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7
037화. 경찰병원 (1)
선택의 기로.
그 갈림길에서는 최선의 선택을 한다고 하더라고 언제나 후회는 남는 법이었다.
하지만….
‘저 사람을 선택한 건, 일말의 후회도 없이 내 인생에서 최고의 선택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콰득!
날개에 상처를 입고 추락한 벌이 민준의 발에 짓뭉개지자, 생각에 잠긴 강상철의 발치에 노란 진액이 튀었다.
“벌을 상대할 때는 꼭 몸통을 노릴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날개에 조금이라도 상처를 줄 수 있다면 손쉽게 요리할 수 있죠.”
민준이 서에 있는 모든 대원을 이끌고 나와 사도를 사냥하는 강의를 시작한 것도 벌써 몇 시간째. 그의 주변에는 벌의 사체가 발에 치일 정도로 즐비했다.
지금은 최미영 팀장의 3팀이 벌떼를 상대하는 중이었는데.
“어쨌건 벌이든 나방 유충이든 사도를 상대하는데, 가장 중요한 점은 겁을 집어먹지 않는 것입니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 팀의 막내에게 벌떼가 득달같이 달려드는 것을 본 민준이, 말을 하다말고 곧장 달려들어 거대한 쇳덩어리를 대각선으로 내리그었다.
부아아아왕-!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벌떼가 박살이 났다.
민준은 엉덩방아를 찧은 3팀의 막내, 정연수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주며 말을 이어갔다.
“보시다시피 놈들은 공포란 감정에 무서울 정도로 민감해서, 겁을 먹은 사람을 집중적으로 공격합니다. 게다가 제 경험에 의하면 자신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상대로는 놈들의 신체 능력이 조금 상승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공포란 감정을 자양분 삼아 도핑을 하듯이요…. 물론, 제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그렇다는 거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는 않았습니다.”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은 3팀이 민준의 지도하에 벌떼를 상대하기 시작했고.
다른 팀의 보호를 받으며, 민준의 강의를 경찰 수첩에 개발새발 날림으로 받아적던 강상철은 금쪽같은 사냥의 노하우를 주머니에 소중히 챙겨 넣었다.
‘얼마나 많은 사선을 겪었으면 저런 걸 다 알고 있는 건지….’
강상철은 그 강의를 1열에서 보며 순수하게 감탄했고, 동시에 굉장한 고마움을 느꼈다.
‘송파 거점캠프(1)’로 변한 송파경찰서에서 가락시장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고.
소희 또한 하나뿐인 혈육의 생사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마음이 급할 게 분명했기 때문에, 그는 민준과 소희에게 가락시장에 대한 정보를 전달했을 때 곧바로 가락시장으로 출발할 줄 알았는데.
그녀는 강상철의 예상과 전혀 다른 말을 꺼냈다.
‘제가 보기에 민준 씨는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아서, 언제 끊어질지도 모르는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마침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머물 수 있게 됐으니 이번에는 좀 쉬었다 가야겠어요. 아니! 반드시 쉬어야 해요.’
‘소희 씨, 저는 괜-’
‘시끄러워욧! 아무튼 저와 민준 씨는 이틀 뒤에 출발할 테니, 동길 아저씨 그렇게 준비 부탁드려요.’
강상철이 생각하기에 민준도 민준이었지만, 그와 같이 다니는 저 처자도 보통이 아니었다.
어지간히 심지가 굳지 않고서야 이런 세상에서 타인을 저렇게까지 생각해주기란 쉽지 않을 테니까.
하여튼 그런 이유로 이틀간 민준은 휴식하며 그간 얻은 것들을 점검하겠다며 다시 침상에 누웠고, 딱 반나절 만에 침상을 박차고 일어났다.
– 소희 씨. 저 몸이 근질거려서 못 참겠습니다. 가벼운 운동이라도 하게 허락해주세요.
그리고 그 결과가 이 강의였다.
“이로써 이틀간의 강의를 마칩니다. 어제 말씀드린 데로 실버 등급을 최우선 목표로 하셔야 합니다. 제가 없는 동안은 동길 아저씨께서 잘 이끌어 주실 테니 큰 걱정은 않지만, 다들 다음에 뵐 때까지 모두 무사하셔야 합니다?”
짝짝짝짝-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난 강상철이 다시금 앞을 바라봤다.
이미 출발 준비가 끝난 소희와 민준이 새로이 서장으로 추대된 동길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조장, 소희 양 항상 몸조심해.”
“하하, 평생 못 보는 사람처럼 왜 그러십니까. 오며 가며 자주 들리겠습니다.”
“그래요. 어차피 가락시장이면 바로 앞인데요. 아버지를 찾으면 다시 돌아올게요.”
