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단서 (1)
“조장!!”
“도와주세요!”
어느 누구랄 거 없이 앞다퉈 달려오는 동료들. 그들의 표정에는 안타까움과 간절함이 담겨있었다.
‘왜들 저러시는……. 아?!’
그리고 그들이 충분히 가까워지고 난 후에야, 민준 또한 그들이 왜 저런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건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곰같이 커다란 동범의 품에 안겨있는 인간 형태를 한 무언가.
언뜻 보면 인간의 형태를 띤 나무 인형 같기도 하고, 이미 죽어버린 시체를 안고 있는 것 같기도 했는데.
그 정도로 품 안의 인간은 지나치게 깡말라 있었고, 살아있긴 한 건지 의심이 될 정도의 몰골을 하고 있었다. 스쳐 지나가듯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이를 확인한 민준은 즉시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지면에 발끝이 닿을 때마다, 뒤로 분출되는 거센 경파. 어느새 숨 쉬듯 자연스러워진 이능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아이를 살려야겠다는 일념하에, 자신도 모르게.
‘…진짜 빌어먹을 세상이야.’
아이를 살렸을 때 오는 손실 혹은 이득. 이런 것은 이미 머릿속 쓰레기통 어딘가에 담겨있었다.
멀쩡한 사고를 하는 어른이라면, 최소한의 인간성을 버리지 않았다면, 모두 그와 같이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간절함이 그의 성장을 막고 있던 벽을 눈 녹이듯 허물어버렸다.
선한 마음이 만들어낸 기연.
민준은 본인도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막혀있던 경지를 돌파해버린 것이다.
쿵!
그리고 점차 상승한 경지에 몸이 익숙해지는 듯 그렇지 않아도 날 듯이 뛰어가던 민준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도약 몇 번으로 순식간에 동료들 앞까지 도착한 민준.
몇몇은 그 모습에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최미영은 그런 건 전혀 상관치 않고 동범의 품에서 아이를 조심스레 받아들어 민준에게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살아있는 사람이 있던 겁니까?”
“네, 생존시간이 소모돼 죽어버린 시체들 틈바귀에서 끼어있었어요.”
민준은 그런 소년을 자세히 살폈다.
광대를 비롯한 안면골이 완전히 드러날 정도로 마른 상태였으며, 영양부족인지 머리카락이 잔뜩 빠져 듬성듬성한 두피를 드러내었고, 손톱 또한 이미 몇 군데는 빠져있었다.
“포션은요, 안 먹인 겁니까?”
“아니에요. 저희가 가지고 있는 포션은 이미 다 사용했는데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하나도 소용이 없어요. 그래서 급하게 조장을 찾아온 거예요.”
민준은 그들의 말에 담겨있는 의미를 바로 눈치챘다.
얼마 전에 아무리 간호해도 정신 차리지 못했던 동길을 치료했던 게 민준 아니었나. 동료들은 이를 떠올리고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소년을 그에게 데려온 것일 터였다.
‘이 아이한테도 그 방법이 통할까? 동길 아저씨야 애초에 이능을 사용했었으니까, 내 성신력을 받아들일 수 있었겠지만….’
사경을 헤매고 있는 아이는 한눈에 봐도 이능을 위한 최소한의 자격은커녕 사도 한 마리 잡아보지 못했을 것 같은 비주얼 아닌가.
문명화된 사회에서도 어린아이에게는 강한 약을 쓰지 못했다.
이를 버티지 못하면 오히려 독이 되어 병세를 더욱 악화시키기 때문이었다.
“조장! 뭐해요?! 빨리 저번처럼 진맥이라도 잡아야지요! 아, 왜? 지금 한시가 급한데…….”
“어허, 선배님. 조금만 진정하십쇼. 어디 의사가 바로 치료를 시작합니까? 정확한 진단을 해야 알맞은 치료를 하지 않겠습니까.”
불같은 성격을 지닌 동범이 잠시의 침묵을 참지 못하고 일갈했으나, 이를 상철이 붙잡았다.
눈치 빠른 그는 민준이 하고 있는 고민을 대충은 눈치챘기 때문일 거다.
‘후-’
민준은 입술을 깨물며 망설이다가 이내 눈빛을 굳혔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명의 불꽃이 점차 약해지고 있는 게 확연히 보였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멀쩡할 때 뭔가를 시도해봐야 했다.
시도도 해보지 못하고 남는 후회는 너무나 긴 꼬리를 남기는 법이니까.
“…이쪽으로 눕혀주세요.”
