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3
023화. 실종 (2)
이번 싸움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총기는 역시 위험하다는 것과 적이 사도일 수만은 없다는 것, 두 가지였다.
‘높은 체력 레벨로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다 해도 급소에 꽂히는 총알에서까지 자유로울 순 없어. 가령 심장이라던가….’
이번 싸움에선 급소가 아닌 곳을 희생양으로 삼으며 전투를 이어나갔지만, 언제까지고 외줄 타기와 같은 전투방식을 취할 수는 없었다.
방어구의 필요성을 절절히 체감한 민준은 흉갑을 구하기 위해 곧장 방어구 탭을 열람했다.
“이번에는 어떤 아이템을 살 수 있을까?”
본의 아니게 생존시간을 다량으로 획득했기에, 민준은 기대를 가득 품고 아이템 목록을 훑어내렸다.
「[가속 부츠]
가격: 3,200시간
등급: 고급(Uncommon)
필요능력치: 민첩 Lv.10
정보: 사용자의 이동속도를 상승시키는 가죽 부츠. 민첩 레벨이 높을수록 효과가 상승한다.」
「[복구하는 브리간딘]
가격: 2,800시간
등급: 고급(Uncommon)
필요능력치: 체력 Lv.10
정보: 약간의 자가수복 기능이 담겨있는 가죽 갑옷. 」
“……별로 마음에 안 차는데.”
붙어있는 효과는 괜찮지만, 가격 대비 성능도 그렇고 저런 가죽 갑옷이 거대 괴물들의 공격을 얼마나 막아줄지 미지수였기에 자신의 마음에 차지 않았다. 민준은 다른 건 없는지 아이템 목록을 쭉 내렸다.
그러자 어김없이 보이는 ‘주인을 잃은’ 접두사를 가진 방어구들.
고급등급 아이템 중에서도 가장 싼 가격으로 책정되어있었다.
“그래, 역시 구관이 명관이지. 생존시간도 많은데 아예 세트를 맞춰야겠어.”
민준을 그렇게 생각하며 총 4,000시간을 지불해 [주인을 잃은 흉갑]과 [주인을 잃은 부츠]를 구매했다.
그 순간.
자신의 대검과 방어구들이 호응하더니, 옅은 빛과 함께 아이템 정보창에 새로운 문구가 추가됐다.
* * *
드르륵-
양호실의 문이 열리면서 두 사람이 후다닥 뛰어 들어왔다.
“아이고, 우리 조장은 어떻게 하루가 멀다고 만신창이가 돼서 돌아온대? 진짜! 어렸을 때 부모님 속 좀 썩혔겠구만 보니까!”
동길은 그의 등짝을 때리며 타박했고, 소희는 뒤에 서서 아차-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고아로 자랐습니다.”
““….””
민준의 대답에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면서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크흠…. 말이 그런다는 거야, 말이. 그건 그렇고, 정리하면서 챙긴 건데 생필품 말고, 아이템 하나가 떨어져 있더라고. 한번 확인해 봐”
동길이 그렇게 말하며 꺼내든 물건은 백기혁 그놈이 쓰던 샷건이었다.
놈의 손 대신 달려있던 것이니만큼 총신이 놈의 묵색 외골격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수평으로 달린 두 개의 총구 밑에는 긴 총검이 달려있었다. 한눈에 봐도 고급 총임을 알 수 있었다.
“이건 백기혁 그놈이 쓰던 총인데요? 어차피 사도한테 안 통하지 않나요?”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아! 일단 한번 ‘아이템 정보’로 살펴봐 봐.”
동길의 성화에 민준이 샷건을 받아들고 ‘아이템 정보’라고 읊조렸다.
“…어?”
「[별의 힘이 깃든 샷건]
등급: 희귀(Rare)
필요능력치: 성력 Lv.1
정보: 한때 마력에 물들었으나, 별의 힘으로 정화되었다. 성력(星力)을 담을 수 있으며, 마인을 만나면 반응한다.」
‘희귀등급 아이템?’
조금 전까지 침만 뚝뚝 흘리던 희귀등급 아이템이 눈앞에서 빛나고 있었다.
‘성력? 이거 딱 나를 위한 아이템이잖아?’
민준은 샷건을 이리저리 살피며 동길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이거 제가 가져도 될까요?”
“에이! 민준 씨가 얻은 거니, 당연히 본인이 써야지. 게다가 우린 성력인지 뭔지가 없어서 쓰지도 못해.”
“…그럼 진짜 제가 가집니다?”
옆에 서 있던 소희도 고개를 끄덕이자, 민준이 옆에 놓여있던 단검을 들고 망설임 없이 휘둘렀다.
