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49
149화. 강철(强鐵) (3)
대지에서 하늘을 잇는 굵은 기둥이 거대한 몸을 일으키자, 천지가 흔들렸다.
아니 불타오를듯한 놈의 분노에 영향을 받은 진(陣)이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메마를듯한 황야에서 불타오르는 지옥으로.
‘그래 이 정도는 돼야 성주라고 할 수 있지.’
민준은 이내 드러내는 놈의 본색에 기꺼워했다. 그리곤 동료들의 상태를 살폈다.
놈의 방어막을 벗겨내느라 만전의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직 싸울 여력이 남아있었는지, 무기를 움켜쥐고 여전히 플레임렉을 노려보고 있었다.
민준은 그런 그들에게 마음으로 의사를 전달했다.
[다들 더 싸우실 수 있으시겠습니까?]그들은 귀가 아닌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민준의 음성에 당황했으나, 이내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민준이 지니고 있는 구세주의 권능을 빌려오면서 그 영향을 받은 그들이었다. 아마 지친 체력과 이능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을 것이다.
[좋습니다. 그 대신 이제부터 녀석은 제가 상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께는 보조를 부탁드리겠습니다.]어차피 놈의 이목을 자신이 끌었기에, 그편이 나을 것이다.
괜히 어그로가 튀었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었으니까.
“크롸라라라라-!”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영락해버린 플레임렉은 더 이상 사람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짐승처럼 울부짖을 뿐.
민준은 플레임렉과 그 옆에 떠 있는 작은 태양 되어버린 검은 돌, 외신의 별을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작전을 수립해나갔다.
‘아틀낙 때는 별을 정화해서 놈을 처리했었지….’
아틀낙을 아무리 죽여도 외신의 별을 통해 끊임없이 재생했기에,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전투로 녀석을 죽이는 것도 가능할 거 같은데?’
그때와 다르게 본인이 성장했음을 인지하고 있는 민준이었다.
성주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전투를 거치면서 성장했기도 했고.
한 번 사용해봤다고 더 익숙해진 권능들은, 조금 전 플레임렉의 의식을 끊어버렸던 것과 같이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일들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줬다.
‘이걸로 외신의 별과 놈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린다면?’
놈은 더 이상 외신의 별로부터 힘을 공급받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이야 성기게 엮여있어 끊기가 버거울 테지만, 놈을 몇 번 죽여버리고 저 이음새가 헐거워지게 만들 수만 있다면.
저 연결고리를 끊어버리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거다.
‘간다!’
후웅-
별안간 짓쳐 든 꼬리가 민준을 향해 채찍처럼 휘둘러졌고.
민준은 그 공격을 쳐내거나 피하는 대신, 더 맞기 좋게 놈을 향해 뛰어들었다.
동시에.
마치 이를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거대한 방패가 생겨나 놈의 공격을 막아냈다.
“…후욱, 흡!!”
플레임렉의 꼬리를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부족해, 이번엔 아예 사방에서 방패를 만들어내고는 꼬리를 바닥에 처박아 결박시켜 버리는 소희.
그녀는 민준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더 치명적인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일렁이는 지옥불로 인해 제대로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고, 놈이 제 몸을 결박한 방패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을 비틀 때마다 대지가 흔들렸지만.
그녀는 코피를 흘리면서도 기어이 이를 붙잡는 데 성공했다.
민준에게서 전해져 오는 힘이 잠시나마 이를 견딜 수 있게 한 것이다.
“전 괜찮아요, 가세요!!”
“고맙습니다!”
소희가 무리하면서 만들어준 소중한 기회.
민준을 이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성신력을 다리에 쏟아붓듯이 밀어넣은 민준이 혜성과도 같이 날아올라 녀석의 뒤를 점했고.
썩둑-
빛살보다 빠르게 그어진 민준의 장도가 허공에 아홉 가지의 오묘한 선을 그렸다.
비록 본능적으로 몸을 비튼 플레임렉이 꼬리가 잘리는 것으로 피해를 최소화하긴 했지만.
방금의 공격이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었다.
녀석의 빈틈을 노리고 있는 일행은 민준과 소희만 있던 게 아니었으니까.
[서우야!]“응!!”
대답과 함께 일어난 거대한 화마가 노도처럼 쇄도해 잘려버린 플레임렉의 절단면을 지져버렸다.
