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94
194화. 생존 싸움 (1)
‘인간’ 대 ‘사도’.
절대 공생할 수 없는 관계다. 화합을 통한 공존은 물론, 패자를 포용하는 아량조차 찾아볼 수 없는 사이.
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약육강식(弱肉强食)’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가 죽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가혹한 혈투를 벌여야만 하는 관계.
본디 인간은 사도라는 강력한 포식자 앞에서 벌벌 떨며 생명과 시간을 헌납하는 것밖에 할 수 없는 피식자였으나.
그러한 혼란하고 강퍅한 환경일 때야말로 인물이 나타나는 법.
물론 그 인물은 단지 자신이 처한 불행한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을 뿐이었지만.
그러한 발버둥은 누군가의 입을 타고 번져가며 막대한 영향력을 만들어 갔고, 이는 나비효과가 되어 인간을 사도와 대적할 수 있는 위치까지 끌어올렸다.
막상 그는 그러한 것을 인식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 * *
휘이이이-
매서운 초겨울 바람이 민준의 귓볼과 뺨을 발갛게 만들고는 콘크리트 분진을 싣고 흐린 하늘 위로 솟구쳤다.
‘여태까지의 모든 여정이 이 전쟁 한 번으로 결정 난다.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싸움이야. 절대 질 수 없다.’
곧 벌어진 전투를 앞둔 민준의 눈동자에는 상처뿐인 도시의 모습이 가득했으나, 머릿속에서는 지난 보름간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목숨 걸고 성주를 죽여 인간만의 영역을 확보하고, 내부의 적을 소탕함으로써 혹시나 일어날 분란의 싹을 제거했으며, 적의 의표를 찌를 복검(腹劍)을 준비했다. 그리고….
[현재 저놈들이 우리를 공격하지 못한다고 해서, 수동적으로 그때만을 기다리는 건 하책 중의 하책이에요. 그나마 나은 중책은 녀석들이 공격할 곳을 예측하고 대비해 함정을 파놓고 역습하는 것이죠. 네, 맞아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준비는 중책일 뿐이라는 소리에요.] [그럼 뭐가 상책이냐고요? 당연히 선빵이죠. 아저씨, 학교 다닐 때 싸워본 적 없죠? 항상 선빵치는 놈이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요. ……아, 거참. 끝까지 들어보세요.] [선공을 가한다는 건 개전 시기와 장소를 아군의 여건과 입맛에 맞는 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상대에게 선택지를 강요할 수 있으니 수 싸움에서도 한 발짝 앞설 수 있죠. 칼침을 대비해서 방어구를 입을 게 아니라, 먼저 칼자루를 쥐자 이 말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거냐고요? 우리의 칼이 대도(大刀)가 아니라 과도(果刀)일 땐 어쩌냐고요? ……글쎄요? 시카리우스때 생각 안 나요? 그때도 대전략은 제가 세우고, 그걸 풀어낼 방책은 아저씨가……. 악!! 아이고, 다 큰 어른이 아픈 애를 친다! 동네 사람들!! 여기 좀 보세요! 내가 이 아저씨 때문에 제 명에 못 살…….]민준은 병상에 누워 입만 나불거리던 조숙한 소년을 떠올렸다.
요즘 아이들답지 않게 고사(古事)를 좋아하는 특이한 소년, 송단우.
민준과 소희의 ‘피땀 어린 노력(=생존시간)’으로 현재는 병석을 털고 일어나다 못해, 날아다니고 있었지만.
칼라미테스를 죽이고 막 복귀했을 때 만해도, 물에 빠지면 동동 떠다닐 것만 같은 주둥이를 빼고는 온몸이 엉망진창이었던 소년이었다.
‘단우가 한 말이 틀린 건 아니야. 문제는 어떻게 저걸 해내느냐이긴 하지만…. 저 생각을 현실로 만드는 건 어른이 해야 할 몫이겠지.’
어린 녀석이 그런 방향을 제시해준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랬기에 민준은 단우의 대전략을 줄기로 그의 동료들과 함께 적을 상대하기 위한 계책을 수립했다. 두뇌를 쥐어짜다 머리에 열이 오른 간부들이 다 허물어진 약국을 털어 탈모약을 구하러 다녔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그래도 집단지성을 이용하자, 제법 그럴듯한 방책들이 나왔다.
