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각자의 사정 (1)
명 주임의 안내에 따라 지휘전략실에 도착하니, 그곳에는 이미 펜스의 기수들이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아 무언가에 대해 논의를 나누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도 알아채지 못하고 열성적으로 의견을 주고받는 이들.
펜스의 기수들은 민준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제서야 고개를 돌리고는 흠칫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런 기수들의 시선에 약간의 난감함이 깃들어있음을 민준은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하아….’
동료들이 저런 표정을 짓는다는 건, 방금 자신이 들었던 얘기가 사실이라는 뜻.
민준이 착잡한 얼굴로 원형 테이블 한 귀퉁이에 앉아있는 강세준을 바라보았다.
명 주임으로부터 세준이 어디를 갔다 왔는지, 그리고 백록을 향해 떠난 단우의 소식을 펜스가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에 대해 모두 들었기 때문인데.
세준은 민준을 알아보고는 반가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어딘가 애달픈 눈을 하고 있었다.
““…….””
어색한 분위기 속에 찾아온 침묵.
민준을 맞이하고 고요해진 지휘전략실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장(長)의 자리에 앉아있던 명 팀장이었다.
그는 침음성과 함께 지그시 눈을 감더니, 민준의 옆에서 있는 막내동생을 나무라듯 말했다.
“…남호야, 경솔했구나.”
“형님,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단우를 구하러 가야-”
“됐다. 그만해라.”
단우의 소식을 자신에게 알려선 안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잠깐 표정이 굳어버린 민준의 시선이 명 팀장 뒤에 자리한 지도로 향했다.
구의 경계를 구분하는 외곽라인을 제외하고는 과거 송파구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 지도.
민준은 새롭게 변화한 지형지물과 다양한 크기의 못과 천, 그리고 동산 따위의 특징을 눈에 담았다.
‘저기 그려진 흰 사슴과 돌조각 모양은 백록인가?’
그려진 지도에는 가락동과 문정동의 세세한 모습에 더해 각 구역에 자리한 다종다양한 괴물들의 모습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었는데.
새롭게 정화되어 아직은 하얗게 표시된 부분들이 많은 ‘송파 5지역’ 가운데.
누가 봐도 명백히 알아볼 수 있는 그림 하나가 있었다.
민준의 시선이 그곳에 박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자, 작게 한숨을 쉰 명 팀장이 말을 이었다.
“남호가 모시러 갔으니, 이야기는 다 들으셨겠군요.”
“단우가 실종됐다고 들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아크티네의 군세가 홀연히 사라지기에, 계획이 순탄히 잘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단우가 실종됐다니.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비보였다.
단우는 자신과 함께 플레임렉도 잡았던 녀석이다. 나이를 떠나 생각해봐도, 참 강한 아이였다.
저 야생에 돌아다니는 그저 그런 잡놈들에게 당할 녀석이 아니었다.
‘물론 노식 아저씨와 준서를 데리고 움직이는 상황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 상황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민준 씨를 속이려 했던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일이 확실히 정리되면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요?”
“…돌려 말하는 건 저 또한 재주가 없고, 민준 씨도 싫어하실 것 같으니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준아.”
“….”
명 팀장의 말에 세준이 아무 말 없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 한가운데에 두었다.
검붉은 피와 보랏빛 액체가 잔뜩 묻어 있는 칠흑색 단검 한 쌍.
단우의 손때가 가득 묻은 무기였다.
“저희는 사실 단우가 이미 사망했다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시체를 찾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예, 그래서 당장은 실종이라고 얘기를 해두었죠. 하지만…. 그곳에 무슈 무리가 있었습니다.”
명 팀장이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시체를 찾지 못했으니 실종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무슈와 마주한 상황에서 단우가 목숨을 잃은 것이라면 시체가 남아있을 수는 없다고.
그리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단우가 무슈 따위한테 죽었을 리 없습니다.”
