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35
135화. 해내야 하는 것 (3)
거여동과 마천동.
곳곳에 대규모 공사현장이 즐비한 상태에서 종말을 맞이했던 두 동네를 앞에 두고.
민준은 작전 브리핑을 하던 상철이 전파해준 정보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건축자재가 많이 쌓여있어서 그런 건지, 다른 꿍꿍이가 있는지 알 수는 없었습니다만 제가 확인한 바로는 마천동 2곳, 거여동 2곳, 마지막으로 장지동에 1곳, 그렇게 해서 총 5곳에서 지네들이 생존자들을 이용해 뭔갈 짓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놈들의 관문이 있다는 장소와도 일치했으며, 당연히 그 주인 괴물들도 근방에 거주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관문을-] [잠시만요, 상철 아저씨. 관문이요?]당시 그의 말에 나만 의문을 표했던 것이 떠올라 마지막으로 상황을 점검한 것이다.
[거여역에 외신의 별과 플레임렉이 있다고 들었는데, 왜 굳이 관문까지 닫아야 합니까?]다들 그 이유를 알고 있는 것 같았으나, 말을 아끼던 상황.
영문을 몰라 하는 나를 위해 상철은 설명을 대신해 흐릿한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을 보여줬었다.
‘이건?’
그 사진에 담겨 있던 것은 지면을 부수며 용솟음치는 무언가.
흐릿하긴 했지만, 얼마나 거대한지 프레임 안에 다 담기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기둥이었다.
[녀석이 플레임렉입니다. 놈은 다른 성주들 중 유일하게 별을 제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몸집이 작아지는 다른 성주에 반해 끊임없이 그 크기를 불리고 있는 개체입니다. 그 육중함 몸을 드릴 삼아 지하철 5호선을 중심으로 땅속을 마구 돌아다니다가 자신이 원할 때만 모습을 드러내죠.]‘…제길.’
낭패였다.
인간 형태로 변하는 성주를 고려해 바꾼 무기는 둘째치고.
저 먼 독일의 전쟁사까지 끌고 오면서 제안했던 자신의 작전은 기습과 동시에 기세를 파도 삼아 적의 핵심을 단시간 내에 까부수는 전술이었기에. 목표가 정확해야 했던 탓이다.
‘그런데.’
찾아가도 만날 수 없는 성주라니.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이라도 급히 다른 작전을 짜야 했다.
민준은 어쩔 수 없이 정이든 캠프를 버리고, 가락시장으로 퇴각하는 것까지 고려했고.
그렇게 송파서를 포기하는 걸 전제로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려는 순간.
상철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앞서 그 이상한 구조물에 대해 말씀을 드렸던 겁니다. 뭔가 이상한 점들이 보였거든요.] [이상한 점이요?] [네, 놈들은 정오 때마다 공사 중인 그 건물을 향해 절을 하더라구요. 그것도 한 곳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섯 곳의 모든 지네가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이 말입니다.] [확실히 이상하군요.] [그뿐만 아니라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을 모아 제일 꼭대기에 가둬놓기도 하던데. 환자를 두고 서로 다른 지역의 지네가 죽기 살기로 싸우는 모습을 보면, 아마 녀석들에게 저 구조물과 환자가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상철이 거기까지 말하자 나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달을 수 있었다.
[네. 놈들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단 한 가지만은 확실합니다. 놈들 종족 전체가 한가지의 목적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거죠.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벌집 들쑤시듯 그걸 방해하면 어떻게 될까요?] [수하들의 성토에 못 이겨, 뒷짐 지고 관망만 하던 대가리가 등장하겠군요.] [민준 씨가 말씀하신 작전을 듣자마자, 저도 그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그리고, 가능성을 점쳐봤죠.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결론은…. 아마.] [네.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였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지켜봤던 민준 씨의 전투능력이라면 이 말도 안 되는 계획이 놈들에게 치명적인 비수가 되어 숨통을 끊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그렇게 동길과 상철을 비롯한 각 팀의 팀장들과 모여 수립한 이번 작전의 가장 중요한 요지는 결국 ‘속도’였다.
전체적인 틀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성패는 자신을 비롯한 공격조가 플레임렉을 거꾸러뜨리는 동안.
동길을 비롯한 수비조가 남하하는 나방으로부터 캠프를 얼마나 지킬 수 있느냐에 달려있었으니까.
‘내가 플레임렉에게 져도 작전은 실패. 그리고….’
