다.
‘아니지. 꼭 그렇게 나쁘게 생각할 건 없어.’
나침반이란 아이템이 아라네움이라는 곳의 안티테제로써 만들어진 아이템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사도가 없는 길만을 골라 안내하는 것 일지도….
비록 추측일 뿐이지만, 민준은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는 행복회로를 돌리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불안함을 떨쳐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 * *
한참을 달려 민준이 도착한 곳은 어둠뿐인 막다른 공간이었다.
이 공간은 꽤나 널찍한 것처럼 보였는데, 민준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코를 감싸 쥐어야만 했다.
공간에는 짙은 혈향(血香)과 분뇨 냄새가 섞인 듯한 악취가 사방을 진동하고 있었고.
높은 스텟 만큼 남들보다 더 민감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민준에게 이러한 악취는 보다 더 강한 자극으로 다가왔던 탓이다.
‘이게 다 뭐지?’
가까스로 정신을 살핀 민준이 여전히 코를 막은 손을 놓지 않은 채로 조심스레 주변을 살폈다.
성력의 빛이 닿는 범위 곳곳에는 냄새의 원인이 되는 끔찍하게 손상된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마치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기라도 한 듯이…….’
그렇게 생각한 민준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봤다.
역시나 저 멀리 천장에는 티끌만 한 빛이 있었는데, 나침반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선은 벽을 따라 저 작은 빛으로 향하고 있었다.
“…저길 올라가라고?”
민준은 다시금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를 바라봤다.
저곳으로 가기 위해 벽을 타다가 조금이라도 발을 헛디딘다면 그 또한 발밑의 시체 꼴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
꿀꺽. 민준은 마른침을 삼키며 가장자리로 다가가 벽의 상태를 살폈다.
당연히 암벽등반처럼 친철하게 손잡이가 달려있진 않았다. 그저 벽돌 같은 재질의 벽이었기에 벽 사이사이에 조금의 틈만이 있을 뿐이었다.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 아니면 아틀낙이 날 엿 먹이려고 수를 쓰는 것은…….”
…그래, 그럴 리가 없다.
놈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퀘스트를 조작하고, 아이템을 만들어 그 설명을 조작한다는 건 아예 다른 일일 것이다.
무려 창조에 관련된 일.
과거 낙원에서 놈들이 사용하던 [레기나의 알] 같은 경우에도, 그건 딱히 기능도 효과도 뭣도 없는 물건을 그들끼리 통행증으로 쓰고 있었는데, 시스템이 그 내용을 아이템 창 설명란에 덧붙여 준 것에 가까웠다.
만약 놈이 아이템을 입맛대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전지전능하다면, 이미 그 시점에서 놈을 사냥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였다면 구세주 꼬맹이가 자신에게 미리 언질을 줬어야 한다.
‘그런 말도 안 해주고 잡으라고 한 거면, 그건 진짜 신이 아니라 양아치지.’
민준은 속으로 투덜거렸으나, 몸은 착실히 벽을 더듬으며 조금이라도 더 오르기 쉬운 지점을 찾고 있었다.
결국, 그에게 주어진 방법은 나침반이 안내하는 길을 따르는 것뿐이었으니까.
‘대체, 끝이 어디야?’
티끌처럼 작게 빛나는 머리 위의 불빛.
민준은 이를 향해 움직이며 성력이 담긴 손가락을 벽돌벽 틈에 두부 뭉개듯 집어넣고, 이를 지지대 삼아 반대 손도 똑같은 행위를 반복했다.
* * *
열심히 오르는 와중 몇 번의 위기가 있었다.
벽이 크게 진동해 손을 놓일 뻔한 적도. 위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자신의 갑옷을 잡아 떨어질 뻔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한순간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 오고 갔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그 위기의 상황도 어느새 적응되어, 힘에 부칠 때는 대검을 벽에 박아 넣고 그 위에 앉아 쉬는 등 민준은 잔머리를 굴리며 등반을 계속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천장에서 떨어지는 빛이 느껴질 정도로 다 와 가자.
– 조심……. 요. 그…!
– 승희…. 바꿔!
– 그러코…. 호락호락……. 않…. 야!
빛이 떨어지는 천장 틈으로 소란이 들려왔다.
급박한 목소리, 냉병기가 부딪히는 소리와 파육음, 고통에 찬 비명.
