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종막
‘7년 전쟁’.
송파구를 감싸고 있던 장막이 걷히자 벌어진 사도와 인간의 간의 본격적인 혈투.
이는 장막이 걷히기 전보다 더 치열했으면 치열했지, 그보다 덜하지 않았다.
그 당시 모습을 드러낸 서울시의 대부분은 벌레 소굴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간혹 장막이 걷히지 않은 곳도 있었지만, 결국 모습을 드러냈을 땐 모두 벌레 소굴이 된 상태였으니.
인간은 다시 한번 뭉칠 수밖에 없었다.
이해득실도 목이 어깨 위에 붙어있어야만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민준을 중심으로 한 백랑가(白狼家)와 펜스 길드, 그리고 소드 길드는 그렇게 한데 뭉쳐 인간들을 이끌고 사도를 한강 이북으로 몰아냈다.
물론 많은 피가 흘렀다.
하지만 값진 승리였고, 인간에게 처음으로 숨통을 틔워준 싸움이었다.
그리고 너른 초원이 된 강남구 신사동에서 벌어진 ‘배수진(背水陣) 전투’를 마지막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사내가 홀연히 사라졌다.
* * *
7년간의 긴 전쟁이 끝난 후로부터 다시 3년 후.
휘이이이-
메마른 바람이 드넓은 초원의 잔디를 스치고 지나가다, 수천 명에 달하는 인원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들은 차가운 바람에 얼굴이 발갛게 변하는 와중에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가슴 한쪽에 울타리와 방패 문양을 지니고 있는 부대는 한강을 등지고 있었으며, 심플한 디자인의 바스타드 소드가 그려진 문양을 지니고 있는 이들은 그런 그들의 대척점에 도열해 있었는데.
한강 이남을 인간만의 구역으로 만드는데, 큰 공헌을 한 세 개의 세력 중 두 세력, 펜스 길드와 소드 길드.
두 세력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의 중심에는 두 중년 사내가 침묵한 가운데 얼굴을 맞대고 있었다.
““…….””
허리춤에 칠흑색의 검은 차고 있는 각진 턱을 가진 남성이 하나. 그리고 특이한 안경을 쓴 선이 고운 남성이 하나.
둘의 머리가 모두 희끗한 것으로 보아 중년에서 장년으로 넘어가는 나이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장 처음으로 침묵을 깬 건, 흑검을 차고 있던 사내였다.
“병철 씨, 비켜주시죠.”
“안 됩니다.”
“비켜주시죠.”
“안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선이 고운 사내가 안경을 벗고 마른세수를 하며 말을 이어갔다.
“이제 겨우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종전 후, 3년 동안 우린 다시 문명의 싹을 틔울 수 있었고, 이제 이를 잘 키우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있는 벌집을 들쑤신다니요. 절대 안 됩니다.”
“들쑤시는 게 아니라 청소입니다. 저희 쪽 척후팀에 따르면 저놈들의 숫자가 강북이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계속해서 증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대로 멍하니 뒀다가는 나중에 걷잡을 수 없게 돼버려요. 곪을대로 곪아버린 고름이 한 번에 터져 나온단 말입니다!”
“성 길드장…. 확신할 수 있습니까?”
“…?”
다시금 안경을 고쳐 쓴 전병철이 눈앞의 사내, 성동길에게 말했다.
무척 차분하지만, 그의 이면에는 차가운 분노가 서려 있었다.
“우리가 왜 직접 한강의 모든 다리를 직접 부쉈는지 잊으셨습니까? 강북의 사도들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뿐입니까? 한강 이남에 있던 놈들도 다 처리하기 버거워, 이곳 강남구에서 모두 몰아 버리지 않았습니까!”
전병철이 뒤에 있는 마지막 남은 다리 한남대교를 가리키며 참고 있던 화를 쏟아냈다.
하지만, 이에 맞서는 성동길의 의지가 고함 한 번으로 기죽을 정도로 말랑말랑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싸우는 걸 멈출 순 없습니다! 아니, 멈춰선 안 됩니다. 거짓된 평화 뒤에는 필연적으로 불행이 뒤따른다는 걸 왜 모르십니까!”
그렇게 둘의 고성이 오갈수록, 강남구 일대에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별을 정화한 이후, 너른 초원으로 변모한 ‘강남구’. 이곳은 중요한 지리적 이점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는, ‘강남’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지형이 북쪽으로 툭 튀어나와 있어 강북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는 것이고.
