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강철(强鐵) (1)
짙은 꿈결과도 같은 먹구름으로 이뤄진 공간.
그 한가운데, 거세게 타오르는 화마와 함께 신전 주위의 공간이 이지러지듯 출렁거렸다.
‘….’
흔들리는 불꽃과 함께 뿜어져 나오는 경파가 일행의 몸과 영혼을 사정없이 흔들어 댔다.
거세게 타오르는 화마, 사방에 몰아치는 경파.
이것들은 분명 플레임렉이 좀 더 고차원적인 존재로 나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차적인 것에 불과했지만.
격을 갖추지 못한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그 여파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피를 토하며 죽어버릴 만큼 강대한 힘을 품고 있었다.
우웅-우웅-
일행의 앞에서 그러한 기운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민준.
그 모습은 마치 인간에 맞서는 개미와도 같이 이질적이고, 무모하게 보였다.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이들은 물리적인 체급을 떠나, 치열하게 맞붙고 있는 두 기운의 흐름에 전율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말도 안 돼.’
소희와 동길 그리고 송 씨 남매는, 그제서야 이 싸움에 뛰어든다는 사실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그리고 민준이 지금껏 어떤 싸움을 해왔는지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인간들을 가축 혹은 사냥감으로 여기는 벌레들의 주인이자, 지구의 종말과 함께 등장한 멸망의 기수.
지금 자신들이 맞서 싸우려는 적은 그 정도로 강대하고 터무니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
이런 괴물을 상대로 승리하고, 밀려드는 멸망에서 인류가 생존할 수 있도록 한다?
지금 이 세계를 살아가는 모두가 한 번쯤은 다 상상해봤을 일이며, 말로는 수십 수백 번도 넘게 입에 담아봤을 법한 얘기다.
그러나.
직접 이런 괴물을 대면하고, 그 기세를 정면으로 맞고 있자니.
거짓이라도, 그런 말을 쉽게 내뱉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유의미한 성과를 이뤄낸 것이 오직 민준 하나뿐이었던 게 이상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성주를 죽인 이가 단 한 명이라도 존재할 수 있었던 게 기적이다.
애초에 말로만 떠들 뿐인 어중이떠중이들은 성주는커녕, 그 수하인 틈의 주인들조차 어찌해보지 못했을 테니까.
그 정도로 엄청난 존재가 뿜어내는 기세에 자연히 고개를 치켜드는 공포와 무력감에 저도 모르게 머리와 몸을 굳게 만들었고.
본격적인 전투는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손끝이 떨려왔다.
하지만.
이들은 판도라의 상자, 그 맨 아래에 존재하는 희망을 붙든 채 정신을 다잡았다.
상대의 힘이 두렵긴 했지만, 어쨌든 홀로 저런 존재를 이겨낸 민준이 자신들을 이끌고 있었으니까.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나도 이제 도움이 되고 싶어.’
‘이걸 매번 조장 혼자 겪었었다고? 더 이상 그렇게 둘 순 없지.’
‘나도 이제 다 컸어.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야.’
“아저씨 파이팅-!!”
그들이라고 어디 낙원 같은 곳에서 안락하게 지내며 살아남았던 게 아니었다.
산이 있으면 넘고, 진창이 있으면 구르고, 돌부리에 걸려 고꾸라지면서도 다시금 일어나 포기하지 않고 달렸고.
수도 없이 목숨을 건 수라장을 지나쳐왔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 장애물이 조금 커 보인다고 해서 시작부터 지고 들어갈 필요는 없을 터.
그들은 속으로 다짐을 되새기며 공포로 굳어가는 몸과 마음을 풀어갔다.
““….””
뚝. 뚝.
화재현장 한가운데에 떨어진 것 같은 열기 때문에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도, 그들은 침묵하며 신호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첫 스타트는 민준이 끊기로 했었으니까.
그렇게 만전의 상태로 대기하던 중.
‘…어?’
이능의 변동에 제일 민감한 단우가 가장 먼저 자신에게 밀려드는 기운을 느꼈다.
몸과 마음을 감싸는, 따스하면서도 포근한 기운.
그 힘은 피부로 스며들어 혈관을 타고 온몸을 돌아다니더니, 이내 심장으로 들어가 그들의 성력과 감응했고.
이능의 출력을 몇 배로 늘려버리며, 몸속으로 침범하는 열기를 완전히 지워냈다.