아무리 본인이 불을 다룬다지만, 성력, 그것도 민준의 권능이 근간이 된 능력에는 속수무책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스윽-
그리고 그 아래.
부르지 않았음에도 어느새 나타나 잔잔한 호수처럼 미동 하나 없는 중단세를 펼치고 있는 동길의 눈이.
불로 지져버려 재생하지 못한 플레임렉의 절단면을 담고 있었다.
‘할 수 있다.’
그가 입 밖으로 소리 내지 않고 마음속 다짐을 중얼거렸다.
그의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도 같은 마음이었다.
“아저씨, 할 수 있어요.”
어느새 나타난 민준이 그의 등에 손바닥을 올리고 성신력을 흘려 넣고 있었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아니 적어도 송파구 내에서 유일하게 민준의 성신력을 자신의 힘처럼 사용할 수 있는 동길이었기에 가능한 것.
자신이 지닌 것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넘치는 성신력이 몸속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렇게 그는 메마른 흙이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민준의 성신을 계속해서 흡수했다.
‘이게 조장이 지니고 있는 힘….’
민준은 메마르지 않은 샘처럼, 힘을 갈망하는 동길의 욕망을 모두 채워주었다.
쿠구구구-
그리고 이내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힘만으로도 공간이 일그러지듯 일렁거렸다.
‘나도 할 수 있다.’
그 또한 열심히 노력해왔다. 종말 이전의 삶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왔다.
처음에는 동료들과 서를 지키기 위해서였지만, 나중에는 개인적인 욕심도 생겼다.
더 높은 곳으로 오르고 싶다는 향상심. 이는 어찌 보면, 인간이 지닌 당연한 감정일 수도 있겠으나 동시에 각자가 지니고 있는 재능의 벽을 마주하게 하는 감정이기도 했다. 그가 처음 검도를 포기했을 때. 혹은 얼마 전 민준의 이능을 전달받지 못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지금이라면.
지금이라면 그 벽을 부술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천히 왼발을 내디뎠고.
오른발은 그 걸음을 따라 자연스레 움직였다.
동시에 그려지는 완벽한 호. 어딘가에 떠 있을 초승달을 떠올리게 하는 시린 빛이 두둥실 떠올랐다.
촤아아아악-!!
그리고, 그 한 수가 놈을 감싸고 있던 불길을 한순간에 갈라버리면서 놈의 짓뭉개진 몸체를 드러냈다.
그렇게.
놈의 내면과도 같이 흉한 외형이 세상에 드러나자, 이내 민준이 다시금 서우를 불렀다.
이미 무리하고 있었던 소녀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내면의 성력을 싹싹 긁어모아 다시 한번 불길을 일으켰다.
플레임렉을 향해 힘겹게 날아가는, 꺼질듯한 불길.
민준은 그곳에 성신력이라는 장작을 집어넣음으로써, 불길의 크기를 키워댔다.
작은 불길은 민준의 이능을 타고 급격히 그 몸집을 불렸고, 이내 거친 파도가 되어 플레임렉의 불을 모두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
인간은 듣지도 못할 고주파가 사방에 퍼져나간다.
플레임렉은 고함을 지르며 길길이 날뛰었고, 민준은 이를 철저히 무시하며 제 할 일을 멈추지 않았다.
플레임렉과의 보이지 않는 싸움.
민준의 동료들이 지금 자유로이 기술을 펼칠 수 있는 건 그의 힘을 나눠 받았기 때문도 있지만, 플레임렉과 민준이 보이지 않는 영역 싸움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으니.
민준의 도움을 받아 성공시켰던 동료들의 공격은 이제 반대로 민준의 영역 싸움에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
하늘로 승천하고자 하는 저 괴물의 욕심도 거대할 테지만.
동료들이 무사하기를 바라고, 성주를 죽여 인간이 다른 사도와 성주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이 전투의 장을 동료들이 성장하는 거름으로 쓰고자 한. 민준의 욕심 또한 만만찮게 거대했다.
몹시 거만하고, 위험한 선택이긴 하나. 뭐, 어떤가.
이 세상은 그렇게 악착같이 성장하지 않으면, 힘에 짓눌리고 마는 세상일진대.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해왔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전투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던 용기와 끝끝내 살아남고자 노력했던 간절함의 성과는, 그저 땅따먹기로 얻은 게 아니었으니까.
