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7
027화. 구출 (4)
그렇게 구출조와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동길이 절벽에 강타 스킬을 사용하며 허공에 소리쳤다.
콰아아앙-!
“송파서 1티-임!! 팀장 성동길이 구하러 왔다! 조금만 버텨라!!”
그러자 그 소리는 협곡에서 반사되고 반사되어 울려 퍼졌고, 입구에 잔뜩 몰려있는 벌들을 제외한 다른 모든 벌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부우웅- 부우웅-
아니나 다를까, 벌들은 곧장 도망가는 유인조를 쫓아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1분여 정도 지나자, 인근에서 둥지 주변을 순찰하는 벌들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 가도 될 거 같아요…. 민준 씨, 우리 성공할 수 있겠죠?”
“해야죠, 성공. 제가 먼저 올라가 보겠습니다. 소희 씨는 그 길을 따라 올라오시죠.”
민준은 사람 키만 한 대검을 등에 이고. 소희는 사람 키만 한 스쿠툼, 직사각형 목제 방패를 등에 이고.
가파른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풀 한 포기 자라나지 않은 메마른 암벽을 오르길 십여 분.
“헉… 헉…. 민준 씨 다 와 가는 거 맞아요?”
민준의 아래에서 쫓아 올라가는 소희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에게 물었다.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습니다.”
“이씨, 그 말 벌써 세 번째인 거 아시죠?! 이번에도 거짓말이면-”
“쉿. 무슨 소리가…. 소희 씨 아무래도 저 먼저 올라가야겠습니다.”
소희의 한탄을 끊은 민준이 귀를 기울이더니, 벽에 붙은 개미처럼 빠른 속도로 암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구멍에 가까워질수록 희미하게 들려오던 소리가 점점 짙어졌다.
“씨X! 벌… 너… 많아!”
“…뒤에 …알이 …어!”
“팀장… 오셨… 버텨!”
민준은 손과 발을 더 빠르게 놀렸다.
그렇게 도착한 구멍은 성인이 지나다니기에는 조금 크기가 부족했으므로, 민준은 곧장 가죽 슬링에서 단검을 꺼내 구멍을 넓히기 시작했다.
“성 팀장님이 오셨다!!”
“성동길, 이 새끼! 내가 평생 형님으로 모시고 산다!!”
구멍 안에서 들려오는 큰 고함 소리에, 빠르게 구멍을 넓힌 민준이 그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민준은 물컹-하는 느낌과 함께 기백에 달하는 하얀 애벌레의 파도 위에 떨어지게 되었는데.
“뭐야? 팀장님이 아닌데?”
“그게 뭐가 중요해! 구하러 오신 게 중요…. X발, 건우아 거기 조심!”
그곳엔 온몸이 만신창이인 사내 다섯이 소형견 만한 애벌레 떼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 * *
쿠당탕탕!
두 마리의 땅벌이 탈출을 시도했던 구동범의 다리를 한 짝씩 물고 오더니, 쓰레기를 치우는 것처럼 팀원들 앞으로 툭 던져버렸다.
“행님!”
“선배!”
팀의 쓰리고인 이철호가 곧장 그를 부축하자. 뒤에 서 있던 민머리의 남성, 강만식이 발끈해 벌들을 향해 걸어갔다.
“만식아. 하지 마라.”
“형님! 그냥 이 새끼들 죽이고 탈출하죠!”
강만식이 오함마를 들고 항의하자, 구동범이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손짓으로 불렀다. 그리고는….
찰싹, 강만식 민머리를 찰지게 때리더니 그를 갈구기 시작했다.
“이 새끼는 팀의 투고라는 새끼가 밑에 애들 다독일 생각은 안 하고, 그저 욱해서 말이야. 저 두 마리를 죽이고 나면 그 후에는…?! 네가 여기 있는 벌 새끼들 다 죽일 거야?!”
“아니 그래도-”
“우진이를 믿어보자.”
“오! 막내가 탈출에 성공했습니까?”
“나도! 다시 잡혀 왔는데! 모르지! 임마!”
구동범이 다시금 강만식의 머리를 때리며 말을 이었다.
“마지막에 어떻게 보내긴 했는데…. 믿어봐야지 어쩌겠어.”
그들이 대화하는 순간에도 벌들은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고 자신들의 할 일만 하고 있었다.
한 놈은 입에서 밀랍을 뱉어내 팀원들이 탈출하는 구멍으로 썼던 숨구멍의 크기를 좁혔고, 다른 한 놈은 한쪽 구석에 놓여있는 수백 개의 알이 무사한지 살필 따름이었는데.
할 일을 마치자 놈들은 밀랍으로 문을 봉쇄하고는 그대로 방을 나가버렸다.
“행님. 다리는 좀 괜찮아예?”
구동범을 부축하고 있던 이철호가 팅팅 부은 그의 다리를 살피며 물었다.