“…?!”
곧바로 동료들을 둘러본 단우는 그러한 현상을 자신만 그것을 느낀 게 아님을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 이 기운이 어디서 나오고 있는지도.
쩌어어어엉-!!
어마어마한 크기의 성주를 향해 작은 ‘별’이 빛살처럼 날아갔다.
동시에.
“선빵은 나한테 맡겨!”
계속해서 타이밍을 재며 새하얀 손을 쥐락펴락하던 소희가 허공을 그러쥐곤 아래로 힘껏 끌어당겼고.
동시에 성력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방패가 플레임렉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쿠궁!
막대한 물리력으로 인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나갔으나, 어느새 불의 방벽으로 이를 막아낸 플레임렉은 고개도 까닥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하늘을 바라보며 의식을 진행했다.
“이쪽! 여기를 노려!”
“아저씨, 피해요!”
“…큭! 버텨! 민준 씨 한 번 더요!”
쩌저저저정!
일행은 쉬지 않고 녀석의 방벽을 두들겼다.
성력이 떨어지면 후방에 있던 린이 곧장 이를 충전시켜줬고, 체력이 떨어지면 곧바로 레드포션을 사서 입에 털어 넣었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공격을 녀석을 향해 쏟아내던 와중.
이제는 슬슬 방벽을 유지하는 게 부담스러워졌는지, 계속되는 공격에 놈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사실 놈이 반응했다기보다, 놈의 ‘무의식’이 이에 반응했다고 보는 게 맞을 터였다.
그리고 그 무의식은 제 행사를 방해하는 무리를 배제하고자 미리 깔아두었던 진과 연동되며 발현되었다.
“누나, 온다!”
이번에도 가장 먼저 기운을 느낀 단우가 소리쳤고, 동시에 하늘의 낀 먹구름 사이에서 붉은빛이 번쩍였다.
쿠르릉-
마치 살아 움직이듯 회피하기 어려운 공간만을 점하면서, 두터운 적뢰가 사방으로 쪼개지며 민준 일행에게 쏟아졌다.
“내가 막을 테니까, 무시하고 끝까지 들이박아!!”
소희가 소리치자, 모두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각자의 방법으로 플레임렉을 향해 달려들었다.
내리꽂히는 적뢰를 불투명한 장막이 상쇄하고.
그 여파로 피를 토하며 날아가는 소희를 넘어, 일행은 공격에만 온 정신을 집중했다.
“서우야! 제일 큰 걸로 가자!”
“응! 또또야!”
여전히 일행을, 날파리 취급하듯 무시한 채 진행되는 의식에 집중하고 있는 플레임렉의 거체 아래.
단우의 외침에 힘차게 대답한 소희의 등 뒤로 짧은 팔다리를 지닌 불꽃 요정이 나타났다.
그리고.
두둥실-
플레임렉이 만들어 낸 불꽃들이 빨려 들어가며 또또라고 불린 요정이 거인처럼 거대하게 불어났다.
포만감이 가득한 미소를 지은 채 열기구처럼 둥실둥실 날아다니는 요정.
긴박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 느긋한 모습이었지만, 그건 오직 요정의 움직임이 그리 보이는 것뿐.
녀석에게 일격을 날릴 준비는 착실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애들아, 여기냐?!”
그중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은 바로, 최근까지 손발을 맞춰왔던 나머지 넷과 다르게 오랜만에 합류한 동길.
수많은 전장을 겪은 그는 민준에게 받은 성신력으로 동료들의 이능 운용을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었기에.
조금 어색하긴 해도, 눈치껏 손발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애기들도 있는데, 제일 연장자로서 쪽팔리게 짐이 될 수는 없지.’
지금은 최대한 녀석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고, 녀석의 방벽에 균열을 내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작게 중얼거린 동길은 찌르기로 틈을 내고자 했고.
전혀 피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플레임렉은 동길을 그저 있는 그대로 두었다.
“염병! 제발 좀 먹혀라!”
쐐애애액-
성신력을 가득 담은 채 쏘아지는 흑검.
그것은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플레임렉의 방벽에 바늘구멍만 한 틈을 만들어냈고.
스윽-
동시에 작고 예리한 그림자 하나가 공간을 격하며 그 틈을 파고들었다.
“끄으으으으-!!”
살아있는 생명체 마냥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는 그림자.