민준은 비교적 온전하게 죽은 지네의 사체 위를 가리켰다. 찝찝하더라도 딱딱하고 차가운 땅바닥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를 눕히자 린이 소년의 머리맡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소년의 얼굴을 천천히 핥았다.
‘너……. 알았다. 꼭 치료해 성공해볼게.’
아이가 처한 상황을 보니, 아픈 기억이 떠올랐던 것일까? 아이를 감싸고 있는 린의 모습을 보니 괜시리 민준의 마음이 아려왔다. 그리고 더욱 마음을 굳게 다졌다.
기나긴 고민의 끝.
성신력을 밀어 넣기 위해 기어이 민준이 아이의 팔을 돌려 손목에 제 손을 올리려는 순간.
“…?!”
아이에게 새겨진 생존 숫자를 발견한 민준의 눈이 커졌다.
민준이 이를 알고 있었냐는 듯 동료들을 둘러보았고, 그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무조건 살려야 한다.’
조금 전까지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느끼는 동정과 연민으로 이를 행하고자 했다면.
아이의 생존시간을 본 순간 이는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사명으로 변했다.
‘생존시간이 0인데도 죽지 않는 인간이라니…….’
말도 안 된다.
반년 동안, 수많은 인간 군상을 만나오면서도 단 한 번도 이와 같은 존재와 마주친 적은 없다.
민준이 여태까지 겪어온 바로 시스템, 그 기묘하고도 두려운 존재가 보여주는 것이 그만큼 절대적이었던 탓이다.
은닉은 할지언정 놈이 말하는 정보 자체가 잘못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으며, 그 내용은 인간이 감히 범접하지도 못하는 진리 그 자체와 같이 그대로 실현되었다.
그런데.
‘절대적인 법칙에 위반되는 존재가 나타났다…!’
이는 좀비화된 세상 속에서 오직 혼자만 항체를 지닌 주인공과 다를 바가 없었으며.
마왕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검의 선택을 받은 용사와 같았다.
‘그래, 시스템 속 이레귤러.’
딱 그 말이 맞을 것이다.
민준은 아이의 손목을 만지려던 자신의 거친 손을 바라봤다.
이 세상이 품고 있는 거대한 비밀에 대한 키를 지니고 있는 존재의 생사가 자신에게 달렸다고 생각하니, 어깨가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시스템이 이를 몰랐을까?’
하다못해 게임 속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버그라도, 이는 발견되는 즉시 패치가 진행된다.
조그마한 어긋남이 도미노처럼 게임 전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가만히 두었다? 그 말은….’
이는 민준으로 하여금 두 가지 가설을 추론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애초에 버그가 아니라, 이마저도 시스템의 안배다.’
라는 게 첫 번째 가설. 그리고….
‘시스템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벗어난] 존재라는 게 두 번째…….’
이 아이가 둘 중 어느 쪽이라더라도 이 세상에 미치는 파장은 작지 않을 것이다.
“후우….”
웬만해선 긴장하지 않는 민준이 바짝바짝 마르는 입술을 한번 혀로 훑고는 소년의 손목에 손을 댔다.
그리고 심장에서부터 실처럼 뽑혀 나온 성신력이 그의 혈관을 타고 소년에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또옥-!
그의 이마에서 흐른 땀방울 하나가 짙은 눈썹을 타고 흘려내려 턱으로 떨어졌다.
‘최대한 얇게, 최대한 적게.’
소년의 몸에 부담 가지 않는 양을 전달하기 위해 그는 안간힘을 썼다.
민준의 체감상. 작업 난이도는 다트를 던져 바늘구멍에 꽂히게 만들어야 할 정도로 어렵게 느껴졌으나. 그는 아직까진 실수 없이 이를 꾸역꾸역 해내고 있었다.
조금 전 벽을 넘지 못했다면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을 기행.
‘통한다…!’
민준은 자신의 이능으로 만든 실이 실타래에 감기듯 자연스럽게 소년의 심장으로 빨려 들어가는 걸 느꼈다.
동길을 치료할 때도 이처럼 자연스럽지 않았었다.
마치 체질에 맞는 약을 복용한 것처럼, 소년은 민준의 성신력을 쭉쭉 빨아들였다.
““….””
꿀꺽.
그렇게 민준이 집중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동료들이 침 삼키는 것조차 조심할 정도로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 때.
– 조장님!!
제단을 공략하는 조가 아닌, 민준과 함께 지네와 전투를 하던 조원 몇몇이 저 멀리서 민준을 애타게 찾으며 달려왔다.
지금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그 조원을 노려봤지만, 이내 그의 등에 업힌 한 사내를 보고는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
“아, 아니…. 그 정도 중상자를 데려와서 어쩌려고.”