“그 새끼들이 부러뜨렸어. 아까부터 시도는 해보고 있는데,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다. 너는 팔 괜찮냐?”
“저야 그래도 왼팔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이고, 우야노. 우리 행님 다리 팅팅 부은 것 좀 봐라. 건우야 이리 와 봐라. 나랑 같이 행님 부축 좀 하자.”
“예, 선배.”
이철호가 자신의 맞후임 김건우를 불러 구동범을 부축하려는 그 순간.
까득.
어디선가 작게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귀를 쫑긋한 구동범이 후배들에게 물었다.
“…방금 무슨 소리 안 났냐?”
“무슨 소리요? 난 못 들었는데?”
“아이고, 이 둔한 새끼!”
“아, 형님! 머리 좀 그만 때려요. 나 머리 나빠진다니까?!”
“너는 더 나빠질 머리도 없어 인마. 힘만 무식하게 쎄서는…. 쯧.”
강만식을 다시 한번 갈군 구동범이 후배 둘의 부축을 받아 구석진 곳으로 몸을 눕힌 순간, 다시 한번 까드득-하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저도 방금 이상한 소리 들었어요.”
“…내도.”
“아니, 도대체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까득! 까드득-!
이번에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소리가 교실 만한 크기의 굴에 울려 퍼졌다.
넷이 동시에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무릎 크기 정도 되는 알이 수백 개도 넘게 세워져 있었다.
“X이발. X된 거 같은데….”
“…행님, 우야죠.”
“철호야, 형님 업어라.”
“왜 또 냅니까?! 여기 건우 있다 아입니까!”
“이 새끼가! 사지 멀쩡한 나랑 건우가 싸워야 할 거 아니야! 너 오른팔 움직일 수 있어?!”
“에이씨-”
강만식과 이철호가 티격태격하는 순간에도 소리를 발하는 알이 점점 늘어나더니.
타닥. 탁. 타닥.
하얗고 길쭉한 알을 깨고 하나둘 새하얀 애벌레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수는 순식간에 한두 마리에서 수십 마리로, 수십 마리는 이내 수백 마리로 불어났는데.
알에서 깨어난 벌 유충들은 마치 공기 중의 냄새를 느끼는 것처럼 고개를 바짝 들더니, 바닷속 말미잘처럼 흐느적거렸다.
“건우! 내 옆에 딱 붙어! 그리고 철호 너는 형님 업고 우리 뒤에 서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넷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서서히 방의 모퉁이로 걸음을 옮겼고.
오함마를 굳게 움켜잡은 강만식이 다리가 성치 않은 구동범을 대신해 팀원을 지휘하며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모퉁이를 등 뒤에 두고 전투준비를 마친 폭풍전야의 순간.
– 송파… 1티-임!! 팀… 성동… 구하러…! …버텨…!!
굴 밖으로 작게 난 숨구멍에서 동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머야?! 이거 성동길이 맞지?”
“막내가 불러왔나 보다!”
“역시 우리 금덩이 같은 막내!”
“애들아, 동길이가 우리를 구하러 오기 전까지 버티는 거. 이거 하나만 기억하자.”
““예엡-!!””
구동범에 말에 팀원들이 다 같이 대답하자, 그 소리를 시작으로 소형견 크기만 한 애벌레들이 꿈틀거리며 사방에서 몰려오기 시작했다.
* * *
약육강식이라는 자연의 섭리를 유충 때부터 가르치려는 것일까. 벌써 애벌레만 수십 마리를 죽였음에도 성체인 벌들은 사투가 벌어지는 육아방에는 일절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건우야 거기 빈다! 막어!”
콰드드드득-!
만식 선배가 오함마를 가로로 휘두르자, 말랑말랑한 피부를 지닌 애벌레들이 후두둑 터져나갔고.
그걸 본 김건우는 다리에 들러붙은 애벌레에게 정글도를 휘두르고는 선배가 말한 자리를 향해 곧장 슬래시 스킬을 사용했다.
촤아아악-
가로로 베인 애벌레들의 노란 진액이 얼굴과 몸을 적셨다.
‘젠장…. 몸이 점점 말을 안 들어.’
놈들을 죽이면 죽일수록. 놈들의 노란 진액을 뒤집어쓰면 쓸수록 몸이 둔해져 간다.
놈들의 진액에는 마비 독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훅…. X발. 드럽게 많네!”
“성지인지 뭔지 하는 것 때문에 능력치 레벨이 떨어졌어요!”
“어차피 이렇게 많은 수 앞에서는 능력치 조금은 큰 의미 없어! 그냥 버텨!”
“성동길 이 새끼는 온다면서 언제 오는 거야!”
등 뒤에서 성난 동범 선배의 욕설이 들렸다.
평소라면 팀장님을 욕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라지만, 지금 당장 몸을 움직이기 위해선 이런 억지스러운 분노라도 필요했다.
