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9
019화. PvP (2)
민준이 자신의 키만 한 대검을 끌며 다가가 마주 서자, 흙먼지가 부산히 일어 붉게 물든 하늘로 흩어졌다.
“윤아린?”
“내 이름도 아는 걸 보니까. 역시 막내, 그 새X가 다 불었구나…? 병X은 이러는 게 자기 무덤 파는 일인지도 모르고-”
그녀는 다 해진 캔버스화로 흙바닥을 툭툭 문대며 말을 이었다.
“하여튼 아저씨가 이민준 맞지? 낮에 그쪽이 던진 짱돌 때문에 내 동생이 신세를 많이 졌어.”
“너희가 총만 쏘지 않았더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거다. 도대체 왜 사람을 죽여 시간을 얻으려고 하는 거지? 사도를 죽여서-”
“으으씨. 딱. 딱. 딱. 딱. 누가 틀딱 아니랄까 봐, 더럽게 딱딱거리네.”
윤아린이 샷건을 쥐지 않은 손을 캐스터네츠 치듯 움직이며 인상을 찌푸렸다.
“잡소리 할 거 없이, 어서 덤벼. 멍청한 동생 때문에 내가 많이 바쁘거든. 아니면…. 내가 간다.”
윤아린은 말을 마치자마자, 기습적으로 방아쇠를 당겼고.
총구에서 뿜어나온 수많은 쇠구슬의 군집이 대검의 넓은 면을 강타했다.
“하? 바로 앞에서 벅샷을 맞아도 안 부서…!”
상상 이상으로 단단한 대검의 내구도에 윤아린이 혀를 내둘렀으나, 상대가 뭐라 하건 말건 코앞까지 달라붙은 민준은 당황으로 물든 얼굴 아래로 검을 휘둘렀다.
강하게 내디딘 발은 흙바닥에 고목처럼 뿌리내리고, 축을 중심으로 묵색 대검이 횡으로 공간을 짓이긴다.
후우우우웅-
검풍에 흩날린 분진이 거대한 부채꼴을 그렸다.
다만, 공격을 총탄의 위력으로 갈음한 덕에 민첩을 위주로 능력치를 올린 윤아린은 가볍게 허리를 눕혀 검을 피했고.
품이 큰 체육복이 바람에 흩날리는 와중에도 그녀의 샷건은 허리춤에서 민준을 향해 총구를 틀었다.
쾅! 철컥-
어느덧 허공을 향하고 있는 총구가 불꽃과 함께 쇠구슬을 토해냈다. 민준이 총신을 차올린 탓이었다.
11레벨에 달하는 그의 근력은 충분히 총을 박살 낼 만한 힘을 담고 있었지만.
휘리릭-
윤아린의 표홀한 몸놀림은 그 충격을 모두 흡수해 버렸다.
박선우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계속 생존시간이 부족에 시달렸다고 했는데, 민준은 저 몸짓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생존시간을 다 민첩 능력치에 때려 박았군.’
자신과 비슷한 몸놀림.
다른 능력치는 몰라도 민첩 레벨만큼은 최소 10레벨 이상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게 끝이라면…. 윤아린, 너도 내게 죽는다.’
민준이 입술을 달싹이자, 그를 중심으로 반경 10m의 대지가 푸르게 물들었다.
이동속도, 공격속도를 모두 15%씩 감소시키는 디버프 장판 스킬. 공간장악이 펼쳐졌다.
본능적으로 이상함을 느낀 윤아린이 거리를 벌리기 위해 땅을 박찼지만, 민준의 민첩 레벨 역시 절대 낮은 수준이 아니었으니.
움직임이 느려진 그녀를 민준이 이를 놓칠 리 없었다.
부와아아앙-
윤아린에게 네 번의 검격이 연속적으로 쏟아졌다.
그녀는 공기를 찢으며 다가오는 검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내는 곡예를 부렸으나, 이전과 같이 여유 있게 피하는 게 아닌 가까스로 피하는 모양새였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검풍에 휘날려 흩어졌다.