그 조원의 등에 업혀 있는 중년의 사내는 허리 밑으로 하반신이 사라져 있었고, 그 단면에서 붉은 선혈이 폭포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쇼크사로 죽어야 하는 게 당연할 정도로 심각한 중상.
그럼에도 그는 눈을 반개한 상태로 계속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준…ㅅ…서. ㅈ……서.”
도대체 무어라 중얼거리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에 대한 엄청난 집념만큼은 피부로 느껴질 정도.
잠시 치료를 일단락 짓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민준의 머릿속에 아까 전에 봤던 한 사내가 스쳐 지나갔다.
‘살려주자마자 지네 떼에게 달려든 아저씨. 그 사람인가?’
죽기 직전의 송장을 데려온 조원을 향해 동범이 날을 세웠다.
“어쩌자고 데려온 거야. 저걸 어떻게-”
적어도 아이는 살리려고 시도는 해볼 수 있을 정도까지는 됐다. 하지만, 저 사람은….
“그……. 이 아저씨께서 저를 구해주시다가 이렇게 되셔서…. 제 포션을 부어봤지만, 하급 포션이라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 말인즉, 플레티넘 등급인 민준만이 구매할 수 있는 [상급 포션]을 사용할 순 없을까 하는 마음에 사내를 이곳으로 데려왔다는 말이었다.
“일단…. 눕혀보세요.”
목숨 바쳐 동료를 구해줬다는 말을 듣고도 매몰차게 거절할 정도로, 민준은 모질지 못했고, 일단 눕히고 보자는 선택을 했다.
‘아무리 레드포션이 상처를 아물게 하는 데 강력한 효능을 보인다고 해도, 사라진 하반신을 자라나게 할 정도는 아닐 것 같은데….’
최선의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아마, 평생을 앉은뱅이로 살아야 할 터.
민준의 고민이 깊어졌다.
상급 레드포션 정도면 여분의 생명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러니 만약 그를 치료한다면, 이는 작전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 너무 치명적인 손해로 작용할 게 분명할 뿐만 아니라, 이 힘겨운 세상에서 사내를 불구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
그렇게 민준을 비롯한 인원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누워있던 소년이 천천히 눈을 뜨더니, 중년 사내를 발견하고는 안간힘을 쓰며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일어날 근력도 부족해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어떻게든 일어나서는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 성대를 억지로 조여가며 입을 뻐금거렸다.
“아…쁘. 으……ㅂ……빠.”
‘이런 썩을….’
벌어지는 아이의 입 모양만 보고도 어떤 단어를 말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빠.’
정녕 아 사내가 저 아이의 아빠라면…. 무게추는 다시 한번 바뀌게 된다.
‘시스템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이 아이를 반드시 살려내야 한다.’
그런데…. 눈앞에서 아버지가 죽어버린다면.
저 아이가 지금처럼 생존을 위한 의지를 불태울 수 있을까? 설령 살아난다고 해도, 제 아비의 죽음을 방치한 사람들에게 협력하려고 할까?
‘절대 안 하겠지.’
이제 다른 선택지는 없다.
민준은 속으로 욕을 지껄이며 곧바로 [상급 레드포션]을 구매해서는 사내의 잘린 허리에 들이부었고.
포션이 사내의 몸에 닿음과 동시에 마법같이 상처가 아물면서 피가 멎었다.
그리고, 그 순간.
민준의 [시간인지]가 무언가가 왜곡되었음을 알아챘다. 왜곡됨의 발원지는 소년의 손.
아이의 손에서 나온 무언가가 사내의 하반신을 복구하기 시작했다.
‘이건 치료 스킬이 아니야.’
분명히 [시간인지]로 느끼고 있었다. 아이가 방금 사용한 건 회복 따위가 아니다. 그보다 더 그에게 익숙한 무언가.
그래, 시간. 저 힘의 근간은 시간이다.
동길처럼 그가 지녔던 [시간 이격]의 카피 버전을 사용한 것도 아니다. 그조차도 효과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였다.
스윽-
사내의 하반신은 치료가 된다기보다, 시간을 거슬러 그것이 사라지기 전으로 ‘복구’가 되고 있는 것에 가까웠고.
민준을 비롯한 인원들은 아이가 일으킨 기적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세상에….”
사람들의 탄식을 내뱉는 와중에, 마침내 사내의 몸은 온전해졌다.
그리고.
이적을 행사한 소년이 다시금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
그렇게 뒤로 넘어가는 아이의 바지 왼쪽 다리가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것처럼 펄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