둘째는 모두 부서지고 유일하게 남은 다리, 한남대교가 그곳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펜스 길드와 소드 길드 두 곳은 이곳에 병력의 5할을 배치해 특별관리하고 있었는데.
전쟁이 끝난 지도 어언 3년. 그들을 한곳에 묶어주던 구심점이 사라지자 펜스와 소드 길드 사이에 점점 견해 차이를 보이면서 트러블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세력이 커지자 ‘소드 길드’로 명칭을 달리한 옛 송파서는 적극적으로 사도를 사냥해 숫자를 줄여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고.
전병철이 캠프장으로 자리하던 ‘펜스 길드’는 한강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지금의 형세를 유지하자는 입장을 물리지 않은 것이다.
사실 군사적인 입장에서 볼 때 전병철의 선택이 맞기는 했다. 많은 목숨이 걸려있는 전쟁이니만큼 보수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이 전쟁을 길게 본다면 과연 그 선택이 맞을까?
겁에 질려 계속해서 과감한 선택을 보류하며 현실을 마주하는 것을 미루고 있는 건 아닐까?
직접 결과를 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문제였다. 둘이 주장하는 바는 각각의 근거가 존재했고, 관점을 달리해보면 틀린 말이 아니었다.
다만.
가치관 차이로 빚어진 것만큼 대화로 풀어내기 어려운 문제도 없는 법. 행동의 대가가 지금과 같이 생존과 직결된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저 마굴에 들어가는 것이 겁이 나는 건 이해합니다…. 지금만 해도 안락한데 굳이 생고생하고 싶지 않겠지요. 그러니…. 부디 저희만이라도 보내주십시오. 목숨을 걸어서라도 숫자를 줄이고 오겠습니다.”
“겁이라니요! 어디 저희가 저희만 살자고 이러는 줄 아십니까? 소드 길드가 강북에 가서 몰살이라도 당하면 저희 길드끼리 강북에 쏟아질 사도 놈들의 공세를 막아낼 수 없으니까 드리는 말씀 아닙니까! 방패와 검은 한 짝입니다! 둘이 떨어져선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단 말입니다!”
“아쉬운 대로 백랑가라도…….”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서 말씀하신 건 아니시겠죠?”
애초에 백랑가는 자신들의 이해득실이 있을 때만 움직이는 기회주의적인 집단이다.
아무리 세력의 세 축의 한곳을 차지한다고 하더라도, 가능성 없는 일에 계속해서 목매는 것은 오히려 시간이 아까웠다.
사실…. 병철과 동길이 백랑가의 가주 천태랑을 만나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를 자신의 쪽으로 설득만 할 수 있다면 2배에 달하는 수적 우위로 피를 흘리지 않고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가만 보면 그 녀석도 진짜 또라이 X끼야. 여기를 이 꼴로 만들어두고 가다니. 어쨌든 당신들 그렇게 신경 쓸 필요 없을걸…?’
‘그게 무슨-’
‘너희들이 하는 고민이 쓸데없다는 얘기야.’
‘태랑 군, 지금 그런 말장난이나 할 때가 아니라-’
천태랑은 그때마다 뜻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며 모르쇠로 일관했고.
둘은 답답한 마음을 품은 채 다시금 무의미한 논쟁을 반복해야 했다.
“아무튼 지금 강북으로 넘어가는 건 안 됩니다. 만약, 소드 길드에서 강북의 개체 수가 급증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요.”
“병철 씨가 저희 길을 막고 계신데, 저희가 그 증거를 어떻게 찾는단 말입니까. 그럼, 저라도 보내주십시오, 제가 증거를 찾아오겠습니다.”
“성 길드장!”
그렇게 점차 둘의 목소리가 커져가던 중.
께에에에에엑-!!!
““……?!””
“지금 이 소리는-”
“젠장, 늦은 건가…?”
갑자기 한강 너머에서 들려온 끔찍한 괴음에 둘은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더 이상 일을 미룰 수 없었다.
어서 내부적인 발전에 박차를 가해 수비하는 데에 힘을 쏟을 것인지, 누구보다 선수를 쳐서 사도들의 예봉을 꺾을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5년이 넘게 전장을 같이 뒹굴었던 전우였기에, 둘은 서로의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
그리고 동길의 검이 검은색 일색인 긴 잔상을 남기며 휘둘러짐과 동시에, 병철이 글을 잔뜩 써 놓은 종이를 단번에 찢었다.
