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폭풍전야 (2)
쿠르릉!
먹구름이 민준의 눈앞까지 가까워졌을 때, 시스템 알람 소리가 좋지 않은 소식을 들고 찾아왔다.
띠링!
[‘메인 퀘스트 – 세력전’ 퀘스트가 강제로 연계됩니다.] [보상이 유보됩니다.] [‘불완전한 승천’ 에피소드가 강행됩니다.] [‘메인 퀘스트 – 탈각’이 사용자 앞으로 도착합니다.]‘…뭐?!’
좋지 않은 소식에 걸음을 멈칫거린 민준은 황급히 퀘스트 창을 확인했다.
「[메인 퀘스트 – 탈각]
난이도: S-
클리어 조건: 플레임렉이 불완전한 ‘의식’을 시작합니다.
제물의 부재로 인한 궁여지책이지만, 이가 완성됐을 시 맞게 될 재앙의 크기는 태양과 목성의 크기 차이처럼 한낱 인간으로선 한없이 거대하기만 합니다.
의식의 진행을 막고 플레임렉을 제거하세요.
(제한 시간) 1시간
보상: 선업+10.0, 500,000시간, 아이템 ‘용살자’, 아이템 ‘이무기의 내단’
거절 혹은 실패 시: ‘불완전한 승천’ 완료」
틱.
[00:59:59]틱.
[00:59:58]‘재수가 없으려니까….’
민준 또한 어림짐작하기는 했었다.
‘승천’이라는 이름의 에피소드와 허물을 벗고 새로 태어난다는 뜻의 ‘탈각’이라는 퀘스트.
관문의 주인들이 지니고 있던 구슬과 플레임렉이 구슬의 용도로 지니고 있다는 외신의 별.
이것들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마 아틀낙이 그러했던 것처럼 놈이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려 한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그 정체는 용(龍) 비스무리 한 것이려나? 그리고 그걸 위한 것이….’
민준의 뇌리속으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여러 정황들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의 주인을 위해 진행한다는 ‘의식’.
희생양이라는 이름으로 제단의 꼭대기에 갇혀있던 이를 위해 갇혀있던 ‘환자들’.
그리고 이미 시체가 되어버린 그들과 소년의 몸에 찍혀있던, 민준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별 모양의 표식’.
‘낙인….’
민준은 묵색 건틀릿 안에 숨겨있는 낙인에서 새어 나오는 피를 훔치며, 그가 나아가야 할 먹구름 너머를 바라보았다.
흐릿한 시계(視界)와 거센 바람 때문에 보이지 않는 목적지가 자신의 미래와 비슷하다는 잡념이 그의 머릿속에서 떠올랐지만, 금세 사라졌다.
그리고 자연스레 흘러가는 의식의 흐름은 성주들의 목적에 대해 상기하기 시작했다.
‘놈들은 종말 전 환자였던, 정확히는 시한부 삶을 살던 인간들을 찾고 있다.’
민준은 이번 일로 인해 정확히 왜 놈들이 자신과 비슷한 종류의 인간들을 왜 찾아 헤매는지, 그리고 아크티네가 왜 자신을 만나자마자 낙인이라는 것을 찍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휘이익-
해상 위의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먹구름이 생각에 잠겨 꼿꼿이 서 있는 민준과 린을 먹어치웠다.
* * *
민준이 발을 내딛자, 메마른 흙이 바스락거리며 부서지곤, 이내 먼지가 되어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
먹구름으로 만들어진 장막 너머에는 늦여름인 밖보다 더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러한 열풍이 민준의 코를 거쳐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익숙한 비린내가 실린 바싹 메말라버린 바람.
너무나 많이 맡았기에 있을 수 없는 냄새다.
‘피 냄새….’
민준이 플레임렉의 영역으로 입장하자 마중 나온 이는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메마른 황야를 가로질러 찾아온 인간의 피 냄새였다.
그리고 이는 너른 이 공간에 무언가가 숨겨져 있음을 간접적으로 말해주었다.
민준은 곧장 [시간 인지]를 사용했고.
거대한 무언가가 민준을 맞이했다.
‘맙소사….’
너른 평야 한가운데에 서 있는, 육중한 부피감의 회색빛 콘크리트 제단.
사냥감을 휘감고 있는 아나콘다처럼 거대한 크기의 지네가 제단을 둘러싸고 있었다.
‘아니, 이 정도면 사실.’
거대하다는 말로는 놈의 크기를 표현하기 부족했다.
