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95
195화. 생존 싸움 (1)
척후팀이든 전투팀이든 상관없이, 그들의 리더를 ‘팀장’으로 두고 팀장 1명당 휘하에 50명의 팀원을 둔다.
그러한 팀이 총 101개.
민준이 포함된 ‘수뇌부’팀을 제외하면, 물경 5천에 달하는 인원이 송파서에 있는 전 병력이었다.
실제로 그랬다. 종말이 온 상황에서 사람 5천 명을 모았다는 소리는 송파 5지역에 생존하고 있는 사람을 싸그리 긁어모았다는 뜻과 같았으니까.
‘아크티네가 밀고 들어왔던 게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지…. 나, 참.’
고작해야 8백 명 남짓하던 송파서의 전력이 이렇게 불어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아크티네가 펜스와 송파서를 습격해준 덕분이었다.
그 습격은 여기저기 숨어있던 생존자들이 어디서나 확인할 수 있었을 만큼 거대했고.
뿔뿔이 흩어져있던 생존자들이 저마다 강한 위기의식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매서웠다.
때문에.
이러다가는 정말 인간의 종말이 오리라는 사실이, 그저 불안한 예감만으로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펜스가 무너진다면, 그들에게 남은 미래는 죽음뿐일 테니까.
그 이후 일어난 일은 너무나도 직관적이었다.
크고 작은 생존자 무리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송파서와 펜스에 투신했고, 민준에게 미리 언질을 받아 지금 상황을 예견하고 있던 송파서는 비축해놓은 물자와 거주지를 풀어 그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받아들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믿을 수 없는 인원, 검증되지 않은 인원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지금은 마인이 아닌 이상, 무조건 받아들여 부족한 체급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인간이라면 여기서 배신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지면 도망갈 곳도 없을 텐데, 그나마 우리가 싸운다고 나설 때 손이라도 보태야지.
물론, 그럼에도 합류를 망설이는 인원들은 있었다.
하지만, 태자귀의 흔적이 드러난 순간을 기점으로 합류하는 인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고, 다른 생존자들도 무언가에 쫓기듯 우르르 합류하기 시작했다.
민준이 목숨 걸고 성주를 죽이며, 안배했던 계획이 드디어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했다.’
매번 놈들에게 사냥 당하는 입장에 서 있다가, 드디어 인간도 사도와 동등한 위치에서 생존을 두고 맞붙을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 * *
현재 벌어지는 전쟁은 민준과 아크티네의 속고 속이는 치열한 심리 싸움의 일환이었다.
간단하게 생각해서 백(白)과 흑(黑)이 벌이는 체스 혹은 바둑 대국(對局)인 셈.
그리고 선빵을 통해 가장 먼저 한쪽 귀를 차지해 집, 즉 이득을 만든 건 다름 아닌 민준이었다.
전쟁 준비를 한다고 부산히 움직이는 펜스와는 정반대로 쥐 죽은 듯 숨죽이고 있던 송파서.
오른손은 주머니에 넣고 당장이라도 왼손을 당장이라도 휘두를 듯 붕붕거리고 있는 모습에 아크티네의 부대는 당연하게도 펜스가 위치한 서쪽에 더 많은 병력을 배치했고, 이는 동쪽에 자리 잡고 있던 송파서 방면으로 목덜미를 내놓은 것과 같았다.
이때만을 노린 것처럼 민준을 필두로 한 5천 병력은 기습적으로 그 하얀 살결을 거칠게 물어뜯었고, 이는 인간이 유리한 입장에서 전쟁의 서막을 열 수 있게 된 것이다.
펜스와 아크티네의 주력 부대가 긴 전선을 맞대고 있는 상황에서 적측의 주력 부대의 내부를 헤집어 대는 5천의 송파서 인원들.
그리고 이에 호응해 전선을 거칠게 밀어붙여 올리는 펜스.
이 둘의 합작에 아크티네와 그녀의 군세는 한순간에 기우뚱하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력 병력이 혼란에 빠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대마불사(大馬不死), 라고 했던가.
아크티네는 자신이 쌓아놓은 생존시간과 자매들과 남은 병력을 총동원했으며 갖은 노력 끝에 자신의 주력 부대를 살려냈다.
애초에 기습적인 공격으로 혼란에 빠졌던 것뿐이다.