쩌어어어엉-
동길의 일 검이 왜곡된 규율에 막히자, 이능의 불티가 사방으로 튀면서 개세적인 경파가 일대로 퍼져나갔다.
그 경파를 시작으로 소드 길드의 인원들이 단단히 방진을 짜고 대기하는 펜스 길드의 진형으로 쇄도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들 중에 일반적인 인간은 없다. 다들 초인이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강한 이들.
이들이 맞붙는 싸움이니, 필연적으로 큰 피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두 진형의 거리가 점차 가까워지는 순간.
““……?!””
그들은 순간적으로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돌연 대기가 한 점으로 압축하는 느낌.
과거 사도들과 싸울 때 너무나도 많이 느꼈던 감각이었다.
“…이런!”
“다들 엎드려!!”
“진형을 더 단단히 해라!!”
그들이 대비하는 것보다 반 박자 빠르게 일은 진행되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 그리고 사방을 메우는 분진과 이를 모두 쓸어버리는 굉음의 음파.
그것이 두 세력이 격돌하는 지점 가운데에서 발생했고.
“으으으….”
“…귀, 귀가.”
순간적으로 발생한 충격에, 다들 비틀거리며 일어났을 때.
두 진형의 한 가운데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이글거리는 주황과 노랑, 마지막으로 적색이 묘하게 뒤섞인 단발머리 소녀.
어린 소녀의 티를 갓 벗은 듯한 여인이 부스스한 머리를 쓸어올리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아저씨들, 꼭 이래야 해? 살만해진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러는 거야? 민준 아저씨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아?!”
“서우야 이건….”
“두 분 다 그만 하세요.”
그리고 붉은 머리 여인 뒤, 그림자에서 돌연 한 성숙해 보이는 여인과 젊은 청년이 튀어나왔다.
성숙해 보이는 여인은 자신의 키에 몇 배나 되는 방패를 이고 있었는데, 그녀가 거대한 방패를 지면에 찍어버리자 대지가 마치 살아있는 듯 울렁거리더니 파동처럼 퍼져나갔다.
““…….””
일대의 모든 이들이 순간적으로 경직했다.
고작 세 명일 뿐이지만, 지닌바 힘이 강대하여 능히 수천을 압박하면서도 부담을 느끼지 않는 그들은 세 세력 중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고, 민준을 따라다녔던 이들이었다.
“다들 아실만한 분들이 투닥대고 그러세요. 이러다가 병력이 줄면 저희만 손해인 거 모르세요? 그러니까 가위바위보를 하던, 제비뽑기를 하든, 다른 선택을 하든 하세요. 폭력은 금지입니다. 저희끼리 피를 흘리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어요.”
““그렇다고 이 나이에 그런 걸 하기에는…….””
“쓰읍! 그럼 그 나이에 쌈박질하시는 건 좋은 것 같으세요?”
병철과 동길이 동시에 중얼거렸지만, 한 마디로 둘을 제압하는 소희였다.
“앞면이 나오면 병철 아저씨, 뒷면이 나오면 동길 아저씨 말을 따르는 거예요.”
소희는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누군가가 말리기도 전에 곧바로 튕겼다.
팅-
소희가 빠르게 회전하던 동전을 잡아챘고, 손을 벌리자 나온 건 뒷면이었다.
동길은 쾌재를 불렀으며 병철은 고개를 떨궜다. 그렇게 단번에 강북으로 진격이 결정되었을 때.
따각- 따각- 따각-
어디선가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그 방향은 그들이 건너가려 했던 한남대교.
하지만 한강은 항상 안개로 자욱했기에, 누구인지 알 수 없었으나.
시간이 점차 지나자 안개 속에서 정체 모를 자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거대한 체구의 기린 위에 타 있는 사내.
온몸을 사도의 체액으로 적신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
그곳의 존재하는 모든 이들이 벙찐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고. 그는 그러한 시선에 의아해하면서 굳게 다물어 있는 입을 열었다.
“…다들 여기서 뭐하십니까?”
“조, 조장이 왜 강북에서?”
“아…?! 제가 따로 얘기를 안 드리고 갔던가요?”
““…….””
“이제 강북 쪽으로 사도는 없을 겁니다.”
그리고 곧바로 따라오는 오랜만에 들리는 시스템 메시지에 그들은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시가 완전히 정화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서울시의 구원에 성공하셨습니다.]-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