아파트 10층 높이는 되어 보이는 제단이 놈의 몸체에 비해선 구렁이 앞의 생쥐처럼 작아 보였으니까.
‘더럽게도 크네. 제대로 된 공격을 먹이려면 약점을 공략하든, 성력을 두르든, 둘 중 하나는 필수겠어….’
그렇게 공간이 숨겨진 모습을 드러내자, 드디어 이곳이 어디인지 알려주는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왔다.
띠링!
[플레임렉의 ‘백족백양진(白足百羊陳)’에 입장했습니다.]“….”
플레임렉과 민준.
광활한 공간에 단둘 뿐이었기에 들리는 소리라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 소리와 이에 분연히 몸을 떠는 마른 나뭇가지 소리뿐이었으나.
그와 다르게 시스템 메시지는 이곳이 위험한 곳임을 알리는 알람 소리를 시끄럽게 울려댔다.
[100마리의 희생양이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미지의 힘에서 흘러나온 주술력이 사용자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사용자가 방향감각을 잃습니다.] [사용자가 실체와 허상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사용자가 타는 듯한 갈증에 빠집니다.] [사용자의 근력이 약화 됩니다.] [사용자의 정신력이 쇠합니다.].
.
메시지가 울림과 동시에 실시간으로 체감되는 수많은 페널티들. 하지만 모든 메시지는 마지막 한 문구로 정리되었다.
[‘정화(淨化)’가 성주로부터 발현되는 모든 부정적인 주술을 완전히 해주합니다!]‘소모되는 선업 수치가 아깝긴 하지만.’
+1이라는 선업 수치가 소모됐기에 배가 아팠으나, 그래도 그러한 디버프를 모두 달고 싸울 순 없었으니, 적재적소에 썼다 자위하며 민준은 쓰라린 속을 달랬다,
쿠구궁-
그렇게 자신의 힘이 해제되자 이상함을 느낀 플레임렉이 하늘을 향하고 있던 고개를 돌려 민준을 내려다봤다.
‘흐읍…,’
그렇게 이글거리듯 불타는 놈의 홑눈 4개가 민준을 응시하자, 그는 몸을 옥죄는 강력한 압력을 느꼈다.
딱히 무언가를 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놈의 미칠듯한 존재감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상대를 자연스럽게 옥좼을 뿐.
하지만 민준이 여태껏 쌓아온 노력의 부산물 또한 만만치 않았기에, 다시금 이를 떨쳐낼 수 있었다.
[송파 5지역의 성주(星主) ‘심마의 끝에 다다른’ 플레임렉과 마주합니다!] [사용자가 ‘제물의 낙인’을 가졌음을 알아봅니다.] [성주의 권위가 사용자의 영혼을 짓누릅니다!] [칭호 ‘첫 성주 시해자’가 이를 가뿐히 떨쳐냅니다!!]플레임렉은 하찮은 인간이 자신에게 맞섰다는 사실에 놀란 듯 몸을 작게 털었다.
그리고 커다란 몸체만큼 두꺼울 수밖에 없는, 셀 수 없이 많은 놈의 다리에 꿰어있던 무언가가 덜렁거렸다.
‘이런 X발…….’
거리가 꽤 멀었지만, 민준의 시력은 이를 충분히 분간할 수 있었다.
잔뜩 찢어진, 넝마와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 아니, 이제는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았기에, 한낱 고깃덩어리와 다를 바 없게 된 시체.
아마 저 제단을 짓기 위해 강제로 동원된 이들임이 분명해 보였다.
민준은 속에서 천불이 일어나는 듯했지만, 머리는 차갑게 유지했다. 함부로 움직여서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
그렇게 플레임렉과 민준은 고요한 침묵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탐색을 시작했다.
플레임렉은 무엄히도 자신에게 맞선 작디작은 인간을, 민준은 두 번째로 만나는 성주란 존재를. 조심스레 관찰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처음으로 소리를 낸 건 플레임렉이었다.
[흠-]공간 전체를 진동시키듯 의사를 전달해 왔는데, 그 막대한 의지가 울려올 때마다 제단을 둘러쌓고 있는 불길이 거칠게 일렁였다.
[들어올 테면 들어와 보라는 식으로 펼쳐놓긴 했다만, 설마 진짜 이곳에 들어오다니……. 자네 겁이 없구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온 겐가?]나이를 지긋이 먹은 듯한 노인의 말투.
민준을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위액을 다시금 삼키며 입을 열었다.
“내가 내 발로 어딜 가던 그쪽이 뭔 상관이지?”