캉!
하지만 단검은 샷건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흐음, 그렇다면….”
턱을 매만진 민준이 아까와 같이 성력을 일으켜 단검을 휘두르자.
슥-
샷건의 긴 총열이 반 토막 나더니, 소드 오프(Sawed-off) 샷건이 되었다.
민준은 방아쇠 걸이에 손가락을 걸어 한 바퀴 돌리고는 입을 열었다.
“이제야 좀 쓸만해 졌네요.”
민준이 짧아진 샷건을 가죽 슬링에 매달고 툭툭 치며 말하자, 뒤에 서서 가만히 그를 보던 소희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민준 씨 아이템 샀어요? 누가 보면 중세 기사인 줄 알겠어요.”
“아 이번에 새로 구매한 흉갑이랑 부츠입니다. 총을 상대하다 보니 방어구의 필요성을 절감해서요.”
그러면서 민준은 새로 산 흉갑과 부츠의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주인을 잃은 흉갑]
가격: 2,000시간
등급: 고급(Uncommon)
필요능력치: 체력 Lv.10, 근력 Lv.10
숙련도: (0/100)
정보: 누군가가 사용하던 흉갑. 견갑에 비해 얇게 만들어졌으나, 얇은 철판을 겹겹이 댄 구조이기에 그 방어력만은 상당하다.
*세트 효과: 무구의 주인이었던 자의 힘을 일부 빌려온다. 그 힘의 숙련도가 완숙에 이르면 무구의 새로운 모습이 드러난다.」
「[주인을 잃은 부츠]
가격: 2,000시간
등급: 고급(Uncommon)
필요능력치: 체력 Lv.10, 민첩 Lv,10
숙련도: (0/100)
정보: 누군가가 사용하던 하체 방어구. 겉으로 보기에는 무거워 보이지만, 길이 잘 들어 자유로이 움직이는 데 문제가 없다.
*세트 효과: 무구의 주인이었던 자의 힘을 일부 빌려온다. 그 힘의 숙련도가 완숙에 이르면 무구의 새로운 모습이 드러난다.」
그냥 수집 욕구가 일어 가벼운 마음으로 구매했던 게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 되돌아왔다.
‘주인을 잃은’의 이름을 가진 아이템으로 몸을 도배했더니 세트 효과가 붙은 것이었다.
원래 주인이었던 자의 힘을 일부 빌려온다고 설명이 적혀있었는데. 칭호도 스킬도 아닌 게, 효과에 대한 내용이 딱히 나와 있지 않아 실제로 사용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숙련도는 또 뭐지. 괜히 기대하게 만드네.’
물론 등급이 낮은 아이템답게 별 능력은 아닐 것으로 예상되지만, 혹시 또 모르지 않겠는가. 대박이 터질지도.
민준은 설렘을 억지로 잠재우며 소희와 동길에게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그는 그렇게 운을 띄우곤 제 생각을 둘에게 설명했다.
이번 사건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레벨도 올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를 위해 이곳에서 머물며 사도를 사냥하고 다들 ‘최소한의 자격’을 갖춘 실버 등급이 된 후에 움직이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주요 내용이었다.
소희와 동길도 이번 전투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는지, 흔쾌히 그 의견에 동의했다.
* * *
그렇게 보름쯤 지났을까.
꽤나 긴 시간을 사도 사냥에 열중한 일행은 능력치나 아이템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동길과 소희는 능력치 레벨의 합을 30까지 올려 메인 퀘스트를 깨고, 그 보상으로 ‘최소한의 자격’과 실버 등급을 획득했는데.
이미 신체 변화를 완성한 민준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사도 사냥에 이골이 난 그들은 예전과 몰라볼 정도로 완숙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동길은 양손 검을 구매해 자신의 주특기인 검도를 살려 근접 딜러 역할을 맡고, 은근히 힘이 셌던 소희는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다며 힐러 겸 탱커 역할을 맡았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벌보다는 유충을 주로 잡았는데, 둘의 합이 썩 괜찮아서 우연히 거대유충을 만났을 때도 손쉽게 사냥이 가능할 정도가 되었고.
민준도 그때가 돼서야 그들에게 출발하자고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일반적인 사도로부터 위협을 느끼지 않게 되자, 운신에 제약은 사라지고 동선은 간단해졌으니.
성주들이 머무는 별을 피하느라 동선을 조금 꼬았음에도, 일행이 송파경찰서에 도착하기까지는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저씨, 진짜 여기 맞나요? 인기척이 없는데요?”
“에이, 나 환영해 주려고 이 사람들이 또 쇼하나 본데….”