‘씨-ㅂ!!’
발로는 다리 밑에 있는 유충을 짓이기고 달려드는 놈들은 정글도로 쳐내면서, 그렇게 김건우는 옆에 있는 선배를 향해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가며 버텨냈다.
“선배 몸이 점점 말을 안 듣습니다!”
“최대한 진액에…. 후욱…. 안 묻게 싸워!!”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쇼!!”
촤아아악-
그 와중에도 베어 넘긴 애벌레의 진액이 팔과 다리를 적셨다.
아무리 죽여도 사방에서 유충들이 몰려든다.
흡사 백색 파도와 같이 짓쳐 드는 놈들은 형제의 죽음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사체를 넘고 넘어 자신들에게 이빨을 들이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 안 가서 몰살당할 것이란 생각이 들자, 어제 옆방에서 들려왔던 비명소리가 떠올랐다.
‘X발….’
그들도 이렇게 죽임을 당했던 것일까?
그 생각을 하니 머릿속에선 욕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제발…. 팀장님, 빨리 좀 오십쇼. 제가 저번에 속으로 욕했던 건 죄송합니다. 구해만 주시면 평생 몸과 마음을 다해 은인으로 모시겠습니다.’
김건우는 속으로 속죄하며, 구원의 손길이 닿길 간절히 바라고 바랐다.
* * *
후두둑-
‘기도빨이 이렇게 잘 먹힌다고…?!’
기도한 지 몇 분 지나지도 않았는데, 거짓말처럼 밖의 밀랍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툭- 툭-
조금씩이긴 하지만, 분명히 육아방의 숨구멍이 넓어졌다.
“성 팀장님이 오셨습니다!!”
“성동길, 이 새끼! 내가 평생 형님으로 모시고 산다!!”
동범 선배도 그 모습을 봤는지 한마디 거들었고.
순식간에 넓어진 구멍에서, 곧 웬 인형이 하얀 애벌레 떼 위로 떨어졌다.
중세 코스프레라도 한 것마냥 온몸을 두르고 있는 판금 갑옷.
등에 메고 있는 거대한 쇳덩이.
중세 시대의 기사가 있다면, 저렇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갑옷을 차려입은 누군가 자신들을 구하러 왔다.
‘분명, 오긴 했는데. 저 사람은 대체…?’
애벌레들과 싸우기 직전에 들렸던 목소리는 분명 성 팀장님의 목소리가 맞았다.
그런데, 자신들을 구하러 온 사람은 기다리던 팀장이 아닌 일면식도 없는 한 청년이었으니.
건우,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팀원들도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뭐야? 팀장님이 아닌데?”
“그게 뭐가 중요해! 구하러 오신 게 중요…. X발, 건우아 거기 조심!”
나는 동범 선배가 말하는 곳에 정글도를 찔러넣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이곳에 난입한 사내를 바라봤다.
‘그래, 일단 놈들이랑 싸울 사람이 하나 늘었다는 게 중요하지.’
마침 유충들도 갑자기 나타난 먹잇감에 흥미가 생겼는지,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놈들은 잠시 멈칫하더니, 자신들 한가운데 떨어진 이방인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입고 있는 걸 보면 성 팀장님이 평범한 사람을 데리고 오진 않은 듯 보이긴 했지만, 아무리 능력치가 높고 장비가 좋아도 녀석들을 혼자 다 처리할 순 없을 터였다.
“조, 조심하세요!”
하지만….
까득- 까드득-
‘미친…?!’
놈들의 이빨이 그의 무쇠 갑옷을 긁는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지고 있었음에도, 청년은 놈들에게 눈길 한번 던지지 않고 자신들을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혹시 동길 아저씨 팀원들 되십니까?”
“동길 아저씨라는 사람이 우리 성동길 팀장을 말하는 거면 맞긴 한데…. 댁은 뉘쇼?”
뒤쪽에 업혀있던 구동범 선배가 자신들을 대표해 말하자, 그가 대꾸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등에 메고 있던 거대한 검을 꺼내 들었다.
‘저거 장식이 아니었던 건가?’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후웅-
코끝을 간질이는 미풍이 얼굴로 불어와 생각에 잠겨있는 자신을 일깨웠다.
이에 다시금 바라본 청년의 자세는 조금 전과 달라져 있었다.
“…어?”
팀원 중 누군가도 이를 눈치챘는지 놈들의 진액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부터, 밖의 성체들이 찾아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까지 뭐라도 말해주려던 찰나.
촤아아아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 꿈틀거리던 수백 마리의 애벌레가 한 줌의 진액으로 변해, 방 내부를 온통 누런색으로 물들였다.
후우우우웅-!
그리고 뒤늦게 불어오는 강풍을 맞으며.
너무나 쉽게 위기에서 벗어난 우리는 멍한 표정으로 사내를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