십만이 가뿐히 넘는 사도와 채 3만도 넘지 않는 인간 간의 체급 차이 덕에, 큰 피해까지는 입지 않은 아크티네가 병력을 빠르게 수습해 반격에 나섰다.
아마 아크티네 또한 이것을 알고 있었기에, 보다 병력이 많은 펜스를 상대한다는 정석을 택했을 터.
진정한 전쟁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서로 밀고 밀리는 치열한 공방전.
하지만 이는 겉으로 보기에만 그럴 뿐,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실상은 전혀 달랐다.
‘그래, 끝까지 오만하게 있어라. 네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늪이 네 목 끝까지 차올랐을 테니까.’
송파서 원년 멤버들을 각 팀의 팀장으로 둔 100개의 무리는 바닷속 거대한 정어리 떼처럼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이며 적진을 헤집었다.
그러다가 맞부딪히기에 버거운 수의 부대를 만나면 팀 단위로 산개하여 도주했으며, 조금이라도 상대할 수 있는 경우라면 주변의 존재하는 팀과 협력해 가차 없이 물어뜯었다.
언뜻 보면 왜 당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사도들은 이에 맥없이 당하고 있었으나, 준비했던 전술로 송파서가 상대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있기 때문.
그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는 이 전술은, 통칭 ‘상처 입은 이리’라고 불리는 작전으로.
어느 무리마다 최약체는 존재한다는 당연한 이치를 이용해 상대의 공격을 한 방면으로 유도해내는 방식이었다.
민준은 가장 유능하거나 혹은 강한 팀에게 ‘최약체 팀’이라는 가짜 역할을 부여했고, 해당 역할을 맡은 팀은 모든 팀이 산개하며 도망치는 동안 사도의 이목을 끌며 약속된 장소로 유인한다.
‘그때는 그게 우리 팀이 될 줄은 몰랐지만…….’
작전 계획을 되짚은 최우진은 최대한 고통스러운 표정을 하고는 지면을 박찼다.
아무도 강요한 사람은 없었으나, 상황상 자신의 팀이 그 역할을 맡는 게 가장 합리적이었기에.
우진은 팀원들의 동의를 구하고 자진해서 나섰다.
“후욱…. 이제 다들 준비…. 후욱. 됐겠지?”
시간은 충분히 끈 상황이다. 더 이상은 위험했다.
하나, 둘 따라잡히다가 몰살당할 수도 있었으니까.
이미, 부대원 중 몇몇은 놈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먹음직스러운 미끼가 되어 장렬히 산화했다.
자신의 팀이 상처 입은 이리 역할을 맡아 가장 뒤늦게 후퇴했으니, 다른 팀들은 무사히 전장에서 빠져나가 약속된 장소에 도착했을 터.
– 케에에에엑!
– 키륵! 키륵!
이제 자신을 비롯한 팀원들의 시간을 잡아먹고자 달려드는 저놈들을 그곳에 데려가기만 하면 된다.
“으악! 살려줘!”
“그만! 그만 쫓아오란 말이야!”
“이 X발! 더 빨리 안 달려?!! 새끼야, 너 여기서 죽고 싶어?!”
팀원들이 펼치는 혼신의 연기를 보고 있자니,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 모습이 오로지 연기로만 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발을 헛딛으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외줄 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었으니까.
아마 메소드 연기라는 게 있다면 저런 것일 터다.
‘후…. 그래도 고지가 눈앞이다.’
저 앞에 보이는 거대한 분지가 자신들의 목표지였다.
정밀한 시력 스킬은 거리가 채 500m도 남지 않았다고 알려주었지만, 체감상 5km는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후욱…. 후욱….
거칠게 내뱉어지는 숨에 하얀 입김이 허공으로 흩어진다.
우진이 뒤를 돌아보니 그의 팀원들의 몸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얼마나 치열하게 달려왔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였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이렇게 개죽음당할 순….’
쿠당탕탕!
살아남기 위해 허벅지 근육에 모든 힘을 쏟아부으려는 순간, 뒤에서 소란이 일었다.
뒤를 바라보자, 앞 열의 부팀장이 넘어지면서 대열이 붕괴된 모습이 보였다.
“…!”
마음속 깊은 속에서는 무시하고 도망치라고 말하고 있었으나, 한 줄기 이성이 이를 붙잡았다.