어렵사리 플레임렉을 찾아내 죽이고 별을 정화 시키더라도.
시간을 너무 지체해 캠프를 지키고 있던 동길과 나머지 죽어버린다면 그 또한 실패다.
물론, 그에게 힘닿는 데까지 지키다가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으면 도주하라 언질은 해놓았으나. 성격상 동길이 힘들게 얻은 캠프를 두고, 그럴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수비조가 뚫리는 순간 공격조의 후위가 노출된다.
그렇게 되면 퇴로가 막힐뿐더러 지네와 나방으로부터 포위될 테고…. 공격조가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갈 가능성도 급감한다.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동길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공격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벌어주고자 할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오직 공격 또 공격이었다.
여기서 기세가 꺾인다면, 그러므로 놈들이 정비를 시작한다면 놈들을 밀어붙이는 속도가 줄어들 테니까.
‘현시점에서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건 벌레 X끼들을 짓이기는 것뿐이야. 나는, 그냥 잘할 수 있는 걸 하자.’
이 작전을 시작한 이상, 그게 유일한 활로다.
캠프를 버리고 도망간다는 선택지가 있음에도, 결국 녀석들을 죽여야만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는 의의에 공감해준 팀원들을 위해서라도.
위험한 작전임을 알지만.
거미가 인간을 사육했던 것처럼 지네들이 현재 어떤 짓거리를 벌이고 있는지.
놈들이 어느 곳을 기점으로 모여있는지. 그곳의 전력은 얼마나 되는지.
현재까지 수집한 정보를 통해 어떻게 하면 플레임렉을 불러낼 수 있을지.
타임 테이블에 맞춰 작전을 수립해준 팀원들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자신이 해줘야 할 타이밍이었다.
‘덕분에 맵핵을 켜고 게임을 하는데, 못하면 안 되지.’
팀원들의 피로 쌓아 올린 정보라는 금자탑.
그게 무용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 작전을 꼭 성공시켜야 했다.
“조장, 이쪽으로! 마천동에 있는 두 제단은 허물었으니, 이제 거여동 차례입니다! 지금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설명은 필요 없습니다! 데려다만 주세요!”
작전이 시작되고서부터 민준을 계속 조장이라 부르기 시작하는 강상철은 그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으로 튀어 나가며 그를 이끌었다.
잔뜩 흠이 난 갑옷. 너덜거리는 옷가지. 생채기는 당연하고, 포션으로 급하게 봉합해 커다랗게 흉진 자상까지 있다.
그러나, 이미 연이어 벌어진 전투로 엉망이었음에도 그는 전혀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로지 민준을 안내하는 것만이 사명인 것마냥 오로지 길잡이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이었고.
민준의 뒤를 따르는 열다섯의 인원들 또한 대규모 전투로 온몸이 만신창이임에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그를 쫓았다.
‘후우….’
민준 또한 만전의 상태는 아니었다.
이미 마천동에 있는 플레임렉의 가신 둘을 죽여 관문을 닫고, 그곳에 있는 거대한 피라미드를 부쉈으니까.
‘힘들긴 한데, 얻은 게 없는 것도 아니고…. 힘든 티를 내선 안 되겠지.’
그는 빠르게 달리고 있는 자신을 산책가듯 가볍게 따라오는 린을 바라보며 고된 마음을 달랬다.
마천동에서 만났던 두 관문의 주인들은 ‘송파 거점캠프 (1)’ 앞에서 만났던 기간티아처럼 다들 작은 구슬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고.
그 구슬을 죄다 린의 성장을 도와주는 영양분으로 줬기 때문이다.
‘자식 키우는 맛이 이런 걸까?’
지갑에 고이 잠들어있는 2세의 사진을 보며 묵묵히 사회생활을 버티는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서는 그도 몇 번이고 ‘들은 적’이 있었는데.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감히 생각했다.
녀석의 성장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러오는 것만 같은 포만감은 거짓이 아니었으니까.
「[영물(靈物)]
이름: 린
종족: 기린(麒麟)
레벨: Lv.9
선천적 특성: [길조(吉兆)], [-Lock-], [-Lock-]
후천적 특성: [신성한 불]」
매번 ‘후천적 특성’을 얻는 것은 아닌지 두 번의 구슬을 흡수하면서 아무 기술도 얻지 못한 녀석이긴 했으나.
레벨만은 쑥쑥 올라 곧 10레벨을 앞두고 있었다.