그리고 민준의 민감한 감각은 그 속에 껴있는 익숙한 목소리를 잡아냈다.
‘소희 씨? 에이 설마…….’
– 제 뒤……. 와요!
‘맞다. 소희 씨야!’
그녀가 이곳에 왔다는 건, 혹시 다른 동료 또한 같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간간이 들리는 소리를 들어볼 때, 위기에 빠진 것이 분명했다.
민준의 팔이 점점 바빠졌고, 그와 비례해서 신중히 오르기 위해 천천히 오르던 민준의 등반속도도 급격히 빨라졌다.
‘대체 여긴 왜.’
민준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헝클어져 있었다.
분명 혼자 오겠다고 동료들에게 말하고 오는 길이었고, 그들 또한 이에 동의했었다.
민준의 의견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동료들이 그와 한 암묵적인 약속을 아무 이유도 없이 어길 리는 없을 테니, 이를 어기고 이곳에 왔다는 건 분명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겼다는 뜻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민준의 마음이 더욱 급해졌고, 등반속도 또한 그에 비례하여 상승했다.
* * *
“후……. 뭐가 이렇게 높은지.”
징글맞던 절벽의 끝.
가까스로 거대한 공동에 도착하자, 갑작스레 쏟아진 빛이 그의 눈을 부시게 했다.
난데없이 쏟아진 빛으로 시야는 조금 흐렸지만, 올라오면서 조금씩 절벽 아래를 비추던 빛 때문인지 절벽 위의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자들은 모두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봤는데.
익숙한 인상의 마인 셋과 그들에 맞서고 있는 소희가 그들이었다. 그들 주변에는 시체가 즐비했고, 소희의 뒤로는 옅은 숨을 내뱉고 있는 두 사내가 피를 잔뜩 흐린 채로 누워있다.
어떤 싸움이 있었고, 당장 누굴 적대해야 하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됐다.
민준은 동그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소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무슨 상황인지는 나중에 들을게요. 우선 저놈들부터 처리하면 되죠?”
나침반의 붉은 선은 그녀에게 이어져 있었다.
* * *
신통방통하다.
민준에게 아틀낙의 죽음보다 중요한 건, 동료의 생존이었고.
그런 그의 마음을 잘 알았는지 나침반은 위기에 빠진 동료에게 데려다준 것이다.
‘아틀낙이야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천천히 잡지 뭐.’
민준은 마인 셋을 없는 사람 취급하며 소희에게 걸어가 그녀의 바로 앞에 대검을 꽂았다.
그녀는 상태는 좋게 말해도 엉망진창인 상황. 항상 전투에서 가장 최전방을 맡았던 그녀가 이 정도라면…….
상대 마인들도 결코 가볍게 볼 이들은 아닌 것 같았다.
물론 탱커 특성상 제대로 된 딜러가 없다면 무한정 얻어맞을 수밖에 없기에 이리됐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저놈들이 한 가닥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민준은 소희를 뒤로하고 마인들을 마주했다. 그리고 품에서 [낙죽장도(烙竹長刀)]와 마인을 감지해 진동하고 있는 [사도의 최후]를 꺼내 들었다.
“아야, 원수는 돌다리에서 만난다고 하더니 정말로 반갑다.”
“외나무다리다, 대머리.”
어금니가 길게 솟은 곽동출의 말대답에 보통 같았으면 불같이 성질을 냈을 염석도였으나, 기분이 좋은지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억지로 내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기 뭐가 중요혀. 의미만 통허면 됐지. 여튼 너한테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야. 너를 따라온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걸 얻었거든. 그러니 대가로 편하게 보내줄라니께.”
놈의 말에 민준은 한 가지 의문을 풀 수 있었다.
3차원 미로에서 업보가 양수인 생존자만 있었던 이유.
그건 업보 수치가 음수인 인간은 마인으로 만들어 부족한 전력을 메꾸기 위한 용병으로 사용하고, 양수인 인간은 세력을 키우는 자양뿐으로 사용하는 계책으로.
애초에 아틀낙이 아라네움 입구에서 인간을 가려 받았기 때문이었다.
‘어쩐지 이상하다 싶더니만.’
민준이 생각에 빠져있던 순간.
마인 셋 중 하나가 흐릿해지는 동시에 사라졌다. 존재감이 없기에 놓치고 있던 후드를 뒤집어쓴 놈.