민준 일행은 경찰서 현관에 서서 적막한 건물 내부를 들여다봤다.
소희의 의문스러운 말에 동길이 무심한 듯 대꾸했지만, 그 또한 내심 불안한지 말을 길게 끌었다.
“자자, 어서 들어가자고. 우리 팀원들이 이 자랑스러운 팀장을 목 빼놓고 기다리고 있겠어.”
동길은 실없는 너스레로 불안감을 떨치며 유리로 된 현관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
수리가 필요해 보이는 문을 뒤로하고 로비로 진입했을 땐 적막만이 그들을 맞이했다.
깔끔한 내부와 다르게 인기척이 전혀 없었기에 더욱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잘못됨을 직감한 동길의 걸음이 점차 빨라졌고, 그는 순식간에 2층으로 올라가 ‘형사과’라고 적인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책상 위에 펼쳐진 서류들.
방금 자리를 비운 듯 난잡한 의자 배치.
화이트보드 칠판을 가득 채운 낙서.
손님 테이블 위 화분에 핀 이름 모를 꽃.
곳곳의 흔적에서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긴 했으나, 정작 중요한 사람은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동길은 고개를 저으며 경찰서를 이 잡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형사과 맞은편 경무과, 3층의 경비과와 안보과, 4층의 교통과까지.
그 어느 곳에도 그가 애타게 그리워하는 동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꼭대기 층인 5층.
그곳에는 ‘서장실’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고급스러운 목재 문이 있었다.
“….”
적막 속에서 동길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그 문을 열었다.
딸깍-
문고리가 돌아가고 작게 열린 문틈에서 흘러나온 고약한 악취가 그들의 코를 스쳐 지나갔다.
생선의 비린내와 하수구의 오물을 섞은 듯한 악취.
동길은 코를 쥐어 잡으면서도 황급히 문을 활짝 열었고.
“세상에….”
옆에 서 있던 소희의 나지막한 탄식과 함께 그들의 몸이 굳어버렸다.
한때 정갈했을 서장실의 하얀 벽은 누런 진액으로 범벅이 되어있고, 바닥에는 벌 사체가 잔뜩 쌓여있었다.
그리고 그런 아수라장 한가운데 공간을 찢어발긴 듯한 ‘틈’이 있었다.
그것은 깊은 무저갱과 같은 어둠을 지니고 있어 잠시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빨려들어 갈 것 같은 마력을 지니고 있었으니…. 그 위화감에 셋은 선뜻 안으로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다가, 번뜩 떠오른 자신의 상사 걱정에 동길이 가장 먼저 발을 뗐다.
질퍽- 질퍽-
신발에 들러붙는 사체들을 짓밟으며 한 걸음씩 나아간 그들은, 빛무리 너머 고급스러운 책상에 엎드려 있는 한 실루엣을 발견했다.
“형!”
다급한 마음에 소싯적 호칭이 입에서 튀어나왔지만, 동길은 이를 인지하지도 못할 만큼 마음이 급했다.
발에 걸리는 벌 사체들을 걷어차며 도착한 그곳에는, 깔끔한 정복을 입은 시체 한 구가 놓여있었다.
한때 생기를 머금었을 피부는 잔뜩 말라비틀어져 미라를 연상케 했고,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죽은 생선의 눈깔처럼 흐리멍덩했다.
“형…? 종무 형? 아니, 얼마 전까지 멀쩡하던 양반이…. 여기 왜…. 아니 X발, 대체 왜! 형이 여기서 이렇게 있냐고!”
고인의 이름을 부르며 시체를 흔들어보았지만, 이미 죽어버린 몸뚱어리는 일어날 줄을 몰랐고. 동길은 흐느끼는 울음과 함께 무너져내렸다.
민준은 그런 그를 뒤로하고 한때 경찰서를 총괄했을 시체의 왼팔을 슬쩍 들어 손목을 확인했다.
00.
‘역시….’
이런 형태의 시체를 본 적이 있다. 이 세상이 아사리판이 된 첫날.
유충들에게 시간을 빼앗긴 어느 양아치가 이런 모습으로 죽었더랬다.
‘그렇단 건, 경찰서장으로 추측되는 이분 또한 생존시간 부족으로 사망했을 확률이…. 어? 이건?’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왼손을 들추자 보이는 쪽지 하나가 있었다.
한 자 한 자 눌러쓰듯 정갈한 필체로 시작한 편지는 맺는말로 갈수록 누군가에게 쫓기듯 휘갈겨 쓰여있었으니….
“….”
민준은 조용히 편지의 서문을 읽고는, 들썩거리는 동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