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결전 (1)
보통 사람들이라면 누군가를 구할 수 있는 상황이 오더라도 자신이 무리하지 않고 살릴 수 있는 사람들까지만 살리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게 현실적이고 실리적이며 확률 높은 선택이니까.
하지만 그 누구도 잃고 싶지 않았던 민준은 모두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거침없이 자신의 할 수 있는 모든 걸 던졌다.
분명 모든 것을 잃을 걸 각오한 도전이었다. 객관적으로 그 확률이란 것도 그리 높지 않았고.
결국, 민준은 실패했으니, 누군가 본다면 어리석다 이야기할 판단일 것이다.
‘다만.’
무모하게 보이는 행동과 그 결의가, 적어도 시스템에게 만큼은 의미있게 보였나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던가.
자신의 모든 걸 걸고 부딪혀 박살이 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민준은 더 많은 걸 얻어버렸다.
비움(空)을 통해 채움(滿)을 깨달은 경우.
띠링!
[‘대리자(代理者)’가 사근덕(四根德) 중 공덕(空德)을 획득했습니다!] [칭호의 숨겨진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그에 따라 권능 1개가 개방됩니다!] [‘영웅의 방주’ 권능을 획득합니다!]‘…영웅의 방주? 새로운 권능인가?’
[영웅의 방주(方舟) Max] : ‘대리자’가 사용할 수 있는 권능 중 하나. 항거할 수 없는 재앙으로부터 아군 모두를 보호할 수 있는 거대한 배를 소환한다.*대가로 막대한 양의 선업(善業) 수치를 소모한다.
어디에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신화 속 이야기가 스킬을 통해 현실로 발현되었다.
카톨릭의 노아. 인도의 마누. 바빌로니아의 우트나피쉬팀. 그리스의 데우칼리온과 피라.
모두 인간이 감내할 수 없는 재앙으로부터 살아남은 이들의 이름이었고, 이 스킬은 그들에 준하는 힘을 민준에게 부여해주었다.
‘뭐가 됐든.’
당장 동료들을 구할 수만 있다면 된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대가로 막대한 양의 선업을 소모한다곤 하지만, 마침 성유물 [골고타 성정(聖釘)] 덕분에 선업이 넘치는 상황.
민준은 고민할 사이에 스킬부터 발동하고자 했고.
스킬을 사용한 직후, 민준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거대한 공동에 수많은 사람과 함께하고 있었다.
“““……?”””
다른 이들도 난데없는 상황에 당황한 건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멀뚱거리며 눈알을 데구르륵 굴리는 동길과 소희, 그리고 송 남매가 그 증거.
민준이 눈앞의 동료들을 보며 안심하고 있을 때, 시스템 메시지는 권능을 준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계속해서 알람을 울려댔다.
띠링!
[네 가지 덕을 모두 깨달았습니다. ‘첫 성주 시해자’의 성장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첫 성주 시해자’ 칭호가 신화급 칭호, ‘인류의 구원자’로 진화합니다!]「[인류의 구원자]
등급: 신화(Mythology)
효과: 선업(善業) +100.0, [사도 포식(捕食) Lv.2], [사도 공양(供養)], [-Lock-],
* 방어 무시 (인간을 제외한 모든 종족을 대상으로 함)
*직접적으로 목숨을 구한 인간 1명당, 0.01 능력치 스탯 부여. (현재 53,396명 구조)
*(숨겨진 효과를 해금하기 위해선 ‘시간 제한자’ 칭호가 필요.)
*이전 스킬 유지 및 상시적용」
‘도대체 이게…….’
운 좋게도 여태껏 여러 혜택을 누려왔던 민준이었지만, 이번만은 진실로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민준은 방금 얻은 고급 칭호를 하나하나 뜯고 씹고 맛보고 싶었지만, 상황이 그에게 그런 여력을 주지 않았다.
“조장!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여기가 어디예요? 저번처럼 민준 씨가 순간이동 시킨 거예요?”
“아저씨는 진짜 양파 같은 남자네? 어떻게 까도 까도 숨겨진 능력이 계속 나오는 거-”
갑작스러운 상황에 민준을 중심으로 동료들이 달려들어 질문세례를 퍼부었고, 그 순간 거대한 공동이 비명을 내며 기우뚱 기울었다.
쿠우우우웅-
““으어어어!?””
그렇게 출렁거리던 공동은 잠시 뒤 중심을 찾고 서서히 잠잠해졌다.
혼란스러운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민준은 원년 멤버를 비롯한 모든 팀장을 불러모았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으니, 긴장을 풀어선 안 됐다.