‘괴물 새끼,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윤아린은 속으로 욕을 하며 남은 장탄 수를 세어 봤다.
‘세 발.’
거리를 벌릴 수만 있다면 다시 탄을 장전할 수 있다.
하지만, 저 괴물의 움직임을 생각해보면 자신에게 그럴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녀가 마구잡이로 방아쇠를 당길 수 없는 이유였다.
윤아린은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고자 가까스로 검을 피하면서도 입을 열었다.
“아저씨, 숙녀를 너무 거칠게 대하는 거 아니야?”
“이제 다시 잡소리를 할 마음이 들었나?”
민준은 그녀의 말을 받아치면서도 대검을 쉬지 않고 휘둘렀다.
검을 휘두를수록 대검을 다루는 기술은 명확해졌고, 육중한 무게는 이제 방향을 전환하는 순간에도 속도로 변환되어 그 기세를 잃지 않았다.
괴물을 잡기 위한 투박한 쇳덩이.
약하디약한 인간은 스치는 것만으로도 뼈가 부러질만한 공격이었다.
‘맞으면 골로 가겠는데.’
저 괴물이 가볍게 휘두르는 공격은 어떻게 맞더라도 치명타지만, 자신이 유효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공격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저런 무식한 걸 대검이라고 휘두르는 인간의 체력이 자신보다 못할 리는 없었으니까.
싸움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불리해지는 건 자신이었다.
‘결국, 내가 먼저 꽂아 넣어야 해.’
이대로 피하기만 했을 때,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건 죽음뿐이었다.
처음으로 날아드는 검격의 사이로 윤아린이 제 몸을 들이밀었다.
대검은 강력했지만, 그만큼 무거웠으니 저런 무식한 덩어리를 휘두르기 위해서는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으리라.
“X발! 뒤져!”
날아드는 발길질에 복부가 걷어차이면서, 만들어낸 잠깐의 틈.
그 찰나의 시간, 민준을 향해 달라붙은 윤아린의 샷건이 불을 뿜었다.
* * *
뼈를 취하기 위해, 살을 내줬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근력을 넘어선 민준의 발길질에 정통으로 맞은 여파는 상당했다.
살아생전 처음 느껴보는 통증은 아프다는 느낌보다, 이건 뭔가가 잘못됐다는 감상만을 남겼다.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전방을 주시하는 윤아린의 시야에는, 피로 범벅이 된 왼팔을 늘어뜨린 민준의 모습이 보였다.
‘그 사이에 그걸 또 막아냈다고?’
왼팔을 주고 벅샷을 받아낸 놈의 방어력도 말이 안 됐지만, 그 찰나의 순간 자신의 공격에 반응한 미친듯한 반응속도는 분명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능력임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해도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
한국에서 이런 걸 어떻게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혁 선배로부터 간신히 한발 얻어낼 수 있었던 초록빛 탄환.
찰칵-
놈이 부상으로 멈칫한 순간 웬만한 방탄복은 깡 운동에너지로 찢어버린다는 ‘슬러그 탄’을 장전했다.
“이번에도 그 무식한 몸뚱이로 한번 막아봐.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
까드득.
당겨진 방아쇠. 그로 인해 튀어 오른 해머. 그리고 그 해머가 총알을 강타하기까지의 찰나(刹那).
민준은 돌연 대검으로 바닥을 찍어 올려 윤아린에게 흙먼지를 퍼뜨렸다.
“…!”
윤아린은 당황했지만, 침착히 민준이 있던 곳을 가늠해 마지막 탄환을 발사했고.
콰아앙!!
분진 속에서 스러지는 한 형체를 확인하고 제 승리를 직감했다.
‘….’
흙먼지가 가득한 운동장.
홀로선 윤아린은 성공적인 사냥을 마친 뒤의 성과부터 확인했다.
괴물이 차고 있던 장비들도 분명 좋아 보이긴 했으나, 그녀는 자신이 쓸 수 없는 무식한 쇳덩어리보단 당장의 생존시간이 더 간절했다.
‘제발….’
