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동쪽으로 (4)
다리가 많기에 백족(白足)으로도 불리는 지네는 설화나 전설, 혹은 대중매체에서도 자주 등장할 만큼 인간에게는 친숙한 벌레다.
물론, 그 말이 실제로 지네를 만났을 때도 친숙함을 느낀다는 뜻은 아니다.
다리 한 쌍이 달린 체절(體節), 즉 마디가 적게는 십여 개, 많게는 백여 개가 연결되어있어 필연적으로 생기는 많은 다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혐오감과 거부감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게, 인간보다도 수십 배는 거대한…. 이무기나 다를 바 없는 거대 지네라면 더더욱.
“키에에에엑-!!”
자신의 둥지를 건드려 잔뜩 성이 났는지 높게 고개를 쳐들고 포효하는 거대 지네, 기간티아.
놈이 내뿜는 피어에, 주변 대기가 살기로 넘실거렸다.
이는 그 아래 쓰러져있는 강상철뿐 아니라, 그의 팔에 들려있던 린의 몸조차 굳게 만들었으니.
그런 그들을 향해 기간티아가 곧장 독 발톱을 펼쳐든 채로 쇄도했다.
“으아아…. 아?!”
어지간한 건물보다 거대한 지네의 돌진과 완전히 굳어버린 몸.
인상을 찌푸린 강상철이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그 순간.
사륵-
강상철의 시야에 잿빛 옷자락이 스쳐 갔다. 그와 거대 지네 사이에 끼어든 민준이었다.
어느새 이쪽을 향해 돌아온 민준이 새하얀 빛을 머금고 있는 칼날로 독액이 뚝뚝 떨어지는 놈의 발톱을 막아내고 있었다.
“쓰읍…. 냄새.”
민준은 불쾌한 입김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진 놈의 턱을 억지로 밀어냈고. 그러자 미리 준비되어 있던 듯, 그 앞에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띠링!
「[서브 퀘스트 – 레이드]
난이도: B-
클리어 조건: 플레임렉의 가신이자, 승천하기 위한 수행을 그만둔 탕아, 기간티아.
그를 죽이고 관문을 폐쇄하세요.
(권장 사항) 골드등급 이상 2/6명
보상: 선업 +0.5, 5,000시간, 아이템 ‘오염된 구슬’
거절 혹은 실패 시: 없음」
‘오히려 땡큐지.’
어차피 놈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 보상까지 챙길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민준은 즉각 놈의 턱을 밀어내고자 힘겨루기를 시작했고.
쩌저적-!
민준과 기간티아가 딛고 있는 아스팔트 바닥이 시간이 지날수록 조각조각 나며 박살 났다.
‘생각보다…….’
놈의 완력은 훨씬 강력했다. 아틀낙의 세 딸보다 배 이상은 더 강한 느낌.
떨려오는 팔이 이를 반증했다.
‘대신 이 녀석들의 독은 부가적인 수단일 뿐이다. 크게 상관하지 않아도 돼.’
이미 새끼 지네 군단에게 이능의 여러 사용법을 실험하면서, 지네의 특성 또한 파악한 민준이 이를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놈들의 주 무기는 강력한 피지컬 그 자체.’
그리고 하나 더 주의해야 할 것은.
‘질긴 생명력.’
이놈들은 그냥 찔러 죽이는 것으로는 죽지 않는다. 마치 영화 속 좀비처럼 반 토막은 내야지 안심할 수 있을 정도의 생명력을 지녔다.
체급을 뛰어넘는 근력과 민첩함 그리고 질긴 생명력.
독은 이를 가리기 위한 연막이자, 주 무기를 극대화 시켜주는 보조 무기일 뿐이었다.
이 점만 인지하면 놈들은 상대하는 건 이 전에 상대했었던 거미처럼 껄끄럽지 않았다. 다양하고 까탈스러운 특기들을 가지고 있던 놈들과 다르게 지네는 단순했으니까.
‘물론 관문의 주인쯤 되면 다른 능력이 없으리란 법은 없지만…….’
기본적인 특성은 지네 종족이 지닌 것과 같을 것이다.
‘…그렇다면 꿀릴 건 없지.’
놈의 근력이 예상보다 강하다는 것이지 [역발산기개세]를 사용한 자신보다 강하다는 뜻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민준은 뒤에 있던 강상철이 린과 함께 물러난 걸 느끼고는 본격적으로 힘을 줬고, 핏줄이 두드러지면서 전완근이 갈라졌다.