“물론이지! 우리도 이곳을 굳건히 지키고 있을 테니, 꼭 와.”
강상철은 그렇게 진한 포옹을 나누고 있는 셋을 향해 걸어갔다.
생각보다 강의가 길어졌기에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으니, 슬슬 서둘러야 했다.
“캠프장님, 소희 씨, 이제 출발하셔야 합니다.”
목표지점이 걸어서 10분이면 닿는 거리라지만, 혹시 모를 변수가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캠프장님, 소희 씨, 이제 출발하셔야 합니다.”
“그래 맞아. 내가 2팀장한테 다른 임무도 맡겨놓은 상태라 빨리 움직여야 할 거야.”
“네, 준비는 이미 다 해놨으니까…. 바로 출발할까요?”
그렇게 말을 마친 민준이 들고 있던 택티컬 백팩을 상철에게 건넸다.
“…?”
그가 민준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자 옆에서 소희가 말을 거들었다.
“저희는 무기 때문에 가방을 들 수가 없거든요. 부탁드릴게요.”
그녀는 말해놓고도 무안한지 어색한 웃음을 지었지만…. 길잡이 역할만을 생각하다 어느덧 짐꾼이 되어버린 강상철은 제 선배를 향한 원망을 눈으로 쏟아냈다.
‘선배, 이거 맞습니까?’
‘감내해라…. 나도 했던 일이야.’
동길은 말없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후우…. 그래, 뭐 어쩌냐. 괴물은 둘이서 다 잡아주겠지.’
속으로 긴 한숨을 쉰 강상철은 백팩을 건네받고 앞으로 멨다.
등에는 자신의 가방을 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창시절에도 안 했던 가방 셔틀을….’
문득 깊은 회의감이 들었으나, 어쩌겠나. 자신이 셋 중 제일 약한 것을.
강상철은 조금 전에 했던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사진의 생각을 재고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동길과 소희, 강상철은 중대로를 따라 가락시장 방향으로 길을 떠났다.
* * *
“저희는 경찰병원으로 갈 겁니다.”
“경찰병원 말입니까? 곧장 가락시장으로 가는 게 아니었습니까?”
강상철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은 민준이 되물었다.
경찰병원.
이름과 다르게 민간인도 이용할 수 있는 병원이나, 진료비 감면 등의 혜택이 있기에 많은 수의 경찰 및 소방 공무원이 입원하고 있는 병원이었다.
그리고 종말이 터진 현재.
그 병원은 강상철이 알고 있는 최대규모의 생존자 집단이었다.
“예, 저희 2팀이 탐사한 문정동, 장지동, 가락동 일대에서 가장 큰 규모의 생존자 집단이 머무는 곳이 그곳이거든요. 그곳의 리더와 제가 안면이 있습니다. 아마 그곳이라면 소희 씨 아버지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종말이 터졌을 때, 곧바로 가락시장에 투입됐던 강상철이었다.
자연히 그는 사도들과 싸우며 크고 작은 부상을 달고 살아야만 했는데….
신분이 경찰인 탓에, 경찰병원이 익숙했던 상철은 당시 치료를 받기 위해 곧장 근처에 위치한 경찰병원을 찾았던 것이다.
“그때 터놓은 안면으로, 지난 두 달 가까이 무슨 일 있을 때마다 연락이나 간간이 주고받으면서 위기에 함께 대응해왔죠.”
중대로를 따라 곧장 걸어가는 동안, 웬일인지 사도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것에 의아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셋은 금방 경찰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 왔습니다.”
““와….””
민준과 소희는 무너진 담장 사이로 보이는 광경을 보고 동시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주차장에는 가로수를 깎아 만들었는지 뾰족한 목책과 주인을 잃어버린 차들이 엇갈려 놓여있었고, 그 사이사이 거미와 사람의 사체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낙조(落照)를 받아 황금색으로 빛나는 육중한 느낌의 건물.
분명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지어졌을 그 건물은 전투에 닳고 닳은 성채가 되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건 병원이 아니라 성인데요?”
“그 말이 맞을 겁니다. 거기 리더로 있는 할아범이 수성(守城)을 상정하고 방어체계를 구축했다고 들었거든요.”
셋은 발에 끈적이게 달라붙는 거미 체액과 검게 변색 된 피 웅덩이를 밟으며 주차장을 가로질렀다.
그러자 성벽 위, 아니 4층 베란다에서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쳤다.
“정지! 정지! 신원을 밝혀라!”
땅거미가 졌기에 얼굴확인 잘되지 않아서일까.
등에 활을 매고 있는 한 사내는 목에 맨 망원경으로 대고 자신들을 살폈다.
“여! 거기 윤섭이야? 아, 근재구나?! 나 상철이야! 송파서 강상철!”
“어? 상철이?! 웬일이야! 어서 올라와!”
