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아라네움의 심처 (3)
짧지도 길지도 않는 삶을 살았지만, 그와 중에도 몇 번이나 찾아왔던 거친 굴곡을 겪으며 깨달은 말.
자신의 뼛속 깊이, 아니 영혼에 인두로 지지듯 낙인찍힌 글귀.
‘계획한 대로 풀리는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관용적인 표현이기에 ‘인(人)’생으로 사용하지만, 그 표현이 오로지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닌 듯했다.
“뭘……. 대체 뭘 한 게야!!”
마치 혼이 빠진 것처럼 어기적어기적 걸어가 검은 돌덩어리를 어루만지는 아틀낙을 보면 말이다.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이건, 아니야……. 한낱 인간이? 그분이 주신 별을? 이럴 순 없어…. 어떻게 다시 방법이…….”
옆에서 보기에 무서울 정도로, 혼잣말을 빠르게 중얼거리는 아틀낙.
내용은 대충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한 자기 위안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놈의 말이 머릿속으로 들리지 않고, 공기라는 매질을 통해 전해져 자신의 달팽이관에 똑똑히 틀어박힌다.
놈의 격이 추락한 것일까?
어느새 주변을 밝혀주던 머리 위 후광이 사라졌음에도, 처음 느꼈던 것처럼 강력한 압박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페널티를 받은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은데.’
[‘시카리우스의 정(精)’이 아틀낙의 독을 해독합니다.]다만 놈의 능력만큼은 그대로 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자신이 조심해야 할 건 단 한 가지.
놈의 눈을 마주쳐선 안 된다.
[시간 인지] 스킬을 사용할 수 없는 지금 눈을 마주쳤다간, 프라우스 때처럼 환영에 당하게 될 테니까.‘그래도 이만하길 어디냐.’
나는 미쳐있는 아틀낙에게서 잠시 눈을 떼고, 하얀 방에 뚫린 거대한 구멍으로 밤하늘을 바라봤다.
‘이제야 내가 좀 불쌍해 보이시나 봅니다? 여태 꾸역꾸역 매운맛만 먹이더니, 한 번 안 해주던 밸런스 패치까지 해주는 걸 보면-’
프스스-
그렇게 저 위에 있을 누군가에게 중얼거린 순간, 무언가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하얀 돌가루였다.
게다가 그 근처에 자잘하게 가 있는 수많은 금. 과거였다면 부실공사라며 엄청난 지탄을 받을 만한 상태였다.
‘설마……? 여기. 저 검은 돌의 힘으로 지어진 것이었나?’
별이 정화될수록 점점 그 힘을 잃어가는 상황이라면…. 시간이 흐르는 것과 함께 이 거대한 구조물 또한 점차 무너져 내리고 말 것이다.
자신이 아무리 레벨이 높아졌다고 하더라도 이 거대한 구조물에 깔린 후에도 몸이 온전할 거란 기대는 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소희 씨.’
이곳에 있는 건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그럼 그렇지. 에잇 퉤!’
나는 구멍으로 보이는 밤하늘을 한번 바라보고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 그걸 도발로 여겼는지, 얼이 빠져있던 아틀낙이 천천히 고개를 이쪽으로 돌렸다.
“그래…. 너만, 너만 죽이면 다 원래 자리로 되돌아올 것이야. 힘들게 얻은 내 힘! 권위! 권능이!!”
빠득.
그 순간 들리는 뼈 마디마디가 부서지는 듯한 끔찍한 소리가 들리면서 놈이 몸을 기괴하게 꺾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전에, 프라우스를 잡으러 가기 전 남녀 마인을 만났을 때처럼 등에서 거대한 거미 다리가 두 개가 날개처럼 솟아나 땅을 짚어 내더니 그녀의 몸을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낌새가 안 좋은데….’
쌔애애애액-
역시나 마기를 줄기줄기 흘리던 놈이 긴 다리를 지지대 삼아, 새총에 걸린 돌멩이처럼 자신을 향해 빠르게 짓쳐 들었다.
쿵!
“…크흑!”
분명 겉보기엔 여리여리한 신체를 지녔음에도 실제 무게는 얼마나 되는 건지, 놈의 차징을 대검으로 받아내자마자 뒤로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빨리 이걸 되돌려 놓는 게 신상에 이로울 것이야.”
“쿨럭. 이미 버스 떠났어.”
“버스…?”
“너 X 됐다는 말이야.”
“이 하등한 인간 놈이…!”
누가 거미 괴물 아니랄까 봐 거미줄을 쏘아내면서 내 움직임을 제하려 하고 기다란 다리를 창처럼 써서 사방에서 찔러 들어왔다.
나는 [레기나의 손]으로 그 거미줄을 걷어내면서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놈의 날카로운 다리를 흘려냈다.
하지만 나는 성력 사용이 제한되는 반면, 레기나의 움직임 하나하나는 마력이 담긴 공격이었기에 그 여파가 없을 순 없었다.
‘그래. 그래도 신체 능력치 레벨이 떨어지지 않은 게 어디야. 좋게좋게 생각하자. 칭호도 멀쩡하고, 생존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패시브 스킬은 사용이 가능하니까. 그래도……. 좀 아쉽긴 하네.’