‘10레벨이 되면 잠겨있는 선천적 특성 중 하나가 열리지 않으려나…?’
자신의 자식은 모두 천재로 보인다는 말처럼, 린이 다음에 얻게 될 기술은 엄청난 것이 아닐까 자연스레 기대가 되는 민준이었다.
그렇게.
정신을 삭막하게 만드는 긴장감이라는 사막 속, 유일한 오아시스에서 헤엄치고 있던 민준을 건져 올리는 소리가 그의 귓가에 갑작스레 들려왔다.
– 으아아! 제발 뒈져!
– 야! 조심…. 크억.
– 키에엑!
사람들의 비명과 함성에 섞여 들려오는 벌레들의 울음소리.
공격조 중 강상철을 포함한 몇몇도 이를 감지했는지, 속도를 가일층 높였다.
그렇게 얼마나 뛰었을까.
“맙소사….”
코너를 꺾자 저 멀리 보이는 수라장에, 조원 중 누군가가 본인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광활한 부지를 둘러싸고 있는 녹슨 차단막.
그곳에 그려진 멋들어진 조감도는 이곳이 한때, 아파트 단지 공사현장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으나.
그 안에 세워져 있는 건 이미 두 번이나 무너뜨린 적이 있는, 언뜻 피라미드를 닮은 기괴한 구조물과.
수많은 전투와 악조건에서 살아남았던 그들조차 일찍이 본 적 없던 생지옥뿐이었다.
피로 추정되는 붉은 액체가 흙에 흡수되다 못해, 언덕을 따라 시냇물처럼 흐르고 있었고.
그에 못지않게 널브러져 있는 수백 마리의 지네 사체는 강력한 악취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마경. 이곳엔 인세의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
인간들이 강제노역 당하고 있던 이전 두 곳과는 완전히 다른 광경에 당황한 그들이 잠시 멈칫했지만.
빠르게 정신을 차린 민준이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강 형사님은 1, 2, 3팀을 데리고 작전을 수행해 주세요! 저와 4, 5팀은 사람들을 구합니다!”
그의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원들.
곧바로 민준을 중심으로 4, 5팀원들이 쐐기 형태의 진형을 펼쳤고, 그 뒤에 강상철을 비롯한 다른 팀원들이 몸을 숨겼다.
곧이어 놈들에게 중심으로 파고드는 진형.
촤아아악-!
민준이 장도가 번쩍이며 강렬한 뙤약볕을 반사할 때마다, 홍해가 갈라지듯 푸른 진액으로 질척이는 길이 생겨났다.
“교대!”
전장의 중심으로 도착하자, 민준을 선두로 한 진형은 그 힘을 다했으나.
이번엔 그 뒤에 숨어 힘을 아끼던 강상철과 팀원들이 다시금 지네 떼를 헤쳐나가며 피라미드로 향했다.
이제 저곳은 그에게 맡기면 될 터.
“린!”
민준이 녀석의 이름을 크게 외치자마자 그의 몸에 하얀 불길이 일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온몸에 옮겨붙어 타올랐다.
그와 동시에 심장 가득 차오르는 충만감.
소모된 이능이 다시 그의 몸을 가득 채웠다.
“…흐읍!”
성신력이 돌아온 이상, 다시금 나아가면 된다.
콰아앙-!!
힘껏 숨을 들이마신 민준이 발을 한번 구르자 전장으로 변해버린 부지 전체가 파도가 일렁이듯 들썩였고, 경직해버린 모든 생명체의 이목이 그에게 쏠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민준의 눈에 발견된 중년 사내.
‘살릴 수 있나?’
아직은 여유가 있다.
‘그럼 살린다.’
[시간 이격]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미터를 도약한 민준이 삶을 포기한 듯한 그의 손목을 낚아챘고.그를 뒤로 보낸 채, 다가온 전투를 준비했다.
“후….”
성신력? 린에게 부탁해 다시 충전하면 된다.
체력? 레드포션을 에너지 드링크 마시듯 목구멍에 때려 넣으면 된다.
당연히 가성비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은 다시 벌면 되고.
죽은 사람의 목숨은 제아무리 시간을 많이 쏟아부어도 다신 돌아오지 않는다.
그럼 어떤 게 더 중한지 명백하지 않은가.
‘이번에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자, 이민준.’
이번에도 모든 것을 퍼붓는 전투를 벌일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