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호사다마(好事多魔) (3)
언제고 캠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논의했었던 회의실의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은 다섯.
이들은 앉자마자 민준에게 질문세례를 퍼부었다.
“어떻게 되신 겁니까. 진짜 성주를 죽이는 데 성공하신 겁니까?”
“별은? 외신의 별은 부수신 겁니까?”
“아저씨, 소희 누나는? 아저씨한테 전할 말이 있다고 떠났었는데.”
“잠시, 잠시. 하나하나 천천히 대답해드리겠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여러분들과 함께 하는 시간까지 아끼고 싶진 않으니까요.”
민준은 그렇게 흥분한 그들을 가까스로 진정시키고, 아라네움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주었다.
아라네움에서 섣불리 움직였다가 마인에게 잡혔던 이야기. 하지만 그로 인해 보물을 찾았다는 이야기부터.
“진짜?! 아저씨 보물 찾은 거야? 그럼 생존시간은?”
“그건 소희 씨에게 맡겨놨어. 다른 캠프 상황이 어떨지 몰라, 보험 들어놓는 겸 그곳을 부탁드린다 보냈고.”
“아, 오빠! 아저씨 이야기 아직 안 끝났잖아! 그래서? 생존시간 얻고 나서는 어떻게 됐어?”
“그야 나쁜 놈들 물리치면서 성주를 찾아갔지?”
그렇게 이어진 민준의 이야기는 성주를 죽이고 별을 파괴하는 대신, 정화하는 것에 이어.
그로 인해 나타나게 된 ‘타니’의 존재를 소개해주며 끝을 맺었다.
“진짜?! 별이 흰 토끼야?!”
눈을 반짝이며 질문하는 서우의 머리를 쓰다듬은 민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응 그럼! 아저씨가 타니랑 친구 됐으니까 나중에 소개해줄게.”
“약속이야?!”
“물론이지.”
민준은 짜리몽땅한 서우의 새끼손가락에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를 보는 전병철의 표정은 걱정이 가득했다.
“자아를 가진 별이라……. 민준씨, 그럼 정화된 별이라고 한들, 사실은 성주랑 다를 바 없는 거 아닙니까. 혹시 그 존재가 나쁜 마음이라도 먹는다면…….”
“저도 정화된 별에 대해 모든 걸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 먼저 건들지 않는 이상에야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러니 캠프원들에게 사냥이나 식료품 보급을 위해 돌아다니더라도 가락시장 근처로는 다니지 말라고, 주의만 주면 될 것 같습니다.”
“흠, 우선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파해 놓도록 하죠. 그건 그렇고 은인님께서 다시 캠프로 오신 건 아무래도…….”
“네 맞습니다. 아라네움에서 탈출하니 밖이 이 모양이더군요. 떠나기 전에 이렇게 변한 경위에 대해 듣고자 왔습니다.”
민준의 말을 들은 전병철은 회의실 밖에 서 있던 인원 하나를 호출해 눈으로 신호를 주었고, 그렇게 그 인원이 밖으로 나가자 다시금 민준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우선 은인 님께서 별을 정화하는 동시에 아라네움이 무너졌다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저희는 그게 별이 정화되는 과정인지 몰랐지만, 아라네움이 무너지며 지축이 울리던 그때, 새로운 틈이 생기는 것만은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 틈이 생기자 그 주변으로 여러 변화가 일어났죠.”
“변화 말입니까?”
“네, 혹시 여기까지 오시면서 틈을 만져보신 적은 있으십니까?”
“아뇨, 일이 꼬여버릴까 봐 건들진 않았습니다.”
“그럼, 말로 듣는 것보다 직접 확인하시는 게 빠를 겁니다.”
그렇게 말한 전병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섰고, 그렇게 나간 그를 나머지가 따랐다.
담소를 나누며 도착한 곳은 현재는 야외 훈련장으로 쓰는 곳이자, 예전 시카리우스의 관문이 자리하고 있던 주차장.
“…어?”
그곳엔 민준이 놈의 핵을 부숨으로써 닫았던 틈이 다시금 벌어져 있었다.
그리고 풀숲이 우거진 밖에선 미쳐 알 수 없었지만, 사람의 손길이 닿은 이곳에 놓여있으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틈을 중심으로 전염되듯이 퍼져있는 우거진 녹림.
그리고 그 녹림의 큰 축을 이루고 있는 마목은 앙상한 가지만 무성하던 예전과 다르게 푸르른 잎이 그득히 자라 생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가지에는 이전보다 훨씬 많은 마석이 매달려있었다.
‘마석이 더 많이 생산되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막상 보니 어마어마하네.’
「[캠프 상황실]
이름: 송파 거점캠프 (2)
캠프장: 이민준 (대리: 전병철)
등급: Lv.5
내구도: 13,000/13,000
인원: 94/120명
생산력: 250(x2)개/day
비고: ‘정화된 별’ (마석 생산력 2배)」
민준은 사실 이곳에 오면서 시스템 창으로 캠프의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해 놓은 상태였다.