‘첫 번째로 정보전.’
전투에서 정보가 중요하다는 건 전쟁사(戰爭史)적으로도, 그리고 민준을 비롯한 동료들이 본인과 전우의 피 값으로 알아낸 경험으로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아무렴 예전에 송파서도 계속해서 정보를 수집하러 다니지 않았던가.
그랬기에 민준은 이제는 나름 고급 인력이 된 송파서 원년 멤버들을 다시 한번 대거 기용하여 척후팀을 꾸렸고, 놈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려 노력했다.
당연히, 아크티네를 비롯한 자매들과는 절대 교전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두었다.
고급 인력을 잘못 놀려 각개격파 당하는 건, 지금 상황에서 굉장히 뼈아픈 피해였으니까 말이다.
‘그다음은…….’
녀석들의 전력을 확인하고, 우리와 상대의 전력 차이를 객관화하는 것이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녀석들의 전력은 그 어떤 수치를 비교해봐도 현재 인간보다 더 우위에 있었다.
원래도 막연하게는 알고 있었지만, 염탐을 통해 얻은 정보는 그것을 확실하게 해주었다.
‘정면으로 꽝하고 붙게 되면 필패다.’
각기 다른 색깔을 지녔으며 서로 합이 잘 맞던 아크티네의 자매들도 문제였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었다.
숫자. 놈들의 숫자가 너무나도 많았다.
‘이 X끼들 할 게 그렇게 없나. 뭔 번식을 그렇게나 많이….’
실로 막대한 병력.
놈들의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채 가늠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라고 했다.
얼마 전 전쟁에서 봤던 숫자는 애교일 정도라고 했던가…?
그러니 민준을 비롯한 이들은 그 숫자를 극복할 수 있는 여러 방책들을 짜내야만 했다.
‘다행히 한 사람, 한 사람의 무력은 우리가 더 낫긴 하니까.’
단점의 격차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장점을 극대화시킬 방법을 골라야 했다.
평균적으로 각기 개인의 전투력은 사도보다 조금 더 강한 수준으로.
과거였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사실이었으나, 상태창과 스페이스 상점이 그걸 가능하게 만들었다.
민준과 일행은 곧장 저 자료를 기본으로 전쟁을 위한 대전제를 수립하기 시작했다.
‘전장의 위치는 무조건 우리가 선택해야 해.’
적에 비해 숫자가 적다면, 환경이라도 우리 편으로 만들어서 직접 상대해야 하는 적의 숫자를 줄여야 했다.
마침 단우의 말대로 선공한다면 전장의 선택권을 우리가 가져갈 수 있으니, 시기만 늦지 않게 잘 정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달성할 수 있을 목표였다.
‘그다음은 소규모 부대의 유기적인 움직임이 가능하도록 할 것인데.’
이 전제는 이미 완성되어 있다시피 했다.
모두가 몇 번씩이나 함께 사선을 넘으며 손발을 맞춰온 역전의 용사들이다.
굳이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서로 원하는 것을 알았기에 이는 약간 편제를 수정하는 것만으로도 민준이 원하는 목표치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아크티네의 노림수는 피하고, 오히려 우리가 녀석들을 기만하는 전술을 추가해야 해.’
병력이 열세인 입장에선 전투원 한 명, 한 명이 소중했다.
그랬기에 공평하게 서로 죽어 나가는 교환은 일어나선 안 된다.
저들만 죽고 인간들은 생존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했고, 동시에 놈들의 고급 개체를 요격하거나 유충들의 군세와 그들의 지휘가 유기적으로 어우러지지 못하게끔 만들어야 했다.
‘자존심? 명예? 긍지? 수치심? 다 개나 줘버리라지.’
그런 것들이 목숨을 이승에 붙여주지 않는다. 살아남아야 다음도 기약할 수 있는 법이니까.
게다가 애초에 인간이 아닌 놈들과의 혈투였다.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기만전술이 치사하고, 인륜에 맞지 않는다고 욕할 놈도 없다는 소리였다.
‘최종적으로 유기적인 부대 운용과 기만전술을 바탕으로 한 포위섬멸전을 사용해야겠지.’
숫자.
그래, 결국, 전쟁은 숫자 싸움이다. 최소한의 피해로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압도적인 전력으로 찍어누르는 것이다.