민준이 고개를 젓자 대화를 조용히 듣고만 있던 세준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천천히 웃옷을 벗었다.
““…….””
그러자 다시금 방이 침묵으로 물들었다.
세준의 상반신에는 가슴부터 배까지 내려오는 깊은 흉터가 있었고, 그 주변의 피부가 얼룩덜룩했다.
긴 자상과 지독한 맹독으로 인한 여파.
분명 레드 포션을 사용했을 터인데도 저 정도라면, 당시에는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고 보는 게 맞았다.
“형, 제가 그곳을 찾았을 때는 족히 수십 마리는 돼 보이는 놈들이 일반 무슈보다 3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놈과 함께 있는 상황이었어요. 제가 우두머리를 상대하는 동안 무슈 무리를 상대해줄 팀원들이 없었다면…. 저도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거예요.”
“…네가?”
그럴 리가 없다.
세준이가 일대일 전투에서 단우보다는 약한 편이라지만, 그래도 꽤나 강한 축에 속한다.
그런 녀석이 상대하기 힘들었다고 하면, 최소한 틈의 주인 정도는 되는 급이어야 말이 될 터.
그런 녀석이 벌써부터 젤니아에서 건너올 리가 없었다.
엄밀히 말해 지금 숲을 돌아다니는 녀석들은 대개 그곳에서 새어 나오는 힘에 영향을 받은 변종들이었으니까.
‘애초에 무슈가 건너왔다는 것조차 흔한 경우는 아닌데…. 개중에 네임드가 껴있었다고? 그것도 단우가 피할 새도 없이 기습적으로?’
예측을 벗어난 상황의 연속에 머리가 아파왔다.
“민준 씨,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십시오. 저희는…. 이제 예전의 그 캠프가 아닙니다.”
“…?”
“민준 씨께서 개척하신 캠프가 총 셋. 저희는 민준 씨가 처음 의도하셨던 바를 이루기 위해 그동안 꾸준히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저희 ‘펜스’의 울타리 안에 머물고 있는 인원이 천여 명을 훌쩍 넘기게 됐죠…. 아마 캠프 상황실을 확인해보시면 바로 아실 겁니다.”
명 팀장의 말에 민준은 곧바로 [캠프 상황실]을 확인했다. 그의 말대로 자신이 뿌렸던 씨앗은 이제 무럭무럭 자라 꽃을 피우기 직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명 팀장은 테이블에 둘러앉은 기수들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치고는 민준을 바라봤다.
“저희들의 작은 생각과 행동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달려있습니다…. 그렇기에 단우가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보다, 위험 그 자체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 위험에 미리 대비해야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으니까요.”
그의 말에 민준의 가슴이 답답해졌지만, 구구절절이 맞는 말인지라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의 말대로 지금의 ‘펜스’는 자신이 사도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 바라왔던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지금 놈들이 물러간 이 상황은 민준 씨가 애써서 만든 기회 아닙니까. 이번 전투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기 위해선 한 손이 아쉬운 상태이고, 한시가 아까운 상황입니다.”
맞다. 충분히 그도 이해할 수 있는 말이고, 저것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가슴이 이렇게도 답답한 걸까?
그건 아마.
이제는 캠프와 자신의 입장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캠프는 사람들의 목숨 하나하나 동일한 것으로 두고 계획을 수립해야만 하고.
한 명의 희생에 위험을 감수하기 이전에, 그 행동으로 인해 발생할 피해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하지만, 내 목적은 여전히 내 사람을 지키고자 하는 데 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다수의 목숨보다는 단우 하나의 목숨이 더 소중하다.
동료들과 함께 사도에 맞서고, 성주를 물리침으로써 인류의 안전을 도모할 생각은 있지만.
그 과정에서 동료들이 죽어야만 한다면, 당장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계획의 선후를 바꿀 생각도 가지고 있을 만큼.