“재림원이라고 했었나? 사이비 자식이 이제는 하다 하다 거미를 신으로 모시는군.”
민준이 곧장 뒤로 빠지자 허공에서 나타난 물결 모양의 단검이 그의 흉갑을 카가각-긁으며 스쳐 지나갔다.
마력이 담겨있지 않았던 공격이었기에 감지가 늦었지만, 그렇기에 갑옷에 흠이 나는 정도로 그쳤다.
민준은 곧장 놈의 팔을 잡아 꺾으려 했지만,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무투가 하나에 검사 하나 그리고 암살자 하나라….’
까다로운 조합이다. 특히 어딘가에 숨어있는 암살자가 있기에 더더욱.
민준이 움찔한 틈을 노려 염석도가 긴 리치를 이용해 주먹을 뻗었고, 곽동출은 그 공격에 시간차를 두고 탄력적인 몸놀림으로 튀어 올랐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절대 가질 수 없는 넓은 간합과 티격태격하는 모습과는 다르게 절묘한 합공.
왜 소희가 마인들을 상대로 고전하고 있었는지 조금 이해가 됐다.
‘긴 리치야, 이게 있으니 내 알 바가 아니지만.’
쾅! 쾅! 철컥-
은빛으로 빛나는 소드오프 샷건이 불을 뿜자 두 놈 전부 해머에 맞은 듯 뒤로 날아갔다.
[곽동출에게 ‘상태 이상: 혼란’이 ‘3초간’ 부여됩니다.]그 와중에 25%의 확률을 뚫고 걸린 혼란.
이에 걸리지 않은 염석도는 배에 난 구멍을 감싸 쥐며 일어나고 있었고, 정글도를 쌍검으로 들고 있던 곽동출은 아직 벽에 기대 고꾸라져 있었다.
‘아틀낙한테 사용하기 전에 한 번 시험 삼아 사용해봐야겠네.’
얼마 전에 받은 [칭호 등급 업그레이드 쿠폰]. 민준은 그 아이템을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바로 하나 사용했었다.
그렇게 민준이 먼저 업그레이드한 칭호는.
「[별을 취할 수 있는 자격]
등급: 유일(Unique)
효과: 별의 선택을 받은 신체가 된다.
별에 쌓인 업보(業報) 수치를 능력치 레벨로 자유로이 변환할 수 있다.」
성주와 맞설 수 있는 자격을 주고, 업보(業報)에 따른 신체와 능력을 줬던 희귀(Rare)등급의 칭호였다.
세계가 멸망하고 얼마 되지 않아 처음 아크티네를 마주했을 때. 받았던 [최소한의 자격].
그 칭호가 사기적인 능력을 동반한 유일 등급의 칭호로 변모했다.
‘내 업보 수치가 벌써 +28.2.’
아라네움에 진입하기 위해 잡았던 사도 덕분에 업보 수치도 꽤 오른 상태였다.
민준은 28이라는 숫자를 전부 민첩 능력치에 때려 박았다.
[업보(業報)가 모두 민첩 능력치로 전환됩니다.] [민첩 능력치가 Lv.41에서 Lv.69로 상승합니다!]쿵!
여기서 시간을 버릴 필요는 없다.
이미 일당백의 칭호를 통해 높은 수준의 민첩 능력치를 보유해봤던 민준은 거침없이 바닥을 찼고.
그 순간 바닥을 박차는 거대한 폭음과 함께 민준의 몸이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지더니 별안간 곽동출 앞에 민준이 나타났다.
““……?!””
성력을 담은 낙죽장도가 놈의 외피를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쌓이는 삼 타(打).
[‘사도의 주적 Lv.15(M)’ 스킬이 발동됩니다!] [750% 물리 피해를 추가로 입힙니다!!] [‘사도의 주적 Lv.15(M)’ 스킬이 발동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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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의 주적 Lv.15(M)’ 스킬이 발동됩니다!] [750% 물리 피해를 추가로 입힙니다!!]민준의 공격이 어깨, 가슴, 복부, 허벅지 가릴 것 없이 놈의 몸에 수없이 많은 구멍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마지막.
철컥.
어느새 장전된 [사도의 최후]가 놈의 머리에 겨눠졌고, 곧이어 놈의 몸에서 터져 나온 핏물이 민준의 얼굴과 갑옷에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