‘약간의 변수가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준비했던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다.
이제 상철은 주변 새끼 지네들을 상대하며 민준이 놈과 온전히 일대일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 자신은 이 녀석을 죽이고 틈만 닫으면 된다.
카가각- 쿠궁!
민준이 성신력을 더한 채, 내딛는 앞발에 무게를 실었다.
이전과는 출력 자체가 다른 힘일 터다. 그가 가진 능력치는 그 자체로도 굉장히 높은 수준에 있으나, 이능이 더해지는 순간 말도 안되는 폭발력을 지니게 되니까.
둘 사이에 벌어지는 힘 대결로 인해 차도가 실시간으로 파괴되고 있는 와중에, 기간티아는 점점 지면 속으로 파묻히고 있었다.
민준은 놈의 홑눈과 겹눈에서 당황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흐흐, 이런 적은 처음이지?’
그는 이를 즐기며 놈을 더욱 몰아붙였고,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놈의 몸에서 급격하게 마기가 불타오르듯 일렁거리더니, 황급히 민준의 칼을 쳐냈다.
구석에 몰린 상황에 사용한 기술이니만큼 구명절초 중 하나일 게 분명했다.
– !@#$#%&
지금 상황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무어라 소리치는데 영 뭐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놈은 인간의 말까지는 하지 못하는 모양.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놈도 알고 있어서 그런 걸까, 잠깐 뭐라고 소리를 지르던 녀석은 이내 민준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 [공간장악]을 따라 둥그렇게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몸길이가 약 200m는 되는 놈이 그렇게 둘러싸자, 우물에 빠진 듯 그늘이 저 시야가 어두워졌다.
– 키르르르르.
그리고 탈출하기 위해 안에서 미친 듯이 검을 내리치는 민준을 보고는, 놈이 비웃듯 낮게 울어댔다.
무르던 외골격을 가진 새끼 지네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
‘선택하라 이거지?’
안에 있다가 깔아뭉개지던, 머리 위에 있는 유일한 탈출구로 뛰어오르던 둘 중 하나는 선택할 수밖에 만드는 이지선다.
분명 저 위로 뛰어오르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함정일 것이다.
그리고 이는 어떤 공격에도 부서지지 않는 단단한 갑주를 지녔다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발로일 터.
‘너무 오만하네.’
여상히 중얼거린 민준은 새하얗게 불타는 장도를 가볍게 납도하고는 앞발을 내디뎠다.
새롭게 익힌 기술을 다시 한번 선보일 시간이었다.
* * *
‘…젠장! 도와줘야 하는데…….’
곧게 뻗어있는 지팡이 검을 휘두르며 새끼 지네들을 베어 넘기고 있는 강상철의 신경은 온통 저 뒤에 집중되어있었다.
긴 몸체를 원통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기간티아.
저 안에 민준이 갇혀있다.
깡. 깡. 깡.
쇠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봐선, 저놈이 쳐놓은 높은 벽을 부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 후에 이어지는 정적이 강상철의 마음을 급하게 했다.
자신이 가봤자 민준도 어쩌지 못하는 놈을 어쩔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될 수도.
“…흐읍!”
다수를 상대하느라 이미 진일 빠질 대로 빠진 상태였으나, 강상철은 안간힘을 다해 검을 휘둘러 지네 떼를 뒤로 물렸다.
그리고 잠깐 드러난 공간으로 놈을 향해 내리달렸다.
– 끼에에에에에엑!!
“…?!”
다만, 그때 머리 위에서 들리는 소름 끼치는 소리에, 강상철은 본능적으로 녀석을 바라보았고.
스윽-
기간티아가 몸으로 만든 원통 벽에 세로로 흰 줄이 생겨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진액이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틈 사이에서 무색으로 일렁이는 갑주를 입은 사내가 걸어 나왔다.
‘후…. 그럼 그렇지.’
그를 믿지 못한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아닌가.
그러니 자신이 하는 걱정은 당연한 것이리라.
강상철은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며 전투가 무사히 끝났음에 안도했다.
그리고.
민준의 뒤편, 놈의 시체에서 떠오른 붉은색의 구슬을 보고는 다시 또 사색이 되어 민준에게 소리쳤다.
“민준 씨, 조심…!!”