캠프에 가려면 우선 그게 온전히 자신이 아는 자리에 붙어있는지, 혹여나 [송파 거점 캠프 (1)]처럼 비고란에 ‘사도에게 점령당했습니다.’라는 문구가 있진 않은지 미리 확인해야 했으니까.
다만…. 글로써 보는 것과 실제로 업그레이드된 캠프를 눈으로 마주하는 것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다.
새삼 놀란 표정을 짓는 민준을 본 전병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짓으로 틈을 가리켰고.
이를 확인한 민준이 조심스레 다가가, 이곳까지 오면서 보았던 틈처럼 푸르게 발광하는 빛무리에 손을 가져다 데려는 순간.
쿵. 쿵. 쿵.
그 순간 목책 너머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면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캠프 안으로 흙먼지를 잔뜩 일으키며 뛰쳐 들어왔다.
“대장!”
정진호와 그의 팀원들에 더해, 그 옆에 민준이 구했던 세진이 우람해 보이는 흑표범을 타고 민준에게 달려들었다.
‘…나비?’
그런데, 도저히 낯이 익을 수가 없는 낯선 짐승에게서 웬 익숙한 모습이 겹쳐 보였다.
* * *
회색빛 일색의 콘크리트 건물이 가득하던 죽어버린 도시에 녹음(綠陰)이 묻어나자, 도시가 다시금 살아났다.
물론, 예전과는 다른 ‘살아남’이었지만.
어느 쪽으로든 이전보다 생명력이 가득해 보인다는 점은 명확했다.
콰득!
정진호의 육중한 전투 도끼가 그에게 달려든 거대 쥐 대가리를 반으로 갈랐고.
잿빛 털 대신 눅진한 오물을 떨어뜨리던 놈이 몸을 파르르 떨며 쓰러졌다.
[‘오물 쥐’를 제거하고 10시간의 생존시간을 노획했습니다.]그는 한 마리를 처치했다는 메시지를 들었음에도 다음 동작을 위해 발을 바삐 움직였다.
짧은 기간 동안 겪어본 놈들은 사도들처럼 스무 마리 혹은 서른 마리 이상씩 무리 지어 다녔기에, 고작 한 마리 죽인 것으로 안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진아!”
정진호가 얼마 전 새로 합류한 막내의 이름을 불렀다.
그가 가장 아끼던 막내 김건호가 얼마 전, 제 전투력과 통솔력을 인정받아 자신만의 팀을 꾸려 출가했기 때문에 추가했던 영입.
“쿠와앙-!”
정진호의 말에 사람 체구의 세 배는 거뜬히 넘는 흑표가 전병철의 손에 닿지 않는 오물 쥐 하나를 단숨에 물고는, 사정없이 흔들어 반으로 찢어 버렸다.
그 위에 타고 있는, 이제 갓 소년티를 벗은 듯한 더벅머리 청년이 그의 팀에 들어온 새로운 막내였다.
“확실히 치고 빠져! 오물에만 침식되지 않으면 별거 아닌 놈들이야!”
전병철의 외침에 10명에 가까운 그들의 팀원들이 2인 1조로 움직이며, 착실하게 오물 쥐를 지워나갔다.
퍽!
그리고 흑표의 거대한 앞발에 깔린 마지막 오물 쥐의 머리가 터져나가자, 팀원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팀원들을 놔두고.
정진호는 전투 도끼를 등에 메고 어딘가로 걸어갔다.
부위별로 착용 되어있는 그의 갑옷에 마르지 않은 피가 덕지덕지 붙어있었지만, 그의 신경은 온통 다른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
허공에 떠 있는, 언뜻 거울처럼 보이는 푸른 빛이 모여 이룬 2차원의 타원.
그는 신중한 표정으로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려 푸른 면에 손을 가져다 댔지만, 그 신중한 모습이 허탈할 정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처음 들어보는 존재가 이를 막고 있다고만 떠오를 뿐.
[사용자의 입장을 ‘타니’가 불허합니다.]‘이번에도….’
정진호는 맨 처음 이런 틈이 생겨나던 며칠 전 일을 떠올렸다.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가락시장에 있던 아틀낙의 둥지가 무너지고.
그와 동시에 그곳에서 퍼져나온 푸른색 파동이 일대를 뒤덮었던 그 날.
세상은 다시 한번 변화를 맞이했다.
‘이전과는 명백히 다른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한 도심.’
이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김건호와 그의 팀원들이었다.
그들은 이제 야외 훈련장이 된 옛 주차장에서 훈련 중이었고, 그곳에서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틈’이 다시금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이건.’
모를 수가 없는 익숙한 형태.
다시금 생겨난 틈을 보자마자, 이제는 실력에 자신이 있던 정진호는 곧장 틈을 닫기 위해 팀원들을 데리고 들어가려 했고.
무엇이 문제인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틈으로 인해, 그 시도는 좌절되었다.
그렇게 예상외의 상황에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 다시 한번 세상이 진동하더니 방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종말이 다시 한번 찾아오는 줄 알았었지…….’
