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결전 (2)
반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악몽 속에서 헤매이던 민준은 이날이 오기만을 꿈꿔왔다.
온전한 자격을 갖춘 채로 아크티네 앞에 서기만을.
이는 오로지 한 가지만 소망하며 오랜 세월을 인내하고 견딘 이무기와도 같았다.
띠링!
[사용자가 잠재력을 개방할 수 있는 환경을 간절히 바랍니다.]‘때가 됐다.’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던 민준이 자리하던 그곳에 단비가 내렸다. 그러한 비는 점차 고여 연못이 되었고, 이로써 이무기가 물을 만났다.
용의 연못.
[‘항적의 기백’이 용연검(龍淵劍)으로 변합니다!]거대한 크기로 다수의 적을 쓸어 버리던 태아검(太阿劍).
상대의 이목을 끌어들여 강제적으로 전황을 바꾸는 공포검(公布劍).
오로지 개인의 힘으로만 전쟁의 승패를 좌지우지하던 항적의 마지막 무기는 사용자를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 주는 능력을 가진 한손검이었다.
‘손에 착 감기네.’
앞서 특색이 뚜렷한 무기들답게 생김새 또한 특이하던 두 검과 다르게 용연검의 모습은 평이하기 그지없었다.
그저 한 손으로 휘두르기 용이해, 범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평범한 철검 그 자체.
‘굳이 다른 점을 꼽아보자면….’
검의 표면이 용의 비늘과 같은 무늬로 수놓아져 있다는 것 한가지와……. 이를 사용하는 ‘자신’이 달라졌다.
몸에서 힘을 끓어 넘친다.
‘….’
다만, 민준은 본능적으로 이것이 오래 사용할 수 없는 힘임을 깨달았다.
원래 좋은 물건은 까탈스러운 법이니까.
매번 그랬듯 모든 힘을 퍼부어 단기 결전으로 끝내야 했다.
‘…흐읍!’
민준이 들숨을 삼킨 순간, 그는 아크티네의 머리 위에 떠 있었다.
동시에 새어 나오는 성신력. 평소에 비해 순도조차 다른 성신력은 점차 색이 짙어지더니 황금빛으로 찬연히 빛나기 시작했다.
쩌어어어엉!
온몸의 체중을 실어 내리그어진 용연검은 돌연 허공에 나타난 투박한 방패에 막혔고, 거력의 여파에 부서진 방패는 쇳조각이 되어 지면으로 스며들었다.
“역시 싹수부터 다르더니, 기대 이상으로 성장했구나. 덕분에 좋은 비료로 사용할 수 있겠어.”
아크티네가 손가락을 까닥하자, 폐건물의 잔해에 묻혀있던 철근 수십 가닥이 뽑혀 나오더니, 한 데 꼬아져 여러 개의 쇠꼬챙이를 만들어냈다.
팔방에서 민준을 겨누고 있던 꼬챙이가 동시에 그에게 쇄도했다.
절대 검 한 자루로는 한꺼번에 받아칠 수 없는 공격.
“제대로 해라.”
어느새 황금빛 헤일로 왕관을 착용하고 있던 민준은 비소(誹笑)를 흘리며 날아드는 꼬챙이를 무시하고 용연검을 내질렀다.
제삼자가 본다면 살을 내어주고 뼈를 취하는 공격으로 오해할 수 있었으나.
황금색으로 빛나는 작은 모형 배가 나타나더니 민준을 중심으로 빠르게 공전하며 모든 쇠꼬챙이를 막아냈다.
용연검을 사용하고 나서부터 사근덕으로 얻은 권능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그였다.
권능을 부려야겠다고 의식해야만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이는 데로 자유자재로 사용되는 권능.
황금빛 성신력으로 빚어낸 후광과 작은 방주(方舟) 또한 그 결과였다.
“……!”
다만, 민준은 나름 회심의 한 수라 생각하고 준비한 공격.
그 공격이 허공에 멈춘 상태로 더 이상 나아가질 못하고 있었다.
키이이이잉-
오히려 힘을 강하게 주는 만큼 굉음과 함께 발생하는 반발력에 그의 손아귀에서 피가 흘렀다.
“도대체 무슨 능력이지?”
“내가 알려줄 듯싶어? 오히려 난 네 힘이 궁금한데. 기대 이상인 정도가 아니라, 아예 가늠할 수 없을 정도야.”