“지금 상황을 단 두 마디로 정리하자면….”
80명에 달하는 팀장들이 모두 민준의 말에 집중했다.
“놈들 중 하나가 자폭을 시전했고, 그로부터 제가 여러분을 격리시킨 상황입니다.”
“이번에도 민준 씨의 능력이군요.”
“운이 좋았어요. 이번엔 진짜로 큰일 날 뻔했습니다. 저렇게 죽기 살기로 덤벼들 줄은 예상치 못했거든요…. 여하튼 잠시 뒤 놈들의 함정이 끝나면, 곧 이 공간 또한 사라질 겁니다.”
모두가 난전에서 구르고 구른 역전의 용사였기에, 그가 서둘러 설명하자 곧바로 무슨 말을 할지 알아들었다.
“자폭했기 때문에 놈들은 큰 피해를 입었을 테고 아군은 멀쩡하니, 저희 쪽으로 승기가 기울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 공간이 해제되는 대로 거칠게 밀어 붙어주십시오. 자세한 계획은…….”
민준의 계획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기린을 얻어 빠른 기동력을 확보한 송파서의 인원들이 아크티네의 송파2지역과 4지역을 휘저으면서 엉망으로 만들고, 단단히 문을 걸어 잠그고 있던 펜스의 병력을 북쪽으로 전진시키며 땅을 점령해 나가는 것이다.
결국, 전쟁은 결국 땅을 따먹는 게임이고 그를 위해선 보병이 필수적이기 때문.
그러한 민준의 계획을 모두 들은 동길이 오른손을 번쩍 들어 올리더니, 대뜸 질문했다.
“그러면 조장은 어쩌려고? 혹시…….”
“저는 아크티네한테 갈 겁니다.”
“그럴 줄 알았어. 혼자 가려고 그러지?”
“민준 씨, 꼭 그래야겠어요? 저랑 동길 아저씨만은 데려가는 게 어때요?”
“아니요. 지금 이 상태가 되고서야 느껴지는 게 있습니다. 이건, 저 혼자 가야 해요.”
아크티네와 민준의 악연을 제대로 알고 있는 건 동길과 소희뿐이었다.
그랬기에 둘이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민준이 복수라는 감정에 매몰되진 않을까 저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걱정을 단호히 끊어냈다.
“이번만은 저한테 온전히 맡겨주세요. 그때처럼…. 반드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과거 동길과 소희를 먼저 보내고 아크티네를 상대하며 시간을 끌었던 그때. 여태껏 살아남으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의 패배를 맛본 그때.
패배 후 엉망진창이 된 몸을 이끌고 도망치며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던 당시의 자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의 나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아마 같이 간다고 한들 큰 도움이 될 수 없을 거야.’
두 개의 별을 지닌 성주와 하나의 별을 지닌 성주의 격차가 얼마나 차이 나는지 겪어보지 않아 가늠할 순 없지만, 자신이 지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까드득-
그가 낙인이 새겨진 쪽의 주먹을 강하게 말아쥐자, 붉은 선혈이 흘려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수많은 사도에게 쫓기는 악몽도, 손바닥을 불로 지진 듯한 고통도, 이제는 작별을 고할 시간이었다.
* * *
푸른 달이 밤하늘이라는 천으로 여민 솜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기 직전의 새벽.
민준은 린과 함께 16차선 도로의 중앙선을 따라 여상히 걸음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곳저곳 깨지고 부서져 더는 제 소임을 수행하지 못할 그곳은 사도도, 인간도, 하다못해 시궁쥐나 바퀴벌레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죽음의 길이 되었다.
그 길의 끝에는 반쯤 꺾였음에도 송파구에서 가장 높은 키를 자랑하는 서울타워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보는 서울타워의 모습이 민준은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
“….”
뚜벅. 뚜벅.
오로지 자신의 발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그곳을, 민준과 린은 묵묵히 걸어갔다.
현실의 그가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앞으로 한 발짝씩 나아갈 때마다, 머릿속에선 과거의 기억을 되짚으며 거슬러 올라갔다.
과거 소희와 거대 유충껍질을 뒤집어쓰고 촌극 아닌 촌극을 벌인 장소.
처음으로 살인을 했던 곳이자, 사도와 아크티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던 장소.
‘…그리고.’
세계의 종말이라는 종막을 맞이한 곳이면서, 시한부 환자인 민준에게는 삶의 새로운 서막을 열어준 장소.
악몽과 추억.
생존과 죽음.