[허헛?! 허허….]그렇게 플레임렉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더니, 크게 광소를 터뜨렸다.
[허허허허허-!!]우웅-우웅-
‘…크흑.’
놈의 웃음에 땅이 흔들리고 대기가 요동쳤다.
그만큼 민준은 속이 진탕됐음을 느꼈으나, 성신력을 체내로 돌려 이를 곧장 안정시켰다.
[배짱 하나는 두둑하구먼. 자네가 중앙의 ‘귀부인’으로부터 도주하고 살아남아, 서쪽의 ‘요부(妖婦)’를 죽였다는 그 친구인가?]“….”
[그 죽일 년들에게 엿 먹였을 뿐만 아니라 과묵하기까지…. 참 마음에 들어. 그런 의미에서 우린 꽤 좋은 사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제안을 들어보겠는가?]스윽-
민준은 놈이 뭐라 하든 [패왕의 갑주]에 기운을 불어넣어 무형의 갑옷을 두르고 검파에 손을 올렸지만.
곧 이어지는 플레임렉의 말에는 팔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자네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네.]“…?”
[그게 무엇이든 가능하네. 무한에 가까운 생존시간이라던지, 유일 등급은 장난감처럼 보일만 한 고등급 아이템이라던지, 혹은….]길게 말을 끈 놈이 더듬이를 잘게 떨더니 말을 이었다.
[자네와 자네 동료의 안위를 지키는 것이라던지……. 말일세.]“…어떠한 상황에서도?”
[당연하지 않나. 내가 쌓아온 업보를 걸고서 약조하겠네.]플레임렉이 마지막을 하자, 민준은 공기가 변하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가 작동하는 듯한 감각.
민준은 놈이 거짓을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
[자네 정도로면 방금 무언가를 느꼈을 텐데…. 어떤가, 내 진심이? 이제야 구미가 당기는 모양인데.]플레임렉의 말에 민준이 입술을 물어뜯으며 손가락으로 검파를 톡톡 건드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약조를 지키지 않을 것이라 염려스럽다면 걱정 말게. 이는 자네가 느꼈듯 나를 매개체로 ‘섭리’하에 이뤄지는 것이니.]섭리라니.
이는 시스템이 소원을 이뤄준다는 말과 동일했다.
시스템은 이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규율 또는 법칙 그 자체.
그렇다는 건, 놈의 말은 진실이라는 소리고 자신은 바라고 바라던 동료들과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는 말과 다를 바 없는 얘기였다.
‘…반대로 만약 저놈을 죽이는 데 실패한다면, 나는 물론이고 동료들 또한 나방과 지네에게 둘러싸여 죽게 된다.’
생각에 잠겨있는 와중, 귓가에서 누군가가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 조장, 수락하자. 이제껏 많이 애썼잖아. 이제 충분해.
– 민준 씨. 이제 우리도 편해지고 싶어요. 수락하는 게 어때요?
– 아저씨. 나 힘들어….
– 은인님, 버티는 게 고작입니다. 모두를 기다리고 있는 건 결국 죽음뿐입니다.
어지러웠다.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솔직히 조금 지치기도 했다. 더 이상 동료를 잃을까 걱정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민준의 고개가 슬며시 아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쿵!
자신의 다리에 부딪히는 충격에, 민준이 번뜩 정신을 차리며 밑을 내려다봤다.
“…아.”
[주인님, 정신 차려요. 비록 생존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곳에 주인님이 생각하는 행복한 삶은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맞아, 멍청하게 굴어서 미안하다.”
그렇게.
흐려지던 민준의 눈동자가 다시금 총기를 찾았을 때.
그의 손에는 성신력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장도가 쥐어져 있었다.
[에잉……. 쯧.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구먼. 이래서 항상 계획은 철저히 준비해야 해.]안타깝다며 중얼거리던 플레임렉은 무형의 힘만으로 허공에 관문의 주인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들어 올렸다.
콰드득-!
그리고 이내 육편이 잘게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관문의 주인은 작디작은 구로 변했고.
어느새 나타난 인간 형태의 그림자가 그 구를 흡수했다.
[자네의 심마는 잘 받았네. 그럼 그것으로 빚은 자네와 잠시 놀고 있게나. 나는 중요하게 할 일이 있거든.]놈은 그렇게 말하며,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이 하늘을 올려다봤고.
그 대신 허공에 떠 있던 그림자가 울퉁불퉁 여러 형태로 변하며 지상으로 착지하더니, 이내 민준과 똑 닮은 생김새를 하고는 그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