짐짓 허세 가득한 태도로 대꾸한 아크티네의 등줄기에서 한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사실 아크티네 또한 민준처럼 전력을 다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현재 대기를 셀 수 없을 만큼 중첩 시켜 민준의 검을 막아낸 상태.
원래라면 대기가 아닌 형체가 있는 사물을 ‘거느려 다스림’으로써 방어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여력이 부족했다.
조금이라도 판단이 늦어져서 이런 도박수라도 두지 않았다면, 눈앞의 위험한 칼붙이가 자신의 눈알을 통과해 뇌 속을 헤집었을 테니까.
“‘군림(君臨)’하는 아크티네라 이런 것까지도 통제할 수 있는 건가…?”
“흐흐, 눈치 하나는 더럽게 빠르네….”
원래 두루두루 어중간하면 잡종, 모든 점에서 뛰어나면 우수종인 법이다.
‘군림한다’는 뜻은 자신의 발아래 모든 것을 둔다는 의미.
그 능력이 생명체에 한해서만 발휘된다면 그저 그런 능력일 수도 있겠으나.
외신의 별을 두 개나 차지해, 송파구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는 아크티네가 고작 그 정도일 리가 없었다.
‘영향력이 닿는 모든 것을 다루는 힘인가….’
바라는 대로 모든 것을 다룬다니.
능력 자체만 본다면 거의 신(God)에 준하는 능력이라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를 어쩌진 못했다.’
그게 가능했다면, 바로 칼을 입에 물고 자결 ‘당했을’ 테니까.
‘그렇다면 달라지는 건 없다.’
자신을 제외한 세상 모든 것들이 온갖 방법을 사용해 공격해올 테지만, 그 정도 ‘억까’는 이미 익숙했다.
온전한 자아를 가졌던 어린 시절부터 겪어왔던 ‘일상’과도 같은 일이었으니까.
‘몰아친다.’
공으로 우세를 점한 민준은 넘어온 기세를 타고 아크티네를 몰아쳤다. 얼마 전에 획득한 [인류 구원자] 칭호로 얻은 막대한 능력치가 이를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싸움이 길어질수록 민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황금빛은 더욱 짙어졌고,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했다.
기본적으로는 황금빛 왕관과 여섯 겹의 날개에서, 방어해야 할 땐 작은 방주로.
그리고 불가피한 피해를 입었을 때는 붉은 포션이 담긴 술잔으로 변했다가도, 의표를 찌를 땐 한 자루의 창으로, 아크티네의 움직임을 제한할 때는 열십자 형태의 형틀로 변하기도 했다.
둘이 주고받는 공격 하나하나는 한 개체에서 절대 나올 수 없는 자연재해에 가까웠다.
쩌정! 콰가가강-!!
한 수, 한 수에 목숨이 오가는 공격에 대지가 뒤집어지는 건 물론, 끝을 모르고 솟구치는 대기의 온도에 건물 잔해는 물론, 일대의 모든 것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그렇게 10년과도 같았던 10초가 지나자, 지금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민준이 입꼬리를 길게 올렸다.
“…왜 웃지?”
민준의 미소에 불길함을 느낀 아크티네가 싸우다 말고 입을 열었고, 민준 또한 이에 친절히 대답해주었다.
그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바라보면서 말이다.
‘태자귀.’
이 세상에 태어나 제대로 된 삶도 살아보지 못하고 이용만 당하다가 스러져간 어린 생명들.
그 아이들의 복수를 행해야 할 시간이었다.
“인간의 말 중이 이런 말이 있다.”
“…?!”
“인과응보, 자업자득.”
“무슨 소리냐.”
“네가 쌓은 업보, 네가 감당하라는 소리다.”
싸움에 모든 방법을 사용하는 건 당연한 법.
민준의 머릿속에선 얼마 전에 얻었던 [정화된 영혼의 눈물]의 효과가 스쳐 지나갔다. 마치 꼭 복수해달라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아이템 효과가 말이다.
「*대(對)성주 시
하루에 한 번에 한해서, 10초 동안 입힌 피해의 5배에 달하는 피해를 상대에게 한꺼번에 줄 수 있는 영혼을 보낼 수 있다.」
민준이 의지를 담아 반지를 쓰다듬자, 희끗한 연기와 비슷한 무언가가 흘러나와 쏜살같이 아크티네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특성을 사용해 반사적으로 대기를 부여잡았지만, 이를 희롱이라도 하듯, 그 연기는 유유히 통과해 아크티네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
돌연 아크티네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입가에서 한줄기 핏물이 흘러내리더니.