자신은 저들의 리더였다. 그리고 자신이 막내였을 당시에 선임들은 그런 자신을 버리고 도망치지 않았다.
그러니, 최소한 받은 만큼은 해야 했다.
‘에이씨, 얼마 안 남았는데….’
망설임을 짧았다.
우진은 곧장 뒤로 달려가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하늘에서 빠르게 하강하던 나방들의 날개가 잘려 나가며, 하나의 애벌레가 된 놈들이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혀 터져나갔다.
그와 함께 지면에 있던 유충들 또한 나방 때문에 봉변을 당했고, 그렇게 잠시간의 틈이 만들어지자 우진은 뒤를 돌아보곤 일갈했다.
“어서 안 일어나고 뭐 해!! 다 뒤지고 싶어?!”
“팀, 팀장님….”
“움직이라고, 새끼야! 나 뒤지면 그때 갈 거야?!”
“…에잇.”
부전자전이라는 말처럼, 역시 팀장을 닮는 것일까. 부팀장은 짧게 망설이고 곧장 자리를 박찼다.
다리를 절뚝이면서도 팀원들을 챙겨가는 녀석.
망한 세상답게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코찔찔이가 저렇게 컸다.
자신은 이미 다 컸다고 발끈하는 갓 열아홉 살 애송이었지만, 지금만큼은 봐 줄 만한 것 같다.
‘…하.’
잘못하면 이번 전투 후에 다시는 녀석을 못 볼 거라고 생각하니, 입안이 쓸쓸했다.
팀원들한테 단호하게 대할 때는 모질다고 생각할 만큼 강하게 굴어야 하는데, 마음이 무른 녀석이라 자신이 없는 상황에서 애들은 잘 이끌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더럽게 꿈지럭거리긴. 선배도 그 당시 날 바라볼 때 이런 기분이었으려나.”
도망치는 후임의 모습을 보니 예전 송파에서 있던 일이 떠올랐다.
송파구청 옥상 위에서 맨 처음 아크티네를 보았을 때.
지금은 서장님이지만, 그때는 팀장님이었던 성동길 팀장님이 자신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내던졌던 당시가 딱 이랬을 거 같다.
‘그래, 저 핏덩이 같은 녀석을 사지로 몰 순 없으니까. 가르칠 건 다 가르쳐 놨으니, 나머지는 본인이 알아서 잘하겠지.’
아마 저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려면 최소한 팔 하나 정도는 헌납해야 할 듯싶다.
그것도 아마 굉장히 낙관적인 추측일 테지만 말이다.
우진은 검 손잡이를 으스러지듯 강하게 움켜잡았다.
그리고 옷소매를 입으로 찢어 손과 함께 칭칭 감았다. 어차피 자신이 여기서 시간을 벌고 작전만 성공한다면 다른 선배들이 자신의 복수를 해줄 것이다.
– 키에에에엑!!
수천 마리의 유충들이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자신을 덮쳐온다. 너무나 많은 수에 까마득한 마음부터 들었지만 호락호락 당해줄 순 없는 노릇.
드디어 서장님에게 배운 검술을 써먹을 차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로지 공격 일변도의 그의 검술.
공격이 곧 방어고, 방어가 곧 공격이라는 말에 따라 기다리기보다는 지면을 박찼다.
그리고 이어지는 횡베기.
심장에서 용솟음치는 성력이 노도와 같이 핏줄을 타고 흘러 검을 통해 분출되었다.
촤아아악-!
꽤 많은 수의 유충이 초록 진액을 뿜어내며 땅으로 추락했지만, 그보다 많은 수는 유충이 자신을 향해 날아들었다.
우진은 하나라도 더 데려갈 생각으로 다시금 검을 휘두르려 했지만, 돌연 하늘이 시꺼메지면서 시야가 하얗게 명멸했다. 그와 동시에.
쿠릉!
뒤늦게 찾아오는 천둥소리.
눈앞에는 예전에 쐐기침 둥지에서 자신을 구해줬던 모습 그대로의 민준의 모습이 보였다.
“괜찮아요?”
“조장…….”
그때와 착용하고 있는 무기는 달랐지만, 자기 동료를 구하겠다는 다짐 어린 표정을 한 건 똑같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