조금 전만 해도 전지전능이라는 단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충만함.
애초에 맛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번 맛봤다가 빼앗기니, 그 허탈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항상 가슴 언저리 충만하게 채워져 있던 성력이 사라지니, 그 공허함 또한 후광을 잃은 것만큼이나 허망했다.
‘후, 언제는 다 갖추고 싸웠나.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해야지.’
나는 곧장 몸을 날려 놈에게 쇄도했다.
* * *
쩌엉!
놈이 기다란 다리가 어마어마한 간합을 무시하고 민준을 향해 짓쳐 들었고, 이를 대검을 비틀어 검면으로 막아냈음에도 불구하고 민준은 그 충격으로 인해 다시 뒤로 날아갔다.
철저하게 거리를 허락하지 않는 아틀낙.
독(毒)도, 환영도, 거미줄도, 통하질 않는다는 걸 알아챈 놈은 자신이 지닌 우위, 피지컬과 마력을 사용해 민준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시간을 끌수록 자신이 불리함을 알고 있음에도 놈은 침착하게 서서히 민준을 옥죄어 왔다.
맨 처음, 능력만 믿고 막 싸우던 놈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마 그때는 강해진 자신의 능력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차라리 급박한 마음에 초반부터 맹렬하게 공격해왔으면, 오히려 그게 편할 뻔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놈은 신중했다.
마치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이 지칠 때까지 인내하고 있는 노련한 사냥꾼과 같은 모습.
‘역시 성력 없이 힘만으로 버티려니 쉽지가 않네…. 게다가 놈을 똑바로 응시하지 못하는 점도 커.’
공격을 받아내는 잠깐 사이, 오랜 기간 그를 지켜왔던 민준의 갑옷은 이곳저곳이 부서지고, 금 갔으며, 이음새는 망가져 덜렁거렸다.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한 모습.
마력이 실린 놈의 공격을 계속해서 맨몸으로 받아낸 결과였다.
‘게다가 놈의 체급.’
다리를 빼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지만, 공격 하나하나에 실린 무게가 엄청나 능력치가 높아진 상태에서도 받아내기가 만만치 않았다.
[만인적(萬人敵)] 스킬 효과로 능력치 레벨이 2배로 뻥튀기되었음에도 그랬다.‘후욱…. 마치 인간 탈 안에 거대한 놈이 숨어있는 것처럼.’
틱.
[외신의 별이 정화되기까지 남은 시간 00:36:13]민준이 겨우겨우 공격을 막아내면서도 곁눈질로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까득- 빠드득-
갑자기 아틀낙이 자신의 몸을 감싸 안았고, 기존의 다리를 제외한 다른 다리 4개가 등에서 솟아났다. 게다가 깨끗하던 피부 또한 온몸에 핏줄이 서면서 보랏빛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지금!’
민준은 그 틈을 노려 땅을 강하게 박찼다.
그렇게 거칠게 튀어 오른 민준이 아틀낙의 면전까지 가까워졌을 때.
여태껏 아껴온 비장의 한 수,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를 꺼내 들었다.
띠링!
[‘주인을 잃은’ 무구의 이벤트가 진행 중입니다. 무구가 힘을 빌려주길 거절합니다.] [무구는 사용자가 온전히 본인의 힘으로 시험에 통과하길 바랍니다.]‘뭐? 이런 X 같은 경우가-’
푹.
황망함에 힘을 싣지 못한 대검이 놈의 다리에 튕겨 나갔고, 그 순간 나머지 다리 하나가 민준의 견갑을 부수고 어깨에 파고들었다.
“큭…. 이런 X발!”
[업보(業報) 수치 ‘+30’가 모두 근력 능력치로 전환됩니다.] [근력 능력치가 Lv.86에서 Lv.106으로 상승합니다!]민준은 곧장 업보를 근력 능력치로 돌려 놈의 다리를 잡고 들어 올리려고 했으나 그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놈의 다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민준은 당황하지 않고 곧장 단검을 꺼내 삼 연타를 먹였고.
콰득!
[사도의 천적] 스킬이 발동하며 묵색으로 번들거리는 놈의 다리 일부분이 잘려나갔다.쿠구궁-!
때마침 천장의 일부분이 무너지면서 떨어진 커다란 돌덩이.
그것이 절묘하게 둘 사이에 떨어지자, 민준은 이를 이용해 뒤로 물러날 수 있었다.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너무 한정적이야….’
애용하는 [시간 이격]도, 디버프 스킬인 [공간 장악]도 생존시간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항상 그의 비장의 한 수가 되어왔던, ‘역발산기개세’ 역시 막혔다.
손발이 다 잘린 상태로 싸우는 기분.
민준은 그제야 자신이 얻어낸 것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었는가를 절절히 깨달았다.
‘후…. 진정하자. 흥분해봤자 아무 도움이 안 돼.’
그는 머릿속을 차갑게 식히며, 고통 속에서도 아틀낙의 다리를 응시했다.
원래라면 바로 재생되어야 할 다리가 아직 그 끝이 뭉툭하다.