쿠구궁-
플레임렉의 불길로 주황빛을 머금던 민준의 불투명한 갑주가 이내 새하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마치 가장 어두운 새벽하늘에 떠 있는 샛별처럼.
민준이 걸음을 내디뎠다.
그의 몸이 희끗하며 사라지더니, 돌연 플레임렉의 앞에 나타났다.
사고할 새 없이 연달아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 놈은 생각할 겨를조차 없을 정도로 멍한 상태였고, 그러한 틈을 민준의 주먹이 파고들었다.
콰앙! 콰가가강!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 땅에 처박히는 소리가 이러할까.
플레임렉의 몸집에 비하면 작디작은 민준의 주먹이 놈의 육신에 파고들 때마다 놈에게 유일하게 남은 방어막, 가죽에서 하늘을 울리는 북소리가 났다.
쾅! 쾅! 쾅!
연달아 터지는 소리.
그의 손에는 계속 들고 있던 장도가 들려있지 않았다.
푹.
“크롸라라라라-!!”
다만, 어느새 플레임렉의 미간에 그의 장도(長刀)가 꽂혀 들었다. 범인은 단우였다.
강력한 빛은 짙은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밝게 빛나는 민준이 만들어낸 거대한 그림자 속에 숨어 숨죽이며 기회만 엿보고 있던 소년이 목숨을 건 일격을 날렸던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놈의 코앞에 있던 단우는 죽음을 각오하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음에도 밝기가 느껴지는 눈꺼풀 위로 어둠이 다가옴을 느꼈다.
그런데.
“……?!”
[뒤로 물러서.]“아저씨!”
단우가 슬그머니 실눈을 떴을 때, 그의 눈앞에는 어느새 다가와 놈의 거대한 이빨을 부여잡고 있는 민준이 있었다.
[빨리!!!]“하지만….”
민준은 대답 대신 기운을 일으켜 단우를 저 멀리 튕겨냈다.
지금은 어린 소년의 감수성까지는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계속 당하기만 했던 플레임렉에게는 다시 오지 않을 기회.
역시나 놈의 목 저 너머로 이글거리는 화마가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민준에게 퍼부어질 듯한 불길이 피부 위로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윽.”
여태껏 무리해서 힘을 사용한 민준이 처음으로 육성을 내며 침음성을 흘렸고.
역시나 놈의 분노는 불꽃으로 화해 민준에게 쏘아졌다.
“크흐윽….”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이 분사(焚死)라고 했던가.
세포 하나하나가 타들어가 비명을 지르니, 절로 신음이 새어 나왔지만.
민준은 고통 속에서도 놈의 겁화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눈동자에서 생명의 빛이 꺼지기 시작하고, 온몸은 새까맣게 타올라 숯이 되었다.
놈의 가신으로부터 얻은 [재생력]이 아니었다면, 민준은 그 자리에서 불에 타 죽었으리라.
“….”
그렇게 불에 타고, 복구되기를 몇 번인가 경험했을까.
이제는 이게 실제로 느껴지는 고통인지, 환상통인지 구분도 되지 않을 만큼 깊게 자리한 고통이 그의 정신을 계속해서 각성시켰고.
찰나지만 반쯤 죽음을 체험하고 돌아온 심상은 여느 때보다 거대하게 부풀었다.
그러다 문득. 민준이 정신을 차렸을 때.
“….”
주변을 둘러보니 세상, 아니 플레임렉 진(陣) 내부의 모든 것이 정지해 있었다.
원래라면 그의 반경 몇 미터 이내만 영향력을 펼칠 수 있던 [시간 역장].
그것이 [후광(後光)]으로 구세주의 권능을 빌려옴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급격히 성장한 그의 심상을 빌려 한없이 넓은 영역에 제 모습을 드리운 것이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공간 속에서 민준은 홀로 걸었다.
다른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민준은 놈의 미간을 향해 걸어가 틀어 박혀있는 자신의 검을 다시금 쥐었고.
푹.
새하얗게 불타오르는 검신을 놈의 미간 깊숙이 틀어박았다.
[송파5지역의 성주(星主) ‘승천하지 못하고 추락한’ 플레임렉을 사용자 ‘이민준’이 시해했습니다!] [‘메인 퀘스트 – 승천’을 클리어합니다.]시스템 메시지가 긴 전투의 끝을 알려옴과 동시에, 약속이나 한 듯 멈춰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