기간티아의 머리 앞에 떠오른 적색 구슬.
조그마해진 몸으로 다시 생기를 찾은 놈은 꼬리를 자라고 도망가는 도마뱀처럼, 짧아진 몸뚱이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어디론가 기어갔다.
그곳은 민준이 서 있는 방향이 아닌 새끼 지네 떼가 있는 곳.
콰득! 콰드득!
놈은 그렇게 지네 떼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새끼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새끼들보다도 몸이 작아진 녀석은 새끼들을 거침없이 물어뜯으며 빠르게 제 몸집을 불리는 광경은 놀랍고 신비롭다기보다는 지독하게도 기괴하고 징그러운 모습이었다.
그렇게 새끼를 먹을수록 적색 구슬이 당장이라도 피가 뚝뚝 떨어질 정도로 짙은 핏빛을 띠게 되었고. 놈의 절단면에서 다시금 마디마디가 연속적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미처 반응할 수도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제 몸을 복구한 기간티아.
저런 괴물을 더 이상 민준 혼자만 상대하게 둘 순 없었다.
“민준 씨! 저도…….”
강상철은 민준을 도와 함께 싸우기 위해 각오를 다졌고.
이내 그의 곁까지 다가온 상철의 눈에.
놀이터에서 뛰어놀던 어린아이가 길게 줄지은 개미를 발견한 것마냥 무척 흥미로운 것이라도 발견한 듯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민준이 보였다.
* * *
저 적색 구슬.
분명 아틀낙의 세 딸이 지니고 있던 틈의 핵과는 확연히 다른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오히려 오우거에게 나왔던 구슬, 정수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크기는 보다 훨씬 컸지만.
그렇기에 민준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게 퀘스트 보상으로 받을 ‘오염된 구슬’이며, 놈의 정수와도 같은 것임을.
‘린이 저건 먹으려나.’
젤니아의 원주민이라면 정수를 수집하는 걸 목표로 한다고 했다. 그리고 린 또한 젤니아의 원주민.
차원이 다른 만큼, 저 구슬이 정수와 완전히 같진 않겠지만 비슷한 기운을 품고 있는 걸 봐서는 저것이 린의 성장 재료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었다.
민준은 곧장 땅을 박차고 놈을 향해 달렸고.
놈 역시 어느덧 멀쩡해진 몸으로 그를 향해 쇄도했다.
화륵!
‘…뭐?!’
그러나, 이번 격돌에서 이전과 다른 점은 녀석이 검붉은 구슬을 사용해 불길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저 구슬을 매개로 마법인지 도술인지 모를 것을 부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 봐야 감당하지 못할 불길은 아니지만 말이야.’
순간 얼굴이 익을 것 같은 열기가 느껴졌으나, 반사적으로 발현된 [패왕의 갑주]는 이를 가뿐히 막아냈다.
나름 비장의 한 수라고 준비한 것 같긴 한데, 자신을 저지하기에는 화력이 부족하다.
민준은 방향을 꺾지 않고 쇄도해, 곧장 불길을 뚫고 높이 몸을 띄웠다.
그리고, 검붉은 불꽃을 두른 상태로 자신을 향해 튀어 오르는 놈을 향해.
역수로 잡은 칼을 내리꽂았다.
-키에에에엑!!
콰아앙!!
놈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대기를 진동시키는 와중에도, 아스팔트 지면까지 박살 내며 동시에 낙하했다.
머리가 반쯤 갈라졌음에도 발버둥 치는 기간티아.
이번에는 확실히 숨통을 끊기 위해 갈라진 재빨리 그 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마기가 느껴지는 곳으로 손을 헤집자 만겨지는 무언가.
민준은 곧장 악력으로 이를 으깨버리며, [사도 포식]을 사용했다.
띠링!
[‘기간티아’를 제거해 관문을 폐쇄했습니다.] [‘송파 거점캠프 (1)’을 다시금 되찾습니다.] [‘서브 퀘스트 – 레이드’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선업 +0.5’, ‘5,000시간’, 아이템 ‘오염된 구슬’을 획득합니다.]띠링!
[‘사도 포식’을 사용해 ‘관문의 핵’을 흡수합니다.] [‘기간티아’가 지녔던 특성 중 하나를 흡수할 수 있습니다!]‘[골격 강화], [재생력], [괴력]’
민준은 홀린 듯 떠오른 세 개의 버튼 중 하나를 클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