시작과 끝.
민준은 그런 양가적인 감정 속에서도 나아가길 멈추지 않았다.
한번 발걸음을 멈추면 다시는 나아가지 못할 것 같았기에.
“….”
그의 앞을 가로막는 유충이나 나방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 아크티네 또한 그러한 행동이 무의미하면서도 비효율적인 짓이라는 걸 깨달은 듯했다.
그렇게 다시금 걸음을 재촉해 다다른 잠실 사거리.
그곳은 예전과 똑같은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엉망진창으로 반파된 자동차들. 사거리에 박혀있는 외신의 별. 과거 거대한 나방이 부화했던 번데기 껍질.
굳이 달라진 점을 꼽자면 사거리 한가운데에 고고하게 서서 민준을 바라보고 있는 아름다운 외팔 여인 정도만이 달랐다.
[송파2, 4지역의 성주(星主), ‘군림하는’ 아크티네와 조우합니다!]왼팔뿐인 그녀는 가냘프고 고운 손가락으로 왼쪽 눈에 난 흉터를 쓸어내리며, 두터운 입술을 달싹였다.
“오랜만이야? 얼마 전에 내가 보낸 선물은 잘 받았어?”
한번 걸려들면 절대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은 끈적거리는 목소리에 민준은 성신력을 끌어올려 린을 감쌌다.
“귀찮게 대화하는 것까지 이렇게 힘을 써야 하나?”
“아. 미안하네. 나한텐 숨 쉬듯 자연스러운 거라서 말이지. 어쨌든…….”
아크티네가 길게 뻗은 다리로 사뿐사뿐 걸으며 말을 이어갔다.
“너 전투 센스만 있는 줄 알았는데, 머리도 좀 쓰더라고? 인정할게. 이번엔 내가 한 방 먹었다는 걸.”
“….”
“아주 좋은 전략이었어. 기동력의 우위를 이용해 철저히 원하는 곳에서만 싸운다는 전술과 그걸 실현할 수 있는 통솔력. 그리고 젤니아의 원주민을 한편으로 만든 수완까지……. 마지막으로 가장 놀란 건.”
아크티네가 왼손으로 텅 비어버린 자신의 오른 어깨를 어루만지며 읊조렸다.
“등 뒤에서 칼을 찌르는 비열함까지 갖췄다는 거야. 그놈들, 괘씸해서 죄다 죽여버리려 했는데, 딱 내 팔만 가져가고 빠지더라고. 감이 좋아.”
아마 그녀가 말하는 그 놈들이라 함은 천태랑과 그의 별을 말하는 것일 터.
아크티네의 강함을 알아보고 큰 피해 보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하고 빠진 듯싶었다.
“네가 숨겨놓은 태자귀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
“그래, 그래서 말인데…. 너 무척 탐나. 네가 내게 한 무례, 모두 용서 해줄 테니까 내 밑으로 들어오지 않을래? 우리 둘이 힘을 합친다면 송파구는 물론이고, 서울 전체를 차지할 수 있을 거야. 어때? 구미가 당기지 않아?”
“…웃기지도 않는군. 회복할 시간을 끌고 싶은가 본데. 어디 마음껏 해봐라. 네가 완전해질 때까지 기다려주지.”
“….”
민준이 정곡을 찔렀는지, 계속해서 떠들어대던 아크티네의 입이 앙다문 조개처럼 다물어졌다.
그러더니 돌연 나사 하나 빠진 것처럼 웃음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큭…. 크크크큭. 이거 참 물건이야. 보면 볼수록 탐난단 말이지. 그래, 그러면 생포는 포기하고, 아쉬운 대로 시체라도 이용해야겠네.”
말을 마치자마자 기운을 끌어올리는 아크티네.
민준은 상대의 기세에 대응해 성신력을 끌어올리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살폈다.
““…….””
침묵 속에서 이뤄지는 둘 사이의 간합 싸움.
휘이이익-
북새풍에 실린, 때 이른 첫눈이 허공을 부유하다가 그런 민준의 어깨에 살포시 기댔다. 옅은 두께의 눈은 물론 감각이 없을 정도로 가벼웠지만, 왜인지 민준은 그 무게가 천근처럼 와닿았다.
만약 그가 이 싸움에서 진다면 이곳은 사도라는 괴물을 이끄는 외신의 손에 넘어가게 될 것이고, 그러면 지구는 더 이상 지금의 환경과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생각을 비우자. 우선 선빵필승이다.’
민준은 단우가 했던 조언을 받아들여, 지면을 박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