‘…재생이 느려졌다.’
어깨를 불로 지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도 차갑게 머리를 식힌 민준은 다시금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내가 쓸 수 있는 무기는 이 몸뚱이 하나.’
‘그리고 별이 정화될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놈은 거미 형태의 본모습을 드러낸다. 인간 형태가 더 높은 격을 받아들인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놈이 완전히 탈피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나에게 긍정적이진 않을 거다.’
‘그에 더해 이곳은 계속해서 무너지고 있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이것 또한 별과 관련되어있을 가능성으로 추정되고.’
‘다만 희소식 한가지는 권능에 가깝던 놈의 재생능력이 약해졌다는 것.’
‘이 모든 걸 합쳐서 결론을 도출하면…….’
별이 정화되길 기다릴 게 아니라 속전속결로 끝내야 한다.
물론 간을 보며 싸워왔던 지금의 전투도 유리한 상황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질것이 예정되있는 판이라면 판돈이 조금이라도 든든할 때 도박수라도 던져봐야 하지 않겠는가?
질질 끌다간 그마저도 못하게 될 테니.
‘시간이 됐나? …됐다!’
마침 하루라는 쿨타임이 필요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되자 민준이 승부수를 던졌다.
흡!
그가 온몸을 사용해 대검을 휘두르자, 대검은 묵직한 파공음을 내면서 부메랑처럼 날아가 놈의 긴 다리의 한가운데를 노렸다.
하지만 아틀낙은 마력이 실린 다리로 이를 걷어찼다.
성력이 없으니 마력을 실린 공격에 대응이 안 됐으나, 온 힘을 다한 그 충격만큼은 전해졌는지 놈의 움직임이 잠시 경직됐다.
그리고 그사이,
민준이 긴 다리로 허공에 떠 있는 놈보다 더 높은 곳에서 나타났다.
그는 두 팔을 치켜들고 있었는데, 손에는 방금 튕겨 나간 대검이 들려있었다. 아이템 효과는 전혀 없고 그 외형과 크기만 동일할 뿐인 모조품 대검이.
쩌어어어엉!
놈은 물론 마력이 실린 다리를 휘둘러 이를 막아냈지만.
“페이크다. X끼야!”
놈이 기우뚱 다리를 절면서 한쪽으로 넘어졌다.
그 밑에서 민준과 똑같이 생긴 더미가 진품 대검을 들고 놈의 다리를 고목 나무 자르듯 잘라버린 것이었다.
아직 공중에 떠 있는 민준은 대검에 몸을 실으며 아틀낙의 심장을 향해 낙하했고.
어느새 재생된 다리가 민준을 후려쳤다.
“으아아아아-!!”
하지만 민준은 곧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함성을 지르며 다시금 놈에게 달려갔다.
더미가 지속되는 시간 단 5분 안에 승부를 봐야 했다.
생사를 건 싸움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시간은 묵묵히 흘러갔다.
틱.
[외신의 별이 정화되기까지 남은 시간 00:34:08]다시금 놈의 등에서 거대한 다리가 튀어나오며 총 8개가 됐으나.
이번에는 변신하는 틈을 잘 노려 다리 두 개를 잘라낼 수 있었다.
틱.
다리가 잘리고 위기감을 느꼈는지, 돌연 놈이 거미 다리로 자신의 목을 그어버렸다.
그러자 놈은 프라우스 잡기 전 남자 마인처럼 거대한 거미로 변태했는데, 그 크기가 웬만한 저택과 비슷했다.
그리고 그 시점 이후로 아라네움의 붕괴 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졌다.
틱.
[외신의 별이 정화되기까지 남은 시간 00:32:11]원거리에서 놈의 어마어마한 간합을 견뎌내며 빈틈을 찾았지만 실패.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무작정 놈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고. 왼팔이 어깨 밑으로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틱.
[외신의 별이 정화되기까지 남은 시간 00:31:06]도미노 넘어가듯 순차적으로 박살 난 천장이 운 좋게도 놈의 커다란 몸통 위로 떨어졌고, 나는 여태 아끼고 아꼈던 1레벨 치의 성력을 그러모아 대검에 담았다.
미약했지만 놈의 몸에 둘러진 마력을 뚫을 수 있었다.
틱.
[외신의 별이 정화되기까지 남은 시간 00:30:51]고통에 찬 놈이 난동을 피워 벽을 부쉈고, 거기서 떨어져나온 거대한 돌덩이에 다리가 깔렸다. 오른 다리가 무릎 밑으로 감각이 없다.
괜찮다.
놈은 ‘머리가슴’ 밑으로 ‘배’의 감각이 안 느껴질 테니까.
“후욱…. 후욱…. 후욱….”
띠링!
[송파3지역의 성주(星主) ‘아틀낙’을 사용자 ‘이민준’이 시해했습니다!] [위대하고 거룩한 업적!!] [‘메인 퀘스트-레이드’를 클리어합니다!] [성장형 칭호 ‘첫 사도 살해자’의 조건이 충족됩니다!!] [‘주인을 잃은’ 무구의 시험을 통과합니다! 무구의 베일이 드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