내게는 동료들이 소중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다수를 위해선 그들을 희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니.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 내 사람을 희생하는 게 과연 맞는 일인가? 혹은 내 사람을 위해서 다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인가?’
혼란스러웠다.
민준은 번뇌 속에서 자신이 세워두었던 기준이 밑동부터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그가 혼란 속에 빠져있을 때, 명 팀장의 억센 손길이 그를 그 속에서 건져냈다.
“민준 씨!”
“…?!”
그는 민준의 어깨를 쥐고 흔들며 심마 속에 빠져있던 민준을 다시금 현실로 끌어내렸다.
“정신 차리십시오. 민준 씨가 생각하는 문제는 옛 선현들조차 답을 내리지 못한 문제입니다. 그러니…. 그냥 민준 씨 마음가는대로 움직이세요.”
“…움직이라니요.”
“각자 처 해진 상황이 천차만별이고, 그 상황에 빠진 사람조차 모두 가지각색입니다. 그러니 그런 변수로 인해 도출되는 길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표류하지 않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할 뿐인 겁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위치에서…….”
“무엇보다, 이번에 도움을 받은 입장에서 이런 얘기를 드리는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펜스도 나름 강해졌고, 이제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면 저희도 제 한 몸 정도는 지킬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도움받은 게 얼만데, 여기서 도움은 못 될망정 발목을 잡을 수야 없지요.”
민준이 명 팀장의 말을 계속해서 되뇌이며, 그 의미를 곱씹었다.
‘X신…. 그런 의미 없는 고민을 하다니.’
그의 말이 맞았다.
자신이 방금 했던 고민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고민이었다.
구세주라는 존재를 만나고, 그에게 힘까지 받으니 자신이 뭐, 신이라도 된 듯이 사고하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가 자신에게 했던 말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런 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나는 전지하지도 않고 전능하지도 않다. 한낱 인간일 뿐이다.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
다만,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할 뿐.
‘그렇다는 건….’
저들에게도 서운해할 필요가 없다.
저들은 저들의 자리에서 최선의 판단을 내리고 있을 뿐. 애초에 그들이 악의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캠프에서 같이 보낸 시간이 길었으니, 단우가 위험에 빠진 것에 대해 무척 마음 아파하고 있을 것이다.
민준은 생각을 마쳤다. 그리고.
쿵!
“…?!”
돌연히 들려온 책상 위의 충격음에, 시선을 전방으로 돌렸다.
어느샌가 회의가 진행되던 원형 테이블 위에는 명 팀장이 아래에서 낑낑거리며 올려놓은 거대한 상자가 있었다.
“이게 단우를 찾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상자를 올려놓더니, 커다란 테이블에 내용물을 모두 쏟아버렸다.
““…윽!””
그러자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코를 움켜쥐고는 인상을 썼다.
그 내용물은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나방 유충의 사체.
그런데 모습이 일반적인 유충의 모습과 달랐다.
빨대 입이 달려있는 건 같으나, 인간의 팔다리처럼 사지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막만 한 열 개의 발가락과 손가락을 지니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설마, 이런 개X끼들…….”
민준이 탄식을 내뱉었고, 이를 명 팀장이 받았다.
“이것들은 전부 송파5구역의 틈 근처에 발견됐습니다.”
그의 말에 민준의 표정이 차게 식었다. 명 팀장은 민준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말로 뱉어냈다.
“갑자기 틈 밖으로 나온 젤니아 원주민들. 그 주변에 발견된 이 해괴한 유충들. 과연 우연이겠습니까?”
“절대 아니죠.”
이런 일에 결코 우연이란 없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만이 있을 뿐.
“정보, 감사합니다. 단우는…. 제가 무조건 찾아오겠습니다.”
“저 또한 저희의 추측이 틀리고, 민준 씨가 맞기를 바라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명 팀장에게 꾸벅 인사한 민준이 지휘통제실의 문을 박차고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