근재라고 불린 남자가 잠시 모습을 감추더니, 그의 동료와 함께 무언가를 내려주었다.
소희는 그걸 보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대답했다.
“설마… 저걸 타고 4층 높이를 올라가야 하는 건 아니겠죠?”
오누이에게 내려온 하늘 동아줄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여러 개의 사다리를 이어붙였기에 너무나 가냘파 보이는 기다란 사다리가 조금씩 그들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모든 문과 창문을 단단히 막아놔서, 이 방법으로밖에 못 올라갑니다. 어쩔 수 없어요.”
“소희 씨, 저희 암벽등반도 했잖아요. 뭘 이런 거 가지고.”
“아니, 암벽은 단단하기라도 하지. 저건 바람불면 부러질 것처럼 생겼는데….”
이윽고 사다리가 다 내려오자, 망설이는 소희를 뒤로하고 강상철과 민준이 먼저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고.
“어휴, 내 팔자야.”
소희도 한숨을 푹 쉬고 억지로 그들의 꽁무니를 따르기 시작했다.
* * *
그렇게 병원 안으로 들어간 셋은 근재라는 사내를 따라 복도를 걸었다.
병동에는 환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꽤 많아 보였는데, 이는 이곳이 구면인 강상철에게도 의외였는지 이리 저리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근재, 어째 저번보다 환자가 더 많아진 거 같은데?”
“얼마 전에 꽤 커다란 웨이브가 들이닥쳐서 부상을 입은 사람이 많아졌어.”
“큰 웨이브?”
“요새 거미들의 공격이 드세졌거든…. 너 어차피 할아범 만나러 온 거 아니야? 그럼, 거기서 자세히 들어. 난 다시 경계 서러 가야 해”
말을 마친 사내는 코너를 꺾어 계단을 올랐다.
할아범은 6층 병원장실에 있다는 말과 함께였다.
삼엄한 경비를 봤을 때, 이곳은 이방인에게 배타적인 곳이 분명했고 그런 곳에서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민준과 소희는 묵묵히 그들을 따라가기만 했다.
그렇게 얼마간 더 걸었을까. 드디어 일행이 병원장실 앞에 도착하자.
돌연히 문 너머에서 고성이 오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 아니! 지금은 자중할 때라니까!
– 그럼 놈들에게 잡혀간 애들은 그냥 버릴 거야?!
– 그렇다고 저 거미굴을 들어가자는 게 말이 되는가! 그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지 않은가!
근재라고 불린 청년이 무안한지 헛기침을 하며 노크하자 안에서 곧장 외침이 들려왔다.
– 누구야!
“할아범, 상철이가 왔습니다.”
– 상철이? 들어와!
그렇게 들어간 병원장실은 송파경찰서의 서장실보다 작고 아늑했다.
안에는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노인과 다 헤진 가죽 갑옷을 입은 노인이 시뻘게진 얼굴로 마주하고 있었는데, 자신들을 보자 가죽 갑옷을 입은 노인이 양손을 벌리며 다가왔다.
“오! 상철이, 무슨 일이야!”
“김 영감님, 목소리가 괄괄하신 걸 보니 아직 정정하신가 보네요.”
“하하하! 그럼! 어떻게 되찾은 삶인데, 정정해야지!”
김 영감으로 불린 노인과 강상철이 포옹하자, 뒤에 서 있던 의사로 보이는 노인도 불퉁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흥! 네 눈에, 나는 안 보이는가 보지?”
“아이고, 그럴 리가요. 병원장님도 안녕하셨습니까.”
민준은 그 모습을 보며 항상 딱딱하고 보수적인 줄만 알았던 강상철이 이렇게 살가운 면이 있구나 하고 다시 생각했다.
“그런데 상철이, 이 사람들은 누구야?”
“아, 이분들은 저희 송파경찰서의 은인인 이민준 씨와 정소희 씨입니다. 아이고, 정말 이 두 분 아니었으면 저희 서(署) 망할 뻔했어요.”
“고마우신 분이었구먼. 나는 김학범이오. 부족하지만 이 경찰병원 생존자 집단을 이끌고 있지. 그리고 저 치(痴)는 원래 이곳의 장이었던 이종석 병원장이고.”
“반갑소.”
두 노인이 자기소개를 하자,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던 소희와 민준도 그에 따라 자신을 소개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찾아온 게야? 서에 무슨 일이라도 있어?”
“그건 아니고요. 소희 씨가 찾는 분이 있다고 해서 혹시 영감님은 아실까 하고 찾아왔죠.”
“사람?”
김학범이 소희를 바라보자 그제서야 그녀가 이곳의 온 용건을 꺼냈다.
“혹시 가락119안전센터의 정진호 팀장님을 아시나요?”