아이템이나 능력치를 올리지 않고, 남겨둔 시간이 많기를.
윤아린은 간절히 바라며 제 손목의 생존시간을 확인했다.
‘…어?’
그런데…. 지금껏 만나본 그 어떤 사람보다 강한 이를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윤아린이 확인한 순간 손목의 생존시간은 변함이 없었다.
“X발, 뭐야. 왜 시간이-”
다급한 윤아린의 시선이, 분명 시야 한켠에 떠올라있어야 하는 시스템 메시지로 향했다.
승리의 환희는 빠르게 식어갔다.
‘저 괴물이 생존시간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던 건가? 아니, 그래도 시스템 메시지는-’
아주 잠깐의 부정기를 거친 머릿속에서, 차마 믿고 싶지 않았던 현실을 속삭이기 직전.
후우웅-!
쇠구슬이 모습을 감춘 분진 속에서 민준이 나타났다.
쓰러진 줄로만 알았던 그는, 땅에 가슴이 닿을 정도로 몸을 낮추어 곧장 그녀를 향해 짓쳐들어가고 있었고.
촤아아악-!
“…흐흐, X발. 결… 국은 이렇게… 뒤지네.”
윤아린의 단말마와 함께, 대각선으로 올라간 대검을 따라 생겨난 붉은 선에서 피가 솟구쳤다.
띠링-!
[살인(殺人)하셨습니다.] [업보(業報) 수치가 하락합니다.] [살인마(殺人魔)를 처치했습니다.] [업보(業報) 수치가 상승합니다.] [‘윤아린’을 제거하고 128시간을 강탈합니다] [신체 변화율 : 80%] [근력, 체력, 민첩의 레벨이 1 올랐습니다.]“후우….”
민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500시간을 주고 산 레드 포션을 팔에 들이부었다.
제법 까다로운 적을 잡아내긴 했으나, 자신을 저격하려 했던 운동장 외곽의 세 명을 처리한다고 했을 때 거기까지가 일곱.
아직 적은 반 이상 남아있었다.
“방향이 저기였나?”
행정실 창문을 뚫고 나왔을 때. 쏘아진 총탄을 생각해 걸음을 뗐으나.
쾅! 쾅! 탕탕탕-!
그 순간 학교 쪽에서 들려온 연이은 총성에.
‘….’
민준은 다시 방향을 틀어 핏물에 자박거리는 발걸음을 옮겼다.
* * *
동길과 소희, 그리고 수갑에 채워진 채 묶여있는 박선우는 양호실에서 갇히기 전에 탈출하여, 1층 비품실로 숨어들었다.
‘젠장. 젠장. 젠장.’
무언가 크게 잘못됐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제 생존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큰맘 먹고 한 행동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이야.
「[서브 퀘스트 – PvP]
난이도: C-
클리어 조건: ‘망산고 사격부’가 ‘민준과 아이들’을 습격합니다.
다음 조건을 완료해 파티를 승리로 이끄세요.
① ‘민준과 아이들’ 파티원 제거 (0/2)
② ‘민준과 아이들’의 파티장 ‘이민준’ 제거 (0/1)
제한시간: 없음
보상: 업보(業報) +1.5, 800시간
실패 시: 사망」
매일같이 무시하고 구박하던 놈들에게 이미 열이 받을 대로 받은 상태였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배를 갈아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퀘스트의 트리거가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결국, 이놈들을 죽여야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거잖아…. X같네, 진짜. 그 괴물 X끼를 대체 어떻게 죽여야 하냐고. 게다가 난이도가 C-?!’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눈앞의 두 사람이 그 괴물 놈을 걱정하고 있는 것도 열 받았다.
“민준 씨는 무사하겠죠?”
“조장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저번에 소희 씨가 말하지 않았었나?”
“그래도 이번에는 사도들이 아니라, 총으로 무장까지 한 살인자 집단이잖아요.”
‘걱정할 사람이 없어서 그놈을 걱정해?’
어이가 없었다.
포식자를 알아보는 제 레이더에 따르면, 그놈은 규격 외의 괴수였다.