그것은 장막의 틈새에서 깔때기 모양으로 구멍을 벌리는 역할을 했다.
그렇게 생긴 맨홀만 한 틈.
“서우야! 빨리!!
그림자에 긴 선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커다란 입이 큰소리로 외쳤고.
“터져라!!”
앳된 목소리.
간절한 마음을 담은 서우의 외침에, 어느새 동길의 머리 위에서 떠 있는 불꽃 요정이 폭탄 스위치를 누르는 동작을 취했다.
그러자.
이내 몸을 동그랗게 말더니, 조금씩 구겨지듯 수축하는 불꽃 요정.
“누…나…! 빨리…….”
“후…. 매번 볼 때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서우한테 저 요정은 그려준 인간 찾기만 해봐. 아주 가만 안 둘 거야….”
어느샌가 동길과 자리를 바꾼 소희가 그러한 요정을 방벽으로 둘러싸, 둥그런 모양으로 가공했다.
화아아아악-
동시에 몸을 수축하던 요정은 새까만 점이 되었고.
이내 장막 내부의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공기, 빛, 소리까지도.
““….””
그 기이한 구체의 모습에 모두가 말도 못 하고 멍하니 이를 바라보고 있을 때, 그제서야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플레임렉이 고개를 돌렸다.
이미 지네라고 하기에는 탈피가 많이 진행된 상황.
언뜻 보기에도 의식의 막바지에 다다른 것 같았다.
“제발 좀 처먹어-!”
그리고, 소희가 덩크를 하듯 그 구체를 틈 안으로 구겨 넣었다.
소희의 방벽은 요정이 날아가기 전에 폭발하지 않도록 하는 역할만 맡고 있던 게 아니었다.
방벽은 단우와 동길이 어렵사리 만든 구명에 불꽃 요정이 쏙 들어갈 수 있도록 압축을 돕는 역할도 하고 있었으니.
절묘하게 단우가 벌린 틈새로 파고든 구가 순식간에 몸집을 불리며 플레임렉의 공간인 [백족백양진(百足白羊陳)]을 새하얗게 칠해버렸다.
* * *
사방이 온통 새하얗게 불타고 있는 터라, 지금 대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문득 느껴지는 불길, 흰색 도화지에 일렁거리며 색을 채워 넣는 정경만이 그들에게 남아있었을 뿐.
“감사합니다. 너무 잘해주셨어요.”
불현듯 들리는 소리와 함께, 이제 다시금 현실감이 들기 시작할 때쯤.
어느새 한곳에 모여 쓰러져있는 동길과 소희 그리고 송 씨 남매는 그들 앞에서 검을 들고 서 있는 민준을 볼 수 있었다.
머리에 위에 떠 있는 찬란한 헤일로(Halo).
민준은 전력을 끌어올린 채 환호했다.
‘내 전력을 드러내기도 전에, 녀석의 방어막을 벗겨내고. 녀석에게 유의미한 데미지까지-’
분명 격의 차이 때문에 힘을 펼치기 어려웠을 텐데.
자신에게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안간힘을 쓴 동료들은, 제 예상보다도 훨씬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 줬다.
[‘대리자(代理者)’가 구세주가 지닌 권위의 편린을 한시적으로 빌려옵니다!]이제는 자신의 차례다.
반 이상이 날아간 플레임렉의 화염 기둥 아래. 지네의 모습을 제법 많이 벗어던진 녀석이 보인다.
‘의식이 꽤나 진행된 모양이지? 그럼-’
민준의 팔이 희끗해지는 동시에, 놈의 야들야들한 비늘 위로 붉은 선이 그어졌다.
그의 장도는 놈의 육체만을 노리고 움직이지 않았다.
놈이 의식을 시작하기 전에 느꼈던 그 기운. 민준이 노리고 있던 것은 그것이었고, 곧장 민준은 그 기운의 가닥을 베어냈다.
[끄아아아아아악-!!]동시에 플레임렉이 불판 위에 올라간 장어처럼 거대한 몸을 꿈틀거리며 천지를 진동시켰다.
탈피를 해 뱀의 비늘처럼 매끄러운 플레임렉의 피부가 나병 환자의 살갗처럼 뭉그러지기 시작했고.
이내, 불타오르며 쪼그라들었다.
[이놈……. 이노오옴-!!!]그렇게 ‘불붙은 뱀’이 된 플레임렉이 적색 안광을 빛내며 거구를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