울컥!
목울대가 움직임과 동시에 막대한 양의 피를 쏟아냈다.
[누군가의 강력한 염원에 의해 아크티네의 영혼에 심대한 피해가 가해집니다!] [아크티네 영혼의 일부가 영구적으로 손상됩니다!] [사용자에게 찍힌 낙인의 힘이 쇠락합니다!]띠링!
[아크티네를 죽이지 않고, 낙인을 지워내는 데 성공합니다.] [숨겨진 방법을 이용해 ‘히든 퀘스트’를 완료합니다.] [퀘스트 보상 ‘시간 제한자’를 획득합니다.]「[시간 제한자]
등급: 태초(Ancient)
효과: 배곯았던 자만이 음식의 소중함을 알듯, 시한부였던 이만이 시간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소중함을 아는 자만이 이를 가치 있게 사용하는 법.
‘시험을 통과한 너에게 시간의 권능을 줄게.’ -나의 단검이자 시금석에게」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마지막 문구. 오래전 꿈에서 만났던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문구였다.
[칭호 ‘시간 제한자’가 인식되었습니다. ‘인류의 구원자’의 마지막 효과가 해금됩니다.]‘…어?!’
정신없이 쏟아지는 시스템 메시지는 물론, [시간 제한자]에 새겨져 있던 뜻밖에 문구에 혼미한 민준은 정신을 붙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게 무슨…….”
[인류의 구원자]의 숨겨진 효과가 해금되자, 입 밖으로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그곳에 적혀있는 건, 민준에게 이득이 되는 효과나 능력이 아니라, 누군가의 음성 편지였다.
「[인류의 구원자]
등급: 신화(Mythology)
효과: 선업(善業) +100.0, [사도 포식(捕食) Lv.2], [사도 공양(供養)], [-Lock-],
*방어 무시 효과(인간을 제외한 모든 종족을 대상으로 함)
*직접적으로 목숨을 구한 인간 1명당, 0.01 능력치 스탯 부여. (현재 53,396명 구조)
*이걸 읽었다는 소리는 송파구를 모두 정화했다는 뜻이겠지? 마지막 시험을 통과한 걸 축하해. 그렇다고 우쭐하진 말고. 미안하지만 튜토리얼 끝,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거든. 우선 ’서울시‘를 목표로 시작해볼까?
…응? 나는 뭐하냐고? 나도 이제 좀 쉬자! 난 이제부터 긴 휴가를 떠날 거니까 그렇게 알고. 조금 전에 마지막 선물도 줬으니, 이제부턴 네가 알아서 하도록. 그럼……. 해방이다!! 야, 차 빼놨지? 어서 빨리……. 치지직-
*이전 스킬 유지 및 상시적용」
“허허….”
어이없음에 공허한 웃음을 내뱉은 민준의 머릿속에는 딱 하나의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군대 혹은 회사에서나 들었던 은어.
‘짬처린가……?’
꿈속에서 만났던 어린 구세주는 자신이 깨닫지도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인수인계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송파구가 끝이 아니라니….’
민준은 눈앞에서 해롱거리는 마지막 성주 아크티네를 바라봤다.
모든 내막을 알아버렸기 때문인 건지, 아니면 이 망할 구세주로부터 받은 마지막 선물 덕분인 건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 놈을 죽이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게 허탈해질 정도로 말이다.
촤아악-
자연스레 이는 시간의 힘을 검에 둘러 녀석의 목을 베어버렸다.
[‘군림하는’ 아크티네를 시해하셨습니다.] [송파2, 4지역의 별이 주인을 잃었습니다.]띠링!
[송파구의 모든 별이 자유를 찾았습니다.] [송파구 감싸던 장막이 사라집니다!] [숨겨진 지역이 드러납니다.]“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니….”
당연하지만 그 어린 구세주의 짬처리를 순순히 이행할 생각은 없다.
‘분명 내가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흘러가겠지만….’
나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꼬장을 놔봐야겠지.
이제는 집이 되어버린 송파구를 누군가가 부수려 한다면 자신은 그에 대응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꼬장에도 한계는 있을 테지만 말이다.
“후…. 우선 돌아가서 한숨 자야겠어.”
내일 무슨 일이 터질지 알 수 없으나, 당장은 휴식이 간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