가늠할 수 없는 강함. ‘주장’에게서 느낀 기분을 그 녀석으로부터도 정확히 느낄 수 있었다.
‘그놈이 대놓고 맹수라면, 주장은 속이 시꺼먼 구렁이랄까. 어? 잠깐만.’
어떤 아이디어 하나가 박선우의 머릿속에서 번쩍 떠올랐다.
‘주장이랑 괴물 놈이 상잔하다가 동시에 죽는다면?’
그러면 자신은 자유의 몸이 됨과 동시에 퀘스트까지 완료할 수 있게 된다.
여기 있는 두 사람 죽이는 정도야, 기회만 주어진다면 자신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너, 무슨 생각을 하기에 표정이 그래?”
“네? 아?! 저도 민준이 형 걱정하고 있었죠.”
“으흠, 그런 생각이 아닌 거 같았는데….”
‘더럽게 촉이 좋아선.’
갑자기 단발머리 여자가 말을 걸어와서 놀랐지만, 뛰어난 위기대처 능력으로 대응했더니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하여튼, 소희 씨가 자주 깜빡깜빡하는 거 같은데, 나 강력계에서도 짬 좀 먹은 형사였다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아저씨, 은근히 허세가 있는 거 알아요?”
“어허! 허세라니. 게다가 놈들만 총이 있는 게 아니에요. 여기, 나도 총이 있다니까?”
드문드문 새치가 있는 아저씨가 정장 자켓을 걷자, 품 안에 은색 리볼버가 꽂혀있는 홀스터가 보였다.
‘저 아저씨는 조심해야겠네.’
“후…. 하여튼 이번 퀘스트가 끝나면, 저희도 사냥을 해서, 생존시간을 벌어야겠어요. 이래선 매번 민준 씨에게 짐만 되니….”
단발머리 여자가 고개를 저으며 탄식을 하는 도중.
저벅저벅.
갑자기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형사라고 말한 아저씨가 내 입을 막고는 벽으로 붙었고, 소희라고 불리는 여자도 그를 따라 벽에 붙어 숨을 죽였다.
– 조장이 아니야. 발소리가 하나가 아니거든.
– 그럼 놈들이에요?
– 그런 거 같아. 일단 지나갈 때까지 숨죽이고 있자고.
둘이 속삭임을 멈추고 입을 다물자, 벽 너머에서 어렴풋이 대화 소리가 흘러나왔다.
[진원이 형이 시켜서 하긴 하는데, 이게 의미가 있는 일일까?] [그러게 말이다. 세 명만 잡으면 되잖아. 그냥 다 같이 모여서 공격하면 이기는 거 아니야? 왜 이렇게 빙빙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부주장이랑 진원이 형이랑 맨날 싸우잖아. 그래서 그럴걸?] [어휴…. 그게 뭔 지X이냐…. 아, 난 모르겠다. 빨리 돌아보고 라면이나 먹으러 가자.]‘이 목소리는 진원이 형 라인 타고 있는 애들 목소리인데. 그렇단 건…. 부주장 쪽 애들이 괴물이랑 싸우고 있나 보네.’
저놈들이 학교를 돌아다니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소희와 동길을 찾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다시 한번 박선우의 비상한 머리에서 파밧하고 불씨가 튀었다.
‘기회다.’
박선우는 곧바로 발악하며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읍…! 으으읍!! 읍!”
– 이 새끼가 조용히 안 해?
“으읍! 으….”
이내, 경찰이라던 꼰대의 손을 깨물고 자유를 찾은 박선우가 소리쳤다.
“야! 여기!! 나 여기 잡혀 있어!”
“이 녀석이?!”
‘아니…. 나-’
소리를 지리는 순간 뒷목에 전해진 강한 충격에, 박선우가 하려던 말은 입속을 맴돌았으나.
‘여기에 있는….’
그렇게 박선우의 의식이 심연 아래로 침잠하는 와중에.
쾅! 쾅! 탕탕-!
먹먹한 귓가로 수많은 총성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