쉽게 말해, 떼를 벗어난 누우 새끼들을 쌈 싸 먹는 암사자 무리처럼 녀석들을 사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개 이러한 몰이 사냥을 수행하기 위해선 두 가지가 필요했다.
‘기동력’과 ‘지구력’.
과거였다면 그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만, 몇 달을 써도 부족할 만큼의 준비를 했을 테지만.
‘지금은 상태창과 마석이 있으니까. 단기간에 최대한 전력을 끌어올리면 된다.’
민준과 동길, 그리고 병철은 지금껏 비축해놓은 마석을 한꺼번에 풀어버렸다.
어차피 이번 전투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내일의 해를 볼 수 없는 상황.
가용할 수 있는 것은 총동원해야 했다.
‘어차피 인간도 아닌 놈들. 앞뒤 잴 거 없이, 최대한 죽이고 살아남는 것만 집중하면 돼.’
민준은 물론 그 근방에 매복해 있던 그의 동료들은 초겨울의 추위를 잊기 위해 그러한 사색에 잠겨있는 순간.
두두두두-
““……!””
지축을 울리는 소리가 그들을 일깨웠다. 그리고 그러한 파동을 타고 처절한 비명과 신음소리가 퍼져나갔다.
– 제발! 살……. 줘!!
– 으악! 어서 도……. 빨리…….
– 조금만 더 도……. 가면 캠프……. 온다! 다들…. 내!!
누가 들어도 사도들에게 패하고 쫓기는 사람들의 소리.
그 소리를 들은 동료들이 말없이 눈빛을 교환하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사냥감을 유인하는 미끼. 계획되어있던 척후팀의 연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는 먼 거리도 볼 수 있는 [망견(望見)]이라는 스킬과 도심에서 빠르게 달릴 수 있는 [프리 러닝]이라는 스킬을 지니고 있던 송파서의 막내, 최우진이 맡았는데.
예전 쐐기침 둥지에서 민준에게 구함을 받았던 그가 어느덧 가장 유능한 척후팀의 팀장이 된 것이다.
다만.
아무리 유능하다고 하더라도 가장 위험부담이 큰 역할을 맡은 이상, 피해가 전무할 순 없다.
민준을 비롯한 여러 부대는 이를 보며, 울컥하는 마음을 애써 숨기고 전의를 드러냈고.
그 와중에도, 최우진을 비롯한 그의 척후팀은 점차 가까워져 어느샌가 그들이 매복하고 있는 곳 근처까지 도달했다.
그렇게 수십 명의 척후팀이 그들의 가시권에 들어오자, 이제는 더욱 생생하게 죽어가는 그들의 외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끄악!”
“동환아!!”
“이 X발 그냥 도망쳐!! 너도 죽고 싶어?!”
뛰어난 시력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민준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도울 수 있음에도 돕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스윽-
그런 그의 손 위에 작은 손에 포개졌다.
핏줄이 터져 시뻘게진 눈을 하고 있는 민준이 소희를 바라봤지만,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소희는 민준에게 견뎌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죽고 말 테니까.
‘그래, 참아야 한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지금 동료의 죽음을 보며 마음이 편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모두가 이를 참아내고 있는 건, 그들이 바라는 공통된 바램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위해 누군가는 나서서 자신을 희생하겠다고 했으니.
순간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행동한다면, 그 고결한 마음을 헛되게 만드는 것과 다름없는 짓이다.
“곧 척후팀이 약속된 지점까지 도착한다. 모두, 준비.”
그리고. 건물의 잔해가 쌓여 만들어진 거대한 분지와 같은 지형의 한 가운데, 척후조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누가 먼저라고도 할 것 없이 매복해 있던 송파서의 모든 전투팀이 가파른 경사를 뛰쳐 내려갔다.
“아 X발 놈들아-!!”
“니넨 다 뒤졌어!”
하지만 무엇보다 빠르게 도착한 건.
콰르릉-!!
고막을 터질 것 같은 굉음과 함께 명멸한 하얀 벼락이었다.
““…….””
그리고 벼락이 떨어진 자리.
살점이 타는 매캐한 냄새와 그을린 대지 위에 널브러진 사체 위에 서 있는 건, 태아검을 들고 있는 민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