그건 종말의 그 날 이후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규모로 일어난 변화였다.
목책을 세우고 남았던 주변의 몇몇 가로수가 급속도로 자라나더니, 작은 건물들은 가볍게 압도하는 거목으로 자라났고.
사람의 허리만큼 오는 관목들 또한 기존의 나무처럼 크게 자라났다.
사실 변화로 일어난 것이 단지 그것뿐이라면 그러려니 했을 수도 있었다. 일단 당장의 피해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까드득- 까득!
같이 훈련장에 있던 세진의 검은 고양이에게서 뼈가 부러지는 무서운 소리가 들리더니 녀석이 점차 크기를 불려 나갔다.
그렇게 녀석은 모습도 크기도 달라진 한 마리의 흑표범으로 변했는데, 이는 일전에 그가 동물원에서 봤던 크기보다 훨씬 커 보였던 것이다.
나무뿐 아니라 주변의 생명체들이 전반적으로 커졌고, 강해졌다.
‘헌데.’
이러한 변화가 시작된 원인으로 의심되는 점은 많았으나.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은 없었다.
그래서 현재 가용가능한 인력들 모두가 나와, 이렇게 주변을 탐사하고, 정보를 수집하게 된 것이다.
크르릉-
“…?”
상념을 이어가던 중.
돌연 낮게 골골거리는 소리의 진동에 정진호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리자, 종이 바뀌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거대해진 세진의 나비가 그에게 다가와 얼굴을 부비고 있었다.
마치 너무 머리 싸매고 고민해봤자 해결되는 건 없으니, 그만 걱정하라는 것처럼.
‘고맙다.’
정진호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비가 유독 좋아하는 육포를 품에서 꺼내어 먹여주면서 녀석의 머리와 볼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청년이 불퉁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민준 덕분에 시카리우스의 독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게 됐던 주안이라는 청년이었다.
“팀장님, 이만 돌아가시죠. 몇 번을 확인해봤자 똑같지 않습…. 악!”
그가 말을 채 있기도 전에 정진호는 커다란 주먹으로 털썩 주저앉아있던 그의 머리를 쥐어박고는 나무랐다.
“콱! 너 자꾸 꿍얼댈래? 나비의 반만이라도 닮아봐라.”
“아, 또 왜 짐승이랑 비교를-”
“혹시나 예외가 있을 수도 있으니, 해가 허락하는 한 최대한 돌아다녀 봐야 한다는 거 몰라?”
“아니……. 저런 틈만 벌써 서른 개정도 확인했으면 이미 많이 확인한 거 아닌…. 악!”
“이놈이 그래도! 새로 들어온 막내 좀 본받아라. 과묵하면서도 얼마나 믿음직스럽냐.”
“멸망 전후로, 제가 얼마나 열심히 팀장님을 보필해드렸는데. 자꾸 굴러온 돌들이랑 비교만 하십니까! 아이고……. 세상 사람들…. 흡!”
“…쉿.”
그렇게 앓는 소리는 내던 주안의 입이 갑작스레 세진의 손으로 막혔다.
정진호도 이미 눈치를 챘는지 도끼자루에 손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부스럭.
그렇게 잠시간 이어진 고요 속에서 풀숲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
이제야 다른 팀원들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어느새 일어나 자신의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팽팽한 긴장감 속.
풀숲 너머에서 돌연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버스.”
“…”
“버스.”
“달무리.”
풀숲 너머로 들리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정진호가 대답했고, 그러자 풀숲에서 가벼운 옷차림의 사내 둘이 나타났다.
“팀장님, 안녕하십니까.”
“그래, 무슨 일이야. 캠프에 무슨 일 있어?”
“캠프장님이 ‘캠프 (2)’로 오시랍니다.”
“전 캠프장님이 갑자기?”
“대장이 돌아왔습니다.”
“…응? 대장?”
그 말에 계속 불평 일색이던 주안도, 그를 붙잡고 있던 세진도 고개를 돌려 새로 나타난 캠프원을 바라봤다.
“분명 떠나신다고……. 아, 그럼 소희는? 소희도 돌아왔나?”
“정 차장님은 안 계셨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정진호는 바닥에 앉아있던 주안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번쩍 들어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뭐해! 캠프장님이 빨리 오라고 하시잖아!”
“아…. 아니, 방금 전만 해도…. 악! 아니 너는 왜 때려!”
그의 뒤통수를 때린 건 동그란 안경을 끼고 있는 여성이었다.
이미 [최소한의 자격]을 얻으면서 안경 따위는 필요치 않은 신체가 되었음에도, 습관 때문에 알이 없는 안경을 쓰고 있는 그녀는 민준이 주안과 함께 구해줬던 하율이라는 여성이었다.
“네가 그래서 안 돼. 제발 그 입 좀 다물고 조용히 따라와라.”
그녀의 한마디에 합죽이가 된 주안은 툭 튀어나온 입을 하고는 